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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85화 (584/849)

Chapter 585 - #86. 정리 (3)

파라락- 파라락-

불만을 가득 담은 포니가 날개를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자신의 상사와 계약자가 무슨 말을 했을지 너무 궁금했다.

상사도 너무하다.

담당자인 자신을 쏙 빼놓고 계약자와 1:1로 대화를 하는 건 명백히 월권이었다.

계약자에 대한 것은 자신과 먼저 상의하는 게 정상적인 일처리인데 말이다.

문제는 포니가 상사에게 그런 항의를 할 수 있을 만큼 능력 있고 발언권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상사가 나타나면 냅다 고개부터 박아야 하는 게 포니의 위치였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상사가 드디어 계약자와 얘기를 끝냈는지 돌아왔다.

“음? 자네는 왜 아직도 여기 있나? 일 안 하나?”

[죄송합니다. 근데 제 계약자와 어떤 얘기를 나누셨는지 궁금해서….]

“그거 때문에 날 기다린 건가?”

[제가 담당하는 계약자이지 않습니까. 저번에도 말씀 안 해주셔서 얼마나 곤란했는데요.]

“끝난 일이니 신경 쓸 거 없다. 계약자한테 여태까지 듣지 못했으면 네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고.”

상사의 뼈 때리는 지적에 포니는 깨갱하며 한 발작 뒤로 물러났다.

[그 녀석 태도가 문제입니다. 제가 아무리 잘해줘도 시종일관 삐딱하게 굽니다!]

“네가 사기 계약을 해서 데려온 거잖나. 나중에 자네가 어떻게 데리고 왔는지 듣고 식겁했네. 그쪽이 신고를 했으면 자네는 바로 감옥행이었어.”

[…그래도 지금까지 문제는 없었습니다.]

“덕분에 자네가 아직 이 자리에 있는 거지. 앞으로도 지금처럼 비위 잘 맞추면서 관리 잘 하게. 저쪽에서 삐딱하게 나오면 곤란해지는 건 우리일세.”

[옙. 신경 쓰겠습니다!]

포니는 상사의 말에 식은땀을 최대한 숨기며 대답을 했다.

상사는 포니가 그 녀석을 잘 관리하고 있는 줄 알지만, 정작 포니는 그놈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신경을 안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일에 집중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일을 맡은 지 꽤 된 저 녀석의 일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 정도로 신경 써줬으면 알아서 잘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초반에 녀석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써뒀다.

실제로 그 덕분에 녀석이 문제를 일으켰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말이다.

그 녀석이 상사와 알 수 없는 커넥션이 있다는 점이 유일하게 걸리는 일이었는데….

‘끝났다고 하니까 마음 놓고 있어도 되는 거겠지?’

포니와 계약자의 관계는 최악 중의 최악이다.

그래서 그 녀석이 상사에게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면 큰일이 난다.

“말로만 그러지 말고.”

[네, 넷?]

아니나 다를까.

상사가 예리하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 녀석 수명을 생각하면 아이가 너무 적어. 여자를 더 붙이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대답은 잘하지, 대답은. 쯧!”

상사가 혀를 차며 사라졌다.

남은 포니는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놈이 상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 ♧ ♧

“센스가 아예 없는 건 아니네.”

일단 복주머니에는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각종 물품들이 들어있었다.

코인도 제법 두둑하게 챙겨 넣었다.

그리고 기타 물품에는 여성들을 꼬시는데 도움이 될 게 분명해 보이는 물품들로 가득했다.

‘노골적이네.’

내가 종마냐는 일침에 그렇다고 대답한 녀석 다운 구성품이었다.

‘개새끼.’

코인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금액이었다.

너무 많이 준 건 아닌가 하는 호구적인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화가 난다.

이놈들이라면 나랑 거래 했던 걸로 수만 배의 이익을 얻었을 게 분명했으니 화가 안 날 수가 없는 거다.

그놈이 갑자기 삐까뻔쩍해져서 나타난 것도 좀 수상하다.

‘설마 나랑 거래한 걸로 그렇게 된 건 아니겠지?’

그럼 기분이 매우 더러울 것 같다.

