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 부심은. 형은 나한테 안 된다니까?”
“이 자식! 꼭 연습해서 이겨주마!”
발끈했으니 다시 철권을 하러 갈 줄 알았는데, 경태 형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왜 게임하러 안 가?”
“네가 가만히 있어서. 충분히 하기도 했고.”
“쟤들 보면 충분히 하진 못한 것 같은데.”
애들은 지금도 신나게 게임하는 중이었다.
“아냐. 잘 보면 준이도 흥미 있어서 하는 건 아니야. 그냥 시간 떼우는 거지.”
“흠, 확실히 준이도 조금 지나면 이쪽으로 합류하긴 하겠다.”
그리고 우리의 예상을 깨지 않고 준이는 얼마 후에 우리가 앉아 쉬고 있는 곳으로 합류했다.
역시 게임은 우연이와 은규가 그나마 흥미가 있을 뿐 다른 멤버들에겐 큰 흥미를 주지 못하는 일인가보다.
의외인 것은 제키가 총쏘는 게임에 꽂혀서 그걸 정신없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형들!! 왜 그러고 있어?”
“게임 안해여?”
“충분히 했어.”
“계속 놀아. 우리는 우리대로 잘 놀고 있어.”
“오케이!”
이대로 여기서 계속 앉아 있으면 쟤들도 영향을 줄 것 같아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어디 갈까?”
“연습실 어때?”
“연습실?”
“스탭 한 번만 밟아보려고. 아까 제대로 못 보고 그냥 불만 켜보고 말았잖아.”
카메라로 촬영 중이라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해서 연습실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고, 그게 아쉬웠다.
내일부터 다시 연습을 해야하지만, 연습실을 미리 경험해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다행이 경태 형과 준이가 내 의견을 생각보다 쿨하게 받아줬다.
“그럼 그래볼까?”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회사 구경이 너무 짧긴 했어.”
솔깃해진 우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게임에 빠져 있는 애들에게 말했다.
“우리 A연습실에 가 있을 테니까, 너희들 다 하면 거기로 와.”
“연습실? 연습실은 왜?”
“연습실 한 번 써보려고!”
“뭐야! 그런 게 어딨어?”
“안 돼! 새 연습실인데 같이 써봐야지!”
“우리도 갈래!”
게임에 정신이 팔려 있던 애들이 후다닥 게임기를 던져버리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제키도 어느 순간 총을 내려놓고 우리 옆으로 와 있었다.
“게임 계속 하고 있어도 되는데.”
오랜만에 쉬는 날이다.
사실 곧 내 기자회견이 있는 날이라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로 애들에게 준 휴식이었다.
“시러시러! 같이 갈꼬얌!”
“아…애교는 제발 다른 사람한테 부려줘.”
“으히히. 그러니까 우리 두고 가지 말라고~”
내가 남자 애교를 극혐한다는 걸 알게 되고, 멤버들 사이에서 애교 부리는 게 벌칙 같은 게 됐다.
우리 사이의 밈이자 룰이라고나 할까?
결국 게임하던 애들까지 모두 합류한 채로 우연이의 게임방을 나섰다.
“여기가 바로 A연습실!”
“거울도 깨끗하고, 바닥도 깨끗하고!”
“기스 하나도 안 났네. 너무 미끄러운 건 아니야?”
“한 번 해봐야지.”
“오디오!”
“오디오 이번에 새로 나온 신상으로 좋은 거 샀댔어. 스피커도 그렇고.”
연습실에 들어가자 일단 소파에 들이 눕는 애(경태 형, 남은규)도 있었고, 오디오를 살피는 멤버(제키)도 있었으며,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달구는 (기우연, 강준)도 있었다.
저마다 자기 성향대로 연습실의 한 자락을 차지했다.
“여기가 곧 우리들한테 제일 익숙한 장소가 되겠네.”
애들이 나이가 어리다 보니 얘네들 삶에서 가장 오랫동안 있었던 공간이 어딘지 생각해보면 연습실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부터 연습생으로 연습실에 살았고, 데뷔를 한 이후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연습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
본인이 정말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팍팍한 장소였다.
“매번 비슷한 상황이긴 했는데, 이번에도 잘 되겠지?”
“노래를 들으면 잘 될 수밖에 없지 않아?”
