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걸 쓴다고 해도 다 못써. 형이 요 며칠 만든 곡이 몇 개라고 생각하는 거야?”
“대충 10곡 되나?”
“16곡이야, 그것도 곡들 수준이 엄청나서 듣기만 해도 갖고 싶어 할 수준의 곡으로.”
16곡이라고?
생각한 것보다 많네.
언제 그렇게 썼지?
“내가 그렇게 많이 썼어?”
“응.”
“그럼 애들이 쓰기엔 너무 많겠네. 씁, 그럼 곡을 좀 팔아야 하나? 이대로 썩히긴 아깝긴 하니까.”
“지금 당장은 말고 천천히 팔아. 우리도 컴백해야 하고 리멤버 애들도 해야 되는데 지금 넘기면 싸워야 할지도 모르잖아.”
“당연하지.”
이번에 작곡이 끝나면 메일을 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외부 의뢰를 받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서 과연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간절한 사람이라면 내게 연락을 넣어두지 않았을까?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요즘 애들 신경을 못 써줬네? 연습 잘 하고 있는 거야? 너 찾아가 봤어?”
작곡에 정신이 팔려서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했어. 찾아가서 연습 봐주고 조언도 해주고 그랬거든. 근데 굳이 그렇게 신경 쓸 필요도 없었을 것 같아. 애들 눈빛이 장난 아니어서.”
“눈빛이?”
“독기 같은 거 말이야.”
“아~”
그 정도는 있어야지.
그래야 키울 맛도 나지 않겠는가?
그렇게 간절하게 노력하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연예계이기도 하다.
‘한 번 뜨기까지가 정말 힘든 곳이지.’
유지하는 것도 힘들지만, 기회를 잡는 게 너무너무 힘든 곳이다.
눈에 독기가 흐른다는데 애들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근데 그거 알아? 지금 형 눈에도 독기 서려 있어.”
“아, 내 눈에?”
제키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핸드폰에 얼굴을 비춰봤다.
“눈이 맛 가긴 했네.”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눈이 퀭한 것이 정상이 아니기는 한 것 같다.
‘부작용이니까 어쩔 수 없지.’
내가 이렇게 미친 듯이 작곡에 몰두하는 것은 아이템 효과 때문이었다.
강제로 성장한 재능을 내 몸에 적응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영감을 뱉어내고, 나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곡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짓을 멈추는 것은 재능이 모두 내 몸에 녹아들었을 때였다.
‘상점 제품은 장점이 확실하지만, 단점도 뚜렷하지. 근데 부작용이 이 정도면 나한텐 개꿀인 거 아닌가?’
제키는 모르고 있지만, 사실 난 밤에 잠도 안 자고 계속 곡을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이미 인간 기준을 넘어선 몸인지라 이렇게 무리를 해도 몸이 상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내가 잠을 안자고 곡을 만들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무슨 수를 써서든 나를 막았을 거다.
‘이게 참을 수 있는 충동이 아니라서….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도 없고.’
나한테는 별 거 아닌 부작용이지만, 평범한 사람이 이런 걸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감을 풀어 놓지 않으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두통이 생겨. 그리고 나중에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아지지.’
그러니 내가 지금 이러는 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였다.
내가 한 개인의 선택이니 책임을 져야 했다.
‘되돌릴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코인이 아까워서 할 생각도 없고.’
아무튼 본의 아니게도 당분간 이 맛간 눈빛은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했다.
“피곤해서 그래. 쓰고 싶은 거 다 쓰고나면 괜찮아질 거야.”
“형이 이렇게 피곤해 하는 거 처음 보는 것 같아. 콘서트 투어를 해도 힘들어 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원래 머리 굴리는 게 진짜 힘들지.”
가만히 있어도 살이 쭉쭉 빠질 거다.
“나 방금 뭔가 떠올랐는데 만들어서 형 들려줘도 돼?”
“얼마든지. 대신 올 때 두 손은 두둑하게 챙겨와라.”
“알았어.”
제키는 영감을 받은 걸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야겠다며 후다닥 내 작업실을 나갔다.
제키가 나가고 얼마 후.
저녁 시간이 되자 때를 맞춰서 누군가가 작업실의 문을 똑똑똑 두드렸다.
