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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13화 (513/849)

그러다가 문득 사장님은 현오를 자주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네가 사는 동네가 어디라고 했지?”

“그건 왜 물어? 이사라도 오려고?”

“안 되니?”

“글세. 우리 집 근처를 노리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서.”

현오 외할머니인 장모님도 이사를 갈까 고민하시다가 애꿎은 근처 건물들만 구매하신 걸로 기억한다.

처제가 위험해서 안 된다고 막았던 것이다.

아무리 은퇴를 했다지만 과거의 은원이 전부 해결 된 건 아니지 않은가?

장모님은 은퇴 이후 자유롭게 돌아다니길 바랐지만, 그걸 정말 실행으로 옮기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이다.

장모님이 정말 편하게 남은여생을 보내시기 위해서는 처제가 조직의 불손분자들을 처리하고 깔끔하게 정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식 싸게 줄게.”

그리고 뜬금없이 협상장이 열렸다.

“얼마나?”

“리멤버가 거하게 실패했고, 에어플레인은 이제 재계약을 앞두고 있지. 조금만 흔들어도 주가가 훅 빠질 거다.”

“불법 거래를 하라는 거야?”

“그냥 그렇다는 거지. 편한 방법도 있다는 걸 알려줬을 뿐이야.”

지금의 허니 엔터 주가는 거품이 끼어 있는 게 사실이다.

사장님이 말했던 것처럼 후속 그룹인 리멤버가 실패했고, 에어플레인의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이 소식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면 주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차피 알려지면 생길 일이니 거래할 때 이런 사항을 제시해서 값을 떨어트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언니가 그걸 말할 위치는 아니지 않아? 누가보면 언니가 구매하러 온 사람인 줄 알겠어.”

“내가 내 주식 내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 싸게 넘기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건데. 이걸 쥐고 있다가 그것들한테 넘어가는 것보단 훨씬 낫다. 회사에 괜히 해악이나 끼칠 테지.”

“그래도 누군가는 언니 의지를 이어받아줬으면 했겠지. 근데 그 작자가 언니 기대를 무너트린 거고 말이야.”

“…….”

나는 지금 말하는 사람이 회사에 있는 트롤러를 말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사장님은 그 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이 회사에 저지르고 있는 일들은 전해 들었어. 네가 알아서 처리하렴.”

“언니가 꽤 시달리지 않을까 싶은데.”

“나한테 받아먹어야 할 게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날 귀찮게 굴까. 그럴 일 없다.”

주식 거래로 거액의 돈을 받을 테니, 그 또한 그들의 폭주를 막아줄 구실이 될 것이다.

“잘 해준 일도 없는 친척들인데, 억울하지도 않아? 돈 보고 접근하고 알랑거리는 거.”

“역겹지. 그래도 가족이니까 참고 봐줄 수 있는 거야. 남이었으면 절대 못 봐주지. 돈 때문에 사람이 어떤 괴물이 될 수 있는지 우리가 모르지 않잖아. 내 친척들이라고 특별할 게 있겠니. 그래도 웃기긴 하더라. 내가 기부를 할 때마다 쪼르르 달려와서 어떻게든 말려보려는 행동들은.”

사장님과 연주 누님의 대화는 선뜻 끼어들 수가 없는 내용들이었다.

나는 괜스레 밥 잘 먹는 현오를 챙기는 척 했다.

“아빠! 아빠나 잘 머거.”

그러다가 현오에게 한 소리 들어 버렸지만 말이다.

우리를 데려오지 않으면 거래를 안 해주겠다고 협박한 사람치고는 대화가 척척 잘 진행 됐다.

사장님이 일단 주식을 비싸게 받을 생각이 없으셔서 더 그랬다.

참고로 누님은 돈을 융통해주겠다는 멜리사의 제안보단 비앙카가 내 걸었던 조건을 받아들였다.

허니 엔터의 주식을 51%나 확보 할 수 있는 건 누님이 바라는 일이긴 했지만, 과한 욕심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때문에 사장님의 주식 중에 반을 연주 누님이 가져가고 나머지 반은 비앙카의 회사가 가져가게 될 예정이었다.

“믿을 수 있는 곳 맞니? 네가 어디가서 사기 당할 애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잖니.”

