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이 아직 시작 되지 않았음에도 투자자들이 간간히 불만을 표해오는 것이 슬슬 익숙해질 정도가 되었을 무렵.
연화정 감독은 진해솔의 컴백 활동을 유심히 살피는 중이었다.
‘잘 나가는 건 축하해야 할 일이긴 한데….’
문제가 생겼다.
잘 나가도 너무 잘 나가고 있었다.
그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넘어서, 영화를 찍는 게 진해솔로 하여금 손해가 될 정도가 된 것이다.
“저러다가 안 찍겠다고 하진 않겠지?”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러면 평생 이쪽으로는 얼씬도 못하게 될 텐데.”
연화정 감독이 영화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절대 해선 안 되는 선택이다.
“돈을 쓸어 담고 있다잖냐. 이번 앨범 성공으로!”
“에어플레인은 원래 예전부터 잘 나갔어요. 새삼스러울 것도 아닐 겁니다. 그리고 감독님이 그렇게 예뻐하셨는데 배신하면 사람입니까?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말을 받아주던 조감독이라고 해서 연화정 감독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은 에어플레인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해도 문제가 없다 싶을 정도로 그들은 잘 나가고 있었다.
길거리를 나가면 그들의 노래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유티비에는 그들과 관련 된 영상이 올라오면 기본적으로 조회수가 보장이 될 만큼 화제에 오른다.
지금 이곳은 에어플레인으로 들썩인다고 봐도 좋았다.
문제는 국내만 그들의 영향권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무려 빌보드 1위야! 1위!”
“걔네 이미 1위 해본 적 있을 걸요? 그래서 해외 팬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잖아요.”
“하아~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는지 모르겠다. 빨리 활동 끝내고 데려오고 싶은데 말이야.”
곡이 역대급으로 좋다는 평가가 많았고, 단순히 팬들 사이에서만 화제가 된 게 아니라 일반인들도 곡이 좋다며 듣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반인들이 곡이 좋아서 듣는다는 건 정말 의미가 크다.
아무리 아이돌 팬들의 규모가 크다고 해도 순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노력이 큰 반면에 대중들의 픽이 된다면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순위 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우리 영화 OST도 부탁을 해보시는 건 어때요? 이 곡도 진해솔씨가 만든 거라면서요.”
“바빠 죽겠는 사람한테 OST를 부탁하라고? 차라리 그 시간에 촬영을 해야지!”
조감독은 안 된다며 고개를 젓는 감독님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OST 기가 막히게 뽑아주면 홍보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촬영이 우선이야! 아직 삽도 못 떴는데 다른 걸로 눈 돌리게 할 순 없어!”
감독이 너무 단호하게 나오는지라 조감독은 본전도 못 찾고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조감독이 슬그머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한 번 물어볼까요? 예정한대로 활동 마무리시키고 우리한테 진해솔씨 보내주는 거 맞는지요.”
“쓰읍, 긁어 부스럼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유~ 제가 말 바꾸면 가만히 있겠어요? 당연히 딱 잘라서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해야죠. 감독님이 아무리 진해솔씨를 예뻐하신다고 해도 비즈니스에서는 냉정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 그건 맞지. 한 번 찔러봐. 너무 강하게는 말고.”
“스케줄 미루려고 하면 강하게 나가야죠. 괜히 얕보였다가 호구 당하면 어떻게 해요. 아무튼 저 믿고 한 번 맡겨보세요. 제가 일 하나는 잘 하지 않습니까?”
조감독이 호언장담했다.
연화정 감독도 조감독의 유능함을 아는지라 순순히 동의하고 졸이던 마음을 단단하게 굳혔다.
♧ ♧ ♧
“감독님이랑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여.”
“뜬금없이?”
“이러다가 배우계 쪽으로 형을 뺏길 것 같아서 그래요. 나 쫌 진지함.”
“에이~”
“사진도 말이야. SNS에 떡하니 이런 거 올리고! 조신하지 못하게! 사람들이 형 배우로 전업하는 거냐는 반응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기우연이 뜬금없이 나를 단속했다.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우연이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말했다.
“심심해?”
“아녀. 심심하진 않죠. 어떻게 심심하겠어요.”
“오히려 너무 힘들어서 애가 좀 미친 거 아닐까?”
“동생한테 미쳤다가 뭐냐.”
