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는 말을 빠르게 틀 것 같아요. 옹알이를 굉장히 많이 합니다.”
실 유모님과 자주 마주치면서 상대적으로 가까워지게 되자 나는 그녀에게 쌍둥이의 성장 과정에 대해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그녀와 공통 된 화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야가 쌍둥이다보니 그랬다.
하지만 의외로 그녀로부터 듣는 쌍둥이들의 이야기는 피곤에 쩔어 있던 내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하, 귀여워라.”
“후후후! 그렇죠? 한참 귀여울 때에요. 사진 있는데 보여드릴게요.”
실 유모님의 핸드폰은 무한히 솟아나는 쌍둥이 애교 보물함이었다.
그동안 내게 보내줬던 영상들은 새 발의 피였던 것이다.
“이건 왜 안 보내줬어요? 너무 귀여운데.”
“보시는 것마다 전부 귀엽다고 왜 안 보내줬냐고 하시면 곤란해요. 영상이 한 두 개가 아닌 걸요.”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귀한 영상이라 전부 보관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사진도 아니고 영상을 매번 보내는 건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워서 선뜻 알겠다고 말이 안 나왔다.
그런 내 아쉬움을 읽은 실 유모님이 결국 졌다는 듯 말했다.
“알겠어요. 제가 보내드릴게요.”
“…그래줄 수 있겠어요?”
“쌍둥이들 영상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마음을 어떻게 외면하겠어요.”
“그럼 아예 클라우드에 올려주세요. 그럼 굳이 여러 번 일 할 필요 없을 테니까요.”
“클라우드요?”
“그건 제가 따로 설명해드릴게요.”
인터넷 공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그녀인지라 클라우드 설정을 해주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자동으로 클라우드에 올리는 설정을 해두면 앞으로 영상을 공유하는데 오랜 시간을 쓸 필요가 없을 거다.
“고마워요. 자꾸 유모님한테 바라는 게 많아지네요. 생활하는데 여전히 불편함은 없으신가요?”
평소라면 괜찮다고 덤덤하게 대답했을 유모님이 머뭇거린 건 그 순간이었다.
그녀는 뭔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말했다.
“혹시 나중에 제 부탁 하나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이요?”
“영상을 제공하는 걸로 부탁을 요청드리기 뭐하다는 건 알지만 지금이 아니고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요.”
유모님이 내게서 뭘 바라는지 모르겠으나 지금 당장 말해도 웬만한 것은 모두 들어줄 생각이 있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말씀하셔도 돼요. 굳이 부탁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들어줄 수 있는 거면 해드릴게요. 저한테 말하기 불편한 거라면 정화씨한테 말해도 되고요.”
혹시나 나를 여전히 어려워해서 필요한 게 있는데도 말하지 못하는 거라면 정화씨한테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모양이다.
“아뇨. 언니한테는 비밀로 하고 사장님께 드릴 부탁입니다.”
“아…그래요? 뭔지 말씀하세요. 부담 갖지 마시고.”
정화씨한테 비밀로 하자는 거면 아무래도 코인과 관련 된 말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그쪽 일은 정화씨한테 말을 하긴 무리가 있을 테니 말이다.
“…지금 당장 드릴 부탁은 아닙니다. 나중에…좀 더 시간이 지났을 때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중에라…. 알겠습니다. 기억해둘게요.”
“네. 감사합니다.”
무슨 부탁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자기 일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과 너무 잘 지내주고 계신 분이다.
그동안 실 유모님을 본 시간이 있었기에 무리한 부탁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녀의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승낙한 나는 다른 얘기로 빠져들었다.
“아직 엄마밖에 말을 안 하던데 아빠는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요? 제가 요즘 너무 바빠서 못 놀아주다보니 걱정 되네요.”
쌍둥이들은 요즘 입이 트여서 시끄러울 정도로 옹알이를 하고 다녔다.
하지만 그런 쌍둥이들 입에서 듣지 못한 말이 있었으니 바로 그게 ‘아빠’다.
아빠라는 단어가 주는 힘이 굉장히 컸기에 꼭 쌍둥이들에게 듣고 싶었다.
