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83 - #86. 정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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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정 감독 ‘그림자’ 시사회 상영 후기]
시발! 안 본 눈 삽니다.
개봉하면 2차 바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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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본 눈 산다기에 혹평하는 줄 알았는데 반전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
-개꿀잼임? 후기가 머 이리 성의 없냐.
-그만큼 재밌으시다는 거지.
-그래서 ㅈㅎㅅ 연기 잘함?
-(ㄱㅆ) 쌌다. 앞으로 형님이라고 부르려고.
화려한 스타들이 초대 되어 진행 된 시사회.
연화정 감독님의 인맥도 엄청나서 취재를 온 기자들이 신나게 셔터를 눌러댔더라.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도 호평하는 경우가 많아서 시작이 굉장히 좋았다.
나도 영화의 완성본을 보는 건 시사회 때가 처음이었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
특히 편집이 들어간 내 액션은 촬영을 하고 모니터로 봤을 때보다 훨씬 진화해 있었다.
역시 연화정 감독!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편집이었다.
화면의 구도도 그렇고 스피드한 화면 전환 그리고 전체적인 색감도 마음에 쏙 든다.
영화를 본 멤버들도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형!!! 너무 대단해요!!!!”
“저게 진짜 형이 혼자서 다 한 액션인 거죠?”
“응. 대역 안 썼지.”
“나도 봉 액션 해보고 싶어!”
“나는 마지막에 골목 액션이 너무 멋있더라. 와~ 1인칭으로 쭉 이어지는데 너무 멋있었어.”
“맞아. 나도 그 장면이 제일 생각나.”
봉 액션도 호평을 받았지만, 이미 예고편에 사용하고 유출까지 됐던 장면인지라 생각만큼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계획했던 비밀병기 ‘그 장면’은 관객들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나도 모르게 막 주먹이 쥐어지고 땀이 나더라.”
“영화 속으로 들어가서 내가 싸우는 것 같았어.”
멤버들이 호평을 쏟아낸 것처럼 요즘 사람을 만나면 항상 하는 얘기가 영화 잘 봤다는 소리였다.
영화는 순조롭게 개봉 이후 100만을 가뿐히 넘어 200만, 300만 이상으로 쭉쭉 올라갔다.
[모두가 no라고 했을 때 연화정 감독만 yes를 외쳤다.]
[연화정 감독의 끝나지 않은 성공신화! 이번에도 대박 터졌다.]
[손익분기점 넘긴 ‘그림자’. 배우 진해솔의 다음 횡보는?]
[에어플레인 진해솔, 성공적인 스크린 데뷔에 쏟아지는 러브콜.]
이런 성공은 당연하지만 많은 부를 가져다준다.
기사에 났듯이 이곳저곳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오죽했으면 멤버들이 요즘 우리 회사를 나 혼자 먹여 살린다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
[연화정 감독 ‘그림자’ 관객수 1401만으로 마무리.]
[‘그림자’ 1400만 넘었다! 한국 천만 영화 흥행 기록 몇 위?]
그때쯤 영화도 슬슬 스크린에서 내려왔다.
총 관객 수는 14,011,070명.
줄여서 1401만의 관객이 우리 영화를 봐준 것이다.
한국 천만 영화 흥행 기록에서 2위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1위는 국뽕을 자극하는 사극 영화로 1700만이라는 압도적인 숫자인지라 감히 넘을 엄두도 안 나더라.
국뽕을 자극하지 않았고, 맨액션이라는 도전적인 영화가 얻기엔 과분하다 볼 수 있는 관객수인 것은 틀림없었다.
“부르는 곳이 왜 이렇게 많아요? 이제 그만할 때도 안 됐나?”
스크린 데뷔하자마자 주연인데다 천만 영화의 주연이 된 나를 부르는 곳은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것도 고르고 고른 스케줄이야. 거의 끝물이니까 이것까지만 하자.”
“끄응, 알았어요. 이것까지만 하는 거에요.”
그동안 들였던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냥 거절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끝물인가 싶었을 때 연화정 감독님의 작품이 해외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또 다시 화제에 올랐다는 거다.
“시상식 준비하자!”
“아….”