“노래가 개사기이긴 하지. 그런데 항상 곡을 낼 때면 불안감이 좀 있기는 한 것 같아. 이번 앨범을 팬분들이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여태까지 잘 안 된 적이 없으니까. 불안감은 다들 갖고 있을 수밖에 없지.”
“거기다가 이번엔 내 일이 있으니까 더 불안하겠지.”
내 말에 멤버들이 나를 휙 째려봤다.
“그 말이 아니잖아! 멍청아. 우린 매번 컴백 할 때마다 벌벌 떨었다고!”
“맞아! 형 피해망상 있어?”
“정신 차려. 뭐든 다 형 때문이라고 말할 거야?”
멤버들 덕분에 귀가 먹먹했다.
말 한 번 잘 못했다가 큰일 나겠다.
멤버들이 기자회견에 대해 언급 하는 걸 너무 꺼리는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총대를 맨 거였는데 말이다.
“그냥 장난한 거야.”
“진짜 장난인 거 맞아?”
“어. 진심 1%도 안 들어가 있는 장난이었어.”
그렇게 애들을 겨우 달래고서야 화를 풀었다.
“연습하자. 연습! 많이도 말고 딱 한 번이야. 오늘 연습실 맛만 보는 거니까.”
“오케이.”
“코올~”
멤버들이 침울해져 있지 않게 하기 위해 서둘러 연습을 하자며 호들갑을 떨었다.
소파에 누워 있던 경태 형과 은규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대형에 맞춰서 섰다.
그 사이에 제키는 오디오 사용 방법을 다 익혔는지 음악을 뚝딱 재생시켰다.
“노래도 준비 됐어.”
제키까지 대형에 합류하고.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연습이 시작 됐다.
♧ ♧ ♧
“기자들 중에 네 편을 넣어 뒀다.”
“제 편이요?”
“받아먹은 게 있어서라도 너한테 유리한 질문을 해올 거야. 분위기가 너무 과열 되면 사회자가 알아서 그 기자들한테 질문을 넘길 거다. 만약 한계다 싶으면 나한테 신호를 보내.”
“네엡.”
엄숙한 기자회견이 될 것이기에 오늘 착장은 검은색 정장이었다.
“저 괜찮아요?”
“그래. 수수하게 잘 입었네.”
오늘을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했는가?
옷도 그렇고 대사도 그렇고.
각종 연습을 머릿속으로 거듭해서 그런지 정작 당일이 되니 별로 긴장도 안 됐다.
“긴장은? 청심환이라도 먹고 들어갈래?”
“그다지 긴장이 안 되네요. 오랫동안 기다리던 순간이라서 그런가봐요.”
연주 누님이 연신 나를 걱정했지만, 그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아무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빨리 기자회견을 시작하고 싶어서 시계를 수시로 확인하고 있었다.
연주 누님은 그런 내 모습이 초조해서 그런 거라 오해를 했는지 내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응원하마.”
“고마워요. 누님이 옆에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그녀가 허니 엔터의 대표로 기자회견에 함께 자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반대를 했었다.
굳이 누님이 옆에서 기자들의 각종 질문 포화를 견딜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누님은 나를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 남자를 지키는 건 당연한 거다. 생각 같아서는 아예 나 혼자만 나가고 싶은 걸 참고 있는 중이야.”
“제가 당사자인데 얼굴을 안 내밀 순 없죠.”
띠링- 띠링- 띠링- 띠링-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나는 불 난 듯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들어 올려서 연주 누님에게 말했다.
“이렇게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든든하기도 하고요.”
핸드폰이 계속 울리는 이유는 내가 오늘 어떤 걸 터트리는지 아는 사람들로부터 온 응원의 연락들이었다.
밥도 든든하게 챙겨 먹고 왔고, 응원도 배가 꽉 찰 정도로 먹었으니 이제 남은 건 이걸 제대로 소화하는 것이었다.
“바깥은 상황이 좀 어때요?”
“기자들은 많이 왔는데 뭐 때문에 하는 기자회견인지 전혀 모르니까 답답해하던 걸? 어떤 사람은 컴백 홍보 때문에 쓸데없는 기자회견을 하는 거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용케 다들 참석은 했네요. 이유를 설명 안 해줘서 불참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에어플레인의 첫 기자회견인데 안 올 기자가 어딨겠니? 안 오는 사람은 기자를 할 자격이 없는 거지.”