“옹알이 하는 걸 보는데, 많이 아쉬웠어요. 제가 쌍둥이들한테 너무 무심했던가 싶기도 하고요.”
다른 아이들의 경우에는 옹알이를 하며 금방 아빠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휴가가 생기면 항상 아이들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가 그렇게 돌봐주지 않으면 내 여자들이 고생을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예쁜 것도 예쁜 거지만, 개인 시간을 주기 위해서 내가 곁에 붙어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남자애가 끼어 있었으니까.’
반면에 쌍둥이 같은 경우에는 아이들을 너무 잘 봐주는 유모님과 칸나가 곁에 있다.
굳이 내가 없어도 개인 생활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덕분에 시간이 나도 굳이 애들에게 붙어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애들이 예쁘니 자주 들려서 놀아주는 건 당연한 거긴 한데, 아무래도 반드시 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빈도수는 차이가 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의 결과가 옹알이를 시작한 쌍둥이들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빠라는 말도 못 듣고 있다니! 이건 문제가 심각하다고!’
아빠라고 불리고 싶은 욕심은 잔뜩인데 정작 쌍둥이들한테 쓰는 시간은 너무 부족하고….
과연 쌍둥이들이 나를 아빠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심도 든다.
그냥 가끔 왔다가 사라지는 아저씨로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위기감을 느껴도 부족하지 않을 상황.
반면 정화씨 얘기를 들어보니 쌍둥이들이 유모를 너무 좋아해서 언젠가는 그녀에게 엄마라고 부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실 유모님은 아니라면서 다시 호칭을 고쳐주긴 했지만, 그만큼 쌍둥이들에게 실 유모님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뜻이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애들이랑 보내는 시간을 좀 늘려야 하긴 하겠죠?”
쌍둥이뿐만 아니라 현오와 지현이 그리고 태양이 모두에게 신경을 써주고 싶다.
하지만 하는 일이 있는지라 아이들에게 시간을 쏟는 것도 힘들고, 그 관심을 골고루 주는 것도 힘들었다.
내가 신경 써야 할 사람은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내 가족, 그러니까 내 여자들에게도 시간을 써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 한다.
가족들이 많아진 건 좋은 일이지만 책임져야 하는 인원이 많아진 만큼 어깨가 무거워진 것이다.
“아이들한테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해내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분들도 사장님께 서운해 하지 않으실 거고요.”
“그래도 자주 얼굴을 보고 놀아줘야 하는데…. 이 영상을 보니까 내가 모르는 시간 속에서 쌍둥이들이 예쁘게 크고 있다는 게 좀 서운해지더라고요. 정작 시간을 못 낸 건 본인이면서도 말이에요.”
그래서 이번에 영화를 찍으면 당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가족들과 여행을 다닐까 생각 중이다.
그때쯤이면 쌍둥이들도 돌아다니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자랐을 것이고, 그동안 시간을 보내지 못한 가족들의 서운함도 여행이 풀어주지 않을까?
“쌍둥이들은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장님과 영상 통화를 하기 전에 충분히 설명을 해주고 있으니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쌍둥이들이 워낙 똑똑해서 설명만 들어도 어느 정도는 알아들으십니다.”
위로를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실 유모님이 위로를 해준다.
거기다가 그녀가 해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효과적이었다.
“아마 며칠이면 아빠라는 말을 꼭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약속드리겠습니다.”
“위로 받을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위로를 받았네요. 고마워요. 덕분에 마음이 좀 차분해졌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새벽에 쌓아 올린 신뢰는 쌍둥이들과의 영상 통화에서 아빠빠! 라는 말을 들으며 한층 더 커졌다.
정말 그녀가 말한 대로 쌍둥이들은 나를 아빠로 인지하고 있었고, 아빠라는 말도 드디어 듣게 된 것이다.
뜬금없이 쌍둥이들이 아빠라는 말을 자각한 것은 아닐 테니 분명 실 유모님이 나에게 들려주기 위해 아이들에게 꾸준히 아빠라는 말을 익힐 수 있도록 들려줬을 것이다.
