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그럴게요.”
“나 진짜 기대 많이 하고 왔어. 꼭 보여줘야 돼.”
“아무렴요.”
박소원 형님은 나한테 액션 연기 맡겨 놓은 사람처럼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그 투정이 쏙 들어갈 만큼 화려한 액션을 준비해뒀기에 자신 있었다.
참고로 소원 형님과 지용 형이 출연하는 카메오 역할은 형사다.
두 형님은 운이 좋아서 자꾸만 나와 우연히 마주치는데, 정작 잡지는 못하는 허당 캐릭터다.
소원 형님은 독자로 귀하게 자라서 엄살이 많은 캐릭터이고, 지용 형은 싸움을 잘한다고 허풍을 잔뜩 떠는데 정작 실전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여주는 형사였다.
완벽히 개그 캐릭터로 두 사람을 쓸 예정이었는데, 지용이 형과 소원 형님은 아무렇지 않게 개그 배역을 받아들였다.
‘개그 배역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캐릭터가 달라지는 거거든. 행동이 우스워도 상관없어. 이 얼굴로 매력적인 어리바리 형사로 만들어버리면 되니까.’
지용이 형은 배역을 받고나서 괜찮냐는 나의 물음에 꽤 멋진 말을 해줬다.
어떤 역할을 받았든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매력적일 것이라면서 말이다.
자신감이 가득 차서 하는 말을 듣고 있는데, 순간 멍하더라.
‘멋있긴 했으니까.’
본받을만한 형님들이다.
그런 형님들을 소개시켜준 감독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형님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의상 어때요?”
“멋지십니다!”
지용 형은 잘 생긴 미남인지라 사실 뭘 입어도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적당한 점퍼와 후줄근한 티셔츠 청바지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용 형에겐 간지가 좔좔 흘렀다.
“나는 좀 끼는데?”
한편 소원 형님이 입고 있는 옷은 지용 형보단 훨씬 값어치 있는 비싼 옷이었다.
깔끔한 셔츠와 정장바지를 입은 소원 형님이 은근히 잘 빠진 몸매를 드러내며 등장했다.
“아닙니다! 몸매가 죽여주셔서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십니다.”
“흐흐, 내가 요즘 빡세게 운동하고 있는 건 어떻게 알고 그런 기특한 말을 하냐?”
“운동을 열심히 하셔서 그런지 확 티가 나십니다.”
“그래? 하긴, 나 살이 너무 빠졌다고 여친한테 한 소리 듣긴 했어. 내 매력이 죽는다나 뭐라나.”
소원 형은 내 칭찬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캐릭터에 흠뻑 빠졌는지 말했다.
“근데 이 옷, 내 고급스러운 비주얼에 비해 급이 좀 안 맞는 것 같지 않니?”
“그래도 형사니까요. 직업에 맞추긴 해야죠.”
“그런가? 흠흠.”
“어휴~ 카메오 출연하는 걸로 뭐 그렇게 까탈을 부려? 그냥 주는 옷 입고 연기하면 되지.”
“이게 다 디테일이야, 인마! 이런 소소한 디테일이 합쳐져서 명연기가 되는 거고.”
지용 형과 소원 형님이 또 다시 투닥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저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허허 웃으면서 나도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카메오로 도착한 형님들 덕분에 분위기가 가벼워지긴 했지만 오늘 보여줄 액션이 고난이도라서 긴장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저 봉에서 네가 막 액션을 한다는 거지?”
“네.”
“엄청 위험해 보이는데. 여기 매달려서 막 싸우기까지 하는 게 가능해?”
봉 액션.
오늘 내가 해야 할 액션 연기다.
문제는 봉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봉을 이용해서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적을 쓰러트려야 했는데, 기계체조를 참조해서 홍사범님이 만들어준 액션 연기였다.
직접 시범을 보여주셨는데 내가 잘만 해내면 그림이 잘 나올 것 같았기에 고난이도임에도 흔쾌히 해보겠다고 나섰다.
“너 대역도 없이 찍는다고 하지 않았어?”
“이 정도는 거뜬해요.”
“시작하기 전에 리허설은 하지?”
“하죠.”
“어휴, 점점 쫄리네. 괜히 우리 때문에 과하게 하지 말고 몸 조심해.”
“네엡!”
형들은 대단한 액션 보여줘야 한다던 말은 생각이 안 나는지 정작 촬영이 시작할 때가 되자 내 걱정을 했다.
