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37화 (537/849)

“근데 어쩌다가 기자회견을 생각한 거야? 누구한테 비밀이 세어나간 거니?”

“아뇨. 제가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아서 기자회견으로 밝히려는 거에요. 누구한테 들켜서 억지로 하는 건 아니에요.”

“아, 네가 하고 싶어서라고…. 끄응, 썩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숨기는 게 능사인 것도 아니고, 언제 들킬지 모르니까 밝히는 게 안 좋다는 건 아니야. 근데 지금 시기가 너한테 너무 중요한 상황이잖아.”

“맞아. 재계약 일도 남아 있고, 곧 컴백도 하게 될 텐데 시기를 좀 더 뒤로 미루는 건 안 되겠니? 이게 알려지면 네가 그동안 쌓아왔던 게 전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어.”

팀장 누나들은 모든 걸 밝힐 생각이라는 것이 우려가 됐는지 말리는 분위기였다.

재계약을 싸인만 남겨두고 있다고 해도, 예민한 시기였기에 뭐든 조심하는 게 좋을 시기였다.

“저도 알죠. 많이 생각해봤어요. 근데 저는 오히려 재계약을 앞둔 상황이라서 더 지금이 맞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제 비밀이 저에 대한 가치에 크게 흠이 가는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재계약을 할 때 밝혀서 제대로 평가를 받아야죠.”

“아니지, 아니지!! 오히려 네 가치가 저평가 되는 거지!”

“맞아. 회사만 유리해지는 거야. 네가 왜 그런 걸 신경 쓰니?”

팀장 누나들은 내 말에 분개하며 이런 건 굳이 그렇게 솔직할 필요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근데 이걸 비밀로 하고 계약을 했다가 나중에 밝혀지면 손해배상? 계약 위반? 뭐 그런 거 아닌가요?”

“…….”

“…….”

내 말에 할 말을 잃은 팀장 누나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 컴백할 곡이 정말 대단하잖아. 이 곡을 내면 지금보다 더 대단한 위치에 설 수 있어. 그런데 괜히 이걸 알렸다가 앨범 반응이 안 좋으면 어떻게 할래? 곡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

“그리고 네가 나이가 좀 차면 연인에 관련 된 것들도 좀 더 너그러워질 거야. 오랫동안 활동 했으니 결혼을 한다고 해도 너그럽게 봐줄 걸?”

팀장 누나들이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는 건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논리 정연한 말들로 나를 홀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귀를 꾹 닫아버린 사람처럼 말했다.

“언제까지 비밀이 지켜질 거라고 보세요? 아이가 곧 학교에 들어갈 거에요. 그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제 비밀에 대해 알게 될 거고, 누군가에 의해 밝혀지게 될 수도 있죠.”

“아…그러네. 아이가 있다고 했지.”

물론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확률은 매우 적다.

내가 아이템으로 그럴 일이 벌어지지 않게 잘 예방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1%라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 이 기회에 털고 가야만 했다.

“저 자신 있어요. 그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이 노래도 제가 노력한 부분 중에 하나에요.”

“…이 곡을 만든데 그런 배경이 있었어?”

“제가 멤버들한테 끼칠 피해를 이렇게라도 무마하고 싶었다고 보시면 되요.”

“어쩐지 애가 곡을 너무 잘 만들어왔더라.”

“하아~ 다들 곡 수준이 확 올라가서 깜짝 놀랐지. 이건 무조건 된다는 걸 곡 듣고 5초 만에 확신했잖아. 이게 분유 버프였을 줄이야.”

분유 버프.

스포츠 선수들이 자녀가 태어났을 때, 분유 값을 벌기 위해 더 열심히 해 기량이 좋아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내 현재 상황과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미묘하게 비슷한 상황이기는 했다.

‘나는 분유 버프라기보단 코인 버프지.’

굳이 아니라고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어깨를 으쓱이며 은연 중 동의한다는 표현을 했다.

“덕분에 실력이 부쩍 늘긴 했어요.”

“네가 회사에 넘겨준 곡들, 엄청 인기 많아. 그거 때문에 이 곡이 나온 거라면, 우리도 하지 말라곤 못하겠네.”