‘무슨 부탁인지 몰라도 꼭 들어드려야겠다.’
그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부탁으로 보답할 수 있다면야.
그렇게 유모님은 나에게도 든든하게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갔다.
♧ ♧ ♧
“자~ 다들 하나 둘 셋하면 힘껏 웃어주세요! 하나~! 두울~! 세엣!!”
찰칵-!
단체 사진을 찍은 우리들이 봉사 활동의 끝을 마무리했음에 박수를 쳤다.
팬들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은 정말 뜻깊고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사실 봉사활동을 계획할 때, 팬들이 우리의 지시대로 따르지 않을 수 있어서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팬카페에서도 뽑는 인원의 뒷조사를 철저하게 해서 문제가 있는 팬은 제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처음으로 팬과 함께하는 봉사활동은 아무 문제없이 잘 마무리가 됐다.
앞으로 또 이런 이벤트를 계획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팬과 함께하는 봉사활동이 참 뜻 깊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 피곤하다.”
“근데 우리 이대로 헤어지는 거에요? 방송 켜서 팬들이랑 잠깐 소통 하고 가는 건 어때요?”
봉사 활동을 끝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벤에 올라 탄 상황에서 우연이가 제안을 했다.
라이브 후기 방송을 짧게라도 하자는 거다.
“후기 방송?”
“네!”
“라이브 방송을 했어도 우리가 직접 소통하진 못했잖아.”
사실 예정대로 라이브 방송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걸 팬들에게 보여주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가 봉사 활동을 온 건 홍보하기 위함이 아니라 말 그대로 봉사를 위해 온 것이지 않은가?
일을 해야 해서 팬들과 소통을 하지는 못하는 건 당연한 거였다.
사전에 미리 그 부분은 양해를 구해놔서 팬들이 불평을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입장에선 제대로 된 소통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키자키자키자!”
“누나~ 장비 다 있죠?”
“있긴 하지.”
“그럼 켜주세요!”
“너희들 안 피곤해? 하루종일 고되게 일했잖아.”
“피곤하니까 라이브 방송 하는 거죠. 우리 팬들 보고 힐링 하려고요.”
우리들의 기발한 대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매니저 누나가 라이브 방송을 켜줬다.
“안녕!”
“안녕! 우리 또 왔어요.”
“왜 또 왔냐고 뭐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윙이들이랑 소통을 많이 못해서 왔어요. 우리가 일하는 거 보기만 하기 지루했죠?”
멤버들이 능숙하게 팬들을 홀려버린다.
-얘들앙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피곤할 텐데 라이브 방송 해주는 거야?ㅠㅠㅠㅠㅠㅠ사랑해ㅠㅠㅠㅠ
“아니에요. 우리 안 피곤해. 사실 쪼금 피곤한데, 우리 윙이들 보고 힐링하려고 왔어요.”
-우리 보면 힐링이 되는 거야?
-♥♥♥♥♥♥♥♥♥
-오늘 너무 즐거웠어! 봉사 활동에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더라!!
“다들 고생 많았어요. 봉사 활동에 참여해줘서 고맙고, 방송으로 봐준 여러분들도 감사해요.”
“마음만은 저희와 함께 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당연하지.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탈락했어 ㅠㅠㅠㅠㅠ
-사랑해! 남은규!!!!!!!
-Please, marry me
“오늘 봉사활동 와주신 분들께서 다들 열심히 봉사를 해주셔서 관계자분들이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많이 받았어요. 정말 감사해요. 윙이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였어요.”
당첨 돼서 봉사 활동을 하러 온 팬들이 우리에게 과한 관심을 줬으면 이곳 관계자분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팬들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봉사에 집중을 해줬다.
덕분에 기분 좋게 팬들과 사진도 찍고 선물도 주고 밥도 함께 먹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선물 중에는 사인도 들어가 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 두 번으로 끝내기엔 너무 아쉬워요.”
“맞아요! 또 같이 봉사해요!”
“그때도 오늘처럼 봉사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사인회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러는 거에요.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