버려진 공사장의 흉물스러운 철조물들이 혹여나 넘어지지 않을지 스태프들이 안전점검을 하고 있었다.
“꼼꼼하게 설치해!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게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라고 할 거야!”
““네엡!””
고난이도 액션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나보다 더 긴장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스태프들일 것이다.
그들이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철조물이 촬영 중에 넘어지기라도 한다?
바로 날벼락이 떨어지게 된다.
스태프들이 재차 안전 점검을 하고, 드디어 촬영 준비가 끝났다.
의상을 갈아입고 나온 나는 장갑을 끼고 몸을 간단하게 움직여봤다.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 편했다.
‘좋아.’
오늘만큼은 두 감독님이 마음껏 날뛰어도 된다고 했다.
액션에 욕심이 있는 건 감독님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잘 알기에 아쉬움이 제일 컸다.
제대로 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액션 씬이 있으면 했던 것이다.
그러한 욕망이 겹쳐지며 생긴 게 바로 이 봉 액션이다.
“리허설 들어갑니다!”
소원 형님과 지용 형 그리고 스태프들과 감독님 등등.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 선다.
현장을 정리하고 있는 몇몇의 스태프들도 리허설이라는 말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촬영장을 주시했다.
어느새 모든 사람들이 내 액션을 구경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생각이 없었다.
♧ ♧ ♧
“어휴, 덥다. 더워. 내가 말했지? 나 곱게 자라서 이렇게 땀 흘리는 거 딱 질색이라고.”
“이 한 겨울에 그거 조금 뛰고 덥다고 해? 그럴 거면 형사는 왜 했어? 아니, 그 전에 어떻게 형사가 된 거야? 뭐 비리 있는 거 아냐?”
형사가 되려면 체력 검증도 반드시 해야 한다.
“땀 흘리는 걸 싫어한다고 했지 내가 체력이 부족한 건 아니거든? 그리고 나는 빽으로 들어 온 낙하산이야.”
“낙하산이 자랑이냐?”
“자랑이지. 너는 낙하산 못 타봐서 그래. 아주 안전하고 튼튼해서 승차감이 기가 막힌다구.”
형사1이 낙하산으로 들어온 걸 자랑했다.
그걸 받아주고 있는 형사2가 쯧쯧 혀를 찼다.
“나는 낙하산이 아무리 좋아도 그걸 탈 필요가 없거든? 왕년에 금메달리스트한테 낙하산이 웬말이냐? 사람이 나처럼 당당하게 실력으로 정정당당해야지.”
“이것도 내 실력이거든? 아무튼 봐. 오늘 그 범인 꼭 잡아서 내 능력을 보여줄 테니까. 다 왔다! 여기지? 제보자가 말한 곳.”
“쉿쉿 조용!”
“야심한 밤인데 누가 듣는다고 쉿쉿이래.”
“저기 저쪽에 뭐 온다고! 숨어!”
두 형사가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하려는 순간 들려오는 대량의 발걸음 소리.
형사들이 서둘러 몸을 숨겼다.
“저 새끼 잡아아!!!!”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누군가를 쫓아 달리고 있었다.
딱 봐도 험악하게 생긴 조폭들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도망치고 있는 방향에서 또 우르르 조폭들이 나타난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남자가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때, 남자의 시야에 보이는 철골물들.
남자는 일단 그 철골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휘이익!
“어억!”
“내려와, 이 자식아!”
남자를 쫓았던 조폭들은 순식간에 지붕 위에 올라간 닭을 보는 개가 됐다.
“뭐하고 있는 건데! 당장 올라가!”
“저, 저희가 저기를요?”
남자가 내려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 화가 난 조폭이 부하 조폭에게 명령을 했다.
“그래, 인마!! 남자 하나 못 잡고 이 지랄이 났는데 해결해야 할 거 아냐!! 너 이 새끼, 잡히기만 하면 가만 안 둔다! 올라 가!”
부하 조폭들이 어쩔 수 없이 낑낑대며 철조물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조폭들에게 붙잡힐 것 같은 위기의 순간.
남자가 순식간에 몸을 움직여 올라오고 있는 조폭들을 덮친다.
“어어어어?! 안 돼, 안 돼! 으악!”
퍼억!
낑낑대며 기껏 올라왔더니 발차기 한 번에 나가떨어지는 조폭.