“밥시간이야. 먹고 해.”
본의 아니게 아현이의 작업실을 차지하게 된 게 5일 째.
오늘도 내 저녁밥을 챙기겠다며 찾아 온 사람이 있었다.
정확히 두 명이다.
“안녕~”
“오늘도 챙겨주러 온 거야? 매번 미안해서 어떡하지?”
아현이와 복순 누나.
번갈아가면서 내 식사를 챙겨주던 사람이 오늘은 동시에 방문을 했다.
아현이의 작업실이 복순 누나의 학원에 있는지라 두 사람이 방문하기 쉬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오늘도 계속 작업하는 거야?”
“응. 미안. 당분간 계속 여기 써야 할 것 같아.”
“부작용 때문인데 어쩔 수 없지. 나는 신경 쓰지 마. 작업실 하나 더 있는 거 알잖아.”
내가 아현이의 작업실을 며칠 째 차지하고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건 아현이가 따로 작업실을 하나 더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돈을 충분히 벌어놔서 작업실을 따로 구해서 완전히 나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두 개 모두 아현이가 ㅂ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중이었다.
아현이가 굳이 복순 누나 학원에 있는 작업실을 계속 유지하는 이유는 징크스 때문이었다.
정말 중요하고 대박이 날 곡은 항상 복순 누나 학원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들어졌는데, 그게 어느새 아현이의 징크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많이 괜찮아졌어. 머리 아픈 것도 많이 줄었고. 오늘은 쪽잠을 좀 자볼까 싶어.”
“수면제라도 가져다줄까?”
“그러다가 머리 터지는 것도 모르고 잘 수도 있어서, 수면제는 안 먹으려고.”
“다 됐고, 밥 먹으면서 얘기 해.”
복순 누나가 대화를 나누는 걸 막고 내 입에 음식을 집어넣었다.
순순히 누나가 주는 밥을 받아먹는다.
누나가 나에게 밥을 먹이려고 하는 이유가 있다.
밥 챙겨주겠다고 와서 대화를 나누다가 머리에 떠오르는 영감에 사로잡혀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다시 작곡을 했던 일이 있었다.
작곡에 집중하느라 누나가 밥을 먹으라고 해도 묵묵부답이었고,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 복순 누나는 같은 짓을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런 짓을 한 것이다.
“먹으면서 대화 나눠도 되잖아.”
“아라써. 음…샌드위치 마싯네.”
“네가 좋아하는 것들만 넣었으니까. 든든하게 국밥 같은 걸 먹으면 좀 좋니?”
“배가 너무 부르면 거슬려.”
작곡할 때 방해 되는 행위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무언가로 인해 작곡을 방해 받으면 고통 받는 건 나였다.
“이번에 만든 곡은 뭐야?”
유학 준비는 끝났고, 이제 학기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현이도 제키처럼 내가 만들어내고 있는 곡에 관심이 많았다.
“들어볼 거야?”
다만 제키는 내 곡을 계속해서 들으면서 날 따라가려고 했다면 아현이는 내 곡을 듣는 걸 거부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안 들을래. 나는 괜히 백로 쫓다가 다리 찢어지고 싶지 않아.”
아현이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았고, 다 배운 후에 내가 만든 곡을 듣겠다고 했다.
괜히 듣는 귀만 높아져서 자신이 만든 곡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면 멘탈이 약한 자신은 정상으로 되돌리기 힘들다는 거다.
개개인에게 맞는 성장 방법이 있는 것이기에 아현이의 선택을 존중은 하고 있지만….
“알았어. 안 들려줄게. 근데 나 만족할 만한 곡을 만든 게 없어. 오늘도 실패야.”
아현이가 이 정도로 무서워 할 만큼 내가 만든 곡이 대단한가 생각해보면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진다.
제키가 내 곡을 듣고 따라가려고 애쓰는 것만 봐도 대충 감이 잡히지 않은가?
아현이가 너무 과하게 걱정하고 있는 거다.
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건 사실이나 아직은 아현이가 걱정하는 것만큼 대단한 수준에 오른 건 아닌 것이다.
“어제 들었던 곡보다 더 좋니? 난 듣고 싶은데.”
