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고 싶은 거 있어!”
아이디어를 모아보자고 하니, 제일 먼저 손을 든 사람은 남은규였다.
그리고 남은규를 시작으로 멤버들마다 팬들을 위해 뭘 하고 싶은지 의견이 나왔다.
순식간에 많은 아이디어가 모아졌다.
그걸 보고 있으니 평소에 나 빼고 다들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걸 생각해두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하고 싶은 거 엄청 많네.”
“이제 우리가 하고 싶은 거 해도 되는 거 아니야? 회사에다가는 말을 못했거든.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거니까.”
팬이 아이돌에게 선물을 주는 것을 조공이라고 하고, 아이돌들이 팬들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을 역조공이라고 한다.
허니 엔터라고 역조공에 인색하게 했던 건 아니지만 우리 돈과 회사 돈이 함께 들어가는 것이다 보니 하고 싶은 걸 전부 다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대표 형 의견도 들어봐야지.”
“대표 형 불러어~!”
내가 이번에 추천을 받은 사람을 대표로 삼는데 있어서 멤버들의 동의를 안 받아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예비 대표 후보와 멤버들을 불러 모아서 상견례를 했고, 그곳에서 대표는 털털하고 과감 없는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친근함을 주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그가 우리의 의견을 매우 진지하고 성의 있게 들어주었다는 점이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 회사 대표로 삼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그 대표의 성별도 호감을 갖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됐다.
‘나 말고.’
남자의 사회생활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지금.
능력 있는 남자 대표는 더더욱 구하기 힘들었다.
연주 누님과 만나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죄인인 것처럼 기를 못 펴던 애들이 레이블 대표는 형이라고 부르면서 제법 친근하게 대했다.
애들이 급 흥이 나서는 기어코 대표에게 찾아갔다.
회의실에서 우르르 빠져나와 대표실로 가서 문을 두드리니 일을 하고 있던 대표 형이 우리를 환영해줬다.
“형!! 우리 왔어요!”
“그래. 어서와. 우르르 몰려올 애들은 너희밖에 없지.”
대표는 겉으로 봤을 때 미소년과다.
167cm의 키에 마른 체형, 뽀얀 피부와 땡글땡글한 강아지 형의 눈이 절로 미소년이라는 느낌을 줬다.
특히 목소리가 미성이라서 나이만 어렸다면 아이돌을 목표로 했어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살았을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올해 47살.
우리들에게 형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올바른 호칭은 형님이 아닐까 싶다.
“일하고 계셨어요?”
“응. 당연하지. 이번에 직원들 새로 뽑아야 하잖아. 인사팀이 아직 정비가 제대로 안 돼서 신경 쓸 게 많네. 너희들 곧 컴백하니까 인력을 마구 뽑아다가 막는 것도 못하고 말이야.”
레이블이 세워지긴 했어도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부족.
에어플레인을 전담하던 팀이 한 회사의 구성원이 되었다보니 이곳저곳에서 빈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형이 데려 온다는 사람들은요?”
그런 점에서 대표 형이 레이블에 들어오기 전, 몇몇의 직원들을 스카웃해서 들어온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매니지먼트 팀이라 이번 활동 때 너희들 가까이에서 많이 도와줄 거야. 정식으로 출근하면 소개시켜줄게.”
“오호~ 네엡.”
“그래서 너희들이 이렇게 우르르 몰려 온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내 근황은 다 얘기했으니까 이제 너희들 얘기 해봐.”
대표 형의 말에 우리는 잊고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 맞다. 깜빡 하고 있었어요.”
“이번에 팬분들이 형도 그렇고 우리도 응원을 많이 해주고 계시잖아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겠다 싶어서요!”
“역조공 하고 싶어요! 역조공!”
애들이 중구난방으로 말을 하니 대표 형이 정신이 없었는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애들에게 내가 말하겠다고 손으로 표현을 하고 나서 말했다.
“애들이 너무 중구난방으로 말했는데, 팬분들한테 역조공을 하고 싶어요. 감사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요. 마침 곧 활동도 시작하니까, 이슈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고요.”
아무리 좋게 끝났다고 해도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있는 이상 마냥 긍정적으로만 생각할 순 없었다.
알게 모르게 이번 일로 나에 대한 편견을 갖거나 실망을 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비율을 따지자면 아무래도 후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후자의 사람들은 그저 나에 대한 관심을 끊는 것으로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긍정적인 화제를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고 팬들한테도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뭘 어떻게 하려는 건데? 너희들 기세를 보니까 엄청 크게 하고 싶어 하는 눈치인데?”
“막 엄청 큰 건 아니에요. 근데 취지도 괜찮고, 팬분들도 좋아할 것 같고, 의미도 있을 것 같아서요.”
“말해봐.”
우리끼리 여러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생각을 해보니 지난 활동 동안 안 해본 적이 없는 일들이었다.
그걸 깨닫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더불어 가수가 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 거 없다는 것도 알게 됐고 말이다.
“그래서 그동안 안 해본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그리고 생각해냈죠!”
“지금 상황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도대체 그 방법이 뭔데? 자꾸 말 안 하고 끌래? 뭐 60초 후에 공개합니다야?”
“으하하!”
대표 형의 장난에 애들이 우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해솔이 네가 말해봐. 그래서 애들이 도대체 뭘 생각해온 건데?”
“봉사활동이요.”
“봉사활동?”
