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경호원님이 와주셔서 다행이다. 벤에서 떼어내는 것 같아.”
“엄청 고생하시네.”
“로드 매니저 누나만 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겠다. 이 정도 광기면 벤에 침입했을 지도.”
로드 매니저 누나가 차키를 갖고 있으니 누군가가 정말 생각을 조금만 잘못해도 큰 사고가 벌어지는 거다.
“이거 회사에 알려야겠지?”
“당연하지.”
“내가 전화해서 알릴게.”
경태 형이 나서서 회사에 연락을 넣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바깥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엄청 찍네. 저런다고 나오는 건 하나도 없을 텐데.”
진한 썬팅이 되어 있어서 바깥에서 안을 찍는 건 불가능하다.
“이거 기사 나겠지?”
“100% 나지. 안 날 리가.”
“하, 이러다가 다음 스케줄 늦는 거 아냐?”
“은규 형 병원도 가봐야 하잖아요!”
“나 약 발라서 괜찮아. 안 가도 돼.”
“평소에 엄살 엄청 심한 애가 왜 이럴 땐 의젓한 척이야?”
그래도 친구라고 준이가 은규를 제일 걱정했다.
“준이 말대로 평소처럼 해. 평소처럼.”
“아씨! 나 그렇게 많이 안 아프거든?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는 정도라고.”
“그래도 아까 엄청 심하게 접질렀잖아. 나중에 문제 안 생기려면 확실하게 검사 해야지. 우리는 몸이 재산인 거 몰라?”
가뜩이나 빡빡하게 춤을 추는 우리들이다.
문제가 생겼는데 방치하면 나중에 더 고생하는 법이었다.
“스케줄 끝나고 갈게. 그럼 되잖아.”
“내일도 바쁘지 않아?”
“대기 시간에 살짝 다녀오면 되지. 지금 당장은 언제 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적어도 심한 지각은 안 해야 하는 법.
결국 은규의 말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금방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상황이 예상보다 더 심각했는지 그 후로도 한참동안 로드 매니저 누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어휴~”
진한 한숨과 함께 로드 매니저 누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일은 잘 해결 됐어요?”
“어어. 대충? 좀 복잡하다. 빨리 빠져나가는 게 답이야. 너희들이 따로 회사에 연락했다며? 덕분에 수습할 직원 불렀어. 너무 정신없어서 회사에 연락하는 것도 잊었지 뭐냐. 고맙다.”
“아니에요. 우린 편하게 앉아 있었으니까요.”
“직원 오기로 해서 우린 이동하면 될 것 같아. 빨리 다음 스케줄 가야지.”
“근데 사고 안 난 거 아니에요? 왜 계속 붙잡혀 있었던 거에요?”
“그쪽에서 막무가내로 우겨서 말이야.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계속 사고 났으니까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말이야. 무시하려고 했는데, 그냥 가면 뺑소니로 신고할 거라고 바락바락 소리 지른다. 에어플레인 뺑소니 도주 기사 나고 싶지 않으면 가지 말래. 참나~ 어이가 없어서. 내가 명함을 줘도 안 받고 말이야.”
분위기가 급격히 숙연해지자 화가 나서 생각 없이 말하던 로드 매니저 누나가 아차 싶었는지 자기가 한 말을 서둘러 수습했다.
“크흠흠. 너희들은 그냥 모르는 척 해. 이런 거는 우리가 해결 하는 일이니까.”
“행동 보니까 지저분하게 나올 것 같은데 정말 이대로 가도 되는 거 맞아요?”
“뺑소니로 신고하면 우리는 무고죄로 신고하면 돼. 법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고 코에 붙이면 코걸이가 되는 식은 아니잖냐. 오히려 그렇게 나와 주면 회사는 더 좋아. 제대로 복수해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악질팬의 집착에 복수심을 불 태우던 매니저 누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신중하게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무튼 많이 놀랐지? 미안하다. 최대한 안전하게 몰았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저렇게 갑자기 밀고 들어왔는데 누나가 뭐 어떻게 막겠어요. 안 부딪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죠.”
“은규야, 손목은 좀 어때?”
“많이 괜찮아졌어요. 애들이 걱정해서 내일 시간 되면 중간에 병원에 잠시 가서 검사 받으면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내일 병원 예약해둘게. 그리고 다들 안전벨트 좀 매줄래?”
“네엡.”
“전 이미 맸어요!”
“와~ 혼자 얍삽하게 매고 있었어?”
