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33화 (533/849)

“나오셨어요, 사장님.”

“네? 아, 네. 좋은 아침입니다.”

“식사 하시죠?”

“네, 그래야죠. 유모님은 식사 하셨어요?”

“간단하게 먹으려고 하는 중이에요. 씻고 나오세요. 차려놓겠습니다.”

“감사해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대화를 나눴지만 미묘하게 느낌이 달랐다.

‘목소리가 좀 차가운데. 거리감이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하고.’

어제까지만 해도 일정한 거리감이 있어도 온도는 따듯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거리감도 거리감이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서 찬기가 돌았다.

‘어제 무슨 일 있었나?’

뜬금없이 태도가 변했다면 이유가 있을 터.

근데 오래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내가 무슨 짓을 했나.

‘문 열어놓고 섹스했지.’

그로인해 생긴 찬기라면 내 입장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때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서 마셨다.

살랑~

으아응!

“!!”

“이게 뭔…?!”

그때, 뜬금없이 바람과 함께 여자의 신음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누가 섹스라도 하나 싶을 정도로 생생한 소리였다.

고개를 휙휙 돌려 주변을 살펴봤지만, 소리의 정체는 오리무중이었다.

더군다나 잠깐 들렸던 소리의 목소리가 나에게 무척 익숙했다.

불과 어제, 들었던 소리였으니 말이다.

‘어제 우리가 섹스하는 소리를 누가 녹음한 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유모님과 나 둘 뿐이었기에 자연스레 범인을 찾은 내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나는 열심히 표정 관리를 하고 있는 유모님에게 말했다.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소리요?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못 들으셨어요?”

“…그냥 바람 소리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소리가 바람에 휩쓸려 함께 왔었다.

날이 쌀쌀해지고 있는 요즘.

창문을 열어 둔 곳이 없었기에 뜬금없는 바람은 더더욱 의심을 불러 일으켰다.

‘유모님 정령이 바람이잖아.’

바람이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인데….

아무래도 유모님이 거짓말에 재능이 없느신 것 같았다.

저렇게 당황하는 걸 보면 본인이 원해서 한 일은 아닐 터.

정령이 한 장난이라면 상황이 이해가 된다.

‘근데 정령이 왜 내 섹스 소리를 녹음해놓지?’

문제는 하필 정령이 친 장난이 나와 내 여자들의 잠자리 소리라는 점이었다.

필사적으로 당황했음을 감추고 있는 유모님을 보니 모르는 척 해줘야 할 것 같긴 한데, 함부로 이런 소리를 퍼트리고 다니면 곤란했다.

해서 나는 정령을 잘 단속하라는 의미로 가볍게 말했다.

“아무래도 바람이 장난을 친 것 같네요. 근데 함부로 이런 소리를 퍼트리고 다니진 않겠죠?”

“…아마 그럴 겁니다. 바람은 장난기가 많아도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들진 않을 겁니다.”

본인이 곤란해져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라면 두 번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한 번은 넘어가기로 했다.

솔직히 문 열고 섹스한 것도 잘못이긴 하지 않은가?

“바람이 장난기가 많은 게 유모님 잘못은 아니죠.”

유모님이 너무 심하게 정색하기에 괜찮다는 의미에서 말을 하고 씻으러 화장실로 갔다.

씻고 나오자 정성스럽게 아침밥이 차려져 있었다.

‘간단하게 먹는다고 하지 않았나?’

음식을 해주시는 분들이 냉장고에 넣어 둔 음식을 꺼내 놓는 것에 불과했지만 이 정도 수고를 유모님이 해주시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녀를 코인을 주고 고용한 건 맞지만, 엄연히 아이를 돌보는 일을 시키려고 고용한 것이지 식사를 차리라고 고용한 게 아니지 않은가?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제가 차리는 김에 밥 그릇 하나 더 얹은 것뿐인 걸요. 괜찮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아침 밥을 먹기 시작했다.

“…….”

“…….”

이상하게 오늘따라 침묵이 무겁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은 전부 나간 건가요? 쌍둥이는요?”

“오늘 일찍 병원 예약이 되어 있어서 사모님께서 데리고 나가셨어요.”

“아픈 건 아니죠?”

“밤에 살짝 열이 오르긴 했는데, 금방 가라앉았어요. 오늘 병원에 간 건 열 때문에 가신 게 아니고 예방접종 때문이고요.”

