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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71화 (571/849)

“넌 진짜 인생 폈네.”

한참 회사에 취직을 하고 이곳저곳에서 치이고 다니는 친구들의 한탄을 들어주던 중.

란나가 뜬금없이 친구들에게 부럽다는 말을 들었다.

“에이, 왜 그래.”

“무지 부럽긴 하지. 대학 다니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무려 프렌차이즈 사장님이 되셨는데.”

“지금 나 까는 거야? 남자 잘 만나서 인생 폈다고?”

“까는 게 아니라 부러워서 그런다. 부러워서.”

“나도 뭐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친구들이 자신을 부러워하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서 이런 여유와 부를 누리고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근데 사실 대놓고 말해도 돼. 남자 잘 만나서 인생 핀 건 맞으니까. 별로 기분 안 나빠.”

“씨, 부러운 년. 그 잘생긴 사장님을 내 친구가 낚아챌 줄 누가 알았겠어.”

괜찮다는 말을 하니 친구들이 냉큼 나에게 부러움을 토해낸다.

좀 격한 말을 들어도 크게 상처 받지 않는다.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친구가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미치도록 부러웠을 테니 말이다.

“나 예전부터 묻고 싶었던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

“너 성형한 거야?”

“성형? 아니, 한 적 없는데.”

“이거 나도 엄청 궁금했었어! 너 왜 이렇게 예뻐지니?”

“내가? 우리 꾸준히 봤잖아. 얼굴 퉁퉁 부어서 나타난 적이 없는데 언제 그런 걸 해.”

“없긴 했지. 그래도 계속 예뻐지니까. 돈으로 부작용을 최소화 한 거 아닌가 싶어서.”

“그런 성형수술이 어딨냐? 그런 거 있으면 부자 중에선 안 예쁜 사람이 없을 걸?”

친구들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 물어 본 거 였는지 쉽게 수긍을 했다.

“돈도 많아, 남친도 죽여줘, 얼굴도 점점 예뻐져. 넌 전생에 나라라도 구한 게 틀림없어.”

“사는 게 즐거울 것 같아.”

친구들의 금칠을 받아주다가도 너무 과하다 싶었을 때 적당히 만류를 했다.

“그만해. 너희들이 자꾸 그러니까 내가 미안해지잖아.”

“그래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네가 그런 행운을 잡아서 다행인 것 같아. 넌 적어도 재수 없지는 않거든.”

“맞아. 돈 많이 벌었는데도 거들먹거리지 않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 솔직히 우리는 네가 변할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어떤 식으로 변해?”

“그냥 뭐 흔히들 그런 거 있잖아. 사람 급 따지는 거.”

“나 그런 사람 아닌데. 그리고 친구끼리 급을 왜 따지니?”

“그래서 네가 좋은 거야.”

친구들이 자꾸 칭찬을 해주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거 오늘 점심 나한테 쏘게 하려고 하는 작전인 거지? 원래 안 이랬잖아.”

보통 친구들과 만나도 이런 식으로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 경우는 없었다.

오늘이 좀 특이했던 거다.

“흐흐, 들켰어?”

“맛있는 것 좀 사줘! 50호점도 대박났다며.”

“점심 맡겨놨니? 으이구!”

“내가 요새 너희 카페에서만 커피 마시거든? 앞으로도 단골 해줄 테니까 뇌물 좀 받쳐봐.”

2호점을 낼 때만 해도 가게가 부디 적자만 안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어느덧 50호점 프렌차이즈가 생겨났다.

당연하지만 50호점도 큰 이익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뿐인가?

해외로 프렌차이즈가 진출하기까지 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내가 해낸 일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더라.

‘잘 생각해보면 내가 해낸 것도 아니지.’

프렌차이즈 회사가 잘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

친구들은 내가 혼자서 다 한 줄 알지만, 정확히 따져보자면 사장님의 힘이 컸다.

그가 연결해준 인맥 덕분에 모든 일처리가 척척 진행 됐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확장을 위해 무한히 제공해주는 투자금도 성공의 큰 이유 중 하나였다.