우연이가 그래도 막내라고 경태 형은 막내한테만은 좀 유한 편이었다.
“어유~ 기우연 업어 키웠다고 애지중지 한다니까.”
“원래 막내가 최고인 거에요!”
반면 남은규는 은근히 우연이랑 정신연령이 맞아서 놀리는 걸 즐기는 편이었다.
저게 노는 건지 싸우는 건지 구분이 안 될 때도 가끔 있을 정도다.
준이랑도 매번 투닥거리면서 붙어 다니는 거 보면 남 놀리는 거 좋아하고 장난기 많은 건 은규의 성격인 듯 했다.
“해솔아~!!!”
“네엡~!”
“잠깐 나 좀 보자.”
“저만요?”
“어~”
오랜만의 국내 활동.
사실 처음에 우리가 국내 활동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하니 주변에선 그 좋은 해외 두고 왜? 라는 반응이 많았다.
국내에서 아무리 활동을 해봤자 해외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비교가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솔직히 빌보드 1위는 예상했다.
워낙 초반 지표가 좋았으니까.
그런데 영어가 들어가지 않은 가사로 쓴 노래가 빌보드 1위를 이렇게 오랫동안 장기집권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 못했다.
익숙하지 않은 동양권의 언어를 쓴 노래.
하지만 언어의 장벽은 별 것 아니라는 것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 곡을 기꺼이 받아들여주고 있었다.
‘이 정도면 불후의 명곡, 가능한가?’
이번 컴백에서 국내 활동에 집중한 이유는 내 논란을 정면으로 맞서고 싶어서였다.
만약 우리가 컴백해서 예전처럼 해외 활동에 주력했다면, 국내 여론이 썩 좋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기자들은 우리가 해외로 도망을 쳤다는 기사를 썼을 것이다.
아무래도 해외에서는 내 스캔들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거기는 새아빠랑 딸이 결혼하는 세계잖아.’
그런 스캔들을 터트려놓고도 딸은 연예계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
오히려 새아빠를 엄마로부터 쟁취한 매력은 뭔지 직접 토크쇼에 나와서 자랑을 한 적도 있다.
그러니 여자가 많고 애가 있다는 내 상황에 눈 하나 깜짝 할 사람은 없을 게 뻔한 것이다.
“오늘 부른 건 네 스케줄 때문이야.”
“제 스케줄이 왜요? 저한테만 섭외 온 거라도 있는 거에요?”
“해외 활동, 정말 안 할 거니?”
“이번에는 국내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잖아요. 그리고 이미 빡빡하게 스케줄이 잡혀 있는데 여기서 해외 쪽 스케줄을 끼워 넣을 틈이 있어요?”
“적당한 것들은 취소하면 돼. 솔직히 너희가 대학 축제 공연하러 갈 필요는 없잖아. 그 시간에 해외 다녀오면 몇 억을 더 벌어.”
“음…….”
나는 일단 입을 열기 전에 몇 번이고 혀를 굴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우리 팀원들이 이번 활동의 의미를 몰라서 저런 말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들도 알지만 너무 아쉬워서 그러는 거다.
해외에서 이렇게까지 좋은 반응이 왔는데도 제대로 푸시를 못한다는 점에 대한 안타까움.
판이 다 깔렸으니 가서 누리기만 하면 되는데 할 수 없다는 억울함과 답답함.
그런 아쉬움들을 구체적인 액수로 환산해 대표로 말하는 거였다.
“근래 바빠서 서로 소통이 잘 안 됐나 봐요. 확실히 회사를 옮기고 안팎으로 시끄러워서 정신이 없기도 했죠. 더군다나 레이블 세우고 처음으로 컴백한 거니까 많이 신경 쓰이기도 할 거에요.”
“…혹시 내가 말을 잘못한 거니?”
“일단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뭔가 잘못 됐다는 걸 깨달은 모양인지 팀원 누나가 불안해했다.
하지만 내가 화를 내지 않고 부드럽게 물어보니 대답을 안 해줄 순 없었는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이 얘기가 나온 건 이번에 네가 캐스팅 된 영화 때문이야. 연화정 감독이 찍는 영화가 액션인데다 스턴트도 최소로 하고 너한테 다 시킨다고 했잖아. 그건 우리가 생각하던 정도를 넘어선 일이었어. 연화정 감독 명성 때문에 주선했는데, 계륵인 것 같더라고.”