아이가 뜬금없이 열이 오르는 건 애를 키우다보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헤프닝이었다.

“아~ 다행이네요.”

“네.”

“…….”

“…….”

또 다시 침묵이 흐른다.

한 번 더 말을 걸어볼까 했으나 저쪽에서 날 불편해 하고 있는데 굳이 말을 시켜야 할까 싶어서 밥을 먹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열심히 밥을 먹던 중.

문득 유모님의 정령이 이런 장난을 저지른 거라면, 그녀도 저 소리를 들었다는 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쪽팔리네. 저 쌀쌀 맞은 태도도 그 일 때문이겠지?’

정화씨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은 건 아니지만 상처가 많은 사람으로 보이니 잘 대해주라고 했었던 게 문득 떠올랐다.

설마 그 상처가 이쪽 분야의 상처일지 누가 알았을까.

‘앞으론 신경을 좀 써야겠는데.’

내가 고용인인데 좀 억울하긴 하다만, 유모님의 능력을 생각해보면 내가 배려를 해드리는 게 낫겠구나 싶었다.

그녀가 내 여자들과 너무 잘 지내주고 있고, 쌍둥이들과 다른 아이들도 유모님을 너무 좋아했다.

내 집에서 섹스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나 싶어 삐뚤어진 생각이 차오르다가도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님을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이 쑥 들어간다.

‘내가 맞춰줘야지. 그러다가 그만둔다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집의 방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유모님이 이렇게까지 불쾌해한다면 생각을 바꾸는 게 맞는 거였다.

‘근데 좀 억울하네.’

문을 열어둔 건 내가 아니라 주아 누나와 민영 누나다.

그런데 유모님은 내가 한 짓으로 생각한 게 분명하다.

의도치 않게 오해를 사긴 했는데, 문이 열려 있는 걸 봤어도 바로 닫지 않았다는 점이 내 양심에 스크레치를 냈다.

오늘 이런 싸늘한 태도가 아니었다면 나는 계속 유모님이 이해해줄 거라 생각하며 방음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유모님이 듣는다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어제 문 열어둔 거 나 아니에요! 라고 말할 수도 없고 말이야. 답답하구만.’

정령이 이런 장난을 치는 거 보면 유모님만큼 이런 일을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정령에 대해 궁금해 하던 여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는데, 정령과 정령사는 삶의 동반자 같은 것이지 명령을 내리고 듣는 주인과 부하 같은 관계가 절대 아니라고 했다.

애완동물을 키워도 그들이 주인의 말을 잘 듣는 존재가 아니 듯이 정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 이런 장난을 친 걸 테고 말이다.

“유모님 정령은 어디에 있어요?”

“…갑자기 제 정령은 왜 물으시나요?”

“쌍둥이 돌볼 때 정령이 많이 도와준다고 들어서요. 제가 유모님한테는 사례를 하지만, 정작 정령한테는 해준 게 없더라고요.”

쌍둥이를 낳고도 정화씨가 산후조리에 집중할 수 있고, 밤에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는 건 모두 실 유모의 활약 덕분이다.

적어도 그녀가 근무하는데 불편함은 없어야 할 텐데, 편의를 봐주고 싶어도 수작 부리는 걸로 오해할 수 있기에 선뜻 행동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정화씨에게 말해서 대신 챙겨달라고 말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게 아니면 정령을 공략하던가.’

오늘처럼 장난기 많은 정령이라면 잘 보여서 적어도 그녀가 이런 일로 그만두는 걸 막아주지 않을까 싶었다.

“제가 받는 월급엔 정령의 보수까지 모두 포함 되어 있는 겁니다. 사장님께서 신경 쓰실 필요 없는 부분입니다.”

“그래도 당분간은 함께 살아야 하는 식구인데, 잘 부탁한다고 선물 하나 주는 것도 안 되는 건가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잘 챙겨주고 있…풉!”

휘이잉~!

거절의 말을 하던 유모님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두들겨 팼다.

순식간에 산발이 된 유모님은 허탈한 표정으로 얼얼한 통증을 보내오는 뺨을 손으로 만졌다.

“너…어제부터 자꾸 이럴 거야?”

‘내 선물을 왜 마음대로 거절해! 나 선물 받고 싶어! 선물 받을래!’

