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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48화 (548/849)

“이건 좀 반칙 아니야? 이렇게 잘 생긴 애가 감독님한테 총애를 받을 만큼 연기도 잘한다고?”

“그만해~ 네가 그럴수록 추잡해지는 건 너라니까?”

“아이씨! 너는 왜 자꾸 말리는데? 원래 안 그랬잖아.”

“하하, 나는 얘가 마음에 들었거든.”

나를 보자마자 툴툴대는 박소원 선배님.

하지만 다행이도 우지용 선배님이 막아주셔서 딱히 불쾌할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박소원 선배님이 시비를 걸어봤자 정말 심각하게 삐뚠 태도를 보인 것도 아니었다.

“얘가 마음에 들어서 너한테 좋을 게 뭐가 있는데?”

“요즘 20대 남자 배우가 누가 있냐? 인재가 없잖아. 인재가.”

영화계 쪽에서 나오는 남자 주연 배우들이 어느새 고인물화 되었다는 점은 영화계의 오랜 골치였다.

전체적으로 남성의 숫자가 줄어들다보니 제대로 된 배우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니 잘났다, 새꺄.”

박소원이 결국 항복을 해온다.

“난 너무 잘난 놈이 싫어. 그리고 내가 보기엔 딱 네가 그런 스타일로 보이거든.”

“음, 계속 듣다 보니까 자꾸 칭찬으로 들리네요.”

“칭찬 맞아, 이 새꺄. 그걸 이제 알면 어떡하냐?”

다소 거칠게 욕을 달고 사는 박소원 선배님.

비주얼 담당이라서 꾸미고 와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박소원 선배님은 우지용 선배님처럼 미남 계열의 배우는 아니었다.

넙대대한 얼굴에 썩 좋지 못한 피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캐스팅하고 싶어 하는 감독들이 줄을 섰다.

워낙 스펙트럼이 넓은 연기력 덕분이다.

뭐를 시켜도 그 역할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형사, 깡패, 군인, 국회의원, 요리사 등등.

아마 그가 안 해본 직업의 캐릭터가 없을 것이다.

“이원이 너는 왜 말이 없어.”

“얘는 원래 말 없잖아.”

“그래도 드디어 네 밑으로 온 건데 친하게 지내야지. 우리도 너 들어왔을 때 잘 챙겨줬었던 거 기억 안나?”

“네가 언제 쟤를 잘 챙겨줬냐? 질투 난다고 뭐라고 했지.”

“아니거든? 나 그래도 쟤는 잘 챙겼거든? 무려 감독님을 무릎 꿇게 한 남자잖아. 그 정도면 인정해줘야 돼.”

“아이잇! 그 얘기는 왜 하는데?”

잠잠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감독님이 불쑥 끼어들었다.

“너 감독님이 이원이한테 무릎 꿇은 얘기 해줬냐?”

“어….”

이걸 얘기를 들었다고 해야 하나 못 들은 척을 해야 하나.

눈치가 보여서 감독님을 바라보니 우지용 선배님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표정 보니까 말해줬나보네? 그거 감독님 술 취하면 나오는 레퍼토리거든.”

“!!!”

“너 이럴 거야?”

“우리 소개시켜줬다는 건 이미지 지킬 생각 아니라는 뜻이잖아요.”

“아직 촬영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카리스마를 잃으면 안 되는 거지!!”

감독님이 우지용 선배의 말에 울상을 지으면서도 크게 반발을 하지 못한다.

초반에 감독님을 만났을 때, 굉장히 카리스마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지인들 사이에서는 아주 순딩이가 따로 없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감독님을 지켜드릴게. 너도 아무리 우리가 감독님을 편하게 대한다고 해서 너까지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

“아유~! 걱정하지 마. 너희보다 훨씬 착하고 참한 녀석이니까.”

“이원이 예뻐하듯이 쟤도 그렇게 예쁜 거에요?”

“…이원이는 내 최애지. 최애!”

박소원 선배님의 물음에 그동안 조용히 있던 주이원 선배님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아이돌이라고 했죠?”

“네.”

“몸 움직이는 거는 확실히 뛰어나겠네요. 나는 액션을 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평소에 하는 건 헬스밖에 없는데, 그건 액션이랑 사정이 많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뭐야, 이원이 너 감독님 이번 작품 하고 싶었어?”

“까였어요. 제가 알고 보니까 몸치더라고요.”

“이원아, 내가 널 사랑하지만 그 몸놀림은 도저히 안 되겠더라. 미안하다.”

주이원 선배님의 입술이 삐죽 내미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의 표현인 듯하다.