투자금이 쭉쭉 나오고, 회사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인맥들도 소개시켜주는데 실패를 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니겠나?

돈을 그렇게 제공해줬는데 실패를 할 정도로 무능하지 않았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그 기회를 붙잡은 것.

그것이 유일하게 말해줄 수 있는 성공 노하우였다.

‘이런 말을 해도 친구들한테는 자랑질 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그래서 이런 사정을 자세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 취직해서 각종 갑질로 스트레스 받고 있는 친구들에겐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근데 애인이랑 언제 결혼하는 거야?”

“…결혼?”

“응. 만난 지 꽤 됐는데 왜 아직도 결혼 소식이 없나 싶어서. 프러포즈 안할 거야? 그렇게 대단한 애인인데 네가 좀 조급하게라도 붙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

“에이~ 그건 너무 오지랖이지. 란나가 알아서 하지 않겠어?”

20대 후반이 되어 가는 이제 슬슬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였다.

더욱이 애인은 잘나도 너무 잘난 남자.

여자가 더 있다는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런 대단한 남자에게 여자가 자기 혼자만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인에게 프러포즈를 하지 않은 건 남에게 말하지 못할 아픔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란나는 저도 모르게 배를 손으로 쓸었다.

언제부턴가 자주 이런 행동을 하게 됐다.

그건 너무 소중한 존재를 그녀의 실수로 잃어버리게 되면서 생긴 뼈 아픈 습관이다.

‘멍청이.’

그래.

어느 정도 눈치를 챘겠지만 임신을 했었고, 부주의한 실수로 아이를 잃어버렸다.

그와 결혼을 하려고 했던 것도 아이를 잃어버리면서 중단 되었다.

더 서글펐던 것은 그가 아이를 잃어버린 것으로 결혼을 중단시킨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오히려 더 결혼을 밀어붙이려 했다.

하지만 도저히 아이를 잃어놓고 행복하게 결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하지 않겠다고 고사했다.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할 일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에 정신없이 일에 매달렸더니, 어느새 회사가 이렇게 커져버렸지.’

사장님은 우울증에 걸린 나를 더욱 더 살뜰하게 살펴주고 아껴주었다.

하지만 아이를 잃어버린 상처가 생각보다 커서 그런 사랑도 편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더라.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게 바로 일이었다.

프렌차이즈가 해외 진출을 하고, 50호점이 생긴 현재.

남들 눈에는 잘 나가는 소위 자수성가 CEO가 되었다.

정작 그 안에는 고민과 고통이 가득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결혼은 아직 생각 없어.”

“왜? 애인이 하고 싶지 않대?”

“야야. 너 왜 이렇게 궁금한 게 많아? 란나가 알아서 잘 할 거라니깐.”

“궁금하면 물어볼 수도 있지. 근데 나는 별로 결혼하고 싶지가 않네. 그냥 지금처럼 일하고 지내는 게 좋아.”

“어휴, 나였으면 일단 남자 덮쳐서 애부터 만들고 바로 결혼하겠다. 그렇게 좋은 남자 방치하면 다른 여자가 빼앗아갈 걸. 내가 질투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너 걱정 돼서 하는 말이야. 미련하게 굴지 말고 잡으라니까?”

친구의 조언이 다소 예민한 문제를 건드린 건 맞다.

하지만 친구가 왜 저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지는 이해하고 있다.

누가 봐도 지금 내 상황이 답답할 만하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놓치면 어떻게 하냐고. 그 아까운 남자를 놓칠 거야? 그 남자한테 버림 받으면 너한테 남는 게 뭐냐고.”

내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는 엄연히 애인의 것.

그러니 그와 헤어졌을 때 여파가 클 수밖에 없는 건 맞다.

‘정말 생각해보니 끔찍하네.’

사장님과 헤어졌을 때 그녀에게 남는 게 뭘까?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에게 분배 받은 돈이 전부일 거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돈이 차지하는 중요도가 매우 높은 것은 맞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그녀에게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직장도 잃고, 미래의 가정도 산산조각 나는 거네….’

친구가 대신 해준 걱정이 괜한 일이 아닌 거다.

