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영화 찍는 스케줄은 뒤로 미루지 않을 거에요. 애초에 이런 문제가 벌어진 건 그 말 때문이었잖아요. 그쪽은 계획에 맞춰 일정을 다 맞춰놨을 텐데 일방적으로 손해를 강요하는 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 그 부분은 내가 실수한 게 맞는 것 같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욕심이 났어.”
“연화정 감독님이 절 예뻐해주신다고 해서 이런 무례한 행동까지 봐주실 분은 아니에요. 누나는 저를 대변하는 사람인데 중요한 분한테 감정적으로 구는 건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었어요.”
“…미안해. 반성할게. 감정적이었고, 지금도 너한테 와서 할 말은 아니었던 것 같아. 내가 실수했어.”
상의도 없이 내 스케줄을 조정하려고 한 건 분명 직원 누나의 실수다.
사실 직원들 사이에서도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의견이 갈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직원들은 우리가 아이돌 활동에 전념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우리가 언제까지 쭉 함께 그룹 활동을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지 않은가?
개인 활동이야 어차피 나중에도 할 수 있는 일.
지금은 할 수 있을 때 그룹으로 활동에 집중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다.
‘개인 활동도 같이 하다가 결국 영영 그룹으로 다시 뭉치지 못한 그룹이 얼마나 많냐면서 말이야.’
애들이 개인 활동을 시작하면 다들 잘 될 테니 뭉치는 게 쉽지 않아질 것은 맞다.
이번에 연화정 감독님의 일처럼 그룹 활동보다 더 좋은 기회가 오면 우리들은 그걸 먼저 하라고 할 테니 말이다.
물론 다른 의견도 꽤 설득력이 있는 의견이다.
우리가 워낙 재능이 다방면으로 출중하니 그룹 활동을 하면서도 개인 활동을 하는 게 맞다고 본 거다.
굳이 재능을 썩히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애초에 우리는 개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살리면서 활동을 하려고 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그룹 활동을 가장 좋아하긴 하지만, 개인 활동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는 멤버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 의견이 확정 되면 지금처럼 활동 이후 개인 활동을 하면서 천천히 다음 컴백을 준비하겠지. 그러다가 계속 컴백이 밀릴 수도 있을 거고. 근데 이건 멤버들끼리 미리 결정해놓고 시작하면 되는 거 아닌가?’
레이블을 차려서 독립을 했다는 점이 좋은 점은 바로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데 우리 의견이 가장 많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두 의견 중에 딱히 정답은 없었다.
모두가 괜찮은 선택지였고, 개인 아니 멤버들의 선택에 의해 좌지우지 될 일이었다.
“감독님한테는 제가 연락 드려서 확실하게 사과할게요.”
내가 사과까지 한다고 하니 직원 누나가 면목이 없다며 고개를 푹 숙였다.
기가 팍 죽은 걸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말했다.
“근데 도대체 어떤 말을 들었기에 이렇게 감정적인 모습을 보인 거에요?”
우리 유능한 직원 누나를 이 정도로 화나게 만들었다면, 그쪽도 썩 좋은 반응을 보인 건 아닐 테 분명하다.
“…아니야. 그쪽에서 너무 과하게 딱 잘라서 화가 나긴 했는데, 애초에 내가 먼저 잘못한 거잖아. 다시 연락해서 사과도 내가 할 거니까 너는 나중에 감독님 만나면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 나중에 알았다 이렇게 말해.”
직원 누나가 정신을 차렸는지 상황을 빠르게 정리한다.
나는 정말 그래도 되겠냐고 재차 물었고, 직원 누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뒤에 있어야지, 나서는 거 아니야.”
“정말 그렇게 해도 되겠어요?”
“응. 내가 저지른 거니까 수습도 내가 하는 게 맞지. 아무튼 괜히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 앞으론 이런 일 없을 거야.”