하지만 그 틈을 타 다른 쪽에서 철조물 위로 올라 온 조폭이 남자의 뒤를 덮친다.
남자는 몸을 숙여서 조폭의 팔을 피하다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지는데, 재빠르게 철봉을 잡아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아래에 있는 조폭을 발로 차버린다.
퍽 퍽!
“억!”
“악!”
다리 하나 당 한 명씩 말이다!
한 바퀴 돌아서 다시금 철조물 위에 올라선다.
철조물 위에 올라서니 자신을 떨어트리게 만든 조폭이 엉거주춤 철조물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자, 잠깐 타임! 타임! 야야야!”
균형을 잃지 않는 게 이상한 조마조마한 철조물들을 가볍게 밟아 다가 온 남자가 조폭의 어설픈 주먹질을 고개를 살짝 옆으로 비키는 것으로 피하고 손목을 잡아 안쪽으로 당겨버린다.
당연하지만 균형을 잡지 못하고 조폭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이고! 내 허리!”
비명 소리와 함께 현실적이고 실감 나는 허리 걱정이 날아든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은 남자가 좀비처럼 아래에서 남자의 발목을 잡으려 드는 손에 물구나무를 서듯 철봉을 손으로 잡고 훌쩍 뛰어서 철봉 아래에 있는 조폭들을 발로 차냈다.
“우아악!”
빙글 빙글 몇 바퀴 철봉에 매달려 돌다가 아래에 있던 조폭들이 사라지면서 빈 공간에 남자가 부드럽게 착지를 했다.
하지만 그가 철조물에 내려왔다는 걸 보자마자 조폭들이 주변을 금세 둘러싸버렸다.
혹여나 남자가 도망칠까 걱정이 됐는지 제법 꼼꼼하게 빙 둘러싸서 천천히 그가 있는 곳을 향해 거리를 조여 왔다.
“흐흐흐! 너 이 자식, 쥐새끼처럼 도망 다니더니 드디어 오늘에서야 잡는구나!”
“…….”
본인이 사냥감인 줄도 모르고 기세등등한 꼴을 보고 있으려니 사냥꾼은 우스울 뿐이었다.
도망 다닌 게 아니라 한 곳으로 몰았다는 걸 언제쯤 알아차릴까.
사방에 조폭들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사냥감이 아니라 사냥꾼이었다.
오히려 자신을 귀찮게 구는 이들을 싹 다 처리해서 깔끔하게 털어버릴 생각이었다.
그가 노리고 있는 자에게 닿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잡고 싶어 죽겠으면 잡아보든가.”
남자의 말에 열이 받았는지 조폭이 외쳤다.
“덮쳐!! 시발, 지가 아무리 싸움을 잘 해도 숫자엔 장사 없다고! 연장 들어, 연장!”
“죽여도 됩니까?”
“반병신은 된다고 했다!”
명령이 떨어지자 조폭들이 품에서 각자 챙겨 온 연장을 꺼내기 시작한다.
칼이나 망치 혹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각목이나 철봉들을 말이다.
조폭들이 하나 둘 연장을 꺼내기 시작했지만 남자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하지만 확실히 맨손으로 칼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법.
입고 있던 자켓을 벗더니 그것으로 한 손을 감쌌다.
남자가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을 본 조폭들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일제히 달려들었다.
“죽여!!”
“으아압!”
사방으로 달려드는 조폭들.
칼이 등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고, 머리 쪽으로는 망치가 날아든다.
남자는 우선 칼을 든 손목을 자켓으로 휘감으면서 발로 차서 조폭을 바닥에 뒹굴게 만들었다.
“으악!”
휘이익!
머리 쪽으로 날아드는 각목은 고개 숙여 피한 후, 발로 차서 떨어트리고 칼을 들었던 조폭을 향해 달려가 손목을 콱! 밞았다.
“아악! 내 손!”
챙!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칼을 놓치자, 남자가 칼을 발로 차서 멀리 떨어트리고 다시 망치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조폭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악!”
“죽어어!!”
찰나의 쉴 틈도 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한 명을 쓰러트리니 다른 조폭의 공격이 이어서 들어온다.
남자는 조폭의 주먹을 잡아 힘을 줘서 꺾어버리고 주먹으로 가슴을 가격해 쓰러트렸다.
그렇게 계속해서 오가는 공방에 남자의 몸놀림은 빠르고 강렬했다.
“미, 미친….”
숨어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형사1과 형사2가 끼어들 틈이 안날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