연주 누님의 말도 일리가 있기는 했다.
특히 오늘 같은 날 핑계를 대로 안 온다?
아마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을까?
허겁지겁 남의 기사를 긁어서 기사를 올리면서 말이다.
“시청자는 얼마나 돼요?”
오늘 내 기자회견은 유티비에서 생방송으로 송출이 될 예정이었다.
“대부분 일반인 보단 너희 팬들이야.”
“하, 이번 일로 제일 미안하고 걱정 되는 사람들이에요.”
앞으로 밀어닥칠 폭풍이 벌써부터 살갗을 쓰리게 하는 것만 같다.
“걱정 하지 마. 결국 네가 바라는 대로 될 테니까. 우리가 계획한 대로 말이야.”
“그럼요. 그렇게 돼야죠.”
이제 시간이 됐다.
나는 넥타이가 삐뚤어지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바깥으로 이동했다.
웅성웅성-
기자회견장 앞에 서니 안에서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안에서 기자들이 어떤 추측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의 폭탄이 퍼부어질 것은 분명했다.
사회자가 시간에 맞춰서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기자들이 떠드는 목소리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기자 회견이 시작 됐다.
“에어플레인 진해솔님과 허니 엔터 대표이신 조연주 대표님을 모시겠습니다.”
♧ ♧ ♧
뜬금없이 기자들 사이에서 전달 된 에어플레인 진해솔의 기자회견.
“얘한테 뭔일 있었대? 너 뭐 아는 소식 없냐?”
“없는데. 나도 수소문 해볼게.”
아무 일도 없이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나설 리 없는 지라 기자들은 주변 인맥을 총 동원해서 소문을 모으기 시작했다.
“소문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다들 뜬 소문 뿐이야.”
“대박 물었다는 기자는 없던데.”
“도대체 뭐지??”
기자들은 아무리 수소문을 해봐도 딱히 걸리는 게 없다.
있어봤자 이미 데뷔하고 내내 있어왔던 그저 그런 소문들 뿐.
진해솔이 숨겨 둔 여자가 여럿이라더라.
애가 열 명이 넘는다더라.
밤일을 굉장히 잘해서 여자랑 한 번 자면 안 넘어가는 사람이 없다더라.
게이라더라.
고자라더라.
삼각관계인데 칼부림까지 갔다더라.
“다 예전부터 있었던 소문들이야.”
“뭐지?? 그냥 컴백 때문에 이슈 만들려는 거 아니야?”
“그건가?? 그럼 컴백 기사를 미리 준비해둬야 하나?”
“아니면 레이블 독립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이번에 그걸로 허니 엔터 주가가 쭉 내려갔었잖아.”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그럼 진해솔이 설명 안 되잖아.”
“그러네?”
기자들은 오리무중이 된 기자 회견이 찜찜했지만, 참석을 안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려 에어플레인 아닌가?
참석하라고 초대를 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했다.
뭐가 됐든 기사거리가 되긴 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참석 한 기자회견장.
생각보다 기자 회견장에 온 기자들의 숫자가 많았다.
“뭐야? 이 규모. 장난 아닌데? 저쪽에 해외 기자들도 와 있잖아.”
“이 정도면 뭔가 있는 게 맞긴 한 것 같은데….”
“저치들은 뭔가 아는 게 있으려나?”
미처 준비를 제대로 해오지 않은 기자들은 후회를.
제대로 준비를 해온 기자들은 단단히 각오를 하며 카메라 세팅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 된 기자회견.
진해솔과 허니엔터 대표가 함께 입장을 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진해솔을 본 기자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실물 진짜 대박이긴 해.’
‘같은 사람 맞냐. 혼자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네.’
‘찍을 맛이 나는구만!’
입장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분주하게 사진을 찍어댔다.
진해솔을 찍은 사진은 올리기만 해도 기본적으로 조회수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고놈 참 잘 생겼네.’
‘그림의 떡이긴 한데, 도대체 누구한테 장가갈지 모르겠지만 그 여자 참 부럽네. 부러워.’
기자들의 셔터음이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자 어쩔수 없이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어서 기자들을 만류했다.
셔터음이 잦아들자 드디어 본격적으로 기자 회견을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