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68화 (568/849)

우지용이 진해솔에게 사생팬 대처 방식에 대해 일장 연설을 듣고 있는 사이.

연화정 감독은 지금 이 상황을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울상을 짓고 있었다.

“개판 났던 인식을 이번 일로 살렸으니 손해가 난 건 아닌 겁니다.”

“그래도 하필이면 영상으로 퍼진 게 봉 액션인 게 문제야! 그 액션이 어떤 액션인데! 그 따위 구도로 나온 걸 사람들이 먼저 봐버렸다고!”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이번에 촬영한 건 우리 영화 최고 명장면이 될 거였어! 그런데 그 사생팬이 망쳐버린 거야! 이미 한 번 본 영상인 이상 완벽한 감동을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해졌다고!”

“영상 다 막았어요. 얼마 안 봤을 겁니다. 공짜 홍보했다고 치는 게 어떨까요, 감독님.”

“공짜 홍보는 무슨!”

“예고편 보여줬다 치는 거죠.”

“다 필요 없고! 영상 유포한 년,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꼭 알게 해줘야 한다.”

“예예. 아무렴요.”

이번 영화에 들어간 투자금이 얼마인가?

영상 유출로 인해 생긴 피해를 정확히 따져서 할 수 있는 법적인 절차를 모두 할 생각이었다.

“그 전에 지용이한테 양해를 좀 구해야겠어. 아무리 그래도 걔 따라다니던 팬이라니까 마음이 쓰일 거 아냐.”

“에이~ 사생팬이 팬인가요. 악질 스토커지.”

“그래도, 인마. 걔가 통 큰 척해도 엄청 소심한 놈이야. 젠틀한 척 하는 건 전부 연기고. 이런 걸로 서운하게 만들어봤자 고생하는 건 나다. 그러니까 빨리 연락해서 양해 구해.”

“예엡.”

“하아~ 그리고 편집 좀 하자. 기왕 이렇게 된 거 홍보나 기깔나게 해버리자고.”

“잘 생각하셨어요.”

아쉬워도 어쩌겠는가?

아직 영화 홍보에 들어가긴 일렀지만, 이 정도로 화제가 생겼다면 이용하는 게 맞는 거다.

이후로는 큰 문제없이 인터넷에 올라간 영상이 수습 됐다.

적어도 다수가 볼 수 있는 공개적인 곳에 영상이 올라오는 것은 막은 것이다.

사생팬에 대한 고소가 들어가고, 영상을 본 사람들과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되어 얘기만 들은 다수의 사람들은 연화정 감독의 신작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채 정리가 끝났다.

이 일로 이번 연화정 감독의 영화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투자자들의 여론이 확 바뀌었으며, 진해솔의 연기력에 대한 의구심도 많이 없앨 수 있었다.

물론 마냥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해솔이 액션 영상 보셨어요? 너무 위험한 것 같던데 ㅠㅠㅠㅠㅠㅠㅠㅠ

-저도 봤어요! 보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라요.

-처음 봤을 때 저게 해솔이라고?! 하고 심장 뚝 떨어졌잖아요. 멋있기는 하지만, 너무 위험해보였어요.

-지금 계속 그런 위험한 촬영을 계속 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저런 장치로 우리 애가 완벽하게 안전하지 않

진해솔이 보여준 액션.

멀리서 흔들리는 화면으로 대충 찍은 것이지만, 철조물 위를 뛰어다니고 기계체조 하듯이 봉을 이용해 액션을 하는 건 정확하게 찍혔다.

그뿐인가?

화질도 좋아서 얼굴도 정확히 나왔다.

화려한 액션을 영화로 봤다면 대단하다며 박수를 쳤겠지만, 아무런 편집 없이 현실 그대로 찍은 영상은 팬들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저런 엄청난 동작들을 고작 와이어 하나 믿고 하고 있는 진해솔의 모습이 위태로워보였기 때문이다.

팬들은 여러 방법을 통해 항의를 넣었다.

