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성웅성-
“그나저나 오늘따라 회사가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촬영을 하고 있는데도 바깥이 계속 시끄러웠다.
“잠깐 휴식해도 될까요?”
“예, 마침 밥 먹을 시간이니 밥 먹고 다시 찍겠습니다.”
“네에~”
제작진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회사가 소란스러운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움직였다.
“무슨 일 있어요?”
“앗! 여기까지 나오신 거에요?”
“촬영하는데 소리가 방에까지 들려와서요.”
“아이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곧 괜찮아질 거에요.”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회사가 시끄러운 건데요?”
“그게….”
회사 직원이 난감한 듯 선뜻 말을 못한다.
하지만 곧 말을 듣지 않아도 이유를 알게 됐다.
“어? 저 사람….”
일명 트롤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진상이 회사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결국 나가게 됐나 보네요.”
그러고 보니 여기가 리멤버 전담팀 회의실이었다.
아무래도 리멤버 애들에 관련 된 촬영이다 보니 이곳에서 촬영을 하게 된 것이다.
“어머! 해솔씨. 촬영은요?”
“너무 소란스러워서요.”
“미안해요. 금방 조용히 시킬게요.”
“아닙니다. 잠시 쉬기로 해서 괜찮아요. 근데 저 사람 결국 나가는 거 맞죠?”
“네, 오늘 퇴사한대요.”
사장님에게 말을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퇴직이라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실행력이 뛰어나신 분이었다.
“골치 썩히던 사람이 나가는 건데, 의외로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네요.”
그래도 한 가지 공통 된 게 있기는 하다.
모두의 표정이 좋다는 것.
‘그래도 엄청 사이다이긴 한가봐.’
누구도 표정 관리 하는 사람이 없다.
엄청 좋아한다.
“아마 좀 더 괴롭히고 싶었을 거에요. 아시겠지만 저 인간한테 당한 게 많잖아요. 근데 생각보다 일찍 나가 떨어졌네요. 우린 시작도 못했는데.”
“아~!”
직원들이 저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긴 했었다.
내가 눈치 없이 직원들이 즐기는 판을 망친 건가?
살짝 미안해지려는데 직원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속은 시원해요. 꼴좋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까 차라리 지금 나가주는 게 다행이다 싶네요. 저 인간이랑 계속 대거리 해봐야 비슷한 인간밖에 더 되나 싶어서요.”
“그렇군요.”
“그리고 더 마음에 드는 게 저 인간 오늘 좀 우습게 됐거든요. 아까 그 소란도 그거 때문에 생긴 거였어요?”
“우습게요?”
“네. 저 인간 따라서 퇴사하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대요.”
“한 명도요? 돈을 꽤 많이 제시했다고 들었는데.”
자기 돈이 아니다 보니 공수표를 남발했을 것이다.
그래서 회사 직원 중 한 명쯤은 돈에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런데 정작 패를 까보니 한 명도 그녀를 따라가겠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얼마나 무능하면 한 명도 저 사람한테 넘어가질 않은 거지?’
굉장히 뜻밖이면서도 꽤나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허니 엔터 직원이 저 답없는 인간을 따라가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씁쓸했을 것이다.
“그만큼 저 인간을 좋게 본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거죠! 지금 저 충격 받은 얼굴도 오늘 애들이 싹 말을 바꾼 것 때문이에요. 지금 저 주변에 한 명도 없는 거 보이시죠? 아우! 이게 사이다지.”
“잘 됐네요. 따라가는 사람이 있을까봐 마음이 안 좋았는데. 사실 저 사람, 회사 세운다는 거 공수표였어요. 정작 사장님은 저 사람한테 투자할 생각이 전혀 없으시거든요.”
“사장님이요?! 그걸 해솔씨가 어떻게 아세요?”
아차.
“저도 다른 분한테 들은 얘기에요. 아마 대표님 쪽에서 흘린 말이 아닐까요?”
“아~ 그런 소문이 있었구나. 그래서 아무도 안 따라간 건가?”
그건 아닐 거다.
지금 이 말은 내가 처음으로 말해준 소식이니 말이다.
현오와 함께 사장님을 찾아가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을 말하고 난 이후.
분노한 사장님은 트롤러에게 단 한 푼의 돈도 투자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니 내가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다만 그걸 내가 알고 있는 게 이상했기에 소문으로 들은 것이라며 시치미를 뗄 수밖에 없었다.