“회사 옮기고 정신이 없긴 했잖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더군다나 이번에 신입으로 들어 온 직원들로 회사가 전체적으로 붕 떠있는 상황이었다.
회사 일도 회사 일인데, 우리가 컴백을 하고 바쁘게 활동을 하는 걸 받쳐주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다.
뭐든 것이 잘 갖춰져 있는 허니 엔터와는 많이 다른 환경이지 않은가?
직원들에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가려는 직원 누나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대기실에 들려서 먹을 걸 챙겨 누나에게 들려주고 보냈다.
“무슨 얘기 했어?”
“별 거 아니야.”
멤버들이 직원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궁금해 하는 눈치였지만, 뭐 좋은 일이라고 말을 퍼트리나 싶어 입을 다무는 걸 선택했다.
덕분에 멤버들이 궁금해 죽으려고 했지만, 금세 또 다른 일에 빠져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우리가 오늘 출연하는 곳은 연예인을 초대해서 노래도 들어보고 MC와 토크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간단한 포맷의 프로그램은 MC의 역량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 프로그램의 간판 MC는 내가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더욱이 이번 출연은 여러모로 의미가 큰지라 출연을 고사하지 않았다.
똑똑똑-
“네에~ 들어오세요!”
그때, 누군가가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우연이가 우렁차게 들어오라고 말을 했고, 곧이어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별 생각 없이 문을 봤다가 깜짝 놀라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엇! 우지용 배우님!!”
“안녕하세요!”
“우왓! 안녕하세요!!!”
“도착해 있다는 소식 듣고 왔습니다.”
“저희가 먼저 인사드리러 갔었는데 아직 도착을 안 하셨다고 해서요!”
“하하, 네. 제가 막 도착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구면인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무척 반갑네요.”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형.”
그랬다.
연화정 감독님이 연결을 해준 인맥.
배우인 우지용 선배님이 오늘 우리가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의 MC를 맡은 사람이었다.
“고맙기는, 내가 더 고맙지. 첫 게스트로 에어플레인을 부른다니까 PD랑 작가들이 어찌나 좋아하던지. 멤버 분들도 선뜻 나와 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스탭들한테 자랑 좀 했어요.”
이 프로그램은 사실 우리가 첫 게스트였다.
여태까지는 배우 활동에 전념하던 지용이 형의 새로운 도전이다 보니 여러모로 긴장 되는 일이긴 할 거다.
우지용 배우라는 이름값이 있고, 평소 그의 말빨을 생각해보면 망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이 맞았다.
방송이 12시인 심야시간이긴 해도 금요일이라서 시청에 부담이 없고, 또 외로운 밤 잘 생긴 배우의 얼굴을 보며 좋은 노래를 듣는 것은 여성들의 리즈를 꽤나 날카롭게 파고 드는 것이었다.
서로 영광이라며 얼굴에 금칠 좀 하다가 지용이 형이 준비하러 대기실을 나갔다.
“와~ 우지용 배우님 진짜 잘 생기셨다.”
“뭔가 배우님들은 우리랑 생김새나 포스 같은 게 다른 것 같아.”
“맞아. 이목구비가 엄청 뚜렷하시잖아.”
“그래서 그런가? 얼굴을 한 번 봤더니 잊히지가 않는데?”
멤버들은 배우 포스에 넋을 놓았다.
그나마 여유로운 건 강준이다.
아무래도 준이도 배우들을 자주 접하는 위치에 있으니 말이다.
“되게 젠틀하신 것 같아.”
멤버들은 한동안 지용이 형에게 홀린 것마냥 열심히 찬양을 해댔다.
잠깐 인사를 하러 와서 대화를 나눈 것 뿐인데 말이다.
“MC도 엄청 잘 보실 것 같지 않아?”
“내가 아는 지용이 형이면 MC는 되게 잘 볼 거야.”