“내가 매줄까?”
“켁! 됐거든?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애들이 축 쳐진 분위기를 살려보고 싶었던 걸까?
안전벨트를 매고 애써 활기찬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차 사고로 인해 가라앉은 기분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었다.
덕분에 차 안은 모두가 힘들어서 잠들었을 때처럼 조용했고, 숨소리와 움직일 때 나는 부스럭 소리만이 유일하게 나는 소리 전부였다.
“…….”
“…….”
“…….”
“아.”
그때, 침묵을 깨고 은규가 소리를 냈다.
순간적으로 모두의 시선이 남은규를 향했다.
“아파?”
혹여나 얘가 다친 손목이 아프다고 할까 걱정이 됐던 것이다.
“아니, 우리 기사 떴어.”
“그걸 또 찾아보고 있었어?”
“근데 좀 심각해. 회사에서 이거 아는지 모르겠네.”
“뭐가 심각해?”
사고가 날 뻔했지, 사고가 난 건 아니지 않은가?
다친 사람은 남은규밖에 없었고 그것도 아직 병원에 가지 않았으니 알려지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 사고 났다고 기사가 났거든.”
“좀 심각하게 났어?”
“오보를 했어. 차가 반파됐고, 우리는 생명이 위독하대.”
“시발.”
로드 매니저 누나가 남은규의 말에 겨칠게 욕을 내뱉었다.
우리 모두 그녀의 격한 욕설을 공감하고 있었다.
“사생팬 도넘은 집착 에어플레인, 차 반파 되는 큰 사고. 멤버들 위중.”
“난리 났네.”
“우리가 전부 이렇게 멀쩡한데 위중은 개뿔!”
“어떻게 할 거야?”
“회사로 전화하자.”
일단 회사에서 우리의 현재 상황을 알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 일이었다.
우리가 정말 큰 사고를 당했는데 회사가 그걸 모르고 있다면 그게 정말 큰일인 거다.
사실 확인 문의가 회사에 왔을 때 ‘사실 확인 중입니다’ 라는 대응과 ‘사실이 아닙니다. 멤버들은 모두 멀쩡하고, 차 사고가 난 적도 없습니다.’ 라는 대응은 천지차이가 아니겠는가?
이 여파가 커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회사에서 입장을 밝혀서 수습을 해야 했다.
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우웅-
그때, 멤버들도 그렇고 내 핸드폰도 진동이 울렸다.
기사를 본 지인들이 우리에게 무사한지 확인 전화를 걸고 있는 것이다.
이 전화를 안 받으면 난리가 날 것이므로 일단 받아서 안정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솔아! 괜찮아?! 다쳤다며!!
“기사보고 전화한 거지? 그거 오보야. 하나도 안 다쳤고, 사고 난 적도 없어.”
멤버들도 지인들에게 사고 나지 않았다고 전달하느라 진땀을 뺐다.
“다른 가족한테도 전달 좀 해줘. 오보라고 말이야. 나도 문자 하나씩 돌릴 거긴 한데, 지금 연락오는 곳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좀 없네.”
-다행이다. 진짜 다친 곳 없는 거지?
“응. 나 엄청 튼튼해. 문제없이 스케줄 가고 있는 중이야.”
-알았어. 기사들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가짜 기사를 냈는지 모르겠네.
안절부절 못하는 복순 누나의 의문에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살짝 얘기를 해주긴 했다.
“사고가 난 건 아닌데 우리 벤을 따라오던 차가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했어. 그래서 잠깐 소란이 있었는데, 그걸로 기자들이 과하게 기사를 쓴 것 같아.”
-뭐야~! 그럼 사고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닌 거네! 요즘 사생팬 때문에 골치 아프다더니 그렇게 심각한 거였어?
“어쩔 수 없지. 늘상 있는 일이라서 익숙해졌어.”
이렇게 전화를 하고 있는 사이에도 계속해서 연락이 오는지라 어쩔 수 없이 후다닥 전화를 끊고 다음 연락을 받았다.
“신애?”
그런데 다음 연락이 굉장히 의외의 인물이었다.
바로 안신애.
나에게서 그림을 배우면서 좋은 관계를 이어가던 후배.
스케줄로 바빠지면서 그림을 가르치는 수업은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됐다.
그래도 지금까지 교류한 친분이 있는지라 자주 연락을 주고받곤 했는데, 사귀는 사이는 아니어도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딱 썸을 나누는 사이라 볼 수 있었다.