이제 좀 쉬나 했더니 이젠 시상식 준비가 기다렸다.
영화제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서 의상을 준비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물론 옷을 입어보기만 하면 되는 나보단 우리 코디팀이 고생을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해외 시상은 날이 많이 남았고, 내가 가장 처음으로 참석한 영화제는 국내 영화제였다.
“뭘 입혀도 다 잘 어울려서 선택하기가 더 어려워!!”
“…….”
“해솔아!!! 이거 어때?”
“저 배우로 거기 가는 거잖아요. 이건 너무 튀지 않아요?”
눈이 뒤집힌 코디가 누가봐도 튀는 화려한 체크무늬의 정장을 들려줘서 얼마나 난감했는지 모른다.
영화제에 참석한 배우들이 축하 무대를 하러 온 가수들의 무대에서 무반응을 보여 급 따지는 거냐는 비아냥을 들었던 일이 있다.
그만큼 영화제에 참석한 배우는 품위를 지킬 필요가 있었다.
가뜩이나 아이돌이라는 점에서 눈을 흘겨오는 배우가 있을 텐데, 저렇게 화려한 정장을 입고 나타난다?
‘모난 돌이 돌 맞는 거지.’
잠깐 눈이 돌아갔던 코디도 내 설명에 납득을 했다.
“아…이거 진짜 잘 어울리는데.”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히잉, 그럼 이거는?”
“색이 너무 밝잖아요. 검정으로 가요.”
“물론 안 어울리는 색이 없기는 하지만 이건 너무 무난한데….”
코디와 상의 끝에 짙은 남색 정장과 검은색 와이셔츠를 매치한 깔끔한 정장을 입는 걸로 결론을 냈다.
코디는 너무 무난하다며 울상을 지었지만, 남색 정장도 평범한 정장에 비하면 화려한 축에 속했다.
그도 그럴 게 가슴 쪽에 꽃 모양으로 다이아몬드를 달아놨던 것이다.
이 다이아몬드 값만으로도 정장의 값이 억대로 훌쩍 뛰었다.
모 디자이너의 작품이라던데,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드는 정장이었다.
“이런 무난한 걸 입어도 멋있네, 얼굴 개사기….”
“이게 어떻게 무난한 거에요? 가격이 얼마짜린데.”
“억대 정장도 네 얼굴에 비하면 초라하다구!”
코디는 얼굴에 졌다며 패배감을 느끼는 것을 허허 웃음으로 무마하고 시상식으로 가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아이돌로 상을 많이 받아봤는데, 배우로서 처음 걷는 레드카펫이 감회를 새롭게 했다.
한참동안 포토존에서 사진이 찍히고 겨우겨우 안으로 들어오니 선배 배우들이 나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오! 해솔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잘 지냈어요. 선배님 영화 잘 봤습니다.”
“야,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정말 대단하더라. 액션 그거 네가 다 했다며? 깜짝 놀랐어.”
그리 친하진 않았으나 말 한 번 섞어 본 적 있는 배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에게 와서 아는 척을 했다.
그들의 말을 받아주며 자리에 도착하니 감독님과 몇몇의 배우들이 먼저 도착해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감독님!”
“어서 와. 어서 와. 너 왔다는 소린 한참 전에 들렸는데 이제 온 거야?”
“지나가는데 인사해주시는 분들이 많네요.”
“하하! 사실 나도 한참 전에 왔는데 방금 앉았어. 주변에서 날 놔줘야지 말이야.”
연화정 감독님은 기분이 좋았는지 싱글벙글했다.
“오늘 상 받으셔야죠? 소감 준비해오셨어요?”
감독님도 나도 우리 영화가 상을 받을 거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해왔지. 이런 건 미리 준비해둬야 해. 평범한 소감은 재미 없잖아. 너는?”
연화정 감독님의 소감은 항상 재치가 넘쳐서 화제가 되는 편이었다.
감독님도 그것을 즐기는 편이었고 말이다.
“제가 과연 받을 수 있을까요?”
“받아야지! 네가 아니면 누가 받는데!”
“하하, 사실 준비하긴 했어요. 근데 제가 신인이다 보니까 걱정이 좀 되더라고요.”
