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27화 (527/849)

“아…이걸 내가 만들었다고?”

음악이 내 귀에 꽂혀들어왔을 때, 나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이거다! 하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고, 그동안 나를 찾아오지 않았던 확신도 함께 찾아왔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이런 걸 쓰려고 그동안 고생한 거였어.”

지난 5일간의 고생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곡을 만들어서 그런 걸까?

머릿속을 시끄럽고 괴롭게 만들었던 악상들도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깔끔하게 말이다.

한계가 돌파 된 재능으로 언제든 다시 그 영감을 가져다 쓸 수 있게 됐다.

가능하다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잠잠해진 머릿속이 불안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지금은 지긋지긋하게 떠오르던 악상이 안 떠오르는 것이 좋았다.

‘진짜 좋네. 머릿속이 깨끗한 게 이런 기분이었구나.’

생각해보니까 5일이 아니라 6일이다.

바깥이 어둑해졌으니 말이다.

일주일을 채우나 했는데, 이제라도 사라져서 다행이었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갇혀 살 순 없지 않은가?

작곡실에서 많이 벗어날 수도 없어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필요한 것들을 아현이와 복순 누나가 가져다주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는가.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수엽을 깎은 것도 최대한 노력한 거였다.

“씻고 잠 좀 잘까?”

이런 곡을 만들었는데도 마냥 기쁘지 않은 것은 내 몸의 컨디션이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잠을 자고 정신을 차리면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을 듯 하다.

아무리 체력이 돼서 무식하게 6일 밤을 버텼다지만 잠을 자는 건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회복시켜주는 일이었다.

내 눈이 퀭해진 것은 결국 정신적인 피로감이 크기 때문이다.

비몽사몽한 정신 상태로 집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씻고 냅다 침대에 누워버렸다.

누군가가 옆에서 뭐라고 말을 걸어 온 것 같았는데, 제대로 대답을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잠에 빠져 있었을까?

“주인니임~ 일어나세요옹~ 벌써…주…어요~!”

“으으…으….”

깨우지마.

나 아직 졸려.

“지금 주무시…부르는데…연락….”

“응…나 잘 거야.”

자야 돼.

못 잔 게 무려 6일이라고.

“핸드폰…울리고 있어요. 제가…주인님 주무…전달…요?”

“응…응….”

뭐든 다 알아서 하고 날 좀 내버려둬.

어렴풋이 누군가에게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꿈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얼마나 잠에 취해 있었을까?

요 근래 느껴보지 못했던 가볍고 편안함에 눈이 저절로 번쩍 떠졌다.

“크흠.”

목이 완전히 잠겨서 칼칼했다.

푹 쉬어서 그런지 완전히 회복 된 몸이 가벼웠다.

“음….”

시간과 날짜를 확인했다.

하루 꼬박을 잤는지 핸드폰에는 다음날로 넘어가 있었다.

지금 시간은 낮10시.

그러니까….

24시간을 내리 자고도 10시가 될 때까지 더 잤다는 게 된다.

“이 정도면 일주일을 채운 거네.”

정말 대단한 부작용이다.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통화가 많았다.

나에게 연락을 가장 많이 한 건 제키였다.

곡을 써오겠다고 했는데 내가 작업실에 사라져 있으니 당황해서 연락을 할 만도 했다.

“흠.”

꼬르륵- 꼬르륵-

제키에게 바로 연락을 할까 싶다가 꼬르륵 배꼽소리가 나서 뒤로 미뤘다.

배가 너무 고파서 속이 쓰릴 지경이었기에 서둘러 채워 넣어야 했다.

방 밖으로 나가니 집안이 조용하다.

“…아무도 없나?”

칸나나 실 유모님조차도 집에 없는 듯 했다.

결국 혼자서 터덜터덜 주방으로 가 먹을 게 있을지 냉장고를 뒤졌다.

다행히 먹을 게 많이 있어서 걱정 할 필요는 없었다.

거기다 쪽지로 깨어나면 먹으라고 적혀 있는 음식도 있었다.

그것도 꺼내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모두 꺼내서 식탁에 앉아 무아지경으로 먹기 시작했다.

배가 어느 정도 찼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 되니 식탁에 꺼내져 있었던 음식이 싹 사라진 상태였다.

“와~ 이걸 내가 다 먹은 거야?”

이렇게 많이 먹은 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정말 엄청난 후유증이다.

이렇게 먹어야 했을 정도로 내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던 걸 거다.

배가 든든해지고 잠도 다 자고 나니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아서 멍하니 식탁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두 손으로 내 뺨을 짝! 하고 내리치면서 정신을 되찾았다.

