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22화 (522/849)

“데뷔 앨범 때는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했거든요. 노래를 연습하라고 해서 연습했고, 춤을 연습하라고 해서 연습했어요. 뮤비도 이렇게 하라고 해서 어떻게든 따라하면서 촬영을 했고요.”

“시키는 대로 했을 때가 훨씬 쉽긴 할 거야. 아무것도 결정을 하지 못하는 대신 책임을 질 필요가 없어지는 거거든.”

“너무 어려워요.”

“그래도 잘 하고 있어. 솔직히 PPT는 상상도 못했거든. 촬영하고 있어서 자제했는데 엄청 칭찬하고 싶었어.”

“헤헤헤.”

“엄청 열심히 준비했어요!”

“형들이 좋아해주셔서 다행이에요.”

“사실 준비하면서도 이게 맞나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근데 아무것도 안 하기엔 형들이 저희를 위해서 해주신 게 많잖아요. 이렇게까지 도와주고 계신데 저희가 아무것도 안 해가는 건 너무 염치없는 것 같았어요.”

블루의 의젓한 말에 나는 괜히 고기 한 점을 녀석의 밥그릇에 올려줬다.

“많이 먹고 쑥쑥 커라~”

“감사합니다.”

“사실 막연하게 느껴졌던 우리 스탭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거랑 모르는 거랑 차이가 크거든. 이번에 생각한 것만큼 대단한 성과를 못 낸다고 해도 경험한 것들을 잊지 않으면 두고두고 큰 도움이 될 거야.”

함께 일을 하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는 게 중요한 거다.

“당연하죠. 이런 경험을 어떻게 잊겠어요? 형들이 도와주신 거 평생 못 잊을 거에요.”

“형들이 해준 걸 잊지 말라는 게 아니라 우리 하나 살려보겠다고 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는 걸 알고 있으라는 거 아니야?”

“어…그것도 잊지 않을게요!”

그래그래.

쑥쑥 커서 잘 자라나거라.

그래야 우리도 성공적으로 재계약을 할 수 있다.

“아! 근데 제가 들은 소문이 있는데, 그거 여쭤봐도 돼요?”

“소문? 무슨 소문?”

솔직히 소문이라는 것 자체가 항상 좋은 소식보단 나쁜 소식들이 많아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네, 근데 이걸 물어봐도 될지 좀 고민 돼서요. 실례일 것 같아서요.”

“우리 사이에 실례는 무슨. 말해봐.”

“어…정말요?”

“그래, 괜찮으니까 말해봐. 뭘 물어보려고 이렇게 뜸을 들여?”

“사실 형들이 전담팀한테 선물을 엄청 많이 하신다고 들었거든요. 막 인센티브? 그것도 엄청 챙겨주신다고도 들었고요. 그거 진짜에요?”

“아~ 난 또. 이거 물어보려고 그렇게 조심스러웠던 거야? 별 것도 아니었네.”

아무래도 금전에 관련 된 얘기이다보니 조심스러웠다보다.

“근데 넌 그걸 왜 물어?”

“저희도 형들처럼 하고 싶어서요.”

“이야~ 기특하네.”

“근데 굳이 우릴 따라 할 필요는 없어. 회사에서 알아서 잘 챙겨주고 있으니까.”

“따라한다기 보단 좋은 걸 본받고 싶은 마음이에요.”

좋은 걸 본받고 싶다라.

이런 말을 들었는데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전담팀을 챙기는 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성공이 우리 덕분이 아니라 전담팀의 도움이 컸다는 걸 모르는 멤버가 없다.

이번 일로 전담팀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되기도 했고 말이다.

“우리가 전담팀을 잘 챙기는 건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야. 너희들은 아까 말했다시피 정산을 제대로 못 챙겨 받고 있잖아. 아직은 투자금을 회수하고 있는 단계이기도 하고.”

“네에….”

“우리 회사에 가장 큰 장점이 정산을 굉장히 잘해주신다는 거거든. 근데 그게 다른 사람 챙겨줄 정도로 챙겨주는 건 아니잖아.”

“그렇죠.”

나라 지원금도 아이돌로 데뷔하면서 ‘직업’을 갖게 되었기에 받지 못할 것이다.

