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불러주세요!!”
“그거요?”
“데뷔곡 편곡 한 거요요!!”
“아~ 0시 0분에서 불렀던 거요?”
와아아아~!!
네에!!!
앵콜! 앵콜! 앵콜!
그게 맞다는 듯 관객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가는 곳마다 이 곡을 신청하는지라 사실 오늘 부를 곡 중에 이 곡이 들어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 곡은 거의 대부분 앵콜이 나왔을 때 부르는 편이었다.
그게 관객들에게 더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이 곡은 심야 토크쇼에 맞춰진 터라 춤을 추고 난 이후 숨을 고르기 딱 좋았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가창력이 필요한 곡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 멤버들 중에는 노래 부르는 걸로 힘들어 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편곡을 한 데뷔곡까지 모두 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아래에는 우리가 가는 길을 미리 봐두고 기다리고 있는 팬들이 인산인해였다.
매니저와 경호원이 우리가 길을 이동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통제했다.
꺄아아악!
오빠!!!! 한 번만 봐주세요!! 여기!!
우연아!!! 우연아!!
경태 오빠!!!
해솔아!! 한 번만! 얼굴 좀 보여줘! 여기야 여기!!
사랑해! 남은규!!
찰칵찰칵찰칵-
몸을 이용해 무작정 달려드는 사람도 있고, 어떻게든 핸드폰에 영상이나 사진을 담아보겠다고 열심히 손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사이를 묵묵히 걸어가면서도 낯이 익은 팬들에게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들은 과하게 우리에게 달라붙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향해 열심히 플렌카드를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손짓에 우리에게 달라 붙던 팬들이 더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덕분에 경호원과 매니저 누나가 진땀을 빼며 우리를 서둘러 걷게 했다.
벤에 겨우 멤버들이 모두 타자 모두들 한숨을 푹 쉬었다.
“어우, 매번 장난 아니네. 특히 그 외국인 사생팬. 걔네들는 아예 이 나라에서 살려고 하는 건가? 안 나타나는 곳이 없네.”
로드 매니저 누나가 투덜거리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점점 따라다니는 팬이 늘어나는 것 같죠?”
“저번에 무대 난입하려는 팬도 그렇고…. 왜 이렇게 사고가 많지?”
“예전에도 따라다니는 팬들이 없는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유난히 사고를 치는 팬들이 많은 것 같아.”
해외에서 활동할 때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게 훨씬 안전한 것은 맞지만, 이렇게 팬들로부터 위협을 시도 때도 없이 당하다보니 슬슬 해외와 국내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호원 더 늘릴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내일 추가 인원 온다고 했어.”
“그분들 너무 험하게 대하시던데….”
지금도 우리를 따라다니는 차가 굉장히 많았다.
우리 다음 스케줄을 따라오고 있는 거다.
그동안 이런 팬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보통 해외에 방문할 때마다 우리 차를 따라다니는 팬은 자주 있어왔다.
심지어 비행기 자리까지 예매하는 경우도 있는데 차를 따라다니는 것 정도야 애교가 아니겠는가?
아무래도 우리가 해외에 자주 올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팬들의 이런 과한 관심과 집착을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편이었다.
그들을 막을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이 나서서 막아도 안 되는 인파인데 우리라고 무슨 수가 있을 리 없지 않나.
국내에서도 우리를 따라다니는 차량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극성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컴백하고 나서 유난히 악질 팬들이 부쩍 늘었다.
“어디서 너희들을 해코지 할 생각으로 접근하는지 모르는데 소극적으로 대응할 순 없지. 너희들은 그냥 모르는 척 해.”
이렇게 극성팬들이 부쩍 많아진 이유는 이번에 국내 활동을 한 이유를 팬들이라고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이번에 국내에서 활동을 한 것은 앞으로 있을 해외 활동에 대한 불만 잠재우기 용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로인해 악질 팬들이 국내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이번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에 이르렀고 지금 이 사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덕분에 우리를 경호해주는 사람을 더 늘릴 수밖에 없었고, 팬들에게 대응하는 소속도 거칠어 질 수밖에 없었다.
팬들 사이에서도 요즘 악질 팬들의 극성 때문에 여러모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아까 전에 한쪽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멀찍이 지켜보고 있는 팬들이 바로 그런 이들이다.