하여튼 이놈들이랑은 얽히는 게 생기면 내 쪽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신 거래 같은 거 안 해야지.’

그리고 녀석이 던지고 간 복주머니는 야무지게 챙겼다.

이걸로 우리 가족들 몸보신 시켜줄 거다.

[야!]

“어이씨, 깜짝이야.”

그때, 갑자기 말풍선이 불쑥 튀어나와서 나를 놀래켰다.

[너 그분이랑 무슨 얘기했어?]

“그걸 네가 알아서 뭐하게.”

[난 네 담당자야! 그러니까 너에 대해서 모든 걸 다 알고 있어야 한다고.]

“왜 이래? 질척거리지 마. 서로 그러기로 한 거 아니었어?”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

정확히 말해서 포니는 나한테 신경을 끄면서 일을 줄이고, 나는 포니에게 사생활 침해당하는 것을 방지하는 거래였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 근데 네가 자꾸 내 상사랑 만나서 일을 꾸미니까 이러는 거잖아.]

“별 거 아니야.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는. 그래서 네 상사도 너한테 말을 안 해준 거 아니냐? 정 그렇게 궁금하면 네 상사한테 물어봐.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만만하냐?”

[그, 그럼 이것만 말해줘.]

“뭐!”

[내 상사한테 나에 대해 쓸데없는 소리를 하진 않았는지.]

뭐야? 왜 이러나 했더니 그게 걱정 돼서 이러는 거였어?

“쯧쯧쯧, 시간이 아깝다. 시간이 아까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꺼져. 나 지금 날개 달린 것들 보고 싶지 않으니까.”

[진짜 내 얘기 안 했어?]

“내가 왜 널 언급해야 되는데?”

[진짜지? 진짜진짜? 이거 거짓말이면 나도 가만 안 있어.]

“네가 가만 안 있으면 뭐 어쩔 건데? 이 자식이.”

날파리 같은 걸 잡아서 짤짤짤 흔들며 놀이기구 태워주니 좋아 죽으려고 한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떽! 시끄럽게 굴지 말고 썩 꺼져! 내가 부르기 전까지 나타날 생각도 말고!”

[나, 나쁜 자식!! 흉악범! 살인마!]

껄껄껄.

저 녀석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포니 녀석에게 쏟아 내고 나니 더러웠던 기분이 한결 가라앉았다.

저걸 바로 긁어 부스럼이라 표현하는 거 아닐까?

가만히 있으면 화풀이 당하진 않아도 됐을 텐데.

어찌됐든 나한테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 ♧ ♧

포니에게 화풀이를 하긴 했지만, 그 녀석에게 휘둘렸던 지난 날을 깔끔하게 잊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계속 생각이 나서 열불이 터졌다.

포니를 불러서 다시 한 번 짤짤 흔들어주고 기분을 풀까 고민이 될 정도였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면.

“시발, 거래가 끝났으면 재깍재깍 와서 끝났다고 말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뒤늦게 제대로 따지지 못했던 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먼저 알려주지 않은 것도 분명 노리는 게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이야 머리 아프게 고민할 것도 없다.

‘그래야 내가 란나를 또 임신을 시킬 테니까.’

내가 아이를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세계에 큰 도움이 되다 보니, 이런 것까지 야무지게 챙기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놓고 나한테는 깜빡한 척 연기 한 거지. 그 새끼한테 이걸 따지면서 엿을 먹여줬어야 했는데 왜 생각이 안 났지?”

덕분에 혼자 쉐도우 복싱하는 것처럼 한참을 씩씩거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역시 포니를 불러서 화풀이를 좀 더 하는 게….’

하지만 포니 녀석은 내게 화풀이 당한 기억 때문인지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월급 루팡 새끼. 그 녀석 상사한테 이걸 찔렀어야 했는데.’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란나를 조건을 둔 거래가 완전히 끝났다는 점이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그녀에 얽힌 비밀을 속 시원하게 알게 됐다는 점에서 포니의 상사와의 대화가 마냥 손해는 아니었다.

겨우 분노를 삼켜내고 나는 곧장 란나에게 향했다.

그녀에겐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겨버렸다.