가뜩이나 몸을 상하게 만드는 격한 춤을 자주 춰야 하는 직업이 아이돌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액션 영화까지 찍어야 한다?
스턴트도 없이?
직원들은 뒤늦게 아차 싶었더랬다.
“우리가 주선한 일이라서 출연을 고사하는 건 어떻겠냐는 말도 못했어. 주변에서 연화정 감독 출연한다는 소식에 축하 인사도 엄청 받아버렸고.”
직원들 중 몇몇만 괜한 일을 했다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번에 컴백을 하고 나니 정말 계륵이 맞다는 게 증명이 되어버렸다.
아니, 계륵도 아깝다.
이건 그냥 안 하는 게 나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감독 영화만 아니었어도 국내 활동 다 끝나고 해외 활동을 시작해도 충분했거든. 아직도 빌보드 1위에서 내려오지 않았잖아.”
그런데 내 활동 때문에 해외에서 아무리 반응이 좋아도 활동을 할 수가 없어진 거다.
나만 빼고 활동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미 멤버들도 각자 활동 이후의 계획을 다 잡아 놓은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안 하느니만 못하던 영화 촬영.
이번에 그쪽에서 연락을 해서 계획에 차질이 없느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저질러버린 거야. 촬영 일정을 좀 늦추는 게 가능할까요? 하고. 솔직히 영화는 한 번 찍으면 막 3년도 더 걸리고 그러잖아. 몇 개월 더 늦춘다고 크게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니지 않니? 그쪽에서 양해를 해주면 참 좋을 텐데!”
“혹시 그쪽이랑 싸웠어요?”
“싸우진 않았어. 근데 안 된다고 딱 잘라서 거절을 하니까 빈정은 좀 상하더라고. 우리는 그 스케줄 때문에 보는 손해가 몇 개인데!”
“그래서 화가 났던 거군요?”
직원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그쪽에서 너무 심하게 정색을 했어!! 심지어 협박까지 했다니까?”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이 얘기를 안 들었다면 한참 잔소리를 했을 거다.
이번 활동은 돈을 보고 하는 게 활동이 아니었다.
돈을 생각하면 국내 활동은 할 이유가 없다.
물론 국내에서 활동한다고 해서 적자가 나는 것도 아니긴 하다.
아니, 솔직히 손해는커녕 몇 배 이상의 이익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해인 것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게 몇 배 이상의 이득을 주기 때문이었다.
‘세계’라는 단어가 그만큼 영향력이 큰 거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놓아서도 안 되는 달콤한 마약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번 활동을 굳이 국내로 한정한 것은 내 기자회견과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이번 기자회견으로 저지른 일에 대해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뜻.
그리고 7년이 넘는 세월동안 우리를 사랑해준 국내 팬들에 대한 감사 인사.
해외에서 활동할 때도 왜 국내 활동 안 하냐고 불평하지 않아준 팬들이지 않은가?
감사 인사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우리만 잘났다고 이 자리에 올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우리 국내 팬들이 우리를 세계적으로 알리려고 각종 홍보 활동을 많이 해줬었다.
우리에 대해 이제 겨우 알아가기 시작한 해외 팬이 팬카페에 들어와 어색하게 인사를 해오면, 팬들은 기꺼이 그들을 받아주고 품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줬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k-POP이라는 문화가 해외 팬들에게도 전파가 된 거다.
국내 팬들이 넓은 마음으로 그들을 배척하지 않은 덕분에 말이다.
더군다나 이건 미래를 생각해서이기도 하다.
다음 활동을 할 때는 지금보다 더 자주 해외에 나가고 쭉 그곳에서 활동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 당연히 국내 팬들 사이에서 서운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지.’
냉정한 말이지만 이득을 비교해봤을 때 국내는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이번 활동으로 국내 팬들을 다독여놓는다면 앞으로 해외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방패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직원이 모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협박을 했다는 게 정확히 어떤 식인지 얘기해주실래요? 제가 감독님이랑 얘기를 나눠볼게요.”
“네가 그 감독한테 예쁨 받는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지금 이 문제는 비즈니스라서 사적인 감정이랑 얽히진 않을 거야. 그 감독도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난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 뗄걸?”
연화정 감독님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러지 말란 법이 없기는 하다.
다만 감독님께 연락을 하기 전에 확실히 해야 할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