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긴 하지만, 사생팬들이 스케줄을 따라오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는 사건이기는 했다.
뭔가 수를 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계속 경호원만 충원한다고 일이 해결 되겠습니까?”
“그렇다고 뾰족한 해결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비공개 스케줄도 하루 종일 벤에 죽치고 있다가 따라오는 애들인데.”
우리도 따라오는 사생들 막아보겠다고 별의 별 짓을 다 해봤다.
평소에 쓰던 벤 말고 다른 벤을 빌려서 스케줄을 가보기도 하고, 스케줄 정보를 다르게 알려줘서 정보에 혼선을 주기도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사생팬의 정보력도 만만치가 않더라.
직접 스탭으로 잠입해서 정보를 알아내기도 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해서 끝까지 따라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숙소에서 주구장창 대기 타는 애들도 있는지라 사생팬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결론이 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생팬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무관심과 경호원들의 철저한 차단 뿐이었던 것이다.
“애들이 안 다쳐서 다행이지, 다쳤으면 어쩔 뻔했냐고요.”
“로드 매니저가 운전을 잘 해서 다행이었어요. 군대에서 운전병이었다더니 길도 잘 찾고 순간 대처 능력도 뛰어나고. 아주 굿입니다.”
만약 멤버 중 한 명이 크게 다쳤다면 앞으로의 활동이 올 스탑 되는 거다.
“하아, 사고 낸 그 사생팬은 연락 왔어요?”
“안 왔죠. 오겠어요? 지금 사람들한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는데. 팬들 사이에서도 거의 만나기만 하면 머리채 잡힐 각오 하라고 하더라고요.”
“에휴, 그런 것들 누가 안 잡아가주나? 그냥 평범한 팬들처럼 법 지키면서 좋아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진해솔이의 기자 회견으로 그의 여자가 누구인지 밝혀졌을 때도 각종 테러 소포를 보내서 곤란하게 했던 전적이 있는 악질팬.
“그래도 이번 일이 있으니까 사생팬들 극성도 좀 줄어들지 않겠어요?”
직원들은 당분간은 좀 몸을 사릴 테니 스케줄 다니는 게 편해지겠다며 차악의 상황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이번 일이 생각보다 꽤 큰일이긴 했는지 의외의 움직임이 팬카페에서 벌어졌다.
♧ ♧ ♧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거임?]
애들 큰 사고 날 뻔한 거 알지? 영상 봄? 그 새끼들 지들이 저질러 놓고 당당하게 영상 올렸더라. 진짜 어이가 없다. 이거 계속 봐줘야 하는 거냐? 아무래도 사생들 이번에 레이블 독립한지 얼마 안 됐다고 회사 물로 본 것 같은데, 우리가 해결해줘야 할 것 같음.
-우리가 해결을 어떻게 하는데? 그냥 병먹금이 최고 아님?
-사생은 답이 없다 :(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면 다음에는 진짜 사고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음.
-ㅇㅇ 이거 맏따. 사생들 중에 이번 일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하는 년 봄.
-그 시발년 어딨음? 좌표 불러!
-이미 폭파 됨 ㅋㅋㅋㅋ 그년도 sns에 올려놓고 아차 싶었던 거지.
-이건 시발 우리를 그냥 ㅂㅅ으로 본 건데.
-진짜 뭐 할 수 있는 일 없음? 그ㄴ들한테 엿 한 번이라도 날려주고 싶은데.
기존 팬들이 더 크게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이유.
멤버들이 직접 계획을 해서 만들었다는 팬 이벤트가 이번 사건으로 당분간 미뤄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공지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에어플레인과 함께하는 봉사활동!
좋은 일도 하고, 가까이에서 멤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호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벤트였다.
제발 당첨 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얼마나 빌었는가!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벤트가 이번 사건으로 뒤로 밀려나버렸다.
팬들은 분노했고, 이런 일을 만든 원인 제공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바랐다.
직접 본인들의 손으로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임?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경호 인원을 추가하는 것 밖에 없음. 그러니까 우리가 대신 애들을 지켜주자는 거지.
-우리가 애들을 지키자고? 전혀 감이 안 오는데. 자세히 말 좀 해봐!!
-그러니까 어떻게 하는 거냐면…….
사생팬이 많다고 해도 일반 팬의 숫자에 비하면 조족지혈!
팬들의 은밀하고 위대한 계획이 시작 되고 얼마 후.