직원도 딱히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지 순진하게 내 말을 모두 믿었다.
“결국 입만 놀렸지 제대로 진행 된 게 하나도 없는 거였네요.”
“그렇죠.”
“와~ 진짜 인간쓰레기다. 그래놓고 끝까지 같이 가자고 우릴 설득한 거네요? 살짝 미안할 뻔했는데 이 말 들으니까 동정심을 줄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끝까지 같이 가자고 했어요?”
“네. 그뿐이겠어요? 자기랑 같이 나가지 않은 걸 후회할 거라고 악담을 퍼부었어요.”
직원은 트롤러가 마지막까지 회사에 진상짓을 하고 나가는 것에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래도 저 사람은 회사에 개진상 트롤러로 길이길이 남을 것 같다.
“너무 분해 하지 마세요. 저 사람 앞날이 썩 좋지 않을 테니까요.”
사장님이 이룬 부는 뜻을 이루기 위해 회사를 세우고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온 부가가치일 뿐이었다.
그랬기에 선뜻 친척들에게 지원을 해준 것이기도 하다.
허나 아무리 그녀에게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 해도 이런 식으로 개처럼 쓰이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돈을 펑펑 써서 저 년놈들에게 한 푼도 안 물려줄 수 있게 하겠다고 했지.’
내가 생각해도 사장님께서 고생해서 버신 돈을 저런 놈들이 거들먹거리는데 쓰는 꼴을 볼 바에야 사장님께서 흥청망청 물 쓰듯이 돈을 쓰시는 게 더 뜻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장님께서 돈을 써봤자 기부 외에 큰 돈 쓰시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돈을 쓴 게 있다면….
‘우리 현오 이름으로 건물을 사주신댔지.’
바로 현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었다.
덕분에 아직 10살도 안 된 애 재산이 장난이 아니었다.
현오에게 이런 어마어마한 선물을 안기는 건 사장님만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외할머니와 최관 처제가 어린이날, 생일날을 꼭꼭 챙겨서 묵직한 선물 보따리를 현오에게 선물하고 있었다.
그런데 돈 많은 할머니가 한 명 더 늘었으니 현오만 노났다고 할 수 있다.
‘내 아들이지만, 진짜 부러운 인생이야.’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들과 할머니들에게 사랑을 받고, 돈이 뭔지도 모를 나이에 남들이 평생 벌어도 못 가질 재산을 갖고 있는 상황.
포니와 계약했을 때, 아이돌이 되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나 같은 아빠 자식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랬으면 인생이 꽤나 즐겁지 않았을까?
‘물론 그래서 지금 소원 바꿀 거냐고 물으면 절대 안 바꾸겠지만.’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 할 이유가 없는 인생이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내 여자들을 두고 어딜 간단 말인가?
트롤러 박상주가 씁쓸한 뒷모습으로 터덜터덜 회사를 떠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박상주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완전히 사무실을 떠나갔을 때.
“드디어 해방이다!”
“와아~!”
“어휴! 저 진상, 드디어 갔네.”
“징글징글한 놈이라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직원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 환호성을 들으며 떠오른 생각이 한 가지 있다면 ‘저렇게 살진 말아야지.’일 것이다.
누군가가 내가 떠났음에 환호한다는 것.
그보다 씁쓸한 일이 어디 있을까?
저 사람은 본인이 저지른 잘못이 뭔지도 모르고 억울해 하기만 한 채로 살아갈 것이다.
한 사람의 신뢰도 못 산 사람이니 자업자득이다.
“그나저나 그 소문 들었어? 저 사람 투자금도 못 얻어놓고 회사 차린다고 그런 거였대! 사장님이 저 인간한테 돈을 줄 생각이 없었다는 거지.”
“말도 안 돼. 사람이 그렇게 쓰레기일 수 있다고?”
“이건 진짜 충격인데. 저 자식, 끝까지 회사에 진상 짓을 하고 갔네?”
그리고 내 입에서 시작 된 진실이 회사에 쭈욱~ 퍼지기 시작했다.
이제 누구도 박상주를 동정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
저번에 회사에서 제키와 내가 곡에 대해 회의를 하는 걸 찍어갔는데, 다른 멤버들도 한 번씩 촬영을 해갔다고 한다.
