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응~!!!!
움찔!
실은 꽤나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가 정령을 찌릿 노려봤다.
장난기 많은 정령은 소리를 저장했다가 슬그머니 나타나 자신을 깜짝 놀라게 만들곤 한다.
“너어….
”
사실 이 장난은 오랫동안 그녀와 정령 사이에서 벌어지는 익숙한 행동이었다.
미니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승리자는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하면 정령의 승리이고, 놀라지 않으면 그녀의 승리인 것이다.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작은 소원을 들어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령이 매우 곤란한 소리를 모아왔고, 그것으로 그녀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건 반칙이지. 이런 소리는 모아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
‘내가 이겼어!’
정령이 깜짝 놀란 게 맞지 않냐며 자신이 이겼다고 주장했다.
“그래, 내가 진 건 맞아. 그런데 이런 소리를 함부로 훔쳐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 이런 소리로는 이기는 걸로 쳐줄 수 없어.”
‘흥! 그런 게 어딨어!’
정령이 삐졌는지 괜스레 그녀의 치마를 훌렁 뒤집어버렸다.
“앗! 왜 이러는 거야. 이런 소리는 함부로 훔쳐오면 안 된다니까? 우리끼리 약속한 일이잖아. 그만해!”
황급히 치마를 수습한 그녀는 삐졌는지 괜스레 날카로운 바람으로 주변의 물건을 치고 다니는 것을 말렸다.
이러다가 물건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
“그만. 그만해. 네가 잘못한 일이야. 그런 소리 훔쳐오면 굉장히 큰 실례라고.”
봐줄 생각이 없었기에 단호하게 말하니 정령이 그제야 물건을 건드리던 바람을 멈췄다.
“왜 그런 거니? 이러면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잖아.”
‘아닌데? 안 된다고 한 적 없는데?’
정령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이걸 어쩌다가 가져온 거야?”
그녀의 물음에 정령이 순진한 표정으로 사정을 설명했다.
‘신기한 소리였어. 지금까지 못 들어봤던 소리.’
“신기했다고? 그냥…그냥 섹스하는 소리일 뿐인 걸. 이미 이런 소리는 충분히 갖고 있잖아.”
새삼스럽게 신기할 것 없는 소리였으나, 이미 소리를 어렴풋이 들어본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
이건 그녀가 평소 들어왔던 소리와 많이 다르다고 말이다.
‘아니야! 내가 다 들어봤어. 이건 달라.’
아니나 다를까 정령이 아니라면서 반박을 해왔다.
그 분명한 의사표현과 함께 다시 소리가 재생 된다.
흐아앙! 아앙!!!
“!!”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드는 남사스러운 소리는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으로 보였다.
조하아앙…!!!
“!!”
금방이라도 숨이 꼴깍 넘어가려고 하면서도 그 소리를 내는 여자는 기쁨을 가득 담아 신음을 토해냈다.
잠자리를 안 가져 본 게 아닌지라 그녀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다.
“이, 이건….”
‘신기하지? 괴로워하면서도 행복해 하고 있어. 이런 소리는 굉장히 희귀하다고!’
“그만 멈춰줄래? 너무 시끄러워.”
두 명의 여자가 내뱉는 신음도 굉장히 시끄러웠고, 살이 부딪치며 내는 질척한 소리도 그녀의 얼굴을 화끈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령이 그녀에게만 들리도록 해서 남에게는 이 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자세히 들어봐! 다르지? 다르잖아.’
“그래, 네 말대로 다른 것 같긴 해.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
그녀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정령이 그제야 소리를 멈췄다.
‘귀 아팠어?’
“아니. 함부로 들으면 안 되는 소리여서 그런 거야.”
그녀도 사람인지라 이런 원초적인 소리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남자를 만나본 경험이 오래 되었다면 더욱 더.
하지만 그녀는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들어선 안 되는 소리는 딱 잘라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 그 정도 몸집으로 이런 소리를 내는 거지?’
