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36화 (536/849)

내가 연화정 감독님 주인공이지 캐스팅에 관여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다.

너무 황당해서 나한테 그런 권한이 없다고 하니 선배 배우가 그럼 주인공에 캐스팅 된 건 어떻게 한 거냐고 질문을 해왔다.

‘어떻게 되긴! 정정당당하게 오디션 보고 합격해서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거지!!’

전화를 끊고 비앙카에게 연락을 해서 사정을 알아보니 참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쪽 업계에 내가 연화정 감독님의 작품에 캐스팅 된 게 불법적인 청탁으로 얻어낸 결과였다는 소문이 난 것이다.

이건 감독님과 나 두 사람을 모두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연화정 감독은 다른 사람이 다 말리는 실험적인 액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투자자 쪽에서 꽂아 준 나를 주인공으로 캐스팅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런 비하인드가 있지 않고서야 남자 아이돌이 뜬금없이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이유가 설명이 되냐는 거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사실인 것 마냥 함부로 떠들어대지….’

준이처럼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가지 않은 부작용이었다.

내가 실력으로 연화정 감독님 작품의 주인공을 따냈을 거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해주는 사람은 내 지인들 뿐이었다.

‘내가 연기 쪽으로 쌓아 놓은 게 너무 없어서 생긴 일이긴 한데…. 사람들 생각이 너무 꼬였어.’

이런 편견은 깨부셔 줘야 하는 법.

‘열 받긴 한데, 아직 보여준 게 없으니까 어쩔 수 없어.’

영화를 찍어서 결과물을 보게 되면 아마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입이 쏙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영화를 찍으려면 한 세월이 남았고, 지금은 이곳저곳에서 시달려야 했다.

더욱이 나만 이런 꼴을 당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연화정 감독님도 나름 이곳저곳에서 시달리고 있지 않겠는가?

가령 투자자 같은 쪽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부분은 연화정 감독님이 알아서 잘 막고 계신지 딱히 문제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 내 위치에서 말도 안 되는 기회를 얻은 게 맞아. 그래도 이런 건 너무 무례한 행동 아닌가?’

배우라면 꼭 한 번쯤은 연화정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해보고 싶어 하고, 그녀와 인맥을 만들 수 있다면 당장 버선발로 뛰어 올 사람들이 많다는 건 잘 알겠다.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전화가 끊겼다.

번호를 차단할까 하다가 안 받았으니 더 이상 오진 않겠지 싶어 그냥 신경을 끄기로 했다.

“형도 피곤하겠다. 감독님한테는 연락 안 해본 거야?”

“감독님한테 이런 불쾌한 얘기를 왜 해? 감독님도 힘드실 텐데. 이 정도는 내가 알아서 처리해야지.”

감독님과는 지금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숙제만 내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감독님은 영화가 진행 되고 있는 과정까지 내게 말해줬다.

현장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를 배려해서 알려주는 것이 분명했다.

작품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바쁘실 텐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 건 특혜를 받는 거나 다름없었다.

“오늘도 감독님한테 연락 할 거야?”

“응. 숙제 받아서 제출해야지.”

“감독님이 이번에는 어떤 숙제를 줬어?”

내 캐스팅 소식을 듣고 많이 부러워하던 준이는 요즘 내가 감독님으로부터 연기 지도를 받고 있는 걸 들은 후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내가 어떤 숙제를 받는지, 어떻게 숙제를 수행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어떤 평가를 받는 지까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모두 알고 싶어 했고 그게 준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기에 흔쾌히 공유해주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주인공 의상에 관련 된 거야.”

“캐릭터 구상이구나.”

“응.”

“근데 의상까지 형이 신경 써야 해?”

“생각을 아예 안 해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건 그렇지.”

감독님은 내가 연기 초보자인 것처럼 하나하나 세심하게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감독님은 가르쳐주시기보단 내가 생각한 의견을 듣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거야.”