그날 술자리에서 보여줬던 입담을 제대로 보여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 ♧ ♧
“와~ 제가 이렇게 호강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부르는 곡이 끝나고 지용 선배님과 소파에 앉아 본격적으로 토크쇼를 시작했다.
무대에 서자마자 일단 냅다 노래부터 불러버렸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아니, 노래를 왜 이렇게 잘 불러요? 다들 목소리가 너무 좋더라고요. 역시 가수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아하하!”
“아니, 갑자기 왜 웃으세요, 해솔씨?”
“사실 저희 멤버들이 아까 선배이랑 인사 나누고, 나가셨을 때요. 애들이 엄청 흥분해서 배우는 다르다! 하면서 엄청 호들갑을 떨었거든요.”
“으악! 그 얘기를 하면 어떡해!”
그리고 내 말에 호들갑 떠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남은규였다.
“뭐 어때요. 선배님이 너무 잘 생기셔서 감탄했다는 건데. 부끄러워요?”
“으으….”
“얘가 제일 선배님 잘 생겼다고 난리를 부렸거든요. 아마 그래서 지금 부끄러운가 봐요.”
“하하하! 고마워요.”
“근데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여쭤 봐도 될까여?”
그때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던 기우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네, 말해보세요. 뭐가 궁금했어요?”
지용이 형이 너그럽게 질문을 받겠다고 하니 우연이가 물었다.
“선배님은 잘 생겼다는 말을 엄청 자주 들으실 거잖아요.”
“음…아니라고는 못하겠네요. 아하하!”
본의 아니게 지용이 형이 MC 신고식을 제대로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쭤보는 건데, 그렇게 자주 들어도 지겹지 않고 항상 좋으신가요?”
“그러니까 지금 잘 생겼다는 말을 듣는 게 지겹지 않고 좋은지 물은 거죠?”
“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잖아요. 잘 생겼다는 말 자체가 저에 대한 칭찬이다 보니 칭찬 그 자체로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하~! 하긴 저도 춤 잘 춘다거나 노래 잘 부른다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항상 좋더라고요.”
“하하하, 그렇죠? 그리고 우연씨도 잘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을 것 같은데요?”
“헤헤헤, 안타까운 일인데 저는 잘 생겼다는 말보다는 귀엽다는 말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도 선배님처럼 잘 생겼다는 칭찬이 듣고 싶어요!”
우연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인지라 지용이 형이 감당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우쭈쭈 해주면서 애를 잘 다루고 있었다.
역시 MC를 해보겠다는 결심을 괜히 먹을 수 있는 게 아닌가보다.
다시 정상적인 토크가 시작 됐다.
“빌보드. 굉장히 업적이죠. 가수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거나 다름이 없는 거잖아요. 빌보드 1위에 오르고 2주가 넘게 유지가 되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빌보드에 올랐다는 건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빌보드가 중요하지 않다고요?”
“저희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우리 곡을 얼마나 많은 분들이 들어 주시느냐에요.”
“사실 이게 차트랑 무관할 수 없는 부분이다 보니 어떻게 보면 순위가 중요하다고 말한 거나 다름이 없을 수도 있겠네요. 근데 중요하게 여기는 순서가 다르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거에요.”
빌보드에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와~ 정말 멋있는 말이네요. 에어플레인 여러분들이 왜 지금까지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건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팬하겠습니다.”
“아휴, 감사합니다. 그렇게까지 거창한 게 아니었는데 너무 좋게 들어주셨네요.”
“그래도 솔직하게~ 쪼금만 더 솔직한 마음을 표현해주길 바라면서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빌보드 1위, 행복하시죠?”
“…행복합니다.”
“으하하!!”
“맞아요! 엄청 기분 좋아요.”
한껏 멋진 말로 분위기를 내놓고 결국 마지막에는 지용 형의 말에 넘어가서 진실을 토해냈다.
관객들에게서 웃음이 터졌기에 우리도 속 시원하게 말한 게 후회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