기자회견 하고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만든 곡.

그 곡이 어지간하면 말려보겠는데, 전혀 어지간하지 않은 곡인지라 말리기도 뭐해진 거다.

“우리한테 지금 말한 게 일부러 그런 거구나? 말리지 못하게.”

“내가 봐도 그런 것 같애. 낙장불입 상태야.”

“아니라면 거짓말이죠.”

“어휴, 레이블 차려서 우리 다 데려가 준다기에 이제 정말 좋은 날만 남았구나 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네.”

“그래도 어쩌겠어. 내 새끼가 하고 싶다는데 맞춰줘야지.”

“와! 그럼 도와주시는 거죠?”

“그래야지 뭐 어째!”

“감사합니다.”

“대신 너 애기 사진은 있니? 너 닮았으면 얼마나 예쁠 거야? 좀 보여줘봐.”

아들 자랑이야 얼마든지!

자랑할 곳이 없어서 못한 거지, 자랑해달라고 판을 깔아주는데 안할 수는 없었다.

팀장 누나들이 태양이 사진을 구경하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말했다.

“너는 많이많이 낳아야 해. 그게 애국하는 거야.”

“첫 애가 아들이야? 너 진짜 사기캐다.”

내가 아이를 낳는 건 애국에서 더 나아가서 이 행성을 살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내 기자회견 준비에 우리 전담팀이 합류했다.

우리 전담팀은 개개인이 A&R 업무에 빠삭한 괴물들이었다.

그리고 팀장들은 능력자들을 이끄는 자리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사람들이다.

연주 누님과 함께 상의를 했을 때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깔끔하며, 빠르게 일처리가 진행 됐다.

팀장 누나들에게 사실을 밝히고 며칠 후.

그녀들이 나를 다시 호출했다.

“우리가 여러 번 회의를 했고, 결론을 내렸어. 이번 컴백은 홍보 마케팅 프로모션이 굉장히 중요해. 부정적인 여론을 뒤집으려면 모든 신경을 쏟아 부어야 할 거야.”

“아무래도 그렇죠.”

가뜩이나 자극적인 기사를 내는 걸 좋아하는 기자들에게 판을 깔아주는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그들이 내는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기사에 반박해서 여론을 긍정적으로 바꿔내야만 했다.

“발매 일정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컴백을 한 후에 기자회견을 하는 1번, 기자회견을 한 이후에 컴백을 하는 2번이야.”

“둘 중에 뭐가 더 괜찮다고 해요?”

미래를 확신할 수 없으니 확답을 줄 수 없는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노이즈 마케팅을 하자는 내 제안이 팀원들 입장에서 제법 솔깃한 일이었다며 2번째로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는 것을 알려줬다.

“아무래도 대부분 의견 들어보면 2번째가 맞다고 생각하더라고.”

“역시 그렇죠?”

“응. 그리고 네가 이걸로 노이즈 마케팅을 해보자고 했잖아.”

“네.”

“나는 네가 먼저 그걸로 노이즈 마케팅을 하자고 한 게 너무 신기해. 진짜 이래도 괜찮은 거야? 네 가정사를 이용하는 거잖아.”

“뭐 어때요. 제가 그걸 이용 하지 말자 하면 기사가 좀 덜 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알도록 시끌시끌하게 말하고 다닐 거 아녀요. 그런 기사 나는 거 보고 있기만 할 바에야 챙길 이득은 아득바득 챙기는 게 맞지 않겠어요?”

그쪽은 조회수를 얻어서 좋고, 우리는 컴백 앨범 홍보가 돼서 좋고.

서로 이용해 먹는 관계이니 오기가 생겨서라도 챙겨 먹어야겠다.

“다들 기자 회견이 안 좋은 일이라고 하는데, 이렇게라도 써먹을 수 있으면 안 좋은 일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멘탈 튼튼해? 각오 되어 있어? 뻔뻔하다고 욕을 엄청 쳐 먹을 거야.”

