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14화 (514/849)

아쉽게도 난리가 난 걸 내가 직접 목격한 건 아니었고, 나중에 회사에 들렀을 때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회사가 난리가 났다는 걸 전해들은 거였다.

“짤렸어요?”

“아니. 무슨 생각인 건지 아직도 버티고 있어.”

“신기하네. 여기 버틴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게 아닐 텐데.”

트롤러는 무슨 생각인지 아직도 회사에 나오고 있다고 한다.

누님이 사장님으로부터 주식을 모두 사들였다는 건 확실한 일이고, 부당한 방법으로 입사한 트롤러는 더 이상 보호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였다.

본인이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다면 얌전히 퇴사를 하는 게 나았다.

괜히 구질구질하게 회사에 남아 있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직원들이 트롤러 눈치 본 건 사장님이 갖고 계신 지분 때문이잖아. 그런데 그걸 사장님이 팔아버렸네? 이제 남은 건 트롤러한테 그동안 당해 온 거에 대한 울분과 분노지.’

그걸 정말 몰라서 계속 회사에 나오고 있는 건 아니길 바란다.

그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라면 그동안 직원들이 당했던 일들이 너무 억울해지는 거다.

‘우리 직원들이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인데….’

아니지, 오히려 트롤러가 도망쳤다면 결말이 허무하게 나서 찝찝했으려나?

“직원들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글쎄다. 다들 언제 시작할지 눈치만 보고 있지 않을까?”

트롤러가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회사에 꽤나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연주 누님은 해고시킬 생각 없을 텐데. 해고 시킬 명분도 부족하고.’

회사에서 해고를 시키려면 정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물론 그 사람이 리멤버 데뷔 앨범을 방해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치긴 했지만 그것으로는 명분이 부족하다.

그걸 트롤러도 아니까 버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욕먹는 걸 즐기는 사람인가?’

나는 누나에게 앞으로 그 사람 얘기가 어떻게 진행 될지 알게 되면 계속 얘기해달라고 말해놨다.

지금 회사에서 트롤러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보니 매우 흔쾌히 내 부탁을 받아주더라.

“근데 그 사람 때문에 저희 일정이 바뀌거나 그런 건 없겠죠?”

“이젠 그러고 싶어도 못 그러지 않겠어?”

“그건 그렇겠네요.”

우리 전담팀이 붙어서 그런지 촬영은 일정이 굉장히 빠르게 잡혔다.

연주 누님이 우리 팀을 직접 신경 쓰다 보니 전담팀도 누님의 스타르타식 진행에 익숙해져서 어떤 계획을 하든 빠르게 진행하는 게 보통이었다.

“근데 이 체육 대회는 왜 하는 거에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계획서가 우리가 앞으로 찍을 촬영 내용이었기에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이걸 어디에 방영할 것인지, 어떤 내용의 촬영을 할 것인지 등등.

영화를 찍을 때 콘티라는 게 있다면 이 계획서가 바로 그 콘티와 같다고 볼 수 있었다.

“그냥 너희들이 얼마나 친한지 보여주는 방법을 떠올리다가 애들끼리 체육 대회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끼워놓은 거야.”

“흠, 인원이 적어서 재미가 있을까요?”

“너희들이 모였는데 안 재밌는 일은 없지 않을까?”

춤을 잘 춘다고 해서 운동을 잘 하는 건 아니다.

강준은 특히 운동을 잘 못하는 운동치다.

나 같은 경우에는….

‘판 깔아주는 거나 다름없지. 이 몸이 어떤 몸인데.’

인간의 기준을 넘어선 사기적인 몸이다.

내가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였다.

적당한 기록을 미리 알아 와서 너무 과한 기록을 세우지 않도록 하는 것.

“리멤버 애들은 요즘 뭐해요?”

“걔네들은 벌써 촬영 준비에 들어갔어.”

“촬영 준비요?”

“여전히 연습실에 살고 있다는 뜻이야.”

“진짜 부지런한 애들이네요.”

“그만큼 간절하니까. 애들도 이젠 제대로 꽃길 걸어야지.”

“그렇죠.”

전담팀 직원들이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두 팔을 걷어 부치는 이유가 있다.