극성팬에 시달리는 우리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찐팬들.
그런 팬이 있으니 악질팬에게 시달려도 힘내서 활동을 할 수 있는 거다.
“아까 윙이들 옹기종기 모여 있더라. 봤어?”
“어, 봤어.”
“아는 척 하고 싶었는데 못했어. 너무 정신없어서.”
“근데 너 모자 어디갔어?”
“어? 내 모자!”
“아까 떨어트렸나보네.”
“아…그거 아끼는 건데.”
“머리채 안 잡힌 걸 다행인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며칠 후 그 모자가 팬들 사이에서 논란의 시작이 되는 매개체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우리는 그저 영영 모자를 되찾을 수 없는 준이를 위로했다.
아끼는 모자여도 다시 구매할 재력이 충분하니 말이다.
“아참! 오늘 편곡한 거 음원 나가는 날 아니야?”
“와~ 그걸 깜빡했네. 차트 확인해보자!”
모자 얘기는 금방 멤버들 사이에서 사라지고, 다른 얘기가 화제에 떠오른다.
매니저 누나는 다음 스케줄을 향해 천천히 운전을 시작했다.
우리는 사람들의 열혈한 반응에 음원 녹음을 진행했다.
제키가 편곡했던 버전으로 데뷔곡을 말이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음원이 나오는 날!
“와! 3위인데?”
“벌써?”
“오오! 평가도 좋아.”
“새삼스러운 얘기죠! 제키형! 소감은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차트로 증명 되니까 색다를 것 같아요!!”
“그냥 그렇구나 하는 거지. 뭐 다를 게 있나.”
“저렇게 말해도 입꼬리가 마구마구 씰룩거리고 있거든요? 아닌 척 하시기는!”
“축하해~ 형.”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3위 진입 축하합니다앙~! 이예에~”
제키의 곡이 1위를 했을 때도 있으니 3위로 진입한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멤버들은 축하해 줄 수 있을 때 기회는 놓치는 법이 없었다.
아무래도 장난을 거는 게 어려운 편인 제키에게 합법적으로 깐죽거릴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우연이와 죽이 잘 맞는 남은규가 차 안에서 어떻게 구했는지 알 수 없는 고깔 모자를 제키에게 씌웠다.
우연이는 기회를 놓칠 세라 핸드폰을 꺼내서 제키의 그런 모습을 연속촬영 했다.
“형형형! 포즈! 포즈 취해줘요!”
“후….”
제키는 살짝 짜증을 내면서도 우연이의 부탁에 포즈를 취해줬다.
“꺄악! 오빠 넘 멋있어용!”
“능력자! 일등 신랑감!”
우연이와 남은규가 호들갑을 떨면서 제키를 띄워준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인 준이와 경태 형 그리고 나는 애들의 호들갑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차분하게 대화를 나눴다.
“데뷔곡을 다시 좋아해주시니까 기분은 좋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역주행인가?”
“원곡도 순위가 좀 올랐잖아요. 역주행이라고 봐도 되지 않나.”
리메이크 된 편곡이 주목을 받으면 본래의 원곡도 함께 주목을 받게 되는 건 당연한 일.
덕분에 우리 데뷔곡이 뜬금없이 차트의 끝자락에 올라왔던 적이 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쑥 들어가긴 했지만, 그래도 리메이크 된 데뷔곡을 다시 사랑해주니 기뻤다.
“이러다가 우리 1위 타이틀곡을 얘가 뺏는 건 아니겠지?”
“어? 그럼 축하할 일이 아닌 거 아니야?”
“제키 VS 에어플레인인가?”
“저게 왜 나랑 너희들 대결이야? 노래도 다 같이 부른 거잖아.”
“솔직히 이 노래가 다시 뜬 건 네 편곡이 좋아서가 맞지. 그러니까 제키 VS 에이어플레인 맞는 듯.”
우리가 제키를 신나게 놀리고 있는데 갑자기 차가 확 옆으로 꺽였다.
빠앙! 빵빵!!
“아오! 시발! 얘들아, 괜찮아?”
로드 매니저 누나가 황급히 차를 세우고 우리의 안전을 확인했다.
“으아….”
한껏 산만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애들인지라 격한 꺾임에 뒷좌석이 엉망이 된 상태였다.
“아이고야….”
