“이런 계획을 왜 나 빼고 하는 거야?”
탁!
불만이 가득 담긴 몸짓으로 기획서를 테이블에 내던진 박상주를 본 직원들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년은 나이가 고작 서른인데 지가 한 말도 기억을 못하나보다.
“이건 실장님이 저희들한테 알아서 하라고 하셨던 일이라서요. 보고도 올리지 말라고 하셔서 말씀대로 하고 있었는데요.”
“하! 그땐 그냥 흔한 끼워팔기 하는 줄 알았던 거고! 고작 그런 거면 내가 신경 쓸 이유가 없잖아. 근데 이건 큰 프로젝트 아냐? 이런 거면 재깍재깍 나한테 보고를 올렸어야지. 그렇게 센스가 없나?”
귀찮은 건 짬 때리고 번지르르한 건 자기가 취하겠다는 노골적인 태도에 직원은 속으로 이를 바드득 갈았다.
그녀는 이 회사에서 무소불위 권력을 갖고 있는 것 마냥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서슴없이 내보이고 있었다.
‘아직 조대표님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대표실에 앉아 계시는데!’
벌써부터 대표직을 위임 받은 것 마냥 거드름을 피우니….
이미 은퇴하고 회사에서 떠난 사장님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무능하니까 걔네 꼴이 이 따위가 됐지!! 어휴, 무능한 것들. 이런 것들이랑 일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제대로 된 인력을 붙여줘야 일할 맛이라도 날 텐데.”
일상적으로 내뱉는 말에 남탓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일이 잘 안 되면 남탓, 일이 잘 되면 내 덕.
이런 상사를 모셔야 하는 부하 직원들의 정신건강이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가 회사로 들어오면서 직원들의 상태가 맛이 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리멤버의 데뷔 앨범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고 말이다.
‘근무 환경 최악이다. 사직서 내야 할까? 아니야, 조금만 더 참아보자. 대표님이 뭐든 해주시겠지.’
현실적인 문제로 가슴에 품고 있는 사직서를 만지작거리는 직원들.
그들이 매달릴 사람은 지금의 대표님밖에 없었다.
대표님이 무디 이 트롤러에게 정의구현을 해주시길!
“그래서 이거 어디까지 진행 된 거야?”
“아직 진행 된 건 없습니다. 회의 단계에요.”
“그래? 다음 회의 일정 있지? 나도 참가해야겠어.”
“어…실장님께서요?”
“당연하지. 아! 그리고 이거 책임자에 내 이름 올려놔. 내가 회의에 들어가서 정리 싹 해줄 테니까.”
정리?
정리가 아니라 잔뜩 어지르기나 하겠지.
실무진들이 고심해서 만들어놓은 계획을 자기 멋대로 바꿀 것이고 그런 변화에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을 거다.
그냥 자기 스타일대로 일을 하라고 윽박지르는 스타일이니 말이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리멤버 데뷔 앨범에서도 그랬다.
지가 밀어주는 무명 작곡가의 곡을 억지로 구매하게 했고, 그 촌스러운 트로트풍 곡을 타이틀곡으로 삼으려는 트롤짓을 했으니 말이다.
직원들이 필사적으로 반대를 해서 겨우 수록곡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댓글에서 ‘트로트 노래는 왜 끼워져 있는 거임? 트로트 아이돌이야?’ 라는 댓글은 막을 수 없었다.
저 년이 무책임함에 저지르는 트롤짓을 막느라 애들한테 신경 써야 할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게 얼마인가?
애들이 활동 할 때도 트롤짓을 멈추지 않아서 서토프해줘야 했을 순간을 놓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이 기획에 저 년이 또 손을 대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보라고?
‘절대 그럴 순 없지.’
능력은 없는 주제에 욕심이 많은 박상주 실장의 성격을 알았기에 미리 대비를 해놨다.
그녀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한 말에 박상주 실장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지금 나한테 감히 반항하는 거야? 너 잘리고 싶어?”
“그런 거 아닙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저희한테 권한이 없어요.”
“니들이 만든 건데 왜 권한이 없어. 나랑 지금 말 장난 해? 내가 만만하나?”
“정말 그런 거 아닙니다. 에어플레인 전담팀이 모든 결정 권한을 가져갔어요. 거기로 넘어간 이상 저희가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고요.”
에어플레인 전담팀!