에어플레인과 회사는 당혹스러우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은 일을 경험하게 된다.
“왜 이렇게 부산스러워요?”
기사 오보가 나는 큰일이 있고 난 후, 사람들은 당분간 조용할 거라는 기대를 했지만 사생팬은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독했다.
당장 다음 스케줄부터 자신들을 뒤따르는 사생들의 숫자가 여전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번 일로 기사가 나고 난리가 났던 게 그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성과라면서 치켜세워지고 있다고 한다.
반성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고 말이다.
이러니 팬들과 회사에서 사생이라고 하면 뒷목부터 잡는 거다.
“아무래도 팬들끼리 싸움이 난 모양이야.”
“설마 우리 팬이에요?”
“음…정확히 말하면 사생이랑 일반팬들이랑 난 싸움인 것 같아.”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거에 너희들이 끼어들면 안 돼. 모르는 척 하고 나와. 싸움이 난 덕분에 사생들이 따라오진 않을 것 같거든.”
처음 일이 생겼을 땐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생팬과 일반팬이 싸우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벌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가 스케줄을 이동할 때, 직접 팬들과 가까이에서 부딪칠 일이 생겼을 때 항상 사생팬과 일반팬들 사이에서 싸움이 났다.
덕분에 우리는 빠져나가기 편해졌지만, 자꾸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요즘 왜 이렇게 팬들끼리 싸우지?”
“라이브 방송 때 물어볼까?”
“어허이! 안 돼! 모르는 척 해.”
이번 활동 때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팬들과 자주 만나겠다고 선언을 한 지라 꾸준히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
라이브 방송 때는 해외에서 우리 얼굴을 보지 못하는 해외 팬들에게도 얼굴을 보여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여러분 안녕!!”
“안녕~~”
“우리 4일만이죠? 잘 지냈어요?”
그날 일 때문에 라이브 방송을 당분간 하지 못했던 우리.
일이 생기고 바로 라이브 방송을 하면 그날 일만 주구장창 채팅에 올라 올 게 분명했기에 할 수가 없었다.
일이 좀 진정 된 오늘.
자꾸 하다 보니 라이브 방송의 맛이 있어서 못하게 되니 몸이 간질간질거렸는데, 드디어 라이브 방송을 하게 됐다.
“잘 지냈어요? 뭐하고 지냈어.”
-보고싶었어 얘드라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랑해!!!!!!!!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얼굴이 반쪽 됐어ㅠㅠㅠㅠㅠㅠ
-지금 잠옷 입은 거야? 너무 귀엽잖아!
우리를 반가워하는 것도 잠시.
채팅창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예상한 일이었지만, 직접 그 광경을 보니 속이 쓰렸다.
팬들과 만나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주고 싶지, 울리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
“울지 말아요. 우리 건강해요.”
“어제 강준 몸무게 늘어서 트레이너 쌤한테 혼났어요.”
“야! 그걸 왜 말해!”
“목소리 우렁 찬 것 좀 보세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괜찮아요.”
-ㅠㅠㅠㅠㅠㅠㅠ 방금까지 슬펐는데 은규 땜에 자꾸 웃음 나와.
“웃어요! 우는 것보다 웃는 게 더 예뻐요.”
-나 예쁘게 봐주는 건 너희밖에 없엉 ㅠㅠㅠ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게 너희들인데 왜 그래?”
-건강한 모습 보니까 너무 좋다. 기사 보고 얼마나 무서웠는뎅 ㅠㅠㅠㅠ
-사생들 다 죽었으면.
살벌한 말도 간간히 나오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슬픔이 가득하던 채팅창이 점점 웃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일부터 텐션을 높이고 간질거리는 말을 자꾸 해댔기 때문이다.
팬들도 눈치가 있는지라 우리가 가라앉은 분위기를 유지하기 싫어한다는 걸 알아챈 듯했다.
“잠옷 귀여워요? 사실 이게 팬분이 보내주신 거에요.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잠옷이라고 해서 멤버들끼리 이렇게 입어봤어요.”
“색이 엄청 예쁘죠? 노랑색은 우리들끼리 엄청 다퉜어요. 서로 입겠다고 해서.”
그렇게 우리들과 팬들의 눈치 빠른 노력으로 채팅창이 긍정적인 분위기로 돌아섰을 무렵.
우리는 라이브 방송에서 전달해야 할 내용을 슬슬 꺼내들었다.
