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28화 (528/849)

에어플레인과 리멤버가 함께 출연해 방영 된 프로그램이 큰 호평을 받으며 좋은 시청률을 받았다.

물론 케이블에서 방영 되면서 엄청난 시청률이 나온 건 아니지만 팬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는 게 중요한 거였다.

초반에는 에어플레인이 소속사 후배 그룹이 망한 걸 수습하려고 프로그램에 출연한 걸 좋아하지 않은 팬들이 많았는데, 방영 된 프로그램에서 두 그룹의 멤버들이 사이가 너무 좋다 보니 욕을 계속 할 수도 없었다.

-얘네들 사이 왜 이렇게 좋음?

-연기하는 거 아니야?

-아이돌이 연기를 저렇게 잘 해?

-회사가 억지로 애들 홍보에 참여시킨 줄 알았는데, 같이 대화 나누는 거 보니까 진짜 친하긴 한가봐.

-나 듣보잡이 에어플레인 이용한다고 욕 엄청 했는데 어쩌지?

리멤버에 대한 여론은 프로그램이 방영 될 때마다 빠르게 변해갔다.

그만큼 프로그램은 두 그룹이 화기애애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여론이 어떻게 진행 될지 뻔히 안다는 듯, 너희들이 욕을 해봤자 두 그룹의 사이는 엄청 좋다고 말이다.

그렇게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리멤버라는 존재가 조금씩 각인 되기 시작했다.

에어플레인을 이용해서 홍보한 무례한 후배 그룹.

선배님 등골 빨아 먹는 그룹.

그런 최악의 여론으로 시작하여.

-보다 보니까 귀엽네.

-애들이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확실히 블링블링해.

-I fell in love with them

-후배들이랑 같이 이으니까 우리 에어 선배미 쁨쁨이당. 귀여워~!!!

-솔직히 귀여운 건 리멤버지. 저 애기들 애교 부리는 것 좀 봐.

-かわいい

-우리 애들에 대해 궁금하신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전부 대답해드릴게요!

-개인 활동을 해서 다 모여 있는 모습이 그리웠는데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에어플레인은 언제 컴백하는 거야?

애들이 귀엽다며 그들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기까지.

리멤버 애들은 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연습실에서 지내며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리멤버 컴백날!”

“후우~하아~. 미치겠다. 으아아!”

“떨린다. 무지 떨린다!!!”

“진정해야 되는데 진정이 안 돼!”

“어떡하지? 우리 또 망하면 어떡해?”

“프로그램 반응 좋았잖아!! 약한 소리 하지 마!”

애들이 오늘 컴백 무대를 하는 날이라서 응원해줄 겸 찾아왔는데, 대기실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난리가 나 있었다.

“형이다!”

“혀엉!!!”

“으아아!! 형!! 살려주세요!”

애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멧돼지처럼 달려들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을 애들이었기에 적당히 피하지 않고 받아줬다.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가 찍고 있는 카메라를 적당히 의식한 행동이기도 했다.

“다들 덜덜 떨고 있었던 거야?”

“네에!”

“너무 무서워요. 실수하면 어떡하죠?”

“무대 위에 올라갔는데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면요??”

다들 최악의 상황만 떠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긴장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얘들아, 무대 위에 서는 건데 왜 이렇게 무서워해? 너희들 꿈이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르는 거 아니었어? 오늘은 꿈을 이루는 날이야. 네 팬들 앞에서 너희가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는지 뽐내는 날이라고.”

무대에 서는 걸 행복해 해야 한다.

지금 이 기회를 얻고 싶어서 피와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가득하니까.

우리들이 하는 말에 무대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으로 들떠 있던 리멤버 애들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잘 할 수 있지? 그러려고 열심히 연습했잖아.”

“잘해야죠! 아니, 잘할 거에요.”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 못하면 절대 안 돼죠.”

“아무 기억이 안 나도 몸이 먼저 움직일 거에요.”

겁에 질려 있는 것보단 저렇게 자신감 있는 말을 하는 게 훨씬 나았다.

“좋아. 바로 그거야.”

“아까보다 훨씬 보기 좋네. 진작 이랬어야지. 우리가 너희를 얼마나 연습 시켰는데.”

이 정도 자신감도 안 보이면 곤란하다.

