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애를 실망시켰던 스캔들 사고는 무사히 잘 수습이 됐다.
아니라고 하면 될 걸 일부러 일으켰던 심유정씨가 직접 SNS에 사과문을 올린 것이다.
더불어 그 사과문에는 이번 일로 피해를 입은 나에 대한 사과도 들어있었다.
덕분에 이번 일에 내가 정말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것이 증명이 된 것이다.
심유정은 거하게 욕을 먹었으나 적어도 활동을 못하게 되지는 않는 선으로 수습이 될 수 있었다.
본인은 이미지가 크게 상해서 울상을 짓겠지만 말이다.
‘광고주가 화가 많이 났다던데.’
광고가 아직 걸리기 전에 이런 난리가 났으니 광고가 제대로 효과를 볼 리가 없었다.
결국 심유정은 짤리고 재촬영을 하기로 했다.
여자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 없도록 얼굴이 나오지 않고, 손과 등 그리고 목덜미 같은 곳이 나오기로 했다.
기존에 찍었던 내용에 더해서 추가 촬영을 조금 하는 거라서 크게 무리가 없었다.
기껏 촬영했는데 모두 소용이 없어졌으면 재촬영 시간이 길어졌을 텐데, 감독님이 살릴 수 있는 장면은 최대한 살린 모양이었다.
스캔들에 심장이 철렁했을 신애와의 관계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스캔들로 가장 걱정이 됐던 건 신애였는데 정작 신애는 별 달리 화를 내지 않고 넘어간 반면에 가족들이 난리가 났다.
그 여자랑 내가 뭔가 있는 줄 알았던 거다.
내가 해명을 하고서야 화를 풀었지만, 그로인해 신애와의 관계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신애와의 관계를 비밀로 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밝히게 될 줄은 몰랐다.
다들 눈치가 빠른 건지 아니면 내가 눈치가 없는 건지 모르겠다.
누구와 사귀는 건지는 몰라도 새로운 여자가 생긴 것은 다들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심유정이 아니라 다른 여자라는 것을 밝힌 거였다.
혹여나 오해로 심유정이 내 여자들과 얽히면 안 되지 않은가?
내 새로운 여자 정체를 밝히자 가족들이 어린애를 낚았다며 우우!! 하고 야유를 날리더라.
‘그동안 내 여자들 중에 나보다 어린 애가 없었잖아.’
그나마 있다면 칸나?
하지만 걔는 여동생이기보단 퇴폐한 망나니 재벌이 첫인상이라 지켜주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
여동생 느낌도 나지 않고.
비록 지금은 개과천선 해서 이미지를 건실한 유모로 바꾸긴 했지만….
‘한 번 박힌 이미지 바꾸기가 쉽지 않지.’
이래서 첫 인상이 중요한 거다.
잘 바뀌지 않으니까.
아무튼.
우리 집 마나님들이 나에게 특명을 내렸다.
“집에 데려와!”
“걔를 여기 데려와서 뭐하려고?”
“맛있는 밥 한 끼 해먹이지 뭐. TV에서 보니까 완전 애기던데.”
“나한테 애기는 아현이밖에 없었는데, 걔 보니까 진짜 어린 게 뭔지 알겠더라. 볼살이 통통하니 귀엽던데. 눈도 이쁘고 웃는 거 이쁘던데.”
주아 누나와 복순 누나의 합동공세.
맞서 싸울 수 있는 기세가 아니다.
하지만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해서 아직 키스도 제대로 못해봤는데 가족을 소개시킬 순 없었다.
“키스도 안 했어? 네가?”
“와~ 진짜 막 시작했나보네.”
“막 시작했다고 해도 키스를 안 한 건 좀 놀라운데.”
“확실히 얘 진도 빼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지. 엉덩이에 숨겨 둔 꼬리는 뒀다 뭐하고 아직도 그것도 못했어?”
이 여편네들이 갑자기 내 연애에 흥미를 가진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묻지 마.”
“어쭈, 조강지처가 물어보는 건데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걔 어차피 나중에 우리한테 소개 시켜줄 거잖아.”
내가 한 번 손에 넣은 것은 절대 쥐고 놓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가족들도 다 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대한 집착.