리멤버가 잘 되어야 회사에서 우리들이 제시한 계약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리멤버가 뜨지 못해서 캐시카우 노릇을 계승하지 못한다면?

허니 엔터는 에어플레인을 놔줄 수가 없어진다.

그렇기에 우리 팀에게도 리멤버 애들의 미래는 매우 중요했다.

“어때? 만족해? 수정할 곳은 없는 것 같고?”

“네. 항상 저희가 바라는 거 이상으로 해주시니까요.”

“우리가 계획한 걸 너희들이 잘 해내주니까 결과가 좋을 수 있는 거지.”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에 금칠 한 번씩 해주며 끈끈한 우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사람이 한 명 지나갈 때마다 90도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일사분란하고도 기계 같은 인사에 우리가 신인 때도 저랬을까 하는 궁금함이 든다.

‘기억이 안 난단 말이지.’

데뷔 때 열심히 인사를 하고 다녔다는 건 기억이 나긴 하는데….

저렇게까지 예의있는 인사를 했던가 떠올려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저건 90도가 아니라 폴더 접듯이 허리를 접어버린 것 같단 말이지.’

누가 얘네들을 미필이라 하겠는가?

군기가 바짝 들어 있다.

저 모습을 보니 촬영 때도 기대가 된다.

아마 몸을 사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촬영에 임할 게 분명했다.

“얘들아. 잠깐 이리 와봐.”

그리고 그 전에, 한 가지 상황을 예방하고자 리멤버 애들을 불렀다.

“예, 선배님!”

“왜 갑자기 또 선배님이 됐어?”

“촬영장이니까 선배님이라고 불러야죠.”

“흠, 그건 그렇네. 인정.”

“헤헤.”

“아무튼 너희들 오늘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 불렀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애들 눈에 불이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딱 봐도 그럴 것 같아. 그래서 촬영을 열심히 하라는 소리는 못할 것 같고, 너무 의욕을 앞세우다가 사고 칠 수 있으니까 좀 진정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진정이요?”

“응. 원래 흥분하면 사고도 잘 치잖아. 너희들이 지금 그 상태 같거든. 신나고 떨리고 두렵고 뭐 별의 별 감정이 다 들 텐데, 몸조심 좀 하자. 너희들 중에 한 명이라도 다치면 어떻게 되는지 상상해본 적 있어?”

“!!”

애들이 잘 할 생각만 했지 다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건 생각 못했나보다.

“너희들 몸 조심해야 하는 사람들이야. 어딘가 부러졌다? 그럼 기본으로 모든 일정이 쭉쭉 뒤로 밀려. 그럼 어떤 문제가 생길까?”

“은퇴!?”

그건 너무 나갔고!!

“은퇴라니. 이제 막 데뷔한 푸릇푸릇한 신인들이. 그게 아니라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의미가 퇴색 된다는 거야. 시기가 뒤로 밀리면 우리도 이렇게 시간 내서 도와주지도 못할 거고 말이야.”

지금은 특별한 시기다.

재계약을 앞두고 있으며, 멤버들 모두 개인 활동을 하느라 시간이 널널하면서도 바쁜 어중간한 시기.

회사와 순조롭게 재계약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본격적으로 컴백 앨범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이 딱 얘네들을 도와줄 적절하고도 완벽한 시기인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니 애들 몸에 힘이 들어갔다.

긴장하고 있는 거다.

“긴장 풀어. 다치지 말라고 했는데 그렇게 몸에 힘을 줘버리면 다치라고 고사 지낸 꼴이 되잖아.”

“으으….”

“죄송합니다아~”

“힘 풀어야 돼.”

“이렇게 하면 좀 풀릴까?”

평소 엉뚱한 구석이 있는 초원이가 제자리에서 뛰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면 힘이 풀릴 거라 생각했나보다.

뭐든 안 한 것보다야 낫겠다 싶어 가만히 내버려두니 다른 멤버들도 초원이를 따라서 제자리 뛰기를 시작했다.

심지어 블루는 쪼그려 뛰기까지 했다!

“야야 그건 좀…. 이따가 다리에 힘 풀리면 어떻게 하려고. 가볍게 해. 가볍게. 이따가 체육 대회 하는 거 알잖아.”

“옙!”