“의견을 주고 받는다…되게 멋지다. 선배님들이 현장에서 감독님이랑 막 장면 상의하면서 찍는 거 본 적 있거든. 나도 그런 거 꼭 해보고 싶었어.”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지금은 단역 위주로 들어가서 연기하고 있지만, 준이의 연기 실력이라면 충분히 주연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에어플레인이 잘 되고 있기도 하니, 화제성만으로도 준이는 매력적인 연기자였다.

“감독님이 나한테 내준 숙제라서 너한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가능하다면 너도 나랑 같이 해보는 건 어때?”

“해보라고? 뭐, 뭐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눈치다.

“감독님이 내준 숙제 말이야. 네가 개인적으로 적어보는 건 문제 없잖아. 감독님한테 보여드리는 것도 아닌데.”

“내, 내가 혼자서?”

“응. 감독님한테 전달하는 것까지는 못하겠지만, 우리끼리는 충분히 해볼 수 있는 거 아니야? 너랑 캐릭터 연구를 같이 하면 여러 가지 의견을 들을 수 있으니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나한테 마냥 손해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연기에 나보다 더 진진하게 임하고 있는 준이니 도움이 되는 의견들을 많이 줄 것이다.

“…….”

“부담스러워 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너 계속 내가 무슨 숙제 하는지 말해줘서 알고 있었잖아. 네가 뭔가 말해주면 나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도와달라는 의미로 한 말이기도 해.”

“그렇게까지 말하면 내가 안 할 수가 없겠네. 고마워.”

준이가 삐죽 입술을 내밀며 부끄러워하면서도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짜식! 기특하기는.

준이가 나를 연기 쪽으로 부러워하고 있긴 하지만, 착실하고 단단하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도 봐라.

내가 연화정 감독님의 작품에 캐스팅 된 것으로 어떤 논란이 생겼는지.

하지만 준이처럼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이 캐스팅 됐다면 이 정도의 논란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준이가 걷는 길은 안정적인 길이었고, 그 길이 나에 비하면 느리다고 해서 잘못됐다고 볼 순 없었다.

다만 나는 하이 리스크에 하이 리턴인 상황이었다.

내가 연화정 감독님의 영화에 출연해서 성공한다면 내게 돌아 올 전리품들이 아주 값질 것이다.

‘근데 성공이 어디 쉽겠냐고.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질 때가 됐다는 사람도 있던데.’

연화정 감독님의 영화를 내가 망칠 거라고 말하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에 내가 캐스팅 됐다는 소식에 대단한 일을 해냈다며 좋아하던 팬들도 슬금슬금 우려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기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너무 큰 역할을 맡아서 망하면 어떻게 하냐는 거다.

잘하는 것만 해서 승승장구 해주길 바라기도 했고 말이다.

“네가 지금 준이 신경 써줄 때야? 지금 스케줄이 감당 가능한 거야?”

그때, 경태 형이 현재 내 스케줄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는지 걱정을 드러냈다.

나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준이까지 껴넣으면 어떻게 감당하려는 거냐는 거다.

“내가 언제 힘들어서 쓰러진 적 있어? 나 튼튼한 거 알잖아. 그리고 아직 진짜 바쁜 건 시작도 안 했어.”

준비 과정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 되면 지금의 바쁨은 우스울 정도의 상황이 나올 것이다.

“넌 뭐든 너무 열심히하는 게 문제야. 이 정도 경력을 쌓았으면 애가 좀 요령을 부려도 될 텐데.”

“요령은 무슨. 그런 거 해봤자 본인 손해잖아. 내가 열심히 안 해봐. 지금 나 욕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서 날뛰겠어? 그 꼴은 절대 못 보지.”

곡이 좋아서 그런지 안무가 선생님이 순식간에 안무를 창작해내셨다.

가사도 잘 나왔다.

컴백 스케줄도 거의 다 잡혔다.

