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24화 (524/849)

“여태까지 숨긴 것도 미안하고, 일방적으로 이기적인 선택을 하겠다고 말한 것도 미안해.”

멤버들에게 미안해야 할 상황인 걸 알면서도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통보하듯 말했다는 것에 사과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고백을 듣던 멤버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눈만 깜빡였다.

“형, 그래도 그룹을 탈퇴하진 않을 거죠?”

그나마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건 기우연이었다.

우연이는 혹여나 내가 탈퇴를 할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충분히 화를 낼 만도 한 상황에서 어째 질문하는 목소리에 조심스러움이 가득하다.

“당연하지. 상황이 안 좋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나는 계속 에어플레인이고 싶어.”

“형은 잘났으니까, 이번 기회에 확 솔로하겠다는 건가 싶어서 엄청 놀랐어."

"그러려고 말하는 게 아니야. 오해하지 마."

"형은 우리가 없어도 잘 할 사람이잖아. 그래서 오히려 그룹 활동을 안 하는 게 형한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어.”

“난 너희들이랑 같이 활동하는 게 좋아. 그게 아니었으면 굳이 재계약을 할 생각도 안 했을 거야.”

돈이 부족하지 않은데 굳이 불편한 연예인을 왜 계속 한단 말인가?

괜히 얼굴이 알려져서 생활하는데 불편하기만 하다.

무대 위에 서는 것은 좋지만 그 외에 것들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도 재계약을 하겠다고 한 것은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이 좋아서였다.

우연이는 내 대답으로 만족했는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내가 탈퇴하지만 않으면 뭐든 상관없는 모양이다.

“내가 정확히 이해한 건지 모르겠는데, 형한테 여자가 많고 심지어 아이도 있다는 거 맞아?"

"응. 맞아."

"근데 그걸 사람들한테 알릴 생각인 거야? 들키지도 않은 건데 굳이 먼저 나서서?”

“응. 재계약을 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할 것 같아.”

“...난리 나겠네. 바로 컴백하는 건 아예 불가능할 것 같고.”

“엑! 컴백이 밀린다고?! 그럼 언제 컴백할 수 있는데?”

"글쎄, 적어도 해솔이가 터트린 내용이 수습 될 때까진 자숙해야 하지 않을까?"

컴백이 밀리는 건 미처 생각 못했는지 애들이 화들짝 놀란다.

“밝혀야 할 내용이 좀 크잖아. 결혼할 여자가 있는데 그게 한 명인 게 아니야. 근데 아이도 있고 그 여자가 유명한 여배우인 진주아 누님이네? 엄청난 스캔들이 될 걸. 둘이 그냥 스캔들만 나도 난리가 났을 텐데...”

“잠깐, 근데 형 누나랑 이미 스캔들 한 번 나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땐 친한 누나 동생 사이라고 했었잖아."

"으으, 그때 스캔들이랑 합쳐져서 더 난리나겠다."

"한동안 바깥에 돌아다니지 못할지도.”

“자숙은 오케이. 근데 언제까지요? 막 일년 이렇게 쉬어야 하는 거에요?”

참 이상한 애들이다.

경태 형과 제키는 상황파악을 이미 끝내고 화를 참는 눈치였는데 나머지 애들은 화를 내기보다는 이걸 어쩌나 하면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고 있었다.

적어도 주먹 한 번은 나한테 날아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자숙이라니. 너희가 자숙을 왜 해? 자숙할 사람은 나 혼자지. 너희들은 개인 활동하면 돼. 그리고 1년이나 자숙할 필요도 없을 거고."

나는 일단 애들이 걱정하는 부분을 수습했다.

다만 나는 애들 반응이 이 정도로 끝나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근데 반응이 그게 다야? 화가 난다거나 그런 건 없어?"

“화? 어…살짝 곤란하기는 한데 화를 낼 것까지는 없지 않아? 우리가 몰랐던 것도 아니잖아.주아 누님한테 아이 있는 건 다 알았고 그 아이가 형 아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나는 살짝 화났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고 싶냐? 남은규 눈치 챙겨.”

준이가 은규의 장난을 냉정하게 쳐낸다.

쭈굴해진 남은규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누구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나는 예상하지 못한 멤버들의 반응에 뭐라 해야 할지 몰라 눈만 깜빡였다.

“주먹질은 안 해? 나 진짜 맞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뭔 주먹질이에요! 야만적이게.”

“나 그럼 정말 밝힌다? 다들 찬성하는 거 맞아? 막을 생각 없어?”

