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주들이 별로 안 좋은 사람들이었던 모양이야. 그 아이한테 못된 짓을 하려고 했었대. 그래서 고용주랑은 아무리 가까워져도 거리를 두는 편이라고 하더라.”
“아~! 전혀 몰랐어요. 되게 덤덤한 편이라서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그래서 내가 잘 해주라고 한 거야. 그리고 덤덤한 게 아니라 워낙 이것저것 당한 게 많아서 둔감해진 거지. 그리고 네가 느꼈던 거리감은 여러 번 곤욕스러운 일을 당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겨서 생긴 일이야. 고용주랑 거리를 두는 대신 부인이랑은 친하게 지내는 게 편하다는 걸 알게 돼서 이후로는 계속 이런 태도를 유지했었대. 보통 아이 교육은 부인이 담당하다 보니 고용주한테 굳이 잘 보일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
정화씨의 말을 들으니 유모님의 행동이 모두 이해가 됐다.
“그럼 제가 빨리 수습하길 잘했네요.”
“응. 그런 쪽으로는 우리가 좀 조심해줘야 할 것 같아.”
“쓰읍, 그래도 집인데 남 신경 쓰면서 밤일을 하고 싶진 않거든요. 어떻게 하죠?”
앞으로 섹스할 때마다 계속 신경을 써야 하는 걸까?
“그럼 해고라도 하려고? 그럼 밤에 쌍둥이들을 누가 돌보는데?”
“해고라뇨! 절대 그럴 일 없어요.”
잠깐 상상했는데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근데 이번 일은 결국 네가 문을 열어두고 섹스를 해서 그런 거 아니니? 문 단속을 잘하면 되는 거잖아.”
“…!!”
그러고 보니 문을 닫은 채로 섹스를 했을 때는 이런 일을 만든 적이 없었다!
“그러네요? 제가 왜 그걸 생각 못했을까요.”
“한 가지에 너무 매몰 된 거지.”
“바보도 아니고….”
“후후후! 귀여워라. 실한테는 내가 적당히 말을 해놓을게. 실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말이야.”
“네. 부탁드릴게요.”
어쩐지 힘이 쭉 빠진다.
그래도 고민이 해결 되었으니 힘을 내기로 했다.
‘역시 고민 상담은 정화씨만한 사람이 없네.’
정화씨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는가.
나는 정화씨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힐링을 했다.
고민이 끝났으니 성난 아랫도리 녀석을 달래주는 게 맞지 않겠는가?
“방금 전에 조심한다고 했으면서!”
가슴을 향해 달려드는 내 등을 정화씨가 찰싹 치면서 혼냈다.
하지만 눈앞에 이런 요망한 살덩이를 두고 어떻게 참는단 말인가?
“문 닫았으니까 됐잖아요. 빨리 이리와 봐요.”
“아이, 참! 나갔다 와서 씻지도 못했는데….”
말은 그렇게 해도 정화씨의 두 팔은 나를 향해 벌린 상태였다.
은은하게 풍기는 살내음이 오히려 내 성감을 돋웠다.
약속시간이 2시에 있으니 아직 1시간이 남은 상태였다.
쌍둥이는 유모님이 돌봐주시고 계신 상황.
이보다 완벽한 타이밍이 없었고, 남은 1시간을 알차게 보내야했기에 시원하게 정화씨의 바지를 벗겨버렸다.
앙큼하게도 살짝 엉덩이를 들어주는 그녀의 센스에 속으로 박수를 보내며 침대는 순식간에 열기에 휩싸였다.
♧ ♧ ♧
정화씨와 후끈한 시간을 보내고 난 이후.
나는 연화정 감독님을 만나러 이동했다.
감독님을 만나러 가는 이유는 변경 된 시나리오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나를 만나서 액션을 하는 것을 영감을 받아 변경 된 각본.
내게 꼭 가장 먼저 확인을 받고 싶다는 감독님의 요청이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어~ 어서와요.”
“잘 지내셨어요?”
연화정 감독은 예전에 체육관에서 오디션을 봤을 때보다 훨씬 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은 들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이 내겐 꽤 익숙한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이 양반도 나처럼 며칠 밤새면서 고생했나본데.’
아이템 부작용으로 며칠 동안 작곡실에서 나오지 못했을 때.
피곤에 절여 있으면서도 머릿속을 뜨겁게 하던 영감에 휘둘리고 있었던 그때의 눈빛을 감독님이 하고 있었다.
그 눈빛을 보려니 각본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갔다.
연화정 감독이 쌓아 올린 명성이 거짓이 아니라면….
‘진짜 대박나는 거 아니야?’
연화정 감독은 거장이라고 표현이 될 만큼 대단한 감독이다.
그런 감독이 열정으로 불 타면서 각본을 수정했다.
그 결과가 얼마나 대단할지.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네. 잘 지냈죠. 감독님은 많이 피곤해보이시네요.”
“각본 수정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정신 차린 지 얼마 안 됐습니다. 내가 만든 각본을 보는데, 나만 미치게 좋은가 의문이 들어서 불렀습니다. 해솔씨가 연기해야 할 각본이니 미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고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각본을 어떻게 고치셨을지 너무 기대 되네요.”
“이걸 읽으면 아마 많이 당황스러울 겁니다. 액션 요구도가 많이 높아진데다가 높은 연기력도 요구하는 장면이 생겼으니까요.”
감독님은 내게 연기 부분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 상태였다.
실제로 날 캐스팅 할 때 연기력은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감독님의 말은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당황스럽지 않아요. 오히려 호승심이 생길 것 같네요.”
“호승심이요?”