이것이 그녀들이 준비한 회심의 수였다.
에어플레인 전담팀은 에어플레인의 엄청난 성과를 서포터 한 유능한 인재들이다.
회사에서 그들에게 터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보여준 성과로 회사가 얼마의 이익을 봤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장님 낙하산으로 내려 온 이 트롤년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걸 왜 걔네들한테 넘겼는데! 리멤버 애들 일이잖아!!”
“리멤버가 출연하긴 하겠지만, 메인은 에어플레인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명분에서 저희가 밀려요. 더욱이 그쪽은 우리를 도와주러 온 입장이잖아요. 저희가 인색하게 굴 이유가 없었습니다.”
“에라이, 호구 새끼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리멤버가 왜 메인이 아니야! 걔네가 메인에 서야지! 리멤버 홍보하려고 기획한 거잖아!”
“누가 메인에 서는지에 따라 홍보 효과가 달라집니다. 에어플레인은 걸어 다니는 간판이에요. 아시잖아요? 우리 애들이 메인 서봤자 아무도 안 봅니다. 관심을 가질 리가 없어요.”
팩트 폭행 공격에 박상주가 정신을 못 차린다.
명분이 확실했고, 우리 쪽은 명백한 을이었다.
그러니 박상주도 이걸 빼앗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직원의 예상보다 박상주는 더 막나가는 인간이었다.
“씹…! 그쪽 팀 몇 층에 있어!”
“예? 그건 왜…?”
“우리 꺼 찾아와야 할 거 아냐!! 너희들이 이 따위로 일하니까 나라도 뭔가 해야지! 내가 이 프로젝트 다시 가져올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어휴! 답답한 것들. 다른 팀한테 프로젝트를 뺏기기나 하고 말이야. 아주 싹 다 갈아버려야 한다니까. 내 능력을 받춰 줄 팀원이 없으니 답답해 죽겠구만.”
지랄 똥을 싸세요.
트롤이 투덜거리면서 에어플레인 전담팀이 있는 곳을 기어코 전해듣고 그곳으로 움직였다.
직원은 그 뒷모습을 보며 절렐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 병신이 지뢰 밟으러 친히 움직여주기까지 하네. 부디 탈탈 털리고 오십시오. 유병장수하시길!’
그녀라고 어디 제 정신으로 프로젝트를 홀랑 뺏겼는 줄 아는가?
저 트롤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자의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이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그 계획을 만들기 위해 보냈던 야근 시간이 얼마인가?
‘일이 잘 되면 리멤버 애들이 잘 될 수 있으니까 그걸로 쓰린 속을 달래고 있었구만….’
저 트롤이 진짜 프로젝트를 다시 가져온다면 그래도 능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구나 웃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은 마굴이었고,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 들어갔으니 살아 돌아오긴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몇 마디 나눠보지 않아도 에어플레인 전담팀의 실력과 말빨이 범상치가 않았던 것이다.
걔들이 괜히 데뷔 초부터 대박길을 걸은 게 아니었다.
그런 괴물들이 뒤를 받쳐주고 있으니 에어플레인이 쭉쭉 앞으로 달려갈 수 있었던 거다.
‘레이블 만들어서 다 데리고 나간다고 했던가? 부럽다. 부러워.’
에어플레인이 재계약에 레이블을 제안했다는 소문은 알음알음 회사에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회사가 아예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으면 모르겠는데, 의외로 대표님이 긍정적으로 가능성을 보고 있는 중인지 회사에 소문이 퍼지고 있음에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
에어플레인 멤버들이 제시한 조건을 허락 받게 된다면 그들 전담팀은 대박이 나는 거나 다름없었다.
‘평소에 인센티브도 엄청 받는다던데…. 똑같은 허니 엔터 출신 남자 아이돌 전담팀인데 대우가 천지 차이구나.’
우리도 그들처럼 리멤버 애들을 성공시키면 그런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을까?
그들이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질투는 나지 않았다.
그저 부러울 뿐.
더불어 철저한 실력제였던 예전과 달리 미꾸라지 한 마리가 들어와 물을 진탕으로 만들고 있는 리멤버 전담팀 상황이었다.
여러모로 에어플레인 전담팀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우리도 저 새끼만 아니었어도 이 정도로 일을 망치진 않았을 거라고….’