‘기자회견 이후로는 연락이 점점 드물어졌지.’
아무래도 내게 여자가 많다는 걸 알게 되고 마음이 변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내가 다쳤다는 기사를 봐서 연락을 한 듯했기에 통화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오, 오, 오빠! 괘, 괜찮아요? 기, 기사를 봤는데 오빠가 엄청 다쳤다고 해서…! 너무 놀래가지고요…!
엄청 당황했는지 말을 계속 덜덜 떨면서 하는 신애다.
나는 목소리를 낮게 낮추며 말했다.
“나 괜찮아. 기사 오보난 거야. 다친 곳 없고, 큰 사고 난 적도 없어.”
-저, 정말이요? 정말 괜찮으신 거에요?
“응. 걱정시켜서 미안. 기사 오보난 거는 금방 올라갈 거야. 회사에서 상황 수습 중이야.”
신애가 안도했는지 한숨을 푸욱 쉬었다.
-다, 다행이다아…흐이잉…저는 오빠가 정말 크게 다친 건 아닌가 싶어서 너무 놀래가지구요. 흑!
안심이 되니 참아왔던 울음이 터졌나보다.
훌쩍거리면서 우는 신애의 떨리는 목소리에 마음이 쓰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만나서 멀쩡한 얼굴 보여주고 싶은데, 지금 스케줄이 있어서 만나러 갈 수가 없어. 응. 그러니까 조금만 울고 뚝해야 한다?”
-네에…흐응…힝…죄송해여…제가 너무 민폐 끼쳤죠오….
걱정해서 연락을 한 건데 민폐라니!
그럴 일 없다.
“오히려 전화해줘서 고마운데. 스케줄 바쁘지 않아?”
신애는 엉뚱하고 솔직한 매력으로 예능 블루칩이었다.
그룹이 활동을 하지 않아도 항상 스케줄로 바빴기에 걱정이 됐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화장 고쳐야 해서…이만 끊을 게요.
신애의 목소리가 축 늘어진다.
“음…그래. 연락할게.”
-네에.
흔히 우리나라 특유의 밥 한 번 먹자~ 식의 말은 아니었다.
기자회견 이후로 나에게 마음이 뜬 것 같았던 신애가 다시 연락을 해준 거다.
내가 다쳤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연락을 준 걸 보면 아직 나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은 게 분명했다.
‘신애랑 관계가 너무 어중간하긴 했어.’
이제 확실하게 정리를 해야 할 때가 됐다.
더 이상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그렇게 해주는 게 맞다.
신애는 귀엽고 다재다능하며 인기도 많은 아이다 보니 놓치기 아쉬운 상대이기는 했다.
그동안 수업을 하며 쌓인 정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내 가족들을 인정할 수 없다면 나도 그녀를 붙잡을 수가 없다.
아직 이어지지 않은 신애보다 현재의 내 가족이 더 중요하고 지켜야 할 존재였으니 말이다.
“이야~”
전화를 끊고 주변을 둘러봤는데, 어째 애들이 핸드폰을 든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뭐야. 왜?”
“방금 여자였지?”
“…….”
“목소리가 좀 낯이 익던데요오~?”
“그…이름이 뭐더라? 시 뭐였는데.”
“시애 아니야?”
“그래! 시애! 맞지? 설마 걔도 네 여자였어?”
“…아직은 아니야.”
정신없이 쏟아지는 연락에 멤버들이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방심했다.
“다들 바쁜 거 아니야? 빨리 주변에 소식이나 돌려.”
그 다음으로 온 전화는 모르는 번호였기에 받지 않고 거절을 하고, 문자 메시지창을 열어서 단체 문자를 작성했다.
기사에 난 것은 오보이므로 걱정하지 말라는 것을 적어서 연락을 날렸다.
그렇게 쏟아지는 연락을 수습하고 얼마 후.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기사가 났다.
[(공식) 에어플레인 사고, 오보! 멤버들 모두 다친 곳 없이 무사해.]
[차 사고? 멤버들 중태? 전혀! 사실무근!]
[극성 사생팬들의 무리한 차 끼어들기로 잠깐의 소란이 있었으나 멤버들 모두 무사해.]
[멤버들 병원에 실려 가지 않았다!]
[어쩌다가 이런 오보가? 에어플레인 순조롭게 스케줄 진행 중.]
“드디어!”
기사 정정이 시작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