결국 그동안 모아둔 돈과 회사에서 제공하는 월급 같은 걸로 연명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 전담팀까지 챙기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우리도 전담팀을 제대로 챙기기 시작한 건 정말 큰 목돈이 들어오고 난 이후였어. 데뷔초에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아. 돈이 조금씩 들어오면서 여유가 생기게 됐을 땐 가족부터 챙겼었고.”

“가족! 그렇죠. 가족 중요하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우리 따라하려다가 괜히 너희들 가랑이 찢어져. 너희 팀원들도 그러길 바라진 않을 거야. 아직 너희는 누굴 챙기기보단 챙김 받으면서 자랄 필요가 있어.”

“네에.”

“그래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정말 기특하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분들도 너희들이 무리하게 챙겨주는 걸 바라지 않을 거야. 중요한 건 감사한 마음을 계속 갖고 있는 거지.”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기만 해도 괜찮을까요?”

어쩐지 애들이 하는 말에서 걱정이 느껴졌다.

전담팀을 못 챙겨주는 것에 걱정까지 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구나 싶었다.

“뭐 안 좋은 소리라도 들은 게 있는 거야?”

“…아니에요.”

“대답이 영 아닌데. 뭔가 있구나?”

애들의 표정이 침울해진다.

“뭔 얘기를 들었기에 이래? 혹시 너희 팀원들이 우리 팀원에 대한 얘기라도 한 거야?”

애들이 움찔거린다.

정곡을 찔린 눈치다.

‘하이고, 아무래도 그 사람들이 우리 팀원이 부럽다고 한 것 같은데.’

그러니까 얘네들도 되지도 않을 전담팀을 챙겨보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이리라.

“누가 쓸데없는 소리를 애기들이 듣는데서 했는지 모르겠네. 그분들이 하는 말은 그냥 부러워서 하는 소리야. 너희들한테 챙김 받고 싶어서 한 소리가 아니라.”

꼬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금 얘네들 보면 꼬리가 축 처져 있는 것 같다.

“지금 좀 쓴소리를 해야 할 것 같네. 너희들 이 일을 계속 하려면 남한테 듣는 말에 둔감해질 필요가 있어. 고작 그런 소리 들었다고 이렇게 침울해 있으면 어떡해? 지금 우리가 찍고 있는 프로그램이 방영 되면 많은 사람들이 너희에 대해 얘기할 거야.”

물론 선플도 있겠지만, 마음을 후벼파는 악플도 굉장히 많다.

마음에 남는 건 선플보다 악플이기도 하고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사실인 것 마냥 떠들어서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기도 하고, 내 행동을 비웃거나 잘못 나온 사진으로 지들끼리 낄낄거리기도 하고.

심지어 주변인들에 대한 욕도 서슴없이 싸지르는 것들이 있다.

가까운 사람이 하는 말은 더 치명적이라는 건 알지만, 지금부터 천천히 멘탈을 단련해둬야 했다.

“아!”

“너희들 회사에서 상담 받고 있니?”

“어…한 번 받아 본 적은 있어요.”

“앞으로 활동 시작하면 꾸준히 받아. 빼지 말고. 이게 소용이 있는 일인가? 나는 멀쩡한데? 라고 생각하지 말고.”

“으으…네엡.”

“팀원이 하는 말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팀원들 챙겨주고 싶으면 간단하게 음식 같은 것들로 시작을 해봐.”

“음식….”

“커피나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들 같은 거? 그런 걸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봐. 그리고 정말 우리처럼 챙겨주고 싶으면 너희가 제대로 정산을 받고 여유가 생겼을 때 시작해. 그땐 누가 뭐라 해도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

“네!”

우리도 처음 시작이 먹을 것부터 였다.

엄청 부담스러운 먹거리가 아니라.

“저희는 형들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을까요? 형들이랑 가팅 지내면서 배우는 게 너무 많아요.”

남들이 쉽게 가르쳐줄 수 없는 일들이기는 하다.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면서 쌓아 온 노하우들이 아닌가?

“우리가 진짜 안일했구나 싶더라고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지냈어요.”

“어째 우리랑 놀아서 그런가 애들이 부쩍 어른스러워져버렸네.”

“늙은이랑 노니까 그런 거지.”

“얘들아, 너희 아직 스무살도 안 됐어. 모르는 게 당연한 거야.”

