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액션? 풋! 조금만 다쳐도 엄살 부리는 것들이 어떻게 액션을 해? 이번에는 연화정 감독님이 실패할 거야.”
“그래도 운동하는 남자가 아예 없지는 않잖아.”
“그렇기야 하지. 근데 적어도 내가 아는 남자 배우들 중에는 제대로 된 액션을 할 줄 아는 놈은 없었어.”
연화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는 액션 배우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제대로 된 맨액션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걸 받아주는 대상이 있어야 했고, 그의 액션을 받아줄 스턴트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대규모의 스턴트 인원이 고용 되었고, 그 스턴트들이 대역을 서야하는 캐릭터의 배우들도 캐스팅이 됐다.
그들이 하는 액션은 대부분 스턴트가 맡아서 해결을 해주기 때문에 간단한 몸놀림만 외우면 되는 처지였다.
때문에 진해솔이 액션 스쿨을 꾸준히 다녔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남자가 액션을 한다는 것에 삐딱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남자가 액션을 해봤자 뭐 얼마나 하겠나 하는 편견어린 시선이었다.
일명 꼰대들이다.
“더군다나 롱컷이라니. 이번 작품은 잘 되기 어려운 것 같단 말이지.”
“촬영 엄청 늦게 끝나겠지?”
“저 까다로운 양반이 쉽게 넘어갈 리 없으니 한 장면 찍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겉으로는 그의 인사에 살갑게 대하면서도 자기들끼리 모였을 때는 뒷담을 깠다.
아마 진해솔이 액션 연기를 할 때 조금만 실수를 해도 과장 되게 꾸며서 뒷담을 깔 것이다.
그게 그들이 감히 쳐다도 못 보는 남자를 능욕하는 저급한 방법이었다.
우와아~!
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저급한 욕망을 흡족하게 해주는 광경이 아니었다.
“미친?”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휘이익~!!!
진해솔이 날아다닌다.
주변에서 촬영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 모두 자신이 본 걸 믿을 수가 없어 두 눈을 비볐다.
너무도 깔끔하고, 완벽하게 타이밍을 맞춰 진해솔의 몸이 휘날렸다.
영화 속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영화를 촬영하고 있으니 이게 정상적인 광경이기는 할 거다.
그런데….
‘저거 와이어 달지도 않았잖아.’
와이어를 달지도 않았는데 사람이 저렇게 날래고 아름다우며 화려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사방에서 우와! 하는 감탄사가 끝나질 않는다.
진해솔이 절도 있는 몸놀림으로 상대방을 쓰러트려나간다.
길쭉하게 나 있는 골목길.
그곳을 천천히 나아가며 점점 피에 젖어 가는 진해솔의 모습은 위험하면서도 여자의 아랫배를 욱신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섹시하다.’
진해솔 뒷담을 까던 사람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를 향해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화정 감독이 왜 그토록 남자의 액션을 울부짖었는지 알 것 같았다.
저걸 보고 얼굴을 붉히지 않을 여자가 없을 것이고, 그에게 홀리지 않을 여자가 없을 거다.
우악스럽게 생긴 덩치 큰 여자 스턴트들이 그의 발짓, 손짓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묵직한 스턴트들의 몸놀림과 달리 진해솔은 날래고 가볍게 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 호쾌한 움직임에 절로 주먹이 꽉 쥐어진다.
진해솔의 이마에 묻은 땀방울, 핏물로 젖은 흰 와이셔츠가 이토록 매력적일 줄 누가 알았을까?
아마 연화정 감독만이 저 광경을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컷! 아~ 좋다. 좋아!”
생각보다 긴 액션 컷이 끝났다.
첫 액션 촬영을 롱컷으로 잡았던 건 연화정 감독의 욕심이 아니라 진해솔의 액션을 믿기 때문이었던 거다.
‘이 영화는….’
“다시 해볼까? 햐~ 이거 그림이 딱 좋긴 했는데, 여기 넘어지는 게 좀 어색해.”
“감독님, 저는요? 조금 더 크게 휘두를까요?”
“여기서 조금 더 크게?”
“동작이 크면 느려지겠지만, 그만큼 화려해지니까요.”
“음…일단 찍어보고 비교해볼까? 뭐가 더 좋은지.”
“넵.”