“말이 의외로 힘이 커. 계속 약한 소리를 하면 정말 내가 약해진 것 같거든. 근데 반대로 할 수 있다고 계속 말하면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지기도 해.”

리멤버 애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잘 할 거에요!”

“맞아요! 완전 성공적으로 무대해서 우리 무대 보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우리한테 반할 거라고요!”

“그렇지! 좋다.”

밝은 에너지.

내가 얘네들과 함께 생활하며 떠올랐던 영감이 바로 이 에너지였다.

“너희들을 보면서 만든 노래야.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팬들한테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무대 위에서 팬들한테 인사 잘 하고 와. 만나서 반갑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말이야.”

애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진다.

무대는 무서워하는 곳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듯했다.

우리의 응원을 받고 힘을 낸 리멤버가 무대 위에 올랐다.

그리고.

“엄살 피우더니, 엄청 잘하네.”

“와~ 매력 터진다.”

“이 정도면 된 거 같은데?”

애들이 무대 위에서 그야말로 자기 세상인 것마냥 날뛰었다.

프로그램에서 애들이 뽐냈던 매력이 무대 위에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반응도 좋다.”

“응. 걱정했는데 할 필요가 없었나봐.”

“우리도 곧 무대 위에 설 수 있겠죠?”

“당연하지. 얘가 그런 미친 곡을 썼는데. 그건 나오면 무조건 1위 갈 곡이야.”

“으으으! 빨리 연습하고 싶어요.”

“무대 보니까 몸이 근질근질거리긴 하다.”

“근데 이거 카메라 있는데 말해도 되는 거 맞아?”

“헉! 맞다.”

카메라가 너무 소리 소문 없이 우리를 찍고 있어서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황급히 제작진을 바라보며 가위질을 했다.

“이건 편집해주세요~”

끄덕끄덕-

방송국에서 온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으므로 대답을 듣긴 했지만, 매니저 누나에게 말해두기로 했다.

잠깐의 소란을 뒤로하고, 우리들은 리멤버 애들이 무대를 즐기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애들이 활동을 끝내고 휴식기에 들어갈 무렵, 우리가 바톤을 이어 받는 것처럼 컴백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든 ‘그 곡’으로 말이다.

무대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들였던 수많은 시간들.

반면 무대는 길어봐야 4분에 불과하다.

어떻게 보면 불합리한 일이었으나, 무대 위에 서면 그동안의 고생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연습실에 녹였던 시간들이 아깝지 않은 행복한 시간이다.

‘행사 뺑뺑이 도는 건 좀 별로긴 하지만.’

2시간을 달려서 행사에 가 무대에 서서 10분도 안 돼서 다시 차를 타고 다음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것.

보통 아이돌은 행사 뛰는 걸 반드시 했고, 그건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해외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단가가 훌쩍 올라가서 어느 순간부터는 행사를 뛰지 않게 되긴 했지만, 솔직히 행사를 돌아다니는 걸 즐기진 못했던 것 같다.

‘콘서트가 진짜지.’

무대 위에서 제대로 행복을 맛보려면 콘서트가 최고다.

“허억! 허억!”

“으아악! 너무 좋아! 어떡해!”

애들이 잠깐 무대의 맛을 보고 내려왔다.

순식간에 끝났지만 무대 위에서 얻은 열기가 여전히 애들을 휘감고 있었다.

“잘 했어!”

“모니터링 하자!”

“아, 나 살짝 휘청거렸는데 크게 잡혔으면 어떡하지?”

“얘들아.”

“헉! 형형! 우리 어땠어요? 잘 했어요?”

“당연하지. 스스로도 느끼고 있을 거잖아. 잘 했다는 거.”

“으히히! 잘한 것 같긴 한데, 다른 사람이 보는 건 또 다를 수가 있으니까요.”

“엄청 잘 했어. 실수했다고 하는 사람 있었던 것 같은데 화면에 안 잡혔으니까 걱정하지 마.”

“으아악! 다행이다.”

발갛게 달아오른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풀어놓았다.

“형형형! 예전에 저희가 무대 위에 섰을 때, 아무도 호응을 안 해주셨거든요? 근데 오늘은 아니었어요!”

