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586화 (585/849)

Chapter 586 - #86. 정리 (4)

‘장모님이 날 많이 좋아하긴 하시지.’

급하게 준비한 선물까지는 란나가 거절하지 않아 양 손 두둑하게 들려주었다.

쪽!

“고마워요. 나 집에 간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 말아요. 나 때문에 애써주는 거 알지만, 임신 했다는 걸로 여태까지 붙잡고 있었던 것도 분에 넘치는 행복이었어요. 당신을 나만 독차지 했으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인 거잖아요.”

“란나?”

여태까지 그녀와 나는 다른 여자의 존재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다만 그녀는 은연중에 내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긴 했다.

내가 워낙 잘났다 보니 그런 남자를 여자가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서가 봐요. 아무리 남자라지만, 요즘에 이런 식으로 굴면 여자한테 차여요.”

생각이 깊어지는 말을 남긴 채 란나가 본가로 쏙 들어갔다.

그녀를 보내고 차 안으로 들어와 한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란나는 무사히 튼튼이를 낳을 것이고 그럼 나는 어느덧 6명의 아이 아빠가 되는 거였다.

언제 이렇게 대가족을 만들었나.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지난 세월이 주르륵 떠오른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튼튼이를 낳고 키우다 란나에게 진실을 말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방금 란나가 한 말로 확신하게 됐다.

언젠가 모든 진실을 말해도 란나는 이해해주고 납득할 거라고.

란나가 더 이상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란 직감도 들었다.

‘온전히 나를 받아들인 거야.’

신경 쓰이게 했던 것들이 완전히 해결이 되었다.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현타 비슷한 게 오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걱정이 사라진 자리에 튼튼이가 떡하니 자리를 잡아버렸기 때문이다.

[마눌님 : 어디야?]

[마눌님 : (치킨사진)]

[마눌님 : 우리 치킨 먹는 중인데, 안 바쁘면 먹으러 와.]

더욱이 혼자서 멍하니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를 원하고 부르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시간을 써주길 바라는 가족이 많았기에 나는 오늘도 혼자 지낼 겨를이 없었다.

애초에 내가 이런 복작복작한 가정을 원해서 만들어진 거였다.

[나 : 딱 기다려. 바로 날아간다.]

최대한 빨리 주차해놓고 집으로 날아가야 했다.

늦으면 뼈다귀만 남겨둘 가족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 ♧ ♧

-요즘 진해솔 뭐함? 엄청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어느 순간 쑥 들어갔네.

-걔 여친이랑 놀러 다닌다던데?

-ㅈㅉ?

-사진 뜬 것도 있음. 진주아랑 데이트하는 거.

-당당하게 다니네.

-그럼 안 당당하게 다닐 일이냐?ㅋㅋ 둘 사이에 애까지 있는데.

-두 사람 애기 얼굴 계속 숨기려나? 궁금한데. 엄빠 닮았으면 엄청 잘생겼겠지?

-유치원에 같이 다니는 여자애들로 하렘 만들어놨다던데?

-유언비어 만들지 마세요. 신고 넣습니다.

-신고 눠쑵뉘다~ ㅇㅈㄹ ㅋㅋ

-진해솔 영화 대박 터지고 바로 영화 할 줄 알았는데 왜 쉬는 거임?

-집에서 애 돌보느라 바쁘시답니다~

연정화 감독의 영화를 통해 해외 유명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영광을 얻은 진해솔은 이후 활동적인 배우 활동을 할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에어플레인 완전체로 컴백을 했다.

진해솔의 스크린 데뷔도 엄청난 성공이었지만, 다른 멤버들의 개인 활동도 호평을 받고 있었기에 이들의 깜짝 컴백은 많은 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국내 활동을 했던 저번 컴백과 달리 이번에는 해외 활동을 주 무대로 삼았으며, 콘서트를 통해 본인들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세계에 과시했다.

꺄아아아악!!!!!!

오빠!! 사랑해요!!!

그들이 향하는 곳에 팬들이 넘쳐났고.

유명 헐리우드 스타들도 그들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만나서 반가워요! 팬이에요.

-꺅! 너무 만나보고 싶었는데. 나 알죠?

여자들의 끝나지 않는 추파가 시작 된 것이다.

사람에게 급을 따지고 싶지 않지만, 접근하는 사람들의 급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은 유명한 연예인, 이름을 들어도 알 수 없는 회사의 이사 혹은 대표 같은 사람들이 추파를 던졌다면 이제는 재벌 가문에서 정식으로 만남을 요청한다거나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회사의 CEO가 정중하게 만남을 요청하는 등의 일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 만남이 제대로 성사 된 적은 없다.

멤버들 각자 만나는 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어플레인 제키 X-Monster와 핑크빛 기류 심상치 않아.]

[유명 작곡가 X-Monster, 에어플레인 제키와 열애 인정!]

제키는 세계적인 작곡가 X-Monster 로잘린과 연애를 시작했다.