리멤버 애들에게 부족한 무대 연기를 준이가 가르치는 모습을 찍기도 하고 은규와 우연이가 애들에게 예능 촬영에 도움이 될 노하우를 가르치는 모습 등을 담아갔단다.
우리가 리멤버 애들의 컴백 앨범에 진심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찍어간 것이다.
그렇게 며칠 간 개개인 촬영 이후.
다시 한 번 모두가 모여서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게 됐다.
이번 촬영 목적은 리멤버, 에어플레인이 함께 본격적으로 앨범 구성을 회의하는 거였다.
우리가 어떤 컨셉의 앨범을 제작할 생각인지, 그리고 그에 관해 리멤버 애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서로 상의하면서 컨셉의 방향을 잡아가는 것.
그것이 이번 촬영에 제작진이 바라는 그림이었다.
그랬어야 하는데….
“사실 저희들끼리 컨셉 회의를 해봤거든요. 그리고 그걸 PPT로 만들어왔어요!”
리멤버 애들이 폭주했다!
“PPT? 너희가 PPT를 어떻게 할 줄 알아?”
“네!! 어떻게든 해보니까 되더라고요.”
“와~ 얘네들 능력자네.”
내가 얘네 나이였을 때는 PPT가 뭔지도 몰랐는데 말이다.
‘요즘 애들 대단하네.’
애들이 의욕적으로 뭔가를 준비해왔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
전혀! 무조건 콜이다.
우리가 너무 좋다며 박수를 치면서 PPT 발표를 환영하자 걱정하던 리멤버 애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서렸다.
“와~ 이런 호강도 해보네.”
“뭔가 직장인 된 기분이야.”
“이런 깜짝 이벤트 너무 좋아.”
“우리 후배가 역시 진국이라니까.”
나는 기대감이 가득한 애들에게 조심스레 귓속말을 했다.
“너무 기대하진 말자. 아직 애들이야. 얘네 리더가 20살인 건 알고 있지?”
“어…오케이.”
“방금 낮춘 기대감에서 두 번 더 낮춰.”
“…알았어.”
멤버들과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걸 모르는 리멤버 애들은 흥분으로 빨갛게 홍조를 띄운 볼을 숨기지도 못한 채 PPT 프로그램을 스크린에 띄웠다.
“저거…그 캐릭터 아니야? 애기들 보는 만화 캐릭터.”
“저 캐릭터를 좋아해서 넣은 거겠지.”
그리고 나는 내 안에서 생각해놓은 기준치를 한 번 더 낮췄다.
나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 해맑은 수달 캐릭터를 보고 나서 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참 좋은 선택이었다.
화려한 형광색의 글귀가 다음 장면에 까꿍! 하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와우.”
“저희가! 준비한 PPT! 리멤버 컴백 앨범 컨셉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가독성이라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은 PPT의 현란한 애니메이션.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거기에 더해 누가 봐도 긴장했다는 티가 나는 뻣뻣한 몸놀림과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린다.
‘솔직히 이젠 좀 웃겨.’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무래도 애기들이다 보니 진지하게 PPT를 보기보단 귀여움을 느끼게 된다.
고개를 돌려 멤버들을 보니 얘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큽…!”
“풋….”
웃기지만 애들이 너무 진지하게 나와서 차마 웃을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억지로 참고 있는데, 어디 웃음이 참아지는 일인가?
눈가에 물기가 그렁인다.
“이번 발표에는 저희가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또 잘 어울리는 게 뭘까 생각을 해보면서 그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겁니다! 솔직히 바로 떠오르는 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각자 잘 하는 걸 말해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잘 하는 것과 취미를 한 대 모아봤습니다!”
특기와 취미 라는 글귀가 큰 글씨로 튀어나온다.
그 글귀는 빙글빙글 화면에서 돌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슝~ 하고 날아가 버렸다.
…꽤나 병맛이 느껴지는 애니메이션이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보단 시선을 흔들리게 만드는 위력이 있었다.
“우리가 잘 하는 것! 일단 아이돌에 관련 된 부분은 공통 된 특기이자 취미였습니다!”
춤, 노래 그리고 다음으로 나온 특기는 외국어였다.
회사에서 수업을 해줬으니 당연히 있어야 할 특기가 맞았다.
“그리고 아이스는 수영을 잘합니다! 잠수도 엄청 오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