아무리 정신을 놓을 만큼의 일이 있었다고 해도 계속 넋을 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 이제 뭐부터 해야 되지?”

뭐하기는. 작업실부터 가야지.

내가 만들어낸 곡.

그걸 다시 한 번 들어보는 것.

가장 먼저 해봐야 할 일이었다.

♧ ♧ ♧

먹은 걸 치우고 몸을 씻은 후 서둘러 작업실로 향했다.

정신없이 집에 가느라 작업실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게 희미하지만 기억이 났다.

‘그 와중에도 문은 제대로 잠그고 갔네.’

문은 다행이 잠겨 있었는데, 작업실 불까지는 끄지 못하고 나왔던 것 같다.

안에 들어가서 내가 만든 곡을 바로 다시 들어봤다.

비몽사몽한 정신이었을 때 들었던 곡은 그때 들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와, 짜릿하네. 이거지. 이거거든.’

더 이상 손댈 곳이 없었다.

이 멜로디에 우리들의 목소리가 얹어지고, 기계로 찍어낸 악기가 아니라 제대로 된 악기의 음을 얹으면 어떻게 될까?

지금도 충분히 좋았는데, 그땐 아마 뒤집어질 거다.

“미쳤다. 진짜.”

내가 이걸 만들었다는 게 너무 재밌고, 신난다.

몇 번을 다시 들어도 내가 이걸 만들었다고? 라는 생각이 드는 곡이었다.

“하, 빨리 작업하고 싶네.”

내가 작곡에 이렇게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 몰랐다.

어서 이 곡을 들려주고 잔뜩 자랑하고 싶었다.

누구에게 가장 처음으로 이 곡을 들려줘야 할까?

꾸준히 찾아와서 내 작곡을 봐줬던 제키?

건강이 상할까봐 걱정해서 밥을 챙겨주었던 아현이와 복순 누나?

다음 앨범 얘기를 꺼내봐야 할 연주 누님과 전담팀?

모두 굉장히 중요한 사람들이었고, 빠트릴 이유가 없는 존재였다.

“그래도 제일 먼저 들려줄 사람은….”

아현이와 복순 누나다.

제키에겐 미안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고 내 여자들부터 챙기고 싶었다.

아현이는 내 곡을 들으면 좌절할 것 같아서 듣지 않고 싶어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런 곡을 들어보는 것도 작곡을 하는데 필요한 일이었다.

제키는 연락을 남겨두기로 하고 아현이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지금 뭘 하고 있으려나. 작업하고 있나?”

핸드폰을 들어서 연락을 하려는데, 때마침 전화가 왔다.

“누님이네.”

연주 누님이었다.

“여보세요.”

-깨어났구나.

“누님도 알고 계셨어요?”

-네가 갑자기 작곡에 미쳐서 작업실에 틀어 박혀 있다고 하더군. 일주일에 가깝게 말이야.

“리멤버 애들 컴백하는 걸 돕다 보니까 애들이 우리도 컴백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곡을 만들어주겠다고 했죠.”

-멤버들한테 네 얘기 했다면서.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아현이한테 들었다.

“아~”

멤버들이 연주 누님에게 말을 했나 싶어 깜짝 놀랐다.

아현이에게 들었다면 알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잘 해결 된 거니?

“네. 해결 됐어요. 애들이 그리 화를 안 내더라고요. 아! 누님, 지금 회사이신 거죠?”

-응.

“그럼 제가 곡 들고 갈게요. 누님한테 들려드리려고 했던 곡이에요.”

-이번에 네가 만들었다는 그 곡을 말하는 거니?

“네. 애들한테 호언장담 했거든요. 내 비밀이 밝혀져서 나를 깔 순 있어도 우리 노래는 깔 수 없게 할 거라고요. 그럴 수 있는 노래를 제가 만든 것 같아요.”

내가 자신감 있게 말을 하니 누님도 기대가 됐는지 기다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현이에게 먼저 들려주기로 했던 걸 갑자기 바꾸게 됐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연주 누님이 이 곡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무척 기대가 됐다.

“어우, 햇빛 적응 안 돼.”

쨍쨍 해가 내려쬐는 12시.

회사에 들어가자 나를 알아 본 직원들이 깜짝 놀란다.

“어? 해솔씨! 드디어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근데 무슨 일 있어요? 왜 다들 절 보면서 놀라시는지 모르겠네요.”

“소문 다 났어요! 작곡실에 일주일 넘게 계신다는 거요! 다음 컴백 앨범 때 쓸 곡 만들고 계시다면서요.”

