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82 - #85. 개봉 (13)
멈춰선 그림자의 앞에는 다수의 그림자가 모여 있었다.
[저기 있다!! 저 새끼 잡아!!]
혼란스러운 발걸음 소리들.
그림자는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에 느긋하게 탁탁 바닥을 두들겼다.
다수의 그림자가 마침내 골목길을 전부 에워쌌을 때.
그림자를 발 타고 화면이 위로 움직였다.
당연하지만 그림자의 끝은 누군가의 발이었고, 발을 타고 다리와 허리 그리고 이내 상체가 드러났다.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훤칠한 남자의 신체가 보이다가 이내 얼굴이 다다르기 전 화면이 전환 된다.
버려진 공사장 철조물 사이를 화려한 액션으로 뛰어다니는 남자가 조폭들을 차례대로 쓰러트렸다.
“어우~ 대박.”
남자의 몸이 휙휙 허공을 날아다니니 예고편을 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믿어지냐? 저게 유출 됐던 액션이야.”
화면이 휙휙 넘어가면서 남자의 액션이 한층 더 화려하게 꾸며진 상태였다.
“유출 된 영상이랑 예고편에 나온 액션이 똑같아?”
“저건 편집이 들어간 거니까 잘 모르겠는데. 저게 훨씬 볼 만하긴 함. 어우~ 저건 영상에 나왔던 거다. 우리도 이따가 철봉에 매달려서 저거 한 번 해볼까? 되려나 모르겠네.”
“우리가 저걸 어떻게 해.”
“쟤는 하잖아.”
“쟤랑 우리랑 똑같냐? 괜히 나대다가 다친다. 저런 건 운동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나 하는 거야.”
“저거 대역도 안 썼다던데? 진해솔이 운동 선수는 아니잖아.”
“쟤는 춤추잖아.”
“춤추면 저런 것도 된다고?”
해보면 될지도 모른다며 투닥거리던 두 사람은 이어진 영화 예고편에 다시 집중했다.
“진해솔 낙하산이다 비리 있다 연화정 감독 감 떨어졌다 이러면서 난리쳤는데 예고편 보니까 싹 다 개소린 건 알겠다.”
“저런 걸 할 수 있는데 캐스팅을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신체 능력이 좋은 사람을 찾으려면 있긴 할 거다.
하지만 진해솔처럼 잘 빠진 몸에 독보적인 미모와 엄청난 인지도를 가졌는데 액션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건 어려웠을 거다.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진해솔의 액션을 본 사람들의 얼굴에 흥미가 생겨난다.
화려한 발차기에 나가떨어지는 적들을 보며 감탄하다가 이내 화면 한 가득 진해솔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화면에 나오자 다른 의미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어우~”
“얼굴 미쳤네.”
“저게 CG가 안 들어간 게 판타지 아니냐?”
꺄악!
“누가 비명도 지르네.”
“저걸 봤는데 비명을 안 지를 수 있겠냐?”
남자가 봐도 감탄이 나오는 얼굴인데 여자들이야 오죽하랴.
“시발, 인정.”
“저렇게 보니까 연기도 좀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거 착각이냐?”
“연기는 예고편으론 모르지.”
“그래도 눈빛 함 봐봐. 죽여주지 않냐? 당장 살인 쌉 가능인 듯.”
“정작 저러고 영화 보러 들어갔다가 국어책 읽을 수도 있음.”
영화는 감독의 예술인 법.
개떡같이 연기를 해도 감독이 유능하면 어떻게든 수습이 되는 법이다.
진해솔의 연기를 기대할 수 없다 해도 이런 예고편을 본 이상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개봉일이 언제지?”
예고편을 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개봉일을 궁금해 했다.
“다음 주 월요일이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예고편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왜!!! 왜 저걸 못 잡냐고!!!]
“남자가 하는 액션은 보통 액션이랑 느낌이 확 다르다.”
“그치그치? 나도 그 생각 했어.”
“속도는 좀 느린데, 무게감이 있어.”
“무게도 무게지만, 파워풀하잖아! 시원시원하다고!”