“감독님께선 액션 하나만으로도 제가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거든요. 감독님이 제 연기도 액션만큼 기대해주셨으면 합니다.”
“연기까지요?”
연화정 감독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현장에서 저런 눈빛으로 촬영장을 휘젓는다면 다들 찍소리도 못하고 말을 들을 게 분명하다.
‘카리스마가 있으시네.’
감독님은 내 말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난 그동안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해왔어요. 날 만족시키려면 쉽지가 않을 겁니다. 강도 높은 액션을 요구할 예정이라 연기 부분은 만족스럽지 않아도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날 이렇게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려고 이러나요?”
“만족시켜드리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감독님 눈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가르쳐주세요. 감독님이 만족할 만한 연기로 보답하겠습니다.”
연기와 액션 두 가지를 모두 완벽하게 감독님의 기준에 부합했을 때.
얼마나 대단한 영화가 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물론 그러기 전에 각본부터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촬영 일정이 뒤로 밀려서 좋은 점이 또 하나 생겼군요. 해솔씨가 연기에 대해 욕심을 부려준다면 저도 협조해야죠.”
바쁜 스케줄을 치르면서 감독이 바라는 연기와 액션 연습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나는 해낼 자신이 있었다.
“앞으로 제가 숙제를 내면, 그걸 해솔씨가 하는 겁니다. 스케줄이 바빠서 못했다는 건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중간에 그만 둘 거면 지금 말해요. 나는 해솔씨가 보여줄 액션으로도 충분합니다.”
연화정 감독님은 깐깐하게 날 평가할 것이라며 계속해서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그건 감독님이 나에 대해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죠. 숙제 내주세요.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하하!! 내가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을 뽑은 것 같네요. 욕심내줘서 고마워요. 그러지 않았어도 충분했겠지만, 작품에 욕심을 내주니까 몸이 달아오르네요.”
실제로 감독님은 흥분했는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남들은 너무 실험적인 영화라고 망할 거라고 하는데, 우리 꼭 보란 듯이 성공시켜봅시다!!”
영화에 대한 의지로 가득 찬 감독님의 모습은 나도 덩달아 감화 되어 영화 촬영에 대한 의지를 다지게 만들었다.
완성도 높은 액션 영화를 만들어내서 성공한다면 영화계의 판도가 바뀌게 될 것이다.
남자들이 로맨스에만 나오는 일이 사라지고 액션에 도전하는 배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 세계에서 적응하며 아쉬웠던 이유 중에 하나가 남자 주인공의 액션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거였는데, 맨 액션의 시작을 내가 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아니, 오히려 좋은데?’
연화정 감독님의 영화라면 영화계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대단할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장르가 있는데 아무도 그걸 만드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발품을 파는 게 맞는 거다.
“연기는 연기고. 일단 오늘 여기 온 목적부터 해결합시다. 자, 이게 이번에 새로 수정한 각본이에요. 여기서 읽어봐도 좋아요.”
“그럼 잠시 집중 좀 하겠습니다.”
연화정 감독은 편하게 읽으라며 자신도 할 일이 있음을 확신시켜주었다.
아무래도 지금 감독님이 하는 작업은 콘티 작업으로 보였다.
‘그림을 잘 그리시진 않네.’
한 눈을 파는 것도 잠시.
나는 감독님이 건네준 각본을 집중해서 읽어나갔다.
‘재밌다.’
각본을 다 읽고 든 생각은 재밌다였다.
기껏 이렇게 출연하겠다고 얘기를 다 해놨는데, 정작 각본의 재미가 떨어진다면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역시 명불허전이라고, 연화정 감독님의 수정 각본은 내 걱정을 깔끔하게 끝내버렸다.
‘아무래도 액션 대본이다 보니 밋밋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쓸데없이 스토리를 복잡하게 꼬지 않았어. 그렇다고 스토리가 너무 뜬금없지도 않고.’
스토리에 무리수가 없다.
액션을 무겁게 할 예정일 텐데, 스토리까지 무거웠다면 관객들이 지쳤을 터.
더불어 감독님이 요구할 연기도 어느 수준을 바라는 건지 이해가 됐다.
나는 감정을 토해내는 부분을 다시 한 번 정독했다.
어떻게 연기를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으려니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네요.”
“네?”
“방금 그 표정 말입니다. 아주 좋아요. 너무 얼굴이 잘 생겨서 감정 연기할 때 주목이 안 될 것 같아서 걱정을 좀 했는데,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평소에도 표정 연기 연습을 합니까?”
“아무래도 아이돌 활동을 하다보면 다양한 감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서 연기 수업을 꾸준히 받았습니다.”
“음, 좋네요. 아무래도 제가 해솔씨한테 사과를 해야겠어요. 미안합니다. 제대로 평가해보지도 않고 편견으로 대했네요.”
아이돌이니 연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게 아마 감독님의 편견이었을 것이다.
“요즘 아이돌들도 연기 잘 하시는 분들이 많죠. 그래도 감독님 마음에 찰 정도는 아닐 테니 노력하겠습니다.”
감독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연기 재능도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이번에 연화정 감독님의 영화에 출연하는 건 여러모로 나에게 큰 이득을 주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감독님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내 사정을 봐주시기까지 했으니까.’
출연을 확정 받기 전.
연주 누님이 직접 감독님과 자리를 만들어서 내 사정을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도 나를 캐스팅 하고 싶은지 물었고, 감독님은 내가 은퇴만 하지 않으면 된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화정 감독에게 소속 배우의 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바라는 연기와 액션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그래서 만족할 수 있는 촬영분이 나오고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논란도 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실제로 논란이 있었던 배우가 연화정 감독님의 영화에 출연해서 성공적으로 복귀하는 적이 있었으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