“이미 하겠다고 결심한 것 같은데 우리가 반대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맞아. 그냥 받아들이고 다음을 생각해야지.”

“아빠가 누군지 말 못할 수도 있다는 말에 나는 이미 형을 설득할 생각을 포기했어. 아이가 아빠가 누군지 말도 못한다는 게 말이 돼? 요즘에 아빠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왕따를 당할 수도 있대. 그렇게 숨기고 있다가 형 아이가 왕따 당하면 어떡할 건데? 우리가 그거 책임져 줄 수 있어?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책임지냐고.”

태양이가 왕따를?

솔직히 그건 상상이 안 간다.

지금도 인기가 너무 많아서 곤란할 지경인데 말이다.

그래도 준이의 말이 고마웠다.

“고맙다, 준아.”

“대신 형 아이 소개시켜줘. 형 닮았으면 얼마나 예쁠 거냐고. 혹시 사진은 없어?”

“사진 있지.”

한 명이 먼저 찬성을 하자 우연이도 덩달아 나도 은퇴만 아니면 돼! 라면서 발랄하게 찬성을 외쳤다.

모두가 이렇게 찬성을 해줬으면 정말 할 말이 없었을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이도 반대하는 이가 있기는 했다.

“이번 일을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니야?"

"맞아, 팬들이 해솔이 형 고백을 듣게 되면 충격 받을 거야. 미움 받을 수도 있다고.”

“으음? 내가 보기엔 아닐 것 같은데요?”

제키와 경태 형의 말에 우연이가 반대했다.

“형이 은퇴만 안 하면 의외로 팬들은 별로 상관없어 할 걸요? 아이돌이 스캔들이 나면 반응이 대부분 비슷해요. 얘도 이제 은퇴구나. 근데 형은 은퇴할 생각이 없다고 했잖아요.”

팬들이 나에게 우려하는 건 은퇴 문제일 거라는 거다.

“형은 이대로 은퇴하기엔 너무 아까워요. 아직 보여주지 못한 재주가 엄청 많잖아요. 팬들도 그걸 알아서 형이 그런 고백을 해도 은퇴를 할 건지 안 할 건지를 궁금해 할 걸요?”

“그럼 은퇴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자숙을 할 필요도 없다는 거야?”

“오히려 그렇게 고백을 하고 컴백 일정을 잡으면 좋아하지 않을까요? 하도 그렇게 스캔들 터트리고 은퇴하는 아이돌이 많아서 다들 PTSD가 있잖아요. 형은 안 그런다고 말해주면 안심하지 않을까요?”

사실 지구를 떠올려보면 정말 황당한 방법이다.

스캔들이 났으면 자숙을 하진 못할망정 활동을 하는 걸 사람들이 더 좋아할 거라니.

그런데 놀라운 건 우연이의 말에 멤버들이 설득을 당했다는 거다.

더욱이 나와 연주 누님이 계획하고 있는 것도 우연이의 아이디어와 같았다.

“그럼 컴백이 밀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당겨질 수 있다는 거네?”

“그럼 결국 아무 문제 없어지는 거 아니야? 난 밝히면 컴백은 미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컴백이 안 미뤄지면 끝이지!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 될 수도 있겠는데?”

얘들은 정말 컴백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건가 보다.

“나 잠깐! 형한테 부탁할 거 생겼어. 아니, 이건 조건이야! 이번에 컴백할 때 곡을 엄청 기깔나게 만들어줘야 돼! 우리한테 비밀 만들어서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던 대가야!”

“하~ 난 너희들이 엄청 화낼 거라고 생각했어. 곡 만드는 거? 당연히 가능하지. 우리 곡 듣고 아무도 입 못 열게 해줄게.”

그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애들이 이렇게 나오니까 계속 화를 낼 수도 없네.”

무늬만으로 화를 내고 있던 남은규도 쉽게 넘어왔고, 그나마 가장 화를 많이 낸 사람이 경태 형과 제키였는데 애들 반응을 보고 더 화를 낼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화났으면 화내도 돼. 나 오늘 각오하고 왔어."

“됐어. 너...내가 계속 지켜볼 거야. 내 불만이 싹 없어질 정도로 대단한 곡으로 가져와. 그때 화 풀어줄 테니까.”

제키도 내게 모두가 입을 다물 정도로 대단한 곡을 써오면 화를 풀겠다는 조건을 걸어왔다.

솔직히 나에게는 화를 풀겠다는 신호나 다름없는 조건이었다.

“형은? 담아두지 말고 전부 말해도 돼.”

제키는 곡으로 달랠 수 있을 것 같으니 넘어가기로 하고, 남은 건 경태 형이었다.