그래도 감정적으로 쌓아두지 않는 걸 보면

“앞으로 계속 액션영화 찍으실 거에요?”

“글쎄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 내가 지금 찍는 걸로 쫄딱 망할 수도 있잖냐.”

“성공하실 거에요. 감독님이 실패할 리 없어요.”

감독님에 대한 주이원 선배님의 믿음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고맙다, 이원아. 역시 너 밖에 없다니까. 다들 안 된다고 했는데 너는 유일하게 진지하게 내 작품을 봐주는구나.”

감독님의 말에 이원 선배님의 두 볼에 혈기가 돈다.

칭찬 받은 게 기쁜 모양이다.

백짓장 피부가 뭔지 알게 할 정도로 흰 피부를 가진 주이원 선배님에게 표정이 생기니 미모가 확 산다.

‘어떻게 연기를 하시려나.’

드라마나 영화를 자주 보지 못한데다가 배우로 활동을 하면서 보는 영화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점이 존재해서 확실하게 알아보려면 그가 출연한 작품을 봐야했다.

하지만 주이원, 박소원, 우지용 선배님들 연기로는 깔 수 없는, 이름 난 배우임은 확실하다.

“그런데, 해솔씨는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연기까지 하려는 거에요?”

“아이돌로 컴백 활동을 한 이후에 휴식기가 있습니다. 그때 연기 쪽으로 활동을 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선배님.”

“…좀 편해지면요.”

아직 편하지 않으니 거리감을 두겠다는 의미였다.

사람의 성격이 여러 가지이니 우지용 선배님처럼 바로 말을 편하게 하진 못하는 분인 것 같았다.

“아이돌로도 굉장히 잘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재능이 많으신 것 같아요. 저는 배우로 연기하지 않았으면 뭐해 먹고 살았을지 모를 정도로 둔재에요. 사실 연기도 감독님이 많이 가르쳐주셔서 겨우 이 정도 실력을 얻을 수 있었던 거고요.”

“그냥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었던 거지. 나는 선무당이었던 거고.”

“저는 여전히 감독님한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해요. 그 작품이 감독님한테는 흑역사일 수도 있겠지만, 제 인생에서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어요.”

“하아~ 이원아.”

“지금 이 자리에서 하면 안 되는 얘기였는데, 저도 모르게 그 얘기가 갑자기 나와서 말해버렸네요. 나중에 다시 자리 만들어서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에이, 괜히 이원이 저 자식 때문에 분위기만 왕창 죽었네. 맛있는 거라도 먹으면서 풀자고요. 자자! 다들 한 잔씩 합시다!”

소원 선배님이 이원 선배님에게 눈을 흘기더니 술잔에 소주를 채웠다.

몸값이 억대인 배우들과 천만 영화를 밥 먹듯이 만들어내는 감독의 모임이라기엔 참 소박한 상차림이었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리 좋은 양주를 먹어도 소주만큼 좋지가 않드라고. 그래서 소주 먹는 거니까, 양주 먹고 싶으면 편하게 시켜도 돼.”

“아닙니다. 저도 소주 좋아합니다. 양주는 그다지 먹어본 적도 없고요.”

각종 모임에서 초대를 해오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모임에 나가기보다는 내 여자들과 보내는데 시간을 쓴 덕분에 양주를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굳이 찾아서 먹을 만큼 양주가 맛있는지도 모르겠고.

소주가 아니라면 차라리 맥주 그도 아니라면 와인이 나았다.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아까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이야~ 너 술 잘 먹는다. 좋아좋아. 요즘 애들은 영 매가리가 없어서 한 병도 못 먹던데 말이야.”

“더 마실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선배님.”

“야야. 우리 해솔이 술 너무 먹이지 마. 지금 활동 중이라 엄청 피곤할 거라고.”

“에이~ 감독님! 우리가 뭐 얼마나 먹였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서운하게. 그리고 진해솔! 선배님이 뭐야? 형이라고 불러!”

술이 들어가고 가장 큰 변화가 생긴 건 박소원 선배님이었다.

선배님은 언제 나한테 틱틱댔냐는 듯이 나를 옆에 끼고 열심히 술을 먹였다.

나야 몸이 좋아서 술이 잘 안 취하는데다가 이런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셔본 경험이 있는지라 어색하지 않게 분위기를 맞출 수 있었다.

“언제는 또 싫다면서 금방 말 바꾸는 것 좀 봐. 이러는데 애가 줏대가 없다니까, 줏대가. 해솔아 나도 형이라고 불러라.”