“혹시 저희 팬카페에서 에어플레인과 함께하는 봉사활동 공지를 보신 팬분들 계시나요?”
-그거 미뤄졌잖아 ㅠㅠㅠ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데 미뤄져서 너무 아쉬웠어!
-시발 사생 왜 사냐. 다 죽었으면.
-애들 보는 채팅창에 욕 좀 그만하세요!
“맞아요. 저희 일정이 갑자기 뒤로 밀어졌죠? 그걸로 많이 아쉬워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좋은 소식을 들고 왔어요!”
우리가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면 채팅창이 어떤 분위기일지 안 봐도 뻔한 일.
그렇다 보니 팬들을 달랠 수 있는 좋은 화제가 꼭 필요했고, 그게 바로 뒤로 미뤄졌던 일정이 다시 원래대로 진행하기로 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추가 일정을 한 번 더 잡았어요!”
“와아~~”
“그리고 비공개 예정이었던 봉사활동 이벤트를 촬영해서 유티비에 올리게 될 예정이에요! 여러분들도 모두 볼 수 있도록요.”
-헉! 대박!
-당첨 안 되면 아예 볼 수가 없어서 많이 아쉬웠는데 너무 좋다!!
-사랑해!
-고마워! 얘들아!
-제발 당첨 ㅠㅠㅠ 제발 당첨!!
“여러분들이랑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이고 있어요. 좋은 일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봉사활동이 좀 힘들긴 할 거에요. 그래서 참가하시는 분들에게는 소정의 선물을 드릴 거에요.”
-소정의 선물? 뭔데, 뭔데?
“선물은…비밀입니다!”
“아직은 말 못해드려요! 그래도 팬분들을 위해…읍!!”
“기우연 멈춰! 스포는 안 돼.”
우연이의 폭주를 막은 나는 또 난리가 난 팬들에게 싱긋 웃어주고 말했다.
“나중에 영상으로 확인해주세요. 영상에서 어떤 선물을 드릴지 나올 테니까요.”
-으아아아!!! 꼭 당첨 되고 싶다!! 로또보다 더!!
“아하하! 로또보다 더 당첨 되고 싶대. 완전 귀여워.”
라이브 방송에서 쏟아지는 채팅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정말 많이 사랑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애들도 라이브 방송을 하고 나면 진이 빠지긴 해도 마음이 훈훈해지고 부쩍 힘이 난다고 한다.
눈앞에서 만나는 건 아니어도 채팅을 통해 팬들과 가까이 호흡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게 바로 라이브 방송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으아아아앙! 안 돼! 가지 마!!
-잘자~ 얘들아!! 좋은 꿈 꿔!!!
-안 돼! 나 이제 왔는데.
“가봐야 한 대요~”
“더 하고 싶지만 많이 늦었으니까요.”
“다들 잘 자요~! 좋은 꿈꾸시고요.”
“우리 또 올 거에요.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어.”
라이브 방송을 1시간 동안 진행했기에 더 이상 하는 건 애들 체력도 그렇고 방송 내용상으로도 그렇고 슬슬 마무리 하는 게 맞았다.
-잠 방송 해줘!
-귀여워!
-춤 춰주세요!
-자장가 불러주면 안 돼?
“아!”
방송 마무리를 하려는 순간.
채팅창에 올라 온 글을 보고 저거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장가 부르는 게 그리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번 사건으로 많이 놀랐을 팬들에게 좋은 위로가 되어 줄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멤버들에게 눈짓해서 생각한 것을 말했다.
그러자 애들 모두 좋다고 동의를 했고, 빠르게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서 자장가를 찾았다.
-애들 자장가 불러주려나봐!!! ㅠㅠㅠㅠㅠㅠ
-꺄악!! 그냥 한 번 말해본 건데! 너무 좋아!
채팅창에서도 분위기를 느꼈는지 난리가 났다.
“어떤 분이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해서요.”
“예정에 없던 거라 잘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핫.”
“이거 듣고 오늘 코~ 자는 거에요?”
멤버들의 끼 발산에 팬들이 난리가 났다.
-응응!! 꿀잠 잘게!! 너희들 꿈꾸면서♥♥♥
우리들끼리 노래를 부르는 건 너무 익숙해서 지겨울 정도의 일.
미리 맞춰본 것은 아니었지만 눈빛을 교환해서 빠르게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하나 둘 셋.”
팬들을 위한 자장가가 시작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