“맞아요! 엄청 깜짝 놀랐어요! 우리를 응원하러 온 팬 분들이 있었다고요. 이건 기적이에요!!”

“우리 팬 맞았을까? 우리가 잘 못 본 거면 어떡해?”

“너도 보고 나도 봤는데 뭐가 잘 못 본 거야. 우리 팬 맞다니깐?”

“너희들이 왜 팬이 없어? 이번에 프로그램 방영하고 너희들 귀엽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맞아, 오늘 너희 컴백 무대 하는 거 응원해주러 온 사람들 맞을 거야.”

애들이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진짜라는 걸 느꼈는지 감동 받은 얼굴로 눈가를 촉촉하게 적셨다.

“우리 팬이라니….”

“우리도 이제 팬이 있구나. 으아! 심장 터질 것 같애!!”

“형!!!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형님들 아니었으면 절대 못 이뤘을 거에요.”

“맞아요. 정말 감사해요! 형들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은혜 절대 잊지 않을 게요. 형들! 열심히 활동해서 꼭 호강시켜드리겠습니다!”

우릴 호강시켜준다고?

애들 하는 말이 너무 웃겼다.

하여튼 귀여운 녀석들이다.

“10분도 안 되는 무대지만, 재밌었지?”

“네!!”

“너무 행복했어요.”

“고작 10분도 이렇게 행복한데, 콘서트하면 얼마나 기쁠지 상상해봤어?”

“!!!!!”

아직 애들에게 콘서트의 매력을 설명해주는 건 이른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얘들에게 다음 목표를 정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콘서트는 우리 노래를 들으려고 온 사람들로 꽉 차 있는 곳이야. 이쪽을 봐도 내 팬이고, 저쪽을 봐도 내 팬이라는 거지.”

“!!!!!!!”

“해, 행복할 것 같아요.”

“그거 천국일지도…?”

짧은 방송용 무대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콘서트를 해낼 수 있는 가수가 되기를 바랐다.

“남의 일이 아니라 진짜 할 수도 있는 일이야.”

“벌써 두근거리는데….”

“진짜 저희가 콘서트를 할 수 있을까요?”

성공한 아이돌만 할 수 있다는 콘서트.

우리도 했는데, 리멤버라고 못할 건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잘 될 거야. 너희는.”

다만 이제 우리가 도와 줄 수 없으니 스스로 해나가야만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도와줄 필요가 없는 거였다.

프로그램으로 반짝 얻은 인기를 진짜 자신들의 팬으로 흡수하는 것.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본 리멤버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가 마지막으로 훈훈한 조언까지 끝내자 스태프들이 촬영 종료를 선언했다.

“촬영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앗! 이게 끝인 거에요?”

아직 리멤버 애들은 무대 위에 올라갔던 열기가 사라지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림이 잘 나와서 더 찍을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여기에 인터뷰까지만 따면 될 것 같습니다.”

만족스러울 만큼 촬영 분량을 확보했는지 마지막으로 각 그룹 멤버들을 모아서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에어플레인을 모아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우리 다음으로 리멤버 애들을 모아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작진이 우리에게 한 질문은 특별할 것 없이 이번 프로젝트의 소감이었다.

“회사 소속 후배와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잊혔던 데뷔초의 감정들이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을 함께 느끼게 돼서 설레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서 빨리 무대 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멤버들이랑 다시 무대에 서고 싶어요.”

각자 느꼈던 소감을 인터뷰하고, 리멤버 애들까지 모두 인터뷰를 끝내자 제작진이 썰물처럼 쑤욱 빠져나갔다.

텅텅 비어버린 대기실에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정신 하나도 없지?”

“네에, 몽롱해요. 힘이 쭉 빠지네요.”

“힘들었을 거야. 긴장을 안 하려고 해도 긴장했을 거고. 오늘은 푹 쉬어. 아마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하듯이 잠들 걸?”

“예전에 음방에 처음 출연했을 땐 잠이 안 왔어요.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았거든요.”

“오늘은 분위기 좋았잖아. 팬분들이 응원해주러 오기도 했고.”

“네에, 근데 이번에도 잠을 못 잘 것 같아요.”

“왜?”

“그냥 자고 일어나면 지금 이 순간이 꿈이었을까봐 두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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