“됐어. 다들 넘어갔는데 나만 쪼잔해지는 거잖아.”

아무래도 경태 형의 마음을 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제키처럼 조건을 달 것 같지도 않았다.

“쪼잔이라니. 화를 내는 게 당연한 거야. 오히려 화를 안 낸 애들이 너무 착한 거라고. 형이 정상이고. 상의도 없이 혼자서 일을 계획한 거 다시 한 번 사과할게."

"...너 내가 뭐에 화난 건지 알고 있는 거야?"

"형이 예전부터 리더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슬퍼했던 거 알고 있어. 제키한테 했던 말을 우연히 들었거든. 리더를 내가 했어야 했다고 말이야. 근데 난 형이 리더를 해줘서 고마웠어. 지금도 형이 리더인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고. 봐봐. 다들 마냥 착해서 화를 못 내는데, 형만 유일하게 화를 내주잖아. 형이 화를 안 냈으면 난 애들한테 미안해서 무릎을 꿇었을 거야.”

우리가 경태 형을 리더로 삼았던 이유는 그가 제일 나이가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더 역할을 하는 건 대부분 나였다.

사회생활도 내 쪽에서 경험이 더 많고, 나이도 압도적으로 내가 많다보니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리더를 맡아야 했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의지할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근데 이번에도 내가 의지하기는커녕 혼자서 일을 저질러버리고 말을 해서 서운했을 거야.”

“…그걸 아는 놈이 그랬어? 말은 진짜 번지르르하게 잘 한다니까.”

경태 형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미안해. 7년이 되도록 숨겨왔던 비밀을 멤버들한테 털어놓는다는 게 쉽지 않았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저지른 일이니까 멤버들한테 최대한 피해를 안 주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고 싶었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신중하게 고민을 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훌쩍 지나버린 거야.”

데뷔초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재개약 시기다.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시간이었다.

“그래도!! 우리한테 미리 상의를 했으면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을 거 아냐! 내가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고.”

자기한테 피해를 끼쳐서 화가 난 줄 알았던 경태 형.

그런데 이 형도 화가 난 이유가 결국 혼자서 일을 해결하려고 했던 부분인 모양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멤버들에게 잘 해준 게 많은가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걸 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 멤버들이 착해서 그렇지.’

앞으로 멤버들에게 더 잘 해야겠다는 반성을 하며 경태 형을 꽉 안았다.

“고마워, 형!”

“윽! 야 징그러워! 그리고 나 아직 화 안 풀렸거든?”

이게 참 우정이지!

물론 금방 포옹을 풀기는 했다.

‘3초 이상은 징그러워서 못 버틴다.’

징그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이것도 내가 아이돌이니까 버틸 수 있었던 거다.

나란 놈, 참 대단한 놈.

“아무튼 다들 고마워! 내가 최고의 곡으로 보답할게.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노이즈 마케팅을 해버릴까?”

“노이즈 마케팅? 설마 네 일을 터트리는 걸 컴백 홍보에 써먹자고?”

“응!”

멤버들이 날 이렇게까지 이해해주는데, 그룹을 위해 이 정도를 못하겠는가?

어차피 온갖 이목이 다 쏠릴 상황인데 제대로 이용해보자 싶었다.

“그냥 날리기엔 아까운 기회잖아.”

“미친 놈인가? 너 우리한테 말하기 엄청 힘들었다고 진지하게 말 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거든?”

“형이랑 멤버들한테 말하는 게 제일 힘들었어! 제일 큰 산을 넘어서 나머지는 그렇게 긴장 안 될 것 같아.”

욕할 사람은 내가 뭘 해도 욕할 것이고, 날 좋아하는 사람은 계속 좋아해줄 거다.

내 주변에 있는 지인들과의 관계만 어그러지지 않으면 됐다.

“너도 참….”

멤버들은 내가 농담을 했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나는 진짜 이번 일을 노이즈 마케팅으로 삼을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연주 누님에게 물어봐서 가능성을 계산해볼 생각이다.

‘근데 이 계획을 쓰려면 곡을 빨리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그냥 곡이 아니라 누가 들어도 홀딱 넘어갈 수밖에 없을 수준의 곡이 필요했다.

‘지금 내 수준으로는 좀 부족할 것 같은데.’

능력이 부족하다면?

‘채우면 되지.’

나에게는 부족한 능력을 채울 다양한 방법이 존재했다.

언제나 내 인생을 이지(easy)로 만들어주는 수단.

상점의 아이템을 쓸 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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