모니터에 달라붙어서 부족한 부분을 추가로 넣고 다시 재촬영에 들어간다.
문제없이 촬영이 됐다고 해서 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다.
영화는 감독님이 만족할 만큼 촬영하고 또 촬영하는 게 가능했다.
홍 사범님도 이번이 액션 감독으로 첫 데뷔다 보니 점점 욕심이 생겼는지 재촬영에 들어갈 때마다 내게 하나씩 요구 조건을 높여나갔다.
아예 못 할 수준은 아니었기에 그녀가 제시하는 액션을 받아들였고, 연화정 감독은 촬영을 할 때마다 화면에 나오는 액션 그림이 더 좋아졌기에 계속해서 반복을 외쳤다.
“우와아.”
“저걸 기어코 하네.”
“힘들지도 않나. 몇 번째 촬영하는 거지?”
“10번은 넘었지 않나?”
“독하다, 독해.”
촬영 시간이 길어졌지만 누구도 진해솔을 탓하며 욕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촬영 시간이 길어진 건 진해솔의 탓이라기 보단 더 나은 장면을 찍으려는 감독님의 욕심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진해솔이 못한 것도 아니었다.
“불평을 전혀 안 하네.”
잘했는데 다시 찍으면 그보다 더 잘하고, 다음에 찍을 땐 더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쉽게 컷을 내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촬영하느라 고생을 하는 배우 입장도 고려해봐야 했다.
충분히 불만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실수한 곳 없이 완벽하게 잘 찍었는데도 감독이 만족을 하지 않아 재촬영을 계속하고 있지 않은가?
어느새 이 컷을 찍기 시작한지 5시간.
진해솔은 끝까지 불평이나 인상 한 번을 찌푸리지 않고 재촬영에 응했고, 드디어 연화정 감독님의 입에서 완벽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커뜨으으!!! 좋아! 완벽해!”
“드디어 끝났다!”
“쟤도 진짜 독하네.”
“아이돌을 하려면 저 정도 깡은 있어야 하나봐. 아이돌 우습게 볼 게 아니었네.”
끝까지 마음속으로 연화정 감독님과 진해솔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첫 촬영이었다.
5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해서 액션 촬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해솔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모니터링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 진짜 이번엔 잘 찍혔네요.”
“그렇지? 완벽해. 딱 내가 바라던 그림이야. 초반에 왜 이렇게 마음에 안 드나 했더니, 너무 화려함에 치중해서 그런 거였더라고. 액션에 화려함은 뺄래야 뺄 수 없는 거긴 하지만 너무 과한 건 오히려 사람들 시선을 산만하게 만들 수 있어.”
“그럼 앞으로 액션은 이 정도 수준으로 맞추는 게 맞겠죠?”
홍주은 액션감독도 첫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감이 좀 잡혔는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계속해서 바뀌는 액션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아이디어를 쥐어 짜낸 홍주은 액션 감독.
만족스러운 그림이 나올 때까지 재촬영을 밀어 붙인 연화정 감독.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명의 높은 요구치를 거뜬하게 해낸 진해솔까지.
“그렇죠. 지금 이 수준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해솔이는 어때? 할 수 있겠어?”
“네. 당연하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본인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독종 중의 독종.
5시간 논스톱의 촬영이었음에도 불만이 눈곱만큼도 없을 만큼 영화에 진심인 사람들.
‘연화정 감독…어쩌면 또 해외에서 상 받겠는데?’
저런 사람 한 명이 있어도 여러 사람 피곤해지는데 무려 3명이나 한 영화에 매달리고 있었다.
스태프들과 출연 배우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번 촬영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직감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 ♧ ♧
연화정 감독의 작품 촬영이 드디어 시작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과연 진해솔이 보여줄 액션 연기는 어떨지.
팬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야~ 하루가 멀다 하게 차가 들어오네.”
팬들로부터 들어오는 각종 서포터 음식들.
배우들은 귀엽게 꾸며진 진해솔의 사진과 함께 팬들이 적은 응원의 말, 그리고 잘 부탁한다는 인사가 담긴 소정의 선물들을 받으면서 감탄했다.
하나 같이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고, 돈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는 게 눈에 보이는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잘 먹을게요, 해솔씨.”
“네! 맛있게 드세요.”