“내가 믿음도 없는 사람을 이번 일에 끌어 들였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지. 네가 그럴 리 없지.”

“가족같은 사람이야.”

“…….”

사장님이 따스한 시선으로 연주 누님을 응시했다.

“여전히 네가 피곤해 보이긴 해도 좋아보였던 이유가 있었구나. 가족이 늘었던 거야. 잃어버리고서야 깨달았던 나와 달리.”

“언니….”

“너는 잘 살았으면 좋겠어. 꼭 얼굴을 봐야겠다고 했던 건 네가 걱정 돼서 그랬던 거고. 덕분에 네가 잘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가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서 그게 아쉬울 따름이야.”

사장님이 갖고 있는 주식에 프리미엄을 받으려 해도 부족할 판에, 그녀는 선뜻 싸게 주겠다며 거래 금액을 팍팍 쳐냈다.

연주 누님이 자꾸 이러면 곤란하다고 화를 낼 정도로 말이다.

돈 앞에서 혈연도 무너지는 세상이 아닌가.

그 모습만 봐도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위하는 사이인지 짐작이 됐다.

“날 챙기려고 하지 말고 본인을 챙겨. 나는 내가 알아서 잘 살 수 있으니까.”

“냉정하기는.”

“이게 냉정한 거야? 현실적인 거지. 회사 지분을 팔았으니 앞으로 얼마나 속이 허하겠어.”

“그래서 내가 현오나 돌보면서 지내겠다니까 네가 또 싫다며?”

“싫은 게 아니라 못 구할 거라는 뜻이었어. 그게 진짜고.”

“흥.”

그렇게 투닥거리던 둘은 거래를 순식간에 끝내버렸다.

현오가 밥을 다 먹을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둘은 어쩌다가 이 사고를 치게 된 거야?”

“우리가 만난 게 사곤가?”

“사고지 그럼!! 너는 회사 대표 아니, 그땐 이사였지. 이사고! 저 아이는 소속 연예인인데! 나 솔직히 듣고 기절할 뻔했어.”

“…그냥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우리는 첫 만남을 꺼내면 여러모로 찔리는 구석이 많다 보니 할 말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푸근한 동네 아줌마 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사장님의 표정이 찰나 서늘해지자 황급히 내가 나섰다.

“제가 쫓아다녔습니다. 누님한테 첫 눈에 반했거든요.”

“자네가 쫓아다녔다고? 나이가 마흔이 다 되어 가는 여자한테?”

“제 취향이 좀 독특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누님은 워낙 동안이시라 그 나이대로 보이지도 않으시고요.”

“연주가 젊게 살기는 하지.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난 아줌마고 쟤는 아가씨라고 불렸거든.”

“언니랑 나랑 나이 차이가 왜 안나? 16살이나 나는데. 현오야 할머니라고 불러봐.”

“할모니?”

“그래. 앞으로도 계속 할머니라고 부르렴.”

“네에!”

현오가 쓸데없이 우렁차고 야무지게 대답했다.

다행인 것은 사장님이 현오에게 할머니라고 부르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할머니라고 불러지는 것에 행복해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번 년도에는 현오랑 같이 갈게.”

“…애를 데리고 뭐하러 그런 곳엘 데려가.”

됐다고 말하는 사람치고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현오랑 같이 어딜 가려는 건가 의아했지만, 곧 알 수 있었다.

“미희한테 현오 안 보여줄 거야?”

“!!”

미희라는 단어가 나오니 사장님이 참지 못하겠는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만큼 애정 하는 사람의 이름이었을 게 분명하다.

“보여줘야지. 그래야지. 암. 고맙다.”

“건강이나 조심해. 늙었는데 병까지 들면 정말 힘들어져. 행복할 순 없겠지만 웃을 수는 있어야지.”

“그래. 그럴게.”

“여행도 같이 다니고.”

“네가 퍽이나 여행을?”

…역시 사장님도 만만치 않은 분이신지 연주 누님에게 계속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슬퍼하고 있음에도 누님의 말에 따질 건 분명하게 따지고 있었다.

“나도 요즘엔 여행 다녀. 가족여행.”

“가족 여행에 내가 끼면 안 되지.”

“왜 언니가 끼면 안 돼? 언니는 내 가족 아니야?”