귀족들의 밤놀이 문화는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어본 바가 있다.
더불어 그녀를 쉽게 넘어트리려고 하던 귀족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부족한 것 없이 넘쳐나는 부를 주최하지 못하던 귀족들은 쉽게 쾌락에 빠졌고, 남들에게 그 쾌락을 강요하곤 했다.
‘그런 주제에 한 번 찍- 싸면 끝이지. 그게 아니면 코인으로 사치를 부리던가.’
아무리 떵떵거리는 귀족이라 할지라도 침대 위에서만큼은 여느 남자와 평등했다.
물론 그중에는 특출나게 정력이 강한 사내도 있기는 하다.
바로 코인으로 생식 능력을 강화시킨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과 섹스 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자는 없었다.
‘침대 위에서 보여주는 매너가 개보다 못하니까.’
유모로 일하다보면 집안의 내밀한 일들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이다 보니 귀족부인들이 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은 정력을 강화한 남자를 상대하는 게 여자의 생명을 깎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상점에 좋은 아이템이 얼마나 많은데, 성능력을 올린다니. 그것부터 글러먹은 거잖아.’
성능력은 상점에서 굉장히 비싼 값에 판매가 되고 있었다.
그 능력을 살 바에야 차라리 집을 사는 게 낫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성 능력을 구매한 남자들은 그것으로 자신의 부를 자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코인으로 정력을 강화시킨 남자는 자기 능력을 뽐내기 위해 잠자리에서 힘으로 밀어 붙였고 말이다.
당연하지만 성능력을 강화시키면 한 여자로 만족이 되지 않으니 문란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어진다.
‘힘만 세지면 다 되는 줄 알지.’
여자가 신음을 뱉어내면 다 좋은 건 줄 안다.
여자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다.
힘으로 밀어 붙이는 게 아니라면 괴악한 성벽으로 여자를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는 놈도 있다.
뭐가 됐든 최악임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고, 이 정도로 여자를 몰아붙이는 사람이라면 분명 사장님도 코인으로 성능력을 강화시킨 사람이 분명했다.
‘사장님이 그런 행동을 하실 분으론 안 보였는데….’
정령이 들려주는 소리가 심상치 않은 걸 보면 강화를 굉장히 많이 한 게 분명하다.
이 정도면 여자가 죽어 나갈 게 분명한 일.
그를 상대하고 있는 여성은 두 명이었고, 두 여성이 내뱉는 신음 소리는 여태까지 그녀가 들어온 소리와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정령도 신기해 소리를 담아온 것이리라.
‘얼마나 강화를 했기에 이런 소리를 내는 거지?’
그녀도 정령이 담아오는 각종 아름다운 소리를 좋아한다.
물론 이렇게 오늘처럼 난감한 소리를 가져올 때는 빼고 말이다.
이곳은 소리에 관련 된 문화가 굉장히 발달 되어 있어서 요즘 정령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 그녀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남의 은밀한 사생활을 훔쳐 듣는 것은 나쁜 일이었다.
“앞으로 사장님 소리는 절대 가져오지 마. 알겠지? 이건 우리가 한 약속을 어긴 거야.”
‘아니야! 문이 열려 있었단 말이야! 문이 열려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 나 약속 안 어겼어.’
“…문이 열려 있었다고?”
‘응! 문이 닫혀 있었으면 나도 안 가져왔어! 근데 문이 열려 있었어. 문이 열린 곳은 된다고 했잖아.’
정령의 말이 맞다.
정령에게 문이 닫힌 곳의 소리는 담아 오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안 되는 곳을 정해주지 않으면 정령은 정말 온갖 소리를 다 담아 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남의 은밀한 비밀을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아서도 안 된다.
자칫 잘못했다가 정령이 위험한 걸 가져온다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그나마 이곳은 이능력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문은 좀 닫고 하시지….’
그렇다고 정령이 소리를 모으고 다니니 문을 닫고 해달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어떤 사람이라도 불쾌감을 숨기지 못할 테니 말이다.