“걱정하지 마. 무조건 한 개 이상 받아갈 거야.”
연화정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잠시였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요즘 가장 핫한 사람 두 명이 모여 있으니 말이다.
처음 얼굴을 보는 사람도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영화 정말 잘 봤어요. 대단하시더라고요. 보는 내내 감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꼭 같이 작품 해봤으면 좋겠어요.”
“영광입니다. 선배님.”
“감독님! 저는 언제 불러주실 거에요? 다음 작품에는 꼭 불러주세요. 감독님이 부르시면 바로 갑니다.”
“아이고~ 진짜 부르면 바쁘다고 튕길 거면서.”
“하하하! 그럴 리가 있어요? 정말입니다.”
“감독님! 다음 작품에 제 자리는 없어요?”
특히 감독님 쪽으로는 급 높은 배우들이 관심을 드러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감독님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다.
“다음 작품은 뭐할 건가? 섭외 엄청 들어왔을 텐데.”
“찬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보여줬던 액션을 좋게 봐주셨는지 그쪽으로 섭외를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근데 배우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요.”
“그렇지! 한 우물 파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할 수 있는 게 많다면 굳이 할 수 있는 종류를 좁힐 필요는 없는 거거든. 나는 사실 자네 작품을 보면서 액션도 액션이지만, 연기력이 나쁘지 않다는 걸 눈 여겨봤어.”
“어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영화에 액션성이 강조 되다 보니 연기력으로는 화제성이 죽을 수밖에 없지. 내가 지금 작품 하나 계획하고 있는데, 그게 완성 되면 회사로 연락할 테니 긍정적으로 한 번 봐주게.”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감독님!”
의외로 그림자를 통해 내 연기력이 나쁘지 않다는 걸 꿰뚫어 본 감독님이 있었다.
그림자와 비슷한 액션 장르만 아니라면 긍정적으로 살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를 캐스팅 하고 싶어 하는 감독님이 있다면, 한편으로는 나에 대한 묘한 원망을 표출하는 선배님도 있었다.
“그거 알아? 너 때문에 헬스장 등록한 거?”
그 선배님들 중에서 이렇게 서슴없이 말해오는 것은 박소원 형님이었다.
다른 작품에 출연해서 영화제에 온 형님은 다른 남자 배우들이 하고 싶은 말을 내게 시원하게 쏟아내고 있었다.
“요즘 여자들이 바라는 남성상이 바뀌고 있어. 트렌디한 남자 배우로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일이지. 운동은 진짜 질색인데, 팬이 바라는 걸 무시할 순 없잖아?”
예상했던 대로 영화 ‘그림자’의 성공은 영화판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지금도 회사에는 액션 영화 시나리오가 쌓이고 있었고, 액션이 없는 영화에도 굉장히 거칠고 위험한 매력을 가진 남자 캐릭터로 제안이 왔다.
‘그림자에서 보여줬던 내 캐릭터를 고스란히 바라는 거지.’
이미 연기한 적 있는 캐릭터를 또 연기하는 건 내 쪽에서 사양하고 싶다.
하지만 한동안 영화판에는 내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즐비할 것임을 확신한다.
소원 형님이 말한 것처럼 여자들이 바라는 매력 요건이 바뀐 탓이다.
보호해줘야 하는 남자가 아닌, 보호 받을 수 있는 남자 말이다.
남자들 사이에서 때 아닌 헬스붐이 일어난 것도 내 영화가 미친 영향 중 하나였다.
‘아무리 여자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지만,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으니까.’
바뀌어 버린 여자들의 이상형에 남자들도 반응을 하기 시작한 거다.
더군다나 원래부터 남자의 신체는 여자들보다 운동에 유리한 편이었다.
‘이러다가 내가 세계관을 바꿔버리는 거 아니야?’
분명 내가 온 세계는 남녀역전 세계인데, 그걸 내가 바꿔버린 것 같다.
이래도 되나 하는 걱정이 살짝 들었지만 포니에게서 딱히 연락이 오진 않았기에 슬쩍 고개를 외면하는 것으로 지금의 현상을 방관하는 중이다.
‘잠깐 유행하고 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