그리고 그 항의를 마냥 무시할 수 없었던 연화정 감독과 스태프들은 끙끙거리며 머리를 싸멜 수밖에 없었다.

‘해솔이가 하는 액션이 위험한 건 사실이야.’

영화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진해솔이 그 액션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을 갖췄다는 이유로 외면해왔던 일이 바로 안전이다.

각자의 이기심으로 진해솔이라는 사람에게 너무 큰 부담을 안긴 것이다.

문제는 그걸 알고 있다 해도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거다.

지금도 안전에 최선을 다 하고 있기는 했다.

촬영할 때 아래에 매트릭스를 두둑하게 깔아두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워낙 진해솔이 보여주는 액션이 엄청나다 보니 안전장치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 ♧ ♧

“그래서 앞으로 안전에 좀 더 철저하게 신경을 쓸 예정이야.”

지용이 형 사생팬 때문에 생긴 해프닝 이후, 첫 액션 촬영 날.

감독님이 안전에 대해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나쁘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이 또한 영상이 유출 되면서 생긴 일 중 하나였기에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묻지 않았다.

“안전에 신경 써주신다는데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제 안전에 신경 많이 써주고 계신 거 알고 있어요.”

“에휴 고맙다. 네가 알아주니 마음이 좀 편하네. 그래도 좀 더 내가 신경을 써줬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사람들이 이번에 영상을 보고 내 액션에 놀라면서도 안전에 대한 비평이 많았다고 한다.

“영화가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여야 하는 건데 말이야.”

눈을 굴리며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으니 연화정 감독님이 알아서 생각을 정리하곤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번 영화는 성공할 거다. 남은 건 얼마나 성공하느냐이지. 네가 아이돌로 대단한 위치에 있다는 건 알지만, 배우로서도 진지하게 앞날을 생각해봐야 할 거야.”

“네, 감독님.”

“나는 네가 앞으로도 계속 배우로 활동했으면 좋겠다. 너는 감독한테 정말 매력적인 피사체거든.”

“저 또 주연 시켜 주실 생각 있으신 거에요?”

감독님의 말 속에서 나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녀가 해준 말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감독님이 성공할 거라고 했으니 성공하는 건 믿어 의심할 필요가 없는 사실.

이제 남은 건 얼마나 성공할지에 대한 것인데, 기왕 이렇게 기회가 온 거 얻을 수 있는 명예는 다 얻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욕심이 들었다.

감독님은 내 안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지만 내 쪽에서 영화에 대한 욕심이 가득한 상황.

“그나저나 감독님.”

“응?”

“우리가 비밀병기로 찍은 액션이 유출 됐잖아요.”

“…그렇지.”

“유출 된 비밀 병기는 비밀 병기가 아니게 되는 거 아닐까요?”

“설마?”

“네. 다른 비밀 병기를 새로 만들죠.”

“!!”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인지 감독님의 표정이 확 변한다.

이미 유출 된 액션.

아까워만 하지 말고, 그보다 더 대단한 액션을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면 되는 거다.

“그보다 더 화려한 액션을 짜보자고?”

홍 사범님이 내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불쑥 튀어나왔다.

액션에 대한 얘기는 홍 사범님을 빼고 할 순 없으니 잘 된 일이기는 했다.

“네. 그보다 더 화려한 액션, 짜주실 수 있을까요? 감독님은 그 액션에 어울릴 만한 장면을 찾아주세요.”

“봉 액션도 상당히 높은 난이도의 액션이었어. 부상 위험도 컸고. 그런데 거기서 더 화려한 액션이면 위험성도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는 거야.”

“감독님이 앞으로 안전에 더 주의를 기울여주신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괜찮을 겁니다. 사실 지금도 충분히 신경 써주시고 계셨잖아요. 거기서 더 신경을 써주신다는데, 저도 받은 만큼 보답을 하고 싶어요.”

“쓰읍, 봉 액션도 짜는데 며칠이 걸렸는데….”

“해주실 거죠?”

“그렇게 부탁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안 해주겠냐.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밀병기를 새로 짠다…. 정말 가능하겠습니까?”