“맛있네요. 고마워요! 해솔씨!”
“하하, 네. 맛있게 드세요.”
나는 SNS에 올리는 용으로 사진을 하나 찍고 휴식 시간의 여유를 즐겼다.
영화 촬영은 드라마 촬영과 많이 달랐다.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를 하고 그걸 촬영 한다는 메커니즘은 비슷하지만 한 장면에 담는 노력은 영화 쪽이 훨씬 깊다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두 감독님과 나는 마음이 굉장히 잘 맞았다.
이번 활동 타이틀곡을 작곡할 때 하고 있었던 마음 그대로를 영화에 접목시켰다.
나를 욕하던 사람들도 내 음악만큼은 보지 않을 수가 없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그 각오를 말이다.
연화정 감독님의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한다는 말을 듣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 존재한다.
연화정 감독님의 작품에 아이돌 끼얹기라니! 라며 경악하고 조롱하고 심지어 감독님의 안목까지도 비웃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입을 딱 다물어주려면 보통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어야 했다.
그래서 도저히 우리 작품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을 만드는 것.
그것이 감독님들과 나의 목표였다.
각자 목표하고 있는 욕심이 있다 보니 촬영하는 내내 그 욕심이 숨겨지지 않고 튀어나왔다.
대부분 감독님이 만족하지 못하고 재촬영을 요구하지만, 간간히 나나 홍사범님의 요청으로 다시 찍을 때도 있었다.
덕분에 촬영 일정은 예정 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늦어지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우리가 까탈을 부리면 힘들 수밖에 없는 스태프들조차도 말이다.
‘뒤에서 욕하고 있긴 할 거야. 스태프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퇴근인데, 우리 때문에 계속 야근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세 사람 모두가 만족하는 장면이 나와야 직성이 풀리는 것을.
우리들의 욕심이 꽉꽉 담겼다고 해서 영화가 너무 부담스럽게 진행 되지는 않았다.
“너무 꽉꽉 채워졌다. 좀 덜어냅시다.”
“아니, 이걸 덜어요? 이렇게 예쁜 그림을?!”
영화 촬영에 베테랑인 연화정 감독님이 수시로 밸런스를 잡아 준 덕분이었다.
“지금 이 그림만 보면 완벽하고 예쁜 건 맞습니다. 그런데 앞뒤 영상을 쭉 이어보면 관객들은 숨도 못 쉬고 계속 이런 숨 막히는 액션을 봐야 합니다. 호흡 조절이 필요해요. 관객들한테 숨 쉴 시간은 줘야죠.”
연화정 감독님이 괜히 명성 있는 감독이 아닌 것이다.
홍사범님도 나름 욕심이 있어서 고집을 피울 때가 있는데, 연화정 감독님은 끝까지 설득을 해서 기어코 의견을 굽히게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런 게 연륜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연기도 잘하네.”
촬영 스태프들은 촬영 초반, 내 액션 연기에 깜짝 놀라서 미처 연기까지는 주목을 하지 못하다가 촬영이 점점 진행 되고 조금씩 내 연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촬영 내용도 초반에는 액션이 중심이고, 이후로는 감정 연기가 들어가 있어서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연화정 감독님은 감정 연기가 들어가자 액션을 찍을 때보다 더 신나서 나에게 구체적인 디렉팅을 해주셨다.
그 디렉팅을 따르면서 하는 연기는 오랫동안 준비한 보람을 느끼게 해줬다.
“지용이 형! 와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아이, 소원 형님도 당연히 와주셔서 황송하죠.”
그리고 약속한 대로 우지용 형과 박소원 형님이 카메오 촬영을 위해 우리 촬영장을 찾아왔다.
“요즘 업계에 소문이 자자~ 해. 우리 연화정 감독님 작품 대박날 거라고 말이야.”
소원 형님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의 관심을 단숨에 빨아들이셨다.
“나 오늘 해솔이 얘 액션 보러 왔는데 제대로 보여주는 거 맞지? 얘 액션 연기가 기가 막히다던데 말이야.”
"그럼요. 보여드려야죠."
나는 형님들이 서슴없이 드러내는 기대감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런 내 모습이 귀여웠는지 지용이 형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괜히 그러다가 다치지 말고 하던대로만 해. 하던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