사장님과 헤어지는 건 내가 두려워해야 하는 일이 맞았다.

‘그래도 내가 어떻게 말을 해.’

아이를 잃은 건 온전히 그녀의 잘못.

그 큰 잘못을 만회하지 못한다면 감히 그에게 프러포즈 할 수 없을 뿐이었다.

‘나 정말 구제불능이네.’

오랜만에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만난 친구들.

하지만 친구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 기분은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친구가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 충고를 해준 것은 알지만, 너무 아픈 말을 들은지라 친구에 대한 반발심도 생길 정도였다.

“란나.”

“아! 오셨어요.”

“오늘 친구 만났다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얼굴이 별로일까?”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직업을 가진 사장님인지라 그가 자신을 찾아오는 날을 정기적으로 정해둔 상태였다.

고작 해봐야 한 달에 4번에 불과했지만, 한 번 왔을 때 그동안의 서운함과 그리움을 싹 날려주는지라 불만을 가질 세가 없었다.

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내 얼굴을 봤는지 곧장 걱정을 드러냈다.

내가 이렇게까지 표정 관리를 못했나 싶어 깜짝 놀라 서둘러 표정을 갈무리 했다.

“아니에요. 잘 놀고 왔어요. 맛있는 거 먹고 왔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없잖아요.”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기분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정말 아닌데.”

“그럼 내가 잘못 본 건가? 기분 좋은 거 맞죠?”

“당연하죠. 더군다나 사장님이 오신 날인데 제가 기분이 나쁠 수가 없는 걸요.”

내 말에 설득이 됐는지 걱정하던 사장님의 표정이 풀렸다.

“다행이네. 잘 지냈어?”

“아뇨, 이번 주는 유난히 사장님이 많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세상에. 그런 말을 벌써 해버리면 못 참을 것 같은데….”

“푸훗! 빨리 씻고와요. 저도 씻어야해요.”

그동안 메시지를 통해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눈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는 건 메시지로 주고받는 것과 다른 느낌을 주었다.

서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 것 마냥 서로의 귀에 속닥이면서 생활했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와 사장님에게는 매우 익숙한, 습관과도 같은 일이었다.

두 사람 모두 몸을 씻고 가볍게 잠옷을 걸친 채로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나는 사장님의 넓은 가슴에 안겨 일주일 내내 있었던 일을 재잘댔다.

그에게서 나는 특유의 향기를 듬뿍 마시면서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말로 우울해진 기분을 풀었다.

“사장님한테서 나는 향기를 맡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져요. 이 향기를 향수로 만들면 대박 날 텐데.”

“이건 체향이라 향수를 내진 못할 걸?”

“그게 너무 아쉬워요. 사장님 보고 싶을 때 향수를 쓰면 마음이 달랠 수 있었을 거에요.”

“그럼 앞으로 좀 더 자주 만날까?”

“…정말요? 바쁘시잖아요.”

“널 만나러 오는 거면 바빠도 시간을 내겠다고 했잖아. 보고 싶다고 말을 했으면 그날 밤에 바로 만나러 왔을 거야.”

“그럼 저 정말 사장님이 못 견디게 보고 싶어지면 보고 싶다고 할 거에요.”

“꼭 그래야 한다?”

사장님이 너무 좋다.

그가 카페를 운영하게 해주고, 아이를 잃어버렸어도 끝까지 결혼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아주는 다정한 사람이라서 좋았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단하지도 않은 사람인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라 행복했다.

그리고 이렇게 온 마음에 행복이 가득 찰 무렵, 문득 생각이 나버린다.

자신이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멍청한 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와 만나는 시간이 행복하면서도 괴로웠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가 시궁창으로 떨어져버리니 말이다.

“또 이 반지 끼고 오셨네요.”

란나는 문득 사장님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보며 씁쓸해졌다.

그의 손에는 결혼하자는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 나눴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사장님은 씁쓸해 하는 그녀에게 보란 듯이 손가락을 활짝 펴서 반지를 보였다.

“언제까지고 마음이 달래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 투정은 받아줘요. 마음이 조급해서 이러는 거니까.”

사장님은 아직도 그녀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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