“히히히!”

우리가 늙은이를 자처하며 말하자 웃겼는지 꺄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초반에 우리는 원활한 재계약을 위해 돕기 시작한 거였지만 이미 얘네들과 정이 잔뜩 들어버려서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얘네들한테 정이 든 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프로젝트 성공률은 올라가기 마련이었고, 지금처럼 아낌없이 조언을 해주며 아이들이 이쪽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건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언제까지 회의만 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

이젠 슬슬 구체적으로 무대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 ♧ ♧

“회사에서 했어야 할 일을 너희들이 다 하고 있더구나.”

“하하, 누님까지 그런 말씀 하실 줄 몰랐네요.”

“애들은 좀 어떠니?”

회사에서 퇴근한 연주 누님이 나를 보자마자 물어왔다.

쌍둥이를 실 유모님에게 맡기고 연주 누님의 방으로 들어와서 얘기를 나눴는데 곧장 회사 일부터 물어본다.

“이번에 리멤버 데뷔 앨범은 누님이 신경 안 쓰신 거죠?”

“터치 하지 않았지.”

“왜 그러셨어요?”

“모든 일을 내가 다 하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언제까지 회사 일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잖니? 나도 개인 생활이라는 게 있는데.”

이 말을 사장님이나 회사 사람이 들었으면 깜짝 놀랄 거다.

“기껏 큰 음 먹고 맡겨놨더니 엉망이더구나. 그래도 한 번은 더 믿어보려고. 그땐 박상주가 회사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을 때니까. 그리고 리멤버 전담팀이 더 헤맬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에 너희 몫도 있다. 보통의 경우에 너희를 담당했던 팀원을 리멤버 전담팀으로 파견했을 테니까.”

그런데 우리가 팀원을 놓아주지 않아서 이쪽 일에 경험이 많은 직원들의 도움을 못 받았다.

“그래도 우리 팀원은 다른데 못 줘요. 우리 껍니다.”

다른 곳에 보냈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한 명이라도 그걸 허용한 순간 선례가 남아 이곳저곳에서 앓는 소리를 할 거다.

“안 뺏어갈 테니까 그렇게 경계하지 마.”

“흐흐. 넵.”

“아무튼 애들이 너희를 많이 따른다던데.”

“그렇죠. 이러려고 시작했던 건 아닌데, 엄청 정들어버렸어요.”

“잘 될 것 같니?”

“잘 되야죠. 안 될 리가 없는 애들 데려다놓고 그걸 못하면 큰일이잖아요.”

연주 누님이 회사 일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끄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번 일은 성공해야 한다.

가족이 생기면서 점점 연주 누님은 변하고 있는 중이었다.

유일하게 집착하던 회사에서 벗어나서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 리멤버 애들이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연주 누님은 다시 회사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회사가 자신이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점점 애들이 꼭 성공해야 할 이유만 늘어나네.’

내가 정말 잘 해야 할 것 같다.

슬슬 애들을 연습실의 늪에 빠트려야 할 시기인데, 비장의 수도 써야 할 듯 싶다.

“애들은 잘 될 거에요. 제가 꽤 진심으로 걔네들을 봐줄 생각이거든요.”

“그리고 말이야….”

리멤버 애들이 잘 될 거라 확신하는 내 말을 듣고 안심했는지 연주 누님의 표정에 걱정이 사라졌다.

하지만 곧이어 할 얘기가 끝이 아니라는 듯 새로운 화제를 끌고 들어왔다.

“나 모르게 언니 만난 적 있니?”

“어…벌써 들켰어요?”

언젠가는 들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은 몰랐다.

“박상주가 사직서를 낼 때 말하더구나. 비겁하게 고모님한테 일러서 자길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이야. 나는 한 일이 없으니 다른 사람이 회사 일을 언니한테 말했다는 건데…. 내가 생각하기에 범인은 딱 한 사람밖에 없더군.”

“맞아요. 제가 사장님을 뵈러 가서 회사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부 말했어요.”

“왜 그랬니? 그 치는 가만히 둬도 알아서 나갈 인사였는데.”

“열 받아서요. 해결할 방법이 뻔히 있는데, 방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언니한테 말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니?”

설마 내가 그걸 모를까.

누님이 왜 말을 안 하고 있었는지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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