멤버들은 다시 빡세게 몸관리에 들어갔고, 나도 영화 출연에 컴백까지 겹쳐서 누구보다 빡세게 몸을 관리하는 중이었다.

물론 이런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몸이 퍼지진 않겠지만, 멤버들이 하는 일을 최대한 함께 따라주는 편이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어떻게 걱정을 안 하냐? 더군다나 얼마 안 남았잖아. 그날이.”

‘그날’이라는 말이 나오자 멤버들의 분위기 텐션이 확 떨어졌다.

“아잇! 형은 왜 그런 소릴 해? 뭐 좋은 일이라고.”

멤버들이 내 사정을 이해해주긴 했어도, 그날에 대한 걱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특히 내 멘탈을 많이 걱정했다.

내가 기자회견을 하고 나면 주변에서 온갖 욕을 쏟아낼 텐데, 그걸 정상적인 멘탈로 버틸 수 있겠냐는 거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서 막연하게 버틸 수 있을 거라 말하긴 했지만 솔직히 겁이 아예 안 날수는 없었다.

“남녀가 만나서 사랑할 수도 있는 거지! 사람들은 연예인 일에 너무 오지랖이 넓어.”

“아이돌이니까 어쩔 수 없지.”

“나는 오히려 속 시원한데? 빨리 그날이 와서 다 밝혔으면 좋겠어.”

정 멘탈이 흔들릴 것 같으면 그때만 아이템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평소 악플에 단단한 멘탈을 유지했던 나이기에 얼마나 흔들릴까 감이 안 잡히긴 하는데….

정말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면 유연한 대처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든든하게 믿을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내 멘탈은 지금까지 단단하게 잘 여며지고 있었다.

기자회견에선 동정심을 줄 수 있는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던데, 사실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당당하게 내 가족을 밝히는 건데, 동정심을 사야 한다고?’

썩 마음에 드는 행동이 아니다.

나는 연주 누님과 멤버들의 조언을 받으면서도 어떤 태도를 보일지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적어도 내가 기자 회견에서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가족을 숨겼던 것에 배신감을 느낄 팬들에게는 정중하게 사과를 할 테지만….

가족의 존재를 부끄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냥 멀게만 느껴지던 기자 회견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일이었고, 그날을 위해 지난 7일간 작곡에 온 힘을 다 쏟은 것이었다.

내가 가진 재능들이 나를 여전히 나로 있을 수 있게 도와줄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 ♧ ♧

기자 회견을 할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두 달 후였다.

그때쯤이면 컴백 준비가 다 끝나서 컴백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컴백을 밝힘과 동시에 기자 회견을 할 것이고, 재계약도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기자 회견을 위해서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우리 에어플레인 전담팀.

그들에게 내 사정을 고백하고 기자 회견을 할 때 도움을 달라고 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보안 때문에 대표님과만 상의를 하고 숨기고 있었어요.”

“하…. 대표님은 알고 계셨다고?”

“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야.”

전담팀에서도 일을 전두지휘하는 팀장들이 존재하고, 나는 그 팀장들을 모아서 내 상황을 고백했다.

연주 누님도 지금이 말하기 딱 적절한 시기라고 했고, 내가 생각해도 지금이 전담팀들이 대비하기 딱 좋은 시기였다.

“그동안 이런 비밀을 숨겨서 죄송합니다.”

“멤버들도 알고 있다는 거지? 이해는 받은 거니?”

“네. 애들이 착해서 오히려 절 걱정해줬어요.”

“그나마 다행이네. 그리고 우리한테 숨긴 건 서운하긴 해도 잘 한 일이긴 해. 비밀은 여러 사람이 알면 비밀이 아니게 되는 거니까.”

팀장님들은 경악하는 것도 잠시였고, 빠르게 상황파악을 해서 대책을 세우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든든함을 느꼈다.

이런 사람들이 나와 함께해주고 있기에 에어플레인이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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