“안전바 꽉 잡고 있는 중이에요. 대표님이 안전바를 든든한 걸로 설치해주셨거든요. 그리고 욕먹을 각오는 이미 오래 전부터 되어 있는 상태고요.”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안전바는 재계약이다.

계약 조건에 내 사정으로 인해 생기는 손해를 전혀 책정하지 않은 것이 나에 대한 믿음의 증거인 것이다.

연주 누님이 사적인 감정을 회사 일에 끌고 오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기에 기자 회견이 내 가치를 크게 손상시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좋아. 그럼 제대로 불 지르자. 그냥 불이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화끈한 불로!”

“화끈한 불…? 뭐 어떻게 하려고요. 그러다 수습이 안 될 정도로 타면 안 되는데.”

“쓰읍, 약한 소리 하는 거야? 방금 전에 버틸 수 있다고 했잖아. 왜 말이 달라져?”

“…알았어요. 말 안 바꿀 게요. 어떻게 할 건데요? 말이라도 좀 들어볼게요.”

불이 너무 크게 번져버리면 끌 수가 없어지니 적절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팀장 누나가 내 뒤통수를 팍 때리는 말을 했다.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 노이즈 마케팅 그거 수습을 꼭 해야 할까? 그냥 막 전부 다 불 태워버리는 건 안 될까?”

“네?”

“요즘은 노이즈 마케팅 한다고 하기는 하는데, 제대로 하는 곳이 없더라. 다들 쫄보라서 그래. 잃을 게 많아서 몸을 사려야 하는데, 홍보는 하고 싶어. 근데 잃는 건 싫거든. 근데 말이야. 그게 과연 노이즈 마케팅이 맞아?”

“…….”

대답할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이 똑똑해져서 어중간한 노이즈 마케팅은 안 하느니만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요?”

“우리 아예 기자회견하는 날 컴백을 알려버리자.”

“!!!”

순간 아찔해졌다.

엄청난 이슈가 될 거다.

더불어 나도 활활 타서 재만 남을 수도 있었다.

“…그건 너무 폭망 같아 보이는데.”

보통 평범한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 정도 논란을 만들었을 때 반성하는 태도를 취하는 게 정상이다.

연주 누님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말했었고 말이다.

그거에 불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팀장 누나가 말한 것처럼 막장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다.

“네 곡이 미쳤잖아. 나도 웬만하면 이런 모험 하자고 안 해. 근데 네가 만든 곡이 좋아도 너무 좋아. 사람들이 이걸 보면? 한 번도 못 들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지 않을까?”

“우리를 섭외하는 곳이 아예 없을 수도 있어요. 원래 방송가가 논란이 생기면 섭외를 딱 끊어버리잖아요.”

“우리가 뭐 언제부터 방송국에 열심히 다니면서 홍보했니? 우리는 콘서트로 벌어먹고 살잖아. 인지도는 그동안 쌓아 온 걸로 충분하고 넘쳐. 오히려 방송국에서 섭외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도 안 나가야 할지도 몰라. 괜히 거기 나갔다가 더러운 꼴을 볼 수 있거든.”

너도 그래서 곡을 만드는데 그렇게 열정적이었던 거 아니야? 라는 팀장 누나의 말에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 컴백일은 언제로 해요?”

“기자회견 바로 다음 날?”

“…부디 제 멘탈을 위해 일주일의 시간을 주실 수 없을까요?”

“화끈하게 가야지!! 너 멘탈 잘 부여잡고 있을 수 있다며!”

“그건 그런데 이렇게까지 화끈할 줄은 몰랐죠.”

불을 피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용암이 좔좔 흐르고 있으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내가 갑자기 어리바리하게 행동 하는 것은 당연한 거였다.

“화끈하게 가자. 다음날이 너무 부담 되면 3일 후 어때?”

“3일 후….”

3일 후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요. 그럼.”

“3일 후면 일정 빠듯하다. 우리는 기자들 단속 들어갈 테니까, 너희는 진짜 기깔나게 컴백 준비해줘.”

“그건 맡겨주세요. 잘 할 자신 있어요.”

우리 팀원이 도와주기 시작하니 벌써 모든 일이 다 해결 된 것처럼 든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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