“…오늘따라 자꾸 닭살 돋는 말을 하네.”

“늙은 언니 챙기는 건 동생인 내가 해야지, 어쩌겠어.”

연주 누님은 자신이 한 말을 잘 지켰다.

사장님의 관심이 내게 향하려고 하면 곧바로 화제를 돌려서 관심을 흐려놨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장님도 나보다는 현오나 누님에게 말을 걸며 관심을 기울였다.

아마도 누님이 나를 지켜주려는 의도를 눈치 채서 그런 걸 거다.

나에 대한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깜찍 발랄한 현오는 사장님에게 애교를 잔뜩 부려서 혼을 쏙 빼놨다.

‘내가 시킨 걸 기억하나보네.’

그냥 있어도 귀여운 애가 애교까지 부리니 사장님이 정신을 못 차리는 건 당연했다.

나중에 우리가 집에 돌아가기 위해 배웅하는 시간이 되자 사장님은 현오를 보내기 싫은지 자꾸만 같이 살자며 현오를 꼬득였다.

“안 대여!”

하지만 똑똑한 현오는 단호하게 맺고 끊을 줄을 아는 남자였다.

“할모니가 현오 보러 와. 아라찌?”

현오가 여기서 사는 것은 안 되니 사장님이 자길 보러 오면 된다는 거였다.

“그래, 할머니가 현오 보러 갈게. 약속.”

“야쏙!”

결국 이 말에 홀딱 넘어가서 사장님은 현오와 손가락 걸고 약속까지 하셨다.

그리고 현오에게 지어줬던 미소를 싹 지운 사장님이 우리에게 말했다.

“필사적으로 화제를 돌리는 걸 보면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너희들이 이미 좋아서 살고 있으니 방해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밝혀지면 남들한테 좋은 얘기 못 들을 관계잖니.”

“계속 숨기진 않을 거야. 사실 재계약 전에 알릴 생각이거든.”

“굳이 그걸 너희가 알리겠다고?”

“응. 그게 알려지면 회사 주가는 더 낮아지겠지. 그러니까 언니는 이번에 잘 털어버린 거야.”

“그것 때문에 억지로 51%를 어떻게든 확보하려고 했던 거였구나.”

“에어플레인은 고작 이런 걸 밝힌다고 흔들릴 팀이 아니거든. 애들은 국내 팬보다 해외 팬들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해외에서는 고작 이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으니까.”

연주 누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진해솔의 약점이 세상에 밝혀지고 그것이 더 이상 약점이 아니게 되었을 때.

나는 지금보다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것을 위해 잠시 흔들리는 것은 뿌리를 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고육지계일 뿐.

이미 주식을 모두 넘기기로 한 사장님 입장에서 참견할 수 없는 얘기이기도 했다.

“영악하네. 자기 남자 지키겠다고 몇 천억을 쓰고도 좋다고 웃고 있어.”

“회사가 아닌 다른 게 소중해질 거라고 상상도 못했던 내 삶에 상상 못했던 선물을 준 사람이야. 그 사람을 위해 이 정도 노력? 아무것도 아니지.”

이때, 자신만만하게 웃는 연주 누님을 보며 나는 살짝 지려버렸던 것 같다.

우리 누님이 너무 멋있었다.

♧ ♧ ♧

내가 숨기고 있는 사실을 세상에 밝히기 위한 기자회견을 하기 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물론 준비 과정이 한 두 가지만 있겠냐만은, 이건 절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바로 멤버들에게 가장 먼저 사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시간이 오래 남지 않았으니 후배님들을 도와주는 일이 끝났을 때쯤 말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때쯤이면 딱 재계약에 관련 된 일을 본격적으로 나누고 있을 테니 말이다.

예정에 없던 사장님 댁에 가서 밥 한 끼를 먹고 온 날부터 며칠이 지났을 무렵.

회사에 아주 빠른 속도로 소문이 퍼져나갔다.

조연주 대표님이 전 사장님의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는 소문이었다.

허니 엔터에 암약하고 있던 암덩어리가 펄쩍을 뛸 소식이었다.

아무도 그 암덩어리를 좋게 보는 이가 없는지라 다른 이들보다 늦게 소식을 들었는지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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