연화정 감독님의 표정을 보니 영 부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연감독님이 홍사범님에게 가능성을 물어봤다.

“저도 머리를 좀 굴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근데 당사자가 해보겠다는데 시도도 안 해볼 순 없잖습니까.”

“맞습니다. 봉액션 이후에 완급 조절을 하려고 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절벽까지 미친 듯이 달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절벽까지 달린다…. 벌써 어떤 그림을 만들어야 할지 감이 좀 잡히는 것 같네요.”

연화정 감독님의 영화에 나를 주연으로 삼은 것만큼, 액션 감독으로 홍사범님을 삼은 건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꽤 놀라움을 주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홍사범님에게 이번 작품이 입봉작이지 않은가?

맨액션이라는 모험을 해놓고 입봉을 하는 홍사범님을 고용하는 건 무리수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젠 아무도 홍사범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홍사범님의 액션으로 촬영을 하면서 충분한 증명이 됐기 때문이다.

여자의 액션과 남자의 액션은 다른 부분이 존재하고, 그것을 홍사범님은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알았다.

‘아마 홍사범님 아니었으면 나한테 캣우먼 액션을 시켰을 수도 있지.’

그렇기에 이번 영화는 성공할 거다.

예정에 없던 도전도 서슴없이 해낼 수 있는 건 그들의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 홍사범님의 액션과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데 명불허전인 연화정 감독님의 실력을 확신한다.

물론 그로인해 당분간 힘들어지긴 할 거다.

하지만 영화를 위한 일이라는 점에서 누구도 불평을 말하지 않을 거다.

그 끝에 달콤한 과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니 말이다.

♧ ♧ ♧

원래부터 사장님의 출퇴근 시간은 불규칙한 편이었지만, 요즘은 새벽에 들어오거나 아예 날이 밝고 아침을 먹는 시간에 집에 와서 쪽잠을 자고 나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생겼다.

늦은 밤에 집에 들어오는 사장님과 밤에 쌍둥이들을 돌보는 그녀.

두 사람이 자주 마주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선을 그은 채로 지내던 두 사람이 부쩍 가까워지기 시작한 건 얼떨결에 일을 하고 들어 온 진해솔에게 밥을 차려주기 시작하면서였다.

“오늘도 밥을 제대로 드시지 못하신 거에요?”

“김밥 한 줄 정도 먹었어요.”

“김밥이라면 그 야채를 만 걸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요. 근데 야채 만 것만 있는 건 아니에요.”

요즘은 김밥에도 다양한 재료가 많이 들어가서 한 줄을 먹었다고 해도 배가 든든해질 정도는 됐다.

“그래도 든든한 한 끼 식사로는 부족해요! 제가 밥 차려드릴게요.”

“쌍둥이 돌보시느라 바쁠 텐데 괜찮아요. 내가 차려 먹을 게요.”

“그렇게 말하고 그냥 주무실 거잖아요.”

실 유모님이 해야 하는 일 이외에는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 스스로 저렇게 일을 받아서 하시니 난감했다.

‘보너스를 좀 더 넣어드려야겠네.’

쌍둥이들이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고, 실 유모님의 교육을 받으면서 현오와 지현이도 부쩍 예의 바르고 의젓해졌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고 있다는 걸 변하는 모습을 보며 느낀다.

보너스가 아깝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냉장고에 있는 걸 꺼내서 데우기만 한 겁니다. 그럼 저는 이만….”

“밥 먹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같이 먹죠.”

“저는 그냥 이따가 따로 먹겠습니다.”

“제가 불편해서 그러시는 거에요? 안 건드립니다. 그러니 그냥 편하게 드세요. 이 반찬 또 다시 꺼내려면 힘들잖아요.”

내가 재차 권유를 하니 실 유모님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런 일이 생각보다 잦게 일어났다.

사람이 자주 얼굴을 보고 부대끼는데 친분이 쌓이지 않으면 이상한 일.

더욱이 나한테 계속 선을 그었던 실 유모님의 은근한 태도 변화도 친분이 깊어지는데 한 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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