여태까지 액션은 여배우들의 전유물이었고, 여성 액션은 아무래도 유연함과 민첩함을 통해 화려한 공방을 오가는 액션이 보통이었다.
민첩하고 유려한 액션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에게 진해솔이 보여주는 묵직하고 파워 넘치는 액션은 처음 맛보는 신세계였다.
진해솔의 주먹 한 방에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액션도 지금은 느끼기 어려운 남성의 강인함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저런 남자가 어딨어.’
너무 과한 설정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거친 숨소리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보면 심장을 짜르르하게 울리는 힘이 있어서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이건 봐야겠다. 일단 맨액션이라는 것부터가 궁금하잖아.”
남자는 낯선 액션에 대한 흥미를, 여자는 느껴보지 못했던 남자의 새로운 매력에 흥미를 가진 채 영화 ‘그림자’가 개봉 되는 날을 기다렸다.
♧ ♧ ♧
-오늘도 나는 여기서 나가지 못했다. 감금 3일차….
-어 딜도 망가!
-나가주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 나만 즐길 거야. 하악하악하악하악!
-진해솔시발납치해서영원히가둬두고키우고싶다
-여기 범죄자가 있어요! 여기 범죄자가 있어요!
-진해솔 상체 노출 실화?
-??? 상체 노출이라뇨. 도대체 어느 부분이죠?? 왜 저만 못 보고 있는 거죠?
-3:18에서 가슴골 노출함.
-시발 그냥 단추 하나 푼 거잖아 미친년아 진짠줄 알고 모니터 핥을 준비 하고 있었구만.
-여기서 빠져나가게 해줘!! 이것들이랑 동급 취급 당하고 싶지 않다고!!
“예고편 댓글 엄청 웃기네.”
“좀 위험한 거 아니야?”
“취향 이상한 사람들이 달라붙는 것 같은데, 형 조심해.”
시간이 훌쩍 흘러 어느새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멤버들도 이번 영화는 기대가 컸기에 개봉날이 잡히고 홍보 일정이 생기자 부쩍 관심을 드러냈다.
마지막 촬영을 하고 스태프들과 밤새 회식을 달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우리 시사회에 초대해줄 거지?”
“당연하지. 딱 기다려. 나도 아직 편집 된 건 못 봤는데, 감독님이 엄청 잘 나왔대.”
“오오오~!”
“이러다가 해솔 형 막 외국 영화제 가고 그러는 거 아니야?”
“이야아아~!!! 영화배우!!!”
솔직히 액션 촬영인지라 만져야 할 게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다.
그런데 감독님이 편집실에서 숙식하면서 일을 했는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빠르게 개봉 날이 잡힌 것이다.
‘꿀 휴가 보내고 있었는데 아쉽네.’
영화 촬영이 끝나고 난 이후 나는 개인 활동을 줄이고 집안에서 휴가를 즐겼다.
물론 휴가라고 해서 정말 휴식만 취할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나름 알차게 휴식을 취했던 것 같다.
참고로 나는 스케줄이 없을 때, 란나에게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란나가 예정대로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그날 내가 그녀의 안에 넘치도록 싸서 넣어놨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단번에 임신이 될 줄은 몰랐는지 란나가 많이 당황스러워 했다.
‘둘째 때문에 첫째가 많이 생각이 났는지 유난히 많이 울었지.’
란나의 흔들리는 멘탈을 잡기 위해 뭐든 해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그녀의 곁에 있는 거였다.
그리고 나는 때마침 시간이 많았다.
‘좀 아슬아슬하긴 했는데, 그래도 시기가 맞았어.’
그녀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당시에는 한참 마무리 영화 촬영을 하고 있어서 란나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매우 부족했다.
하지만 곧 촬영이 마무리 됐고, 시간이 생기자마자 란나에게 딱 달라붙어서 지낸 것이다.
다른 곳에 가지 않고 그녀의 곁을 지킨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내가 곁을 지키니 란나의 멘탈이 빠르게 회복했다.
더불어 란나를 임신 시켰을 때 꾸준히 설득을 한 것도 멘탈을 회복시키는데 큰 도움이 됐다.