“네. 팬들이랑 함께하는 봉사활동이 주된 목적이에요. 봉사활동을 통해 좋은 취지를 알릴 수 있고, 팬분들은 저희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좋겠죠. 거기다가 봉사에 참여해준 팬분들에게 선물을 드릴 생각이에요.”
“얼핏 들어도 일거리가 절로 늘어나는 일이구나.”
우리가 말한 걸 하려면 가뜩이나 바쁜데 더 바빠질 게 뻔하다.
함께 봉사활동 할 팬은 어떻게 정할 거고, 인원은 얼마로 구성할 것이며,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곳은 어디로 할 것인지, 밥은 어떻게 먹고, 멤버들과 봉사활동을 하러 온 팬들의 안전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우리는 하고 싶다고 말하고 끝이지만, 뒤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은 하루 이틀 고생하는 게 아니다 보니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너희가 하고 싶다는 데 어쩌겠어. 해야지.”
“와! 고마워요!”
대표 형은 어쩐지 파리해진 안색으로 미소를 지었다.
일만 저질러 놓고 띵가띵가 놀 생각이 없었으므로 말했다.
“그런데 준비 과정에 저희들이 끼어들어도 될까요?”
“준비 과정에? 그걸 왜 너희들이 하는데. 혹시 직원들을 믿고 맡기기 좀 그래서 그래?”
아직 회사가 안정 되지 않았다보니 우리가 믿고 맡기기 꺼려서 그런 말을 한 줄 안 것 같다.
“아뇨.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을 찍어서 자체 컨텐츠로 올리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그러는 편이 팬 분들한테 의미 있게 다가갈 것 같고요.”
“아~ 기왕 일하는 거 그러는 편이 훨씬 좋긴 하겠네.”
“당첨이 안 된 팬분들도 영상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 그럼 그 부분은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볼게.”
“넵!”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의견 나오면 말해줘. 이건 정말 좋은 의견인 것 같아. 특히 팬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이런 걸 생각해냈다는 게 되게 감동적이야.”
대표 형이 갑자기 감정적이 돼서 눈물을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도 맥주 한 잔에 잔뜩 취해서 눈물을 보이더니, 지금도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형 울어여?!”
“아니야. 그냥 좀 감동을 받아서….”
“저희보단 팬분들한테 진짜 감사한 것 같아요. 이번에 응원을 많이 해주셔서 마음의 위안을 많이 받았어요.”
“응응. 근데 나는 팔이 안으로 굽다보니까 팬분들 보다는 너희들이 너무 대견한 것 같아. 어쩜 이렇게 다들 잘 컸니? 이쪽 업계에서 일하다보면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거든. 너희가 팬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거든.”
성공을 한 이후에도 겸손할 줄 알고,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단다.
“아휴! 대표 형! 술도 안 마셨는데 울면 어떡해요!”
“늙어서 주책이지?”
얼핏 보면 20대인 줄 알 정도로 소년미 가득한 대표 형의 엄살에 우리들이 우우! 하고 야유를 했다.
“아잇! 그러지 마. 나 상처 받아.”
“알았어요! 장난 그만 칠게요.”
저렇게 마음 여린 사람이 비즈니스에 들어가면 철벽처럼 딱 자르는 사람이라는 게 너무 신기하다.
일명 외강내유의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자기 사람에게는 한없이 부드럽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얄짤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면모를 알기에 연주 누님도 대표 형을 말하니 단숨에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한 거다.
“당분간 팬카페가 들썩이겠네.”
컴백 일정에 한 번 들썩이고, 팬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 소식에 한 번 더 들썩이게 될 테지 않은가?
우리 모두 레이블 독립 이후 내는 첫 앨범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앨범이 잘 되어야 앞으로 레이블을 운영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특히 허니 엔터라는 거대하고 안전한 품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났다는 증명이 필요했다.
“근데 너희들 이거 다 하려면 고생 좀 하겠다.”
“넹?”
“가뜩이나 빽빽하게 잡혀 있는 스케줄인데, 봉사활동 하고 그거 준비하는 과정을 찍어야 하잖아. 정말 할 수 있겠어? 나는 너희들이 병원에 실려갈까봐 벌써부터 무서워.”
“에이~ 컴백하고 활동 시작하면 어쩔 수 없는 거죠. 하루 이틀 일 해보는 것도 아닌데요.”
활동기에 새벽이 없다는 듯이 바짝 일하고, 휴식기에는 하리 일이 없어서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는 삶이 바로 스타의 삶 아니겠나?
더욱이 우리는 이번 활동이 끝나면 다시 개인 활동을 할 생각이었기에 빡빡하게 일하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이런 태도가 대표 형은 영 못 미더웠던 모양이다.
“이 정도 스케줄이 어쩔 수 없다고 끝나는 건 아닌 것 같아. 일단 너희가 하겠다고 해서 어떻게든 스케줄을 맞춰서 우겨 넣긴 했는데, 지금도 심하다 싶을 정도거든. 그런데 이렇게 중간에 스케줄이 더 생긴다고? 어휴, 난 요즘 너희들 스케쥴표만 봐도 한숨만 나와.”
“적어도 저희가 쓰러질 일은 없을 거에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너희들 체력 좋은 건 들어서 알고 있긴 한데….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아서.”
“알겠어요! 이제 일 더 안 만들게요! 그럼 되죠?”
대표 형이 보여주는 우리 스케줄표를 새삼 확인하니 욕심만 부려서 빡빡하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스케줄표에 빈공간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 섭외 들어오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시간이기에 비워둔 자리였다.
‘빈자리가 진짜 빈자리인 게 아니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