“와~ 그게 회사에 소문이 다 났어요?”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인데.

“네! 엄청 대단한 곡을 만들고 계시다면서요. 근데 다 만드신 거에요?”

“음~ 비밀이에요. 하하.”

우리 팀원이 아니라 안면이 있는 회사 직원에 불과했기에 자세한 얘기는 섣불리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연주 누님을 만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바로 탔다.

“안녕하세요. 비서님.”

“!!”

비서님이 날 보더니 반가워 하셨다.

“비서님도 소문 들으셨어요?”

“해솔씨에 관련 된 소문 말씀하신 거면 들었습니다.”

“히야~ 진짜 모르는 사람이 없나보네요.”

내가 곡을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만들었으면 어쩔 뻔했나.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곡이라 확신하며 대표실로 들어갔다.

“저 왔어요.”

“살이 많이 빠졌네.”

“어? 저 살 빠졌어요?”

“그래. 얼굴이 많이 까칠해졌어.”

내 사기적인 얼굴도 일주일 날밤을 까니 상하기는 하는구나 싶다.

“음, 그래도 푹 자고 와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나 못 생겨진 거에요?”

“아니. 못 생겨지진 않고 너한테 잘 못 느꼈던 병약미가 추가 된 것 같다.”

“병…약미! 확실히 낯선 매력이네요.”

“그렇지. 이 모습을 보면 촬영하고 싶다는 작가가 넘칠 거야.”

병약미라.

아참,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저 곡 다 썼어요.”

“사실 좀 기대하고 있는 중이야. 네가 어떤 노래를 만들었을지.”

“마침 들려드리려고 가져왔어요. 그리고 기대하셔도 될 거에요.”

누가 들어도 좋다고 말할 거라 확신한다.

나는 기대하는 연주 누님에게 이어폰을 건네주고 곡을 틀었다.

곡이 끝날 때까지 연주 누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도 가늠할 수가 없어서 괜스레 마음이 흔들릴 뻔 했다.

‘이건 안 좋을 수가 없는 곡이야.’

그리고 마침내 곡이 끝났을 때.

“좋구나. 이걸 네가 만들었단 말이지?”

연주 누님이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감상을 말했다.

“좋죠? 누님이 들어도 괜찮은 거죠?”

“이런 곡을 만들었으면 자신감이 넘쳐야지. 왜 자신없어해?”

“나만 좋을 수도 있잖아요.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자신 없는 듯 말했지만, 이 노래가 별로라는 사람이 나오면 귀를 씻으라고 말 할 거다.

“당장 컴백 준비 하자고 말하고 싶은데…. 어쩔 생각인 거니? 너한테 지금 중요한 건 컴백이 아니잖아.”

내 비밀을 대중에 밝히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 엉뚱하게 곡을 만들고 있으니 의아하기도 할 것이다.

아현이한테 내 사정을 자세히 말할 겨를이 없었으니 연주 누님에게 말했을 리도 없고 말이다.

“컴백 앨범을 좀 일찍 준비해보려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절 욕하는 걸 노이즈 마케팅으로 이용해볼까해요.”

“…노이즈 마케팅을 이용한다고?”

“그래서 이런 곡을 준비한 거에요. 저를 욕할지언정 곡은 욕할 수 없게 하려고요.”

나를 싫어해도 내 노래는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 개인사를 노이즈 마케팅으로 이용한다면 홍보 효과도 확실하다.

“네가 희생해서 노이즈 마케팅을 해야 할 정도로 우리 직원들이 무능하지 않다.”

“피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기왕 어쩔 수 없는 일이면 이렇게라도 이용하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가족들한테도 양해를 구하긴 해야겠지만, 곡이 이렇게 잘 나온 이상 제 생각대로 될 거라고 생각해요.”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지만, 네 말대로 효과는 확실할 거다. 다만 정말 괜찮겠니?”

“짜증이 나더라고요. 계속 이번 일로 걱정하는 것도 지겹고요.”

그냥 후딱 일을 해치우고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멤버들에게 내 비밀을 밝히고 얻은 후련함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언제까지 이 일에 얽매여 있어야 한단 말인가?

내 선언을 들은 연주 누님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럼 내 쪽에서도 슬슬 제안을 해야 할 차례인 것 같구나.”

“제안이요?”

“컴백 준비하기 전에, 깔끔하게 재계약을 끝내는 게 낫지 않겠니?”

그건 맞지.

“네 개인 사정을 홍보 활동으로 이용하도록 해준다고 하니 우리도 크게 양보하마.”

"양보요?"

갑작스럽지만 연주 누님의 결심으로 우리의 재계약 문제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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