‘사람을 미리 구해놓은 것도 컸고.’
육아 휴직을 낼 것을 고려해서 미리 비앙카에게 사람을 구해두라고 했는데, 란나가 회사를 걱정하기에 그 사실을 말해줬다.
내가 이미 임신 사실을 알게 되기 전부터 준비를 단단히 했다는 걸 알게 되자 그녀가 나를 또라이 보듯이 보더라.
‘나는 무조건 100% 임신이라는 걸 알지만 란나는 아니었으니까.’
이미 임신이 현실이 된 상황.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앞뒤 가리지 않고 직진 하는 나에게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도 계속 다니겠다는 고집 한 번 안 부리고 바로 육아 휴직을 냈다.
임신 초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이다 보니 그랬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철저하게 몸을 사렸다.
“우리 도움 필요한 건 없어?”
“난 이미 SNS로 홍보했어!”
“형! 제 라디오 나올래요?”
우연이는 요즘 라디오를 하고 있다.
“좋지. 스케줄 잡아줘.”
“오오오! 웬일이래요?”
“예능도 웬만하면 빼지 않고 나갈 생각이야. 이번 영화 사활을 걸었거든.”
홍보에 도움이 되는 거면 전부 다 할 생각이었다.
휴식기 때 열심히 란나를 달래준 덕분에 현재는 많이 안정이 된 상태다.
그래서 자리를 비워도 불안해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아이도 내가 미리 다 손을 써놨기에 첫 아이처럼 허무하게 잃은 일은 없을 것이다.
“홍보에 완전 진심이네?”
내가 웬만하면 가리지 않고 출연하겠다고 하니 멤버들은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그동안 란나 때문에 활동을 자재한 것이 예능 출연하는 걸 안 좋아한다는 오해를 하게 만든 것 같다.
임신한 애인 때문에 활동을 안 한 거라고 하면 충격을 받을 게 분명해서 오해를 풀지는 않았다.
“당연하지. 이번 영화 망하면 앞으로 해솔이 형 연기 활동하는데 많이 힘들어져.”
준이가 나 대신 설명을 해준다.
“다른 사람들은 망해도 잘만 활동하는데 왜 형만 힘들어지는데?”
“연화정 감독님의 영화니까.”
“아~ 맞네. 연화정 감독님 작품인데 마냥 좋은 게 아니구나.”
“대신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게 엄청 크지.”
“안 망할 거야. 그래서 홍보 활동도 열심히 하려는 거고.”
이번 영화가 실패하면 손해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된 멤버들이 홍보 활동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더욱이 내 홍보 활동에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사람은 멤버들 뿐만이 아니었다.
지용 형과 소원 형님 그리고 주이원 선배님, 신애와 멤버들을 더해서 그동안 함께 했던 연예계 인맥들이 영화 홍보에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연하지만 주아 누나와 민영 누나도 빠지지 않고 나섰다.
[영화 ‘그림자’ 본격적으로 홍보 활동 나서는 진해솔! 영화에 사활을 걸었나?]
[신비주의였던 진해솔의 반전 매력! 의외로 털털한 사람.]
[진해솔의 영화 홍보 활동에 내조하는 진주아, 한민영!]
[미리 보는 ‘그림자’ 액션! 화려한 돌려차기에 입이 떡 벌어져]
[에어플레인 진해솔 예능 아자차차! 에서 밝히는 감독님과 특별한 인연은?]
[아이돌이 아닌 배우로 돌아왔다! 배우 아우라 솔솔~ 진해솔이 밝히는 ‘그림자’의 시청 포인트.]
TV를 키면 내 얼굴이 보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는 많은 곳에 출연을 했다.
본업 할 때도 이 정도로 나오진 않았는데, 영화 홍보 때문에 각종 방송에 나온다며 욕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영화가 그만큼 중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망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컸다.
욕을 먹는 걸 알면서도 홍보 활동을 강행했고, 노력한 보람은 확실히 있었다.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고 싶다는 기자들이 넘쳐났고 시사회 티켓을 받길 바라는 연락이 핸드폰에 넘쳐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