상사에게 배운대로 그녀도 어느덧 자연스럽게 남탓을 하게 되고 있었다.
‘누가 제발 저 트롤 새끼 좀 족쳐줬으면 좋겠다.’
♧♧♧
그리고 그 트롤러는 기대한 바대로 족 쳐졌다.
전담팀 누나들에게 줄 선물을 왕창 사들고 도착한 회사.
이번 프로젝트에 우리 전담팀도 도움을 주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선물 목록을 꽤 화려하게 꾸며놓은 상태였다.
누나들은 우리들의 깜짝 선물에 놀라면서 말했다.
“뭐야? 벌써 소문이 너희들한테까지 퍼졌어?”
“무슨 소문이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야? 뜬금없이 선물 보따리를 가져와서 들은 줄 알았네.”
“저희가 선물 드리는 게 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우리 애들이 통이 크고 착해서.”
가격을 가리지 않고 자주 선물을 주면서 전담팀에 꾸준히 고마움을 표하곤 했었다.
미리미리 그런 일들을 해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특히 요즘같이 팀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을 땐 더더욱 말이다.
“다 감사한 마음 때문이죠. 그런데 무슨 소문이에요? 저 궁금한데.”
“아~ 별 거는 아니고…아니, 별 거인가?”
얘기를 들어보니 트롤러가 우리 전담팀에게 화려하게 깨졌다고 한다.
“트롤러가 여길 왔었다고요?! 와~ 아깝네. 저도 한 번 구경하고 싶었거든요.”
“지지야, 지지!”
“하하! 그 정도에요?”
“사람이 정말 별로더라. 어쩜 그런 재수 없는 사람이 다 있대니? 깜짝 놀랐잖아.”
“자세히 얘기 좀 해줘요. 엄청 궁금하네.”
사건은 트롤러가 갑자기 찾아와서 프로젝트를 이런 식으로 뺏어가면 어떡하냐며 따지면서 시작 됐다고 한다.
“어이가 없었지. 우리한테 큰소리를 치는 걸 보고 얘가 전혀 상황파악이 안 된 상태라는 것도 알았고.”
에어플레인이 후배 그룹을 돕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다.
그런데 리멤버 쪽이 큰소리를 낸다?
아쉬울 거 없는 에어플레인은 깔끔하게 프로젝트를 접으면 되는 일이었다.
“프로젝트 접고 싶냐고 하니까 입을 꾹 다물대? 치와와처럼 왕왕 짖어대더니 그때부터 좀 이상한 걸 느꼈나봐. 근데 애가 성질이 사나워서 덤비면 안 되는 걸 느꼈는데도 계속 짖는 거야.”
“내가 옆에서 봤는데, 장난 아니었어. 우리 팀에서 제일 요게 쎄시잖아.”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팀원 누나가 손을 입에 가져다 대며 뻐끔뻐끔한다.
나도 잘 알고 있는 바였기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죠. 우리 누나가 말빨이 매우 쎄시죠.”
능력자들 안에서도 최고로 치는 말빨 센 사람이다.
치와와가 덤빈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누나가 화려한 말빨로 몰아 세우기 시작하자 트롤러는 점점 말을 잃어갔다고 한다.
“하는 말이 내가 누군지 아냐! 이거 밖에 없더라. 어처구니가 없어서. 내가 하도 듣기 싫어서 아, 어쩌라고! 어쩔건데! 하니까 어버버 거리더라. 병신이 말도 제대로 못해요. 그거 보고 갑자기 현타 왔잖아. 내가 이런 모질한 애랑 뭐하고 있나 싶어서. 도대체 리멤버 쪽 직원들은 이딴 애한테 왜 휘둘리는 거야? 능력은 있는 것 같아서 좋게 봤는데 실망했어.”
에어플레인의 화려한 성공으로 우리 팀은 많은 인센티브와 명예를 얻었다.
그뿐인가?
우리가 팀을 전부 데리고 레이블을 차릴 거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뒤가 든든하게 받쳐주니 알량한 권력 믿고 나대는 사람에게 당해줄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그런 년한테 설설 길 필요 있다고 생각해?”
“없죠. 왜 그런 사람한테 당해요? 그러지 말아요. 하고 싶은 말 다 해버려요. 앞으로도 계속. 누나가 당하면 저희 가만히 못 있어요.”
“호호, 요 귀여운 것들. 키운 보람이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