아현이는 내 곡을 듣기 싫어하지만, 복순 누나는 이쪽 관계자가 아니기에 내가 만든 곡을 듣는 걸 굉장히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럼 누나만 혼자 들어요. 이어폰 줄게.”
“응.”
“으아아! 난 화장실 다녀올래! 듣는 거 보면 나도 듣고 싶어질 것 같아!”
아현이가 후다닥 작업실에서 도망친다.
복순 누나는 여유롭게 아현이를 배웅하고 오늘 막 따끈따끈하게 만들어진 곡을 감상했다.
“좋다.”
복순 누나의 감상평은 짧지만 굵었다.
“흐흐. 좋죠? 내가 생각해도 잘 만든 곡이긴 하거든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쓰기엔 부족한 곡이다.
킵이라고 말하긴 했어도 내가 이 곡을 다시 꺼내서 멤버들에게 다음 컴백 곡으로 쓰자고 할 일은 없을 거다.
“이것도 결국 네가 부를 노래는 아닌 거지?”
“네. 애들 솔로 활동할 때 쓰고 싶은 거 있으면 가져가라고 하고, 나머지는 팔까 생각 중이에요.”
“이걸 판다고? 이야~ 소속사들 난리 나겠네. 이 노래들, 적당히 실력만 있으면 어떤 아이돌이 불러도 중박은 칠 곡들이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아이돌을 얼마나 키워봤는데 이 정도도 모를까. 지금도 우리 학원 애들 데뷔 많이 해. 아직 내 감 안 죽었다 이거야.”
이쪽에서 오랫동안 일 해왔던 복순 누나까지 내 곡이 좋다고 확신을 해주니 마음이 뿌듯했다.
복순 누나는 오늘 만든 곡 뿐만 아니라 요근래 만들어왔던 곡들을 들으면서 짧게 고민하더니 말했다.
“이 곡들 말이야. 혹시 나한테 맡겨줄 생각 없니?”
“누나한테? 이걸 가져가서 뭐하려고.”
“어차피 다른 사람들한테 주려고 했다면서. 괜히 어중이떠중이들한테 과분한 곡주고 돈 몇 푼 받는 것보단 더 알차게 쓸 수 있게 해줄게.”
돈이 부족하지 않은 나인지라 곡을 팔 때 이득을 보는 게 금전밖에 없다면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조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복순 누나도 그걸 알았는지 내가 가려워하는 부분을 정확히 긁어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누나가 이쪽에 인맥이 많았지?’
복순 누나라면 적어도 메일에 의뢰를 넣은 사람에게 넘기는 것보단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 같았다.
“좋아, 누나한테 전부 맡길 테니까 알아서 지지고 볶고 다 해봐요.”
“아싸! 약속한 거다? 나 이걸로 개인적인 이득을 좀 취할 생각이거든.”
“얼마든지. 대신 내 이득도 챙겨줘야 하는 거 알죠?”
“알지알지. 두 말하면 잔소리!”
복순 누나가 너무 기뻤는지 내 볼에 뽀뽀까지 냅다 갈겨버린다.
진한 농도의 스킨십이 워낙 자주 벌어지는 일인지라 오히려 이렇게 가볍게 닿아오는 스킨십이 더 강렬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복순 누나의 스킨십이 기분 좋았던 나는 껄껄 웃다가 갑자기 파바박! 하고 머릿속을 쳐들어오는 영감에 표정을 굳혔다.
복순 누나도 내 표정을 보고 뭔가 일어났다는 걸 알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그거 왔어?”
“응. 온 것 같아.”
“하, 한 입만 더! 우겨 넣어! 그리고 씹어!”
복순 누나가 허겁지겁 내 입에 샌드위치를 꾸겨넣는다.
나는 입을 크게 벌려서 샌드위치를 깨물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후의 기억은 뚝 끊겼다.
정신을 되찾았을 때에는 시간이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작업실 주변은 깔끔하게 정리가 된 상태였다.
당연하지만 아현이와 복순 누나는 돌아간지 오래 인 듯했다.
이따가 메시지를 보내둬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억이 뚝 끊길 정도로 강렬하게 왔던 영감의 결과물을 보기 위해 내가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이는 곡을 재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