더욱이 그 비밀이 우리의 실수로 잃어버린 첫 아이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안쓰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운명은 개뿔!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내 아이로 태어나면 그런 운명을 비켜갔을 거라고 했잖아.’

일어나지 않은, 사라진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란나에게 주어진 운명이 너무 비극적이라서 나는 그녀의 곁에 달라붙어 시간을 보냈다.

대단한 위로를 해줄 순 없었으니 그냥 곁에 있어주며 외롭지 않게 해주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 태도 변화가 란나에게는 수상하게 느껴졌나보다.

“나한테 뭐 죄진 거 있어요?”

“응?”

남녀역전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여자 특유의 놀라울 정도로 예민하고 날카로움은 사라지지 않은 탓에 내 마음을 꿰뚫어본다는 점도 있었다.

“아뇨? 그런 거 없는데요.”

나는 그녀에게 죄진 것이 없다.

그런데 저절로 존댓말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런데 요즘 왜 이래요?”

“내가 뭘?”

“요즘 나한테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잖아요.”

“그야 우리 튼튼이 때문이지.”

“나도 처음에는 튼튼이 지킨다고 이러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아닌 것 같아서 그래요. 솔직히 방금 좀 찔려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니야. 난 결백해. 요즘 거의 매일 너랑 붙어 있는데 잘못을 저지를 시간이 있었겠냐고.”

“그건 그렇네요. 근데 나 너무 애지중지 안 해도 돼요. 의사도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했잖아요. 보호하는 것도 너무 과하면 부담이에요. 솔직히 임신 안 했을 때보다도 지금이 더 건강한 상태라고요.”

란나의 말은 사실이다.

내가 그녀에게 먹인 건강식품이 몇 개인가?

임산부용으로 구해다가 먹인 것들은 아마 그녀의 수명을 한 1~2년은 늘려놨을 거다.

더불어 우리 튼튼이 건강까지 영향을 줬을 것이고 말이다.

참고로 튼튼이는 우리 아이 태명이다.

튼튼하게 자라달라는 의미로 말이다.

“나 때문에 무리하지 말아요. 일 때문에 바쁘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시간이 많이 나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정말 괜찮아. 일이 갑자기 확 줄어서 그래.”

“거짓말하지 말라니깐요! 우리 튼튼이 먹여 살려야 하니까 빨리 일하고 와요.”

안 그러던 사람이 너무 과하게 붙어 있었던 게 문제였을까?

란나가 드디어 한계를 넘었는지 참지 못하고 나가라고 쏘아붙였다.

“정말 나 일해요?”

“네! 아니, 아무리 제가 걱정 된다고 해도 밖으로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과해도 너무 과하다고요.”

“…알았어. 돈 벌고 올게.”

우리 둘 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서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잠깐 떨어질 필요가 있다는 란나의 말은 동의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많이 붙어 있긴 했거든.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12시간 넘게 붙어 있으면 힘든 법이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여자 친구가 집에 가질 않는 게 결혼이라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끈질기게 옆에 붙어 있는 게 더 민폐이고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 언제 올까?”

“음…이틀 후에 와요.”

“그렇게 오래?”

“그게 뭐 오래에요! 우리 예전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잖아요.”

“지금은 그때랑 상황이 다르잖아.”

그땐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때다.

그리고 나만 시간이 나면 다인가?

란나도 일을 해야 해서 시간을 낼 수 있는 게 희소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도 가끔 란나는 일 때문에 미안하다며 미뤘던 적이 있다.

물론 나도 아예 그런 적이 없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일하다가 무슨 일 생기면 더 늦게 와도 되요. 내 걱정은 하지 말아요. 당분간 엄마 집에 가 있을 생각이거든요.”

부모님 집만큼 편한 곳이 없다는 란나의 말에는 차마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

그녀에게도 내가 아닌 곳에서 편하게 휴식을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 알지?”

“네네~ 그럴게요.”

재차 당부를 남기고 그녀를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 데려다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뵙는 거라 인사를 하러 가려고 했는데, 란나가 들어가서 인사를 하면 붙잡을 게 분명하다며 가라고 하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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