가져보지 못한 것을 얻어 소중함을 너무 잘 알기에 생긴 일이었다.
그래서 가족들도 내게 새 여자가 생겼다고 하니 가족이 늘겠구나 생각하고 말한 거다.
집에 데려오라고.
어떤 여자인지 확인하는 것은 조강지처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 주아 누나였다.
“그럼 언제 데려올 건데? 소개 안 시켜줄 건 아니잖아.”
“아직은 좀 그렇고 나중에 괜찮을 것 같으면 먼저 말할게.”
주아 누나와 복순 누나는 먹잇감을 놓친 암사자처럼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다.
저들 손에 신애가 들어가면 탈탈 털리다 못해 털이 싹 벗겨질 거다.
“아무튼 이제 촬영하겠네?”
주아 누나가 눈을 반빡이며 화제를 바꿨다.
그동안 뒤로 미뤄뒀던 CF와 화보를 거의 다 해치웠고, 이제 남은 건 개인 활동이었다.
“응. 이제 촬영해야지. 그동안 엄청 준비했으니까.”
확실히 국내에서만 활동을 하니까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서 좋았다.
해외가 좋은 것도 여행으로 가는 거면 몰라도 일하러 다니면 마냥 좋지만도 않다.
더욱이 우리는 유명세까지 있어서 구경하러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구경하려면 경호원을 우르르 데리고 돌아다녀야 하지.’
그래서 국내가 좋은 거다.
총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곳인지라 경호원을 반드시 데리고 다녀야 하는데, 국내는 사생팬만 피하면 경호원까지는 굳이 데리고 다닐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더욱이 익숙한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정서적 평온함과 더불어 나라마다 달라서 생기는 물갈이, 시차, 음식 모두 이번에는 경험하지 않아도 됐다.
나야 몸이 튼튼해서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지만, 멤버들은 그런 것들을 모두 경험하고 앓기도 하면서 해외 활동을 이어가야 했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비행기도 승차감을 생각해보면 썩 좋지 않았다.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는데 헬기를 띄워야 하는 나라.
반면 우리나라는 웬만한 곳을 차로 이동할 수 있다.
‘그래도 해외 활동은 안 할 수가 없어.’
그런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해외 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
두 번 말할 필요가 있나?
당연히 돈이다.
엔터회사가 왜 아이돌을 데뷔시키는가.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 돈을 해외에서 잔뜩 벌 수가 있다.
이번 앨범도 해외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엄청난 수요가 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해외 활동으로 만들어둔 해외 팬들이 앨범을 구매해준 덕분이다.
활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앨범을 사주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럼 이제 진짜 액션 하는 거네?”
“해야지. 그동안 내가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액션에 쏟은 노력이 있는데, 제대로 보여줄 거다.
“빨리 보고 싶다. 안 다치기로 약속한 거 기억하지?”
“기억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
내가 액션하는 걸 보면 아마 누나들이 놀라서 기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춤을 추는 것과 액션 연기는 엄연히 다른 일이지 않은가.
내 몸이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앞에서 붕붕 몸을 휘날리면 기겁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누나들은 액션이라는 말에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나 액션하는 거 조금만 보여주면 안 돼?”
“나도 보고 싶어! 액션 연기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막 주먹 휘두르면 주변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 떨어지고 그런 거잖아.”
복순 누나와 주아 누나가 내 액션 연기를 기대한다.
누나들에게 보여줄 액션 연기라….
너무 쉬운 걸 보여주면 기대하던 것에 못 미치니 실망할 거고.
너무 화려한 걸 보여주면 내가 다칠까봐 심하게 걱정을 할 거다.
적당히 화려하면서도 다치지 않을 것 같이 능숙하게 보여줄 수 있는 액션.
“간단하게 몸 움직이는 것 정도만 보여줄게.”
휘익~!
“우왓!”
“오오!”
짝짝짝!
공중에서 간단하게 한 바퀴를 돌아서 착지를 했다.
바닥을 제자리에서 뛰면서 몸을 예열하고 본격적으로 팔 다리를 화려하게 움직인다.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는지라 혼자서 허우적대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지금 내가 보여주고 있는 액션은 칼을 든 적을 제압하는 시퀀스였다.
“뭔가 휙휙 지나간 것 같은데, 뭐가 뭔지 모르겠어!”