유모님이 정령과 대화를 나누는지 허공에 시선을 주고 대화를 나눴다.

“뭘 갖고 싶은데? 나한테 말해. 해줄 테니까.”

‘그럼 어제 약속한 거!’

“그건 안 된다고 했잖아! 소원 바꿔!”

‘너무해!’

바람이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게 없었던 나는 바람이 부는 것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지금 정령은 불만에 가득 차 있는 게 분명했다.

“유모님, 보니까 정령도 제 선물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맞나요?”

“정령은 필요한 게 없어요.”

“글쎄요. 제가 상점에서 찾아봤는데, 정령이 좋아하는 침대가 있던데요?”

보통 우리들이 쓰는 침대는 아니다.

넓적한 그릇처럼 생긴 게 정령 침대라면서 팔고 있었는데, 가격이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걸 사셨어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치품인데!”

아직 사진 않았지만, 안 샀다고 하면 절대 안 받을 것 같았기에 이미 샀다고 구라를 쳤다.

내 말을 들은 정령도 이미 눈이 돌아가서 집안 물건이 남아나지 않기 시작했다.

드드드-

‘나 줘! 가질래! 내 거야!’

“지금 좋아하고 있는 거 맞죠? 여기서 자고 일어나면 정령이 좋아한다더라고요. 선호물품 1위였어요.”

“정령이 잠을 잘 리가 없잖아요. 그냥 거기서 쉬면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밖에 없다고요!”

그런 거면 확실히 사치품이 맞긴 한데….

그래도 1위를 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나?

지금도 내가 침대를 샀다니까 정령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조금씩 흔들리던 물건들이 위태롭게 선반 위에 버티고 있었다.

드드득- 드드드득-!

“살림 다 부셔지겠는데요?”

“자, 잠깐만! 진정해! 알았어. 알았다고!”

정령이 화를 내니 유모님도 말리지를 못한다.

본의 아니게 그녀를 또 곤란하게 만든 것 같아 서둘러 상점을 켜서 물건을 구매했다.

‘즐겨찾기 해놔서 다행이네.’

짜잔~ 하며 내 손바닥에 그릇이 나타난다.

“선물이에요. 앞으로도 우리 애들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아이들 잘 봐줘서 감사했고요.”

보이지 않는 정령을 향해 말했다.

넓적한 그릇에는 투명한 뚜껑이 있었는데, 그 뚜껑이 저절로 열리면서 바람이 그 안으로 쑥 들어갔다.

나는 편안한 잠자리를 위한 사용방법을 읽어보고 뚜껑을 닫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닫아주었다.

“와~”

뚜껑이 닫히고, 우웅~! 하는 작은 울림소리와 함께 작고 귀여운 파란색 소녀가 뿅하고 나타났다.

“여기 있는 아이, 진짜 정령이에요?”

“하아, 네. 맞아요. 저걸 기어코 쓰다니….”

“때마침 세일을 해서 싸게 구매했으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아줘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많이 도와줬잖아요. 유모님한테도 따로 선물 드릴 생각이었고요.”

“저까지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 정령한테 선물을 주신 건 저한테 준 거나 다름없습니다.”

유모님이 정색을 하며 거절을 했다.

정말 여기서 더 나가면 진심으로 화를 낼 것 같았기에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알겠어요. 일단 여기 이거 받으세요.”

손에 들고 있는 정령용 침대를 유모님에게 넘겼다.

정령은 유모님의 손으로 이동하자 더 편안하게 그릇 아니, 침대에 누웠다.

그 모습을 본 유모님의 표정이 편안하게 풀렸다.

오늘 시종일관 냉랭하던 모습을 보여주던 그녀가 처음으로 표정을 푼 순간이었다.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정말 좋아하고 있어요.”

“저야 말로 받아주셔서 감사하죠.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아이 쭉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사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정령에게 선물을 준 효과가 바로 나타나고 있었다.

껄끄러운 일로 생긴 반감이 많이 사라졌는지 말투가 평소로 돌아온 것이다.

역시 대상을 바꾼 내 선택이 옳았다.

직감적으로 수습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아 뇌물(?)을 받쳐서 신뢰를 되돌렸는데, 그러길 잘했다는 걸 금방 알게 됐다.

아침에 있었던 일을 밤에 정화씨에게 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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