내가 황급히 주변으로 휙휙 꺾여 넘어지는 애들을 부축했지만, 모두 챙기는 건 불가능했고 결국 은규가 과할 정도로 몸이 뒤틀렸다.
“아으으…나 손목 꺾였어.”
“헉! 괜찮아?”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사고 난 거에요?”
여태까지 이런 적이 없어서 너무 방만하게 행동한 우리의 잘못도 있었다.
얌전히 앉아 있거나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다면 갑자기 차가 꺾여도 이 정도로 난리가 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로드 매니저 누나가 뒷좌석에 난리가 난 우리를 보고 사색이 돼서 차를 갓길에 세웠다.
“저쪽에서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했어. 아무래도 팬 차 인 것 같은데.”
“또 그 사람들이에요?”
“다행히 사고는 안 난 것 같은데…. 일단 밖에 나가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아. 내가 옆으로 확 꺾어서 안 부딪친 것 같긴 하거든? 근데 지금 중요한 게 너희들 몸이야. 어디 아픈 곳 없어? 솔직하게 말해줘야 돼. 숨긴다고 능사가 아니야.”
“은규 형 빼고는 없는 것 같은데요?”
“저는 해솔이 형이 잡아줘서 살았어요.”
“그럼 그나마 다행인 건데…. 은규야 많이 아파? 병원 가야 할 것 같니?”
“잘 모르겠어요. 손목이 좀 꺾이긴 했는데, 근육이 놀라서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요.”
보통이라면 괜찮다고 했을 은규인데, 좀 두고 보자고 하는 걸 보니까 제대로 꺾인 모양이다.
“누나, 저희가 쓰는 근육통 약 차에 하나 두지 않았어요?”
“아! 그래. 그거 쓰면 되겠다. 그리고 바로 병원으로 이동할게. 하씨, 잠깐만 여기 기다리고 있어봐. 여깄어.”
보통 근육통이 오면 파스를 바르거나 할 테지만, 우리에게는 효과 좋은 아이템이 있었다.
보통 연습실에만 두고 쓰는데, 활동 할 때는 오늘 같은 변수가 생길 수 있었기에 약 하나쯤은 벤에 두고 쓰는 편이었다.
애써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던 은규도 내가 가져 온 약을 손목에 바르니 한결 나아졌는지 표정이 편안해졌다.
엉망이 된 벤을 수습하고, 멤버들끼리 서로 괜찮은지 물으며 몸을 추스르고 있는 사이에 로드 매니저 누나는 바깥으로 나가서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얘기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는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얘들아!! 얘들아!!!”
“우리 애들 다쳤으면 어떡해!”
“어디 다친데 없어? 잠깐 무사한지 얼굴만 볼게! 창문 좀 내려 봐!”
덜컹덜컹덜컹!
“아씨, 잠겼네.”
“얘들아~ 괜찮아? 다친 곳 없어? 걱정 돼서 그러는 거야. 문 좀 열어봐~”
“어어어? 지금 뭐하는 거야! 저리 안 떨어져?!”
우리 차가 멈춰서자 문제가 된 건 뒤를 따라오던 다른 팬들이었다.
물론 사고를 낸 차의 주인들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벤에 순식간에 달려든 팬들.
로드 매니저 누나가 황급히 벤에 달라붙는 팬들을 저지했다.
그런다고 혼자서 여럿의 여자를 막는 건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우리 차를 뒤에서 따르고 있던 경호원 차가 때마침 도착하지 않았으면 아마 계속 그 자리에 붙잡혀 있었을 것이다.
“어어! 여기요! 여기 얘들 좀 떼어내주세요! 찍지 말아요!!”
“이런!”
찰칵- 찰칵-
“떨어지세요!”
"꺄악! 밀지 마요!! 이거 놔!! 준아!!"
“다치니까 떨어집시다! 어허이!”
로드 매니저 누나의 도움 요청에 황급히 달려 온 경호원들이 팬들을 벤으로부터 떼어낸다.
한편, 우리는 바깥에서 악질 팬들이 창문을 두드리는 것을 보며 순간 몸을 굳혔다.
“어우, 무섭다. 좀 심각한 것 같은데.”
“상황이 잘 안 풀리나봐. 어떡하지?”
영 해결 될 기미가 없어 보이는 상황.
우리는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