“넌 왜 끼어들어! 내가 먼저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형이라고 부르는 거에도 순서를 따져야 되냐? 참 애가 한결 같이 속이 좁다니까.”

박소원 선배 아니, 소원 형님과 이원 형님이 투닥거리면서 싸워댄다.

가운데에서 감독님은 싸움을 말리기도 하고, 부추기기도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세 사람 사이에 끼어서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데, 이원 선배님이 나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세 사람은 숨만 쉬어도 저러고 노니까, 조용히 빠져나와요. 그게 좀 더 편할 겁니다. 쉽게 안 끝나거든요. 세 사람이 술 취하면.”

놀랍게도 세 사람 모두 술에 취하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버릇이라고 한다.

지금은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취하기 시작하면 각자 자기 얘기만 계속 반복한단다.

나는 그 설명을 듣고 여기서 빨리 벗어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원 선배님이 빠져나올 수 있게 손을 내밀어줬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고 말이다.

나는 냉큼 자리를 옮겼다.

다행이 셋이서 정신없이 얘기를 나누느라 내가 자리를 비우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의외로 잘 맞춰줘서 내가 괜한 참견을 부렸나 걱정했어요.”

“아닙니다. 세분이서 하는 얘기에 끼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같이 한 세월이 오래라서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에요. 나도 적응하는데 꽤 걸렸어요. 다들 성격이 제멋대로라서.”

세 사람 중 첫 인상이 가장 까칠하고 대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보였던 주이원 선배님.

하지만 정작 술자리가 시작되니 나를 챙기는 사람은 그였다.

정신없는 세 사람 사이에서 벗어나니 정신이 좀 되돌아오는 것 같아서 그와 술을 나눠 마시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그가 주로 질문하는 것들은 아이돌 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아이돌 힘들지 않아요?”

“힘들죠. 그런데 어떤 일을 하든 힘든 부분은 항상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적어도 이 일은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잖아요. 내가 노력하면. 그래서 불만이 생기진 않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연예인 활동은 내가 회사원으로 일했을 때보다 훨씬 아니, 몇 배 이상 좋았다.

일단 내가 열심히 일하면 버는 돈의 단위가 장난 아니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힘들든 보상이 됐다.

“그런데 어쩌다가 배우 일을 시작하게 된 거에요? 소속사에서 시켰어요?”

“네.”

“연기도 소속사에서 가르쳐줬나요?”

“네.”

내가 누구에게 배웠는지 말해주니 주이원 선배님이 깜짝 놀란다.

“그럼 연기는 제대로 배웠겠네요.”

“감독님 도움을 받아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습니다. 아, 선배님. 잔 비워져 있는데 채울까요?”

“괜찮아요. 내가 알아서 마실게요.”

“넵.”

“…내가 좀 까탈스럽죠?”

“아닙니다. 취향인 거죠.”

“그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해솔씨한테 거리감 보여서 불편하죠?”

“모든 사람들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다 잘 맞으면 좋겠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요.”

주이원 선배님이 본인의 잔에 술을 채우고 마셨다.

술이 쓴지 살짝 찌푸려진 미간이 제법 멋스러웠다.

남자도 남자에게 멋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법.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랬다.

“저는 아직 해솔씨를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지가 않아요. 그래서 선배님이라고 불리는 것도 좀 거북하고요.”

“…….”

“앞으로 이 모임에서 함께 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 볼 생각입니다. 제가 재수 없어서 화가 난다면 영화 꼭 성공시키세요. 그럼 제가 뭐라 해도 할 말이 생길 테니까요.”

아직 내가 제대로 된 연기를 해본 적 없으니 후배로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단호함.

까탈스러운 조건이었고, 저 조건에 내가 왜 맞춰야 하나 고민도 살짝 들었지만 그냥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 정도 까칠함은 이 바닥에서 양반이니까.’

더군다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영화를 성공시키라는 거면 굳이 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조건이 달성 될 것이다.

‘애초에 영화를 실패하게 둘 생각 없었으니까.’

촬영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그도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좀 웃기죠? 내 인정을 왜 받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아닙니다. 선배님의 후배가 될 수 있는 자격이 필요하다면 해내야죠. 더군다나 그게 영화 성공이라면 달성 불가능한 일인 것도 아니고요.”

“…이번 감독님 영화를 성공시킬 생각이 있나보네요.”

“예. 감독님이 도전하신 맨액션을 유행시킬 정도로 성공시킬 생각입니다.”

주이원 선배님이 내 자신감에 찬 말에 놀란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도 감독님한테 이런 자신감을 보였으면 좀 달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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