“뭔지 몰라도 멋있다는 건 알겠다.”
“맞아! 멋있어!”
“방금 칼 같은 거 들고 있는 사람 제압한 거 같던데.”
“어? 맞췄네. 어떻게 알았어?”
그냥 휙휙 몸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멋있었다는 복순 누나와 달리 주아 누나는 내가 어떤 액션을 보여줬는지 눈치를 챘다.
“누구 손목을 탁! 잡고 다른 손으로 쳐서 뭔가 떨어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몸을 휙 돌렸을 때 제압을 하려고 그러는 것 같았어. 그리고 몇 차례 주먹질 오가고 네가 발로 순식간에 돌려차기를 해서 제압시켰지.”
“보는 눈이 좀 있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허우적대는 건가 했을 텐데.”
“나도 액션 연기 관심 있어.”
“누나도?”
주아 누나가 액션 연기를 한다라….
아직 안 해봐서 그렇지, 주아 누나라면 엄청 잘 해낼 게 뻔하다.
어릴 때부터 아이돌이 되기 위해 운동으로 관리해 온 몸이다.
예쁜 몸 라인을 위해 과할 정도로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평범한 사람의 몸에서는 한참을 벗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가, 주아 누나는 조임이 환상적이지….’
그런 쫀득쫀득한 몸으로 액션을 한다?
환상적인 그녀의 몸놀림을 잘 알고 있는 나는 분명 성공적인 액션 배우로 데뷔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내가 액션하는 건 어떨 것 같아?”
“완전 좋은데? 누나가 운동에 일가견이 있잖아.”
“정말?”
솔직히 남자들이랑 로맨스 찍는 것보다야 주먹질하고 피 칠갑하며 나오는 게 보기 편하기는 하다.
물론 바닥을 구르는 걸 보는 게 좋다는 싸이코적인 생각은 아니다.
남자랑 부등켜안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는 거지.
그래도 누나의 직업이 ‘배우’이기에, 넘어가는 거다.
그런 연기를 하고 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침질을 해서 내 거라고 확인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 누나는 항상 본인은 여자를 잔뜩 만들어놓고 나한테 이렇게 소유욕을 보이면 어떻게 하냐고 투덜댄다.
그러면서도 내 행동을 전혀 막지 않는 걸 보면 질투하는 나를 보는 게 영 나쁘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그럼 나 다음 작품 액션 연기 해볼까?”
“그럼 누나도 나 다니는 곳 다녀. 거기 진짜 잘 가르쳐주시거든. 나랑 같이 다녔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이미 액션 연기를 충분히 배워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할 때가 아니라면 굳이 액션스쿨에 갈 필요가 없었다.
사범님이 이미 나한테 졸업하라는 말까지 했기에 더 그렇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그럼 나 거기 소개시켜주는 거다?”
“작품도 안 고르고?”
“응. 미리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서. 배워서 남 줄 것도 아니니까.”
오랜만에 누나가 의욕을 보인다.
원래부터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태양이를 키우느라, 배우 일을 하느라, 정화씨를 돌보느라 바빠서 한참이나 자기 취미를 제대로 갖지 못했을 거다.
쌍둥이를 돌봐주는 든든한 유모와 칸나가 있고, 정화씨도 이제 산후 몸조리를 잘 치르고 건강해진 지금.
주아 누나가 새로운 취미에 눈을 돌리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옛날부터 액션은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였거든. 드디어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두근거려!”
“그래도 위험하니까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해.”
“알지알지. 그나저나 너도 이제 내 마음 알겠네.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야.”
누나가 액션을 한다고 하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어진다.
당사자가 나였을 때는 내 사기적인 신체 능력을 잘 알면서 왜 자꾸 걱정을 할까 의문이 들었는데, 역할을 바꿔보니 이해가 확 된다.
“진짜 안 다치게 조심할게.”
“응. 착하네.”
“저기, 나도 있거든?”
“하하! 알지. 우리 예쁜 복순 누나.”
“얏! 로즈라고 로즈!!”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 고통을 견뎌낸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누나들과 보내는 이 한가로운 시간이 나에게는 남들이 그토록 바라는 행복이었으니까.
이 공간에,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
내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찬란한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