더욱이 이곳에선 정령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알면 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어…. 여기만큼 편한 곳이 없는데.’
이능력이 존재하는 곳에선 정령사와 계약이 된 정령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도록 방비를 해둘 수 있다.
귀족 가문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거의 다 해놓는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정령은 함부로 그런 곳을 드나들 수 없었는데, 정령이라는 게 자연 그 자체였기에 못 들어가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불쾌하게 여겼다.
헌데 이곳의 바람은 많이 오염 되어 있었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있었다.
“힘을 함부로 사용한 건 아니겠지?”
‘안 했어! 약속 했잖아.’
“맞아. 약속을 꼭 지켜야 해. 이곳은 정령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리고 오늘 일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화내서 미안해.”
‘맞아. 서운했어. 나 잘못 안 했단 말이야.’
“이번에는 네가 이겼네? 축하해! 소원이 뭔지 말해봐.”
‘히히히히!!!’
정령이 소원을 말하라는 말에 신이 났는지 산들 바람이 그녀의 주변을 휘감았다.
그녀가 오해해서 정령을 혼냈으니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정령이 한 번 삐지면 후폭풍이 엄청났다.
‘다시는 경험해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어떤 소원을 빌지는 모르겠으나 최대한 들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소원은 너도 기분 좋은 걸 하는 거야! 네가 내는 이 소리를 갖고 싶어.’
“!?!”
그리고 그 생각을 가진지 1초 만에 생각이 뒤집혔다.
“나보고 사장님 침대에 들어가라는 소리야?”
정령이 순진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바람 정령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독특한 소리를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섹스를 하면서 내는 소리 또한 정령이 좋아하는 소집품 중 하나이다.
그들이 내는 소리는 정령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딱 좋았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원초적인 소리면이니 말이다.
‘문제는 내가 내는 소리를 정령이 제일 좋아한다는 거야.’
더불어 바람 정령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그녀가 만들어 내는 소리였다.
그녀의 소리를 좋아하니 계약을 맺어 준 것이지 않겠는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녀의 정령은 그녀가 낸 모든 소리를 갖고 있었다.
‘방귀 끼는 소리까지 모으는 아이니까.’
더불어 그녀가 잠자리를 갖으며 내는 소리를 갖고 있었다.
그때도 정령이 부탁을 해서 했던 잠자리였다.
다만 그때 너무 못 느끼는 바람에 정령이 만족할 만한 소리를 못 모았다.
‘안 돼? 싫어할 것 같아서 소원으로 한 건데.’
“그 소리는 이미 갖고 있잖아. 그걸 왜 또 갖고 싶어 하는 거야.”
‘아니야. 그땐 이런 소리가 아니었어! 네가 이런 소리를 내는 걸 갖고 싶어.’
“나보고 저런 소릴 내라고? 절대 못해. 가능할 리 없어.”
‘내 소원 들어주겠다고 했어!’
정령이 고집을 부린다.
쉽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 보면 저 소리를 꼭 갖고 싶다는 뜻이 된다.
갖고 싶은 소리에 한해서 정령은 인내심이 무척 길었고, 반드시 얻을 때까지 그녀를 괴롭게 할 것이다.
“날 몇 년 동안이나 고용해줄 분이셔. 그런 걸 했다간 앞으로 계속 고생해야 한단 말이야.”
‘기다릴게! 그때도 2년이나 기다리고서야 들어줬잖아. 난 여기가 좋아. 오래 기다려도 돼. 나 이제 갈래! 안녕!’
“잠깐! 이렇게 가버리면 어떡하니!”
정령이 자기 할 말만 해버리고 휘잉~ 바람 소리를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하아~"
남겨진 그녀는 허망함에 한숨을 푸욱 쉬었다.
이미 사라진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정령이 들려주었던 여성의 신음 소리와 질척거리며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귓가에 남아 울려퍼졌다.
“으으으!!”
그리고 곧 이 소리가 환청이 아니라 정령의 장난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다시 돌아오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