애들이 엉뚱한 면이 많지만, 그래도 말은 참 잘 듣는다.

그렇게 애들을 열심히 달래고 있자 우리 멤버들도 이쪽으로 합류해서 애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동안 자주 리멤버 애들을 보러 다니며 친해진 보람이 있어서 촬영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원래 애들끼리 이렇게 수다를 떨고 놀다보면 있던 긴장도 사라지게 되기 마련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아~ 모든 촬영장이 이런 분위기였으면 좋겠어. 그럼 잘 할 수 있을 텐데.”

흥이 오른 아이스가 우연이랑 춤을 추면서 놀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는지 말했다.

“그런 소리 함부로 하면 큰일 나.”

키유가 막내를 서둘러 단속했다.

아이스는 자기가 실수했음을 깨닫고 서둘러 사과를 했다.

“미안.”

“괜찮아.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지. 그리고 사실 형들이 널 챙겨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히잉….”

멤버들끼리 우애도 참 좋다.

역시 얘네들은 운이 나빠서 지금같은 상황이 된 거지, 한 번 제대로 기세를 타면 우리처럼 잘 될 게 분명했다.

물론 지금의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말이다.

“체육복 예쁘다.”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나는 리멤버 애들이 입은 분홍색 트레이닝복을 칭찬했다.

남자는 역시 핑크지.

“앗! 감사합니다.”

“잘 어울려.”

“선배님도 되게 잘 어울리세요!!”

자연스럽게 이어진 칭찬.

하지만 내겐 썩 달갑지 않은 칭찬이었다.

얘네는 핑크지만, 우리는 옐로우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연노랑색의!!

“음, 그래? 난 마음에 안 들어서.”

“어? 왜요? 예쁜데.”

“병아리도 아니고…. 애초에 난 이런 색을 싫어해.”

“형은 이 산뜻한 색이 왜 싫은 거야? 산뜻하고 좋기만 한데.”

그나마 경태 형이 나와 비슷하게 어두운 톤의 색을 좋아했는데, 그런 형 마저도 내 불만을 썩 공감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체육할 건데, 이 색은 더러워지면 티가 많이 나잖아. 그래서 싫은 거 아닐까?”

“아~ 그거였네!”

전혀 아니거든요?

“곧 촬영 시작합니다! 출연진 분들 모여주세요!”

우리가 찍을 이 촬영은 에어플레인 전담팀의 놀라운 수환으로 케이블에서 방영이 예정되어 있다.

에어플레인 뿐만 아니라 리멤버 그리고 회사 소속 선배님들도 깜짝 출연을 예고하니, 케이블 방송국 입장에선 방영하는 것만으로도 본전은 뽑고도 남는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리멤버 전담팀들은 우리 팀이 이뤄낸 성과에 열정적인 박수를 쳤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 회사 자체 컨텐츠로나 쓰일 촬영을 케이블에 방영하게 하는 건 대단한 성과가 맞았다.

그리고 방영 되는 곳이 결정이 되자 촬영 준비는 급물살을 탔다.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촬영 부분을 방송국에 일임할 수 있게 됐다 보니 그렇다.

스태프들이 우리를 불러서 우르르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우리 멤버들 6명 리멤버 애들 7명이 모이니 13명이나 되는 대규모 인원이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체육 대회의 일정은 이렇다.

가볍게 시작하겠다는 의미로 팀 짜는 게임 닭싸움, 씨름이 계획 되어 있고, 팀이 결정 되면 높이뛰기, 줄다리기, 이어달리기, 2인 3각 등등의 일반적으로 체육 대회 때 찾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할 예정이었다.

이런 대회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따로 진행을 해줄 MC가 필요했지만.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프로그램 Honey~♡ 일일 MC를 맡은 에어플레인 남은규.”

“리멤버 블루입니다!”

리멤버 애들을 한 번이라도 더 홍보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기에 따로 MC를 섭외하지 않았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MC를 볼 기회를 줄 예정이고, 리멤버 애들로만 짜면 실수가 나왔을 때 수습이 되지 않을 것 같았기에 리멤버 쪽 1명과 에어플레인 1명이 함께 MC를 보기로 했다.

그리고 첫 MC를 맡은 것은 남은규와 블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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