[라만 다린스의 새로운 남자 깜짝 공개! 주인공은 에어플레인 강경태!]

[여배우 라만 다린스와 가수 에어플레인 강경태의 깜짝 사랑 공개. 두 사람 어떻게 만났나?]

[커플 반지 자랑하는 팔불출 강경태 “브랜드 안나의 파티에서 처음 만나 좋은 인연 이어나갔다”]

에어플레인 강경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1위 라만 다린스라는 여배우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열애 사실을 당당하게 밝혔다.

팬들도 이젠 에어플레인 멤버들의 열애 사실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진해솔이 워낙 파격적인 행동으로 앞길을 닦아뒀기 때문이다.

컴백 활동이 끝나고 휴식과 개인 활동에 들어가게 된 에어플레인.

사람들은 그들의 열애 사실과 더불어 다음 활동으로 뭘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었다.

♧ ♧ ♧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소파에 늘어지게 누운 나는 이미 휴식을 100%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도 아무것도 안 하고 계십니다.”

“아! 깜짝이야. 유모님 언제 오셨어요?”

“방금요. 그리고 말씀하신 아이스크림도 사왔습니다.”

“우왓! 감사합니다.”

이 세계에 완전히 적응하는데 성공한 유모님은 이제 능숙하게 바깥에 나가 무언가를 사먹는 일에 익숙해지셨다.

다들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집에서 뒹굴거리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그럴 때마다 유모님이 이런 식으로 소소하게 내 부탁을 들어주고 계셨다.

“오늘도 일정 없으십니까?”

“네에….”

이번 해외 활동은 유난히 힘들었다.

그래서 지금 누리는 휴식이 굉장히 귀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욱 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뭐 할 말 있으세요?”

소파와 내가 하나가 된 것처럼 누워 있는데, 어쩐지 유모님이 내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내게 아이스크림을 주고 바로 사라지지 않은 점에서 더더욱.

“예. 있습니다.”

“어으~ 잠시 만요. 흠흠! 말씀하세요.”

나는 엉기적 소파에서 일어나 제대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쉬시는데 방해 한 건 아닌지.”

“아닙니다. 보다시피 현재 일 없는 백수라서요.”

연기를 하긴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건 아는데, 한 번 쉬기 시작하니 게을러져서 영 움직일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한테 들어 온 각본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기는 했지만 다음 활동은 좀 더 신중하게 할 생각이었다.

‘팬분들이 기다리는데 계속 미루면 안 되긴 한데….’

앞으로 멤버들이 활발하게 개인 활동을 할 텐데, 저번처럼 이번에도 나 혼자 잠수타면 슬퍼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연화정 감독님의 영화가 성공하고, 내 다음 작품이 어떤 것일지 지켜보는 사람이 많았다.

“제가 여기에 온지 3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벌써 그렇게 됐어요? 시간이 엄청 빠르게 지나가네요.”

그녀가 들어오고 정화씨가 쌍둥이를 낳아서 어느덧 2살이 됐으니 3년에 가까워지는 게 맞긴 하다.

쌍둥이들은 실 유모님의 능숙한 육아 스킬로 쑥쑥 자라서 또래 2살 아이답지 않게 성장했다.

주변에 쌍둥이 나이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4살이냐고 물을 정도였다.

“여태까지 별 다른 말없이 계약 연장을 했는데, 이렇게 먼저 말씀을 한다는 건 혹시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신 건가요?”

“예, 맞습니다. 쌍둥이들이 모두 잘 컸고 이곳에 제가 필요치 않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쌍둥이들은 더 이상 밤에 깨어나지 않은 채로 잘 자고 있었고, 지현이와 현오는 어린이 집을 다녀서 굳이 두 사람이 있을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냉정하게 봤을 때, 코인을 주고 실 유모님을 계속 고용하는 건 낭비가 맞았다.

그걸 유모님 본인도 느꼈는지 스스로 그만 두겠다는 말을 해온 것이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가? 계속 유모님을 고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까지 고용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겁니다. 저는 이 정도에서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실 유모님을 고용하는데 드는 코인은 충분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실 유모님이 먼저 그만두겠다고 나온 이상 계속 그녀를 붙잡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단순히 정이 들었다는 이유로 붙잡기엔 너무 유능한 사람이기도 했고 말이다.

‘란나한테 소개시킬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모님을 이대로 보내기엔 아쉬움이 너무 컸다.

할 일이 없어서 그만두겠다고 한다면 그녀에게 할 일을 만들어주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여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혹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만두겠다고 한 게 아니라면 제 다른 아이를 돌봐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있거든요. 다만 그 아이를 돌보려면 지내는 곳을 바꾸긴 해야 해요.”

아직 란나에게 내 정체를 밝히지 못했기에 유모님의 입단속도 필요했다.

“다른 아이요?”

“네. 유모님한테 맡기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유모님을 찾으면 찾아뵐 수도 있을 테고요.”

실 유모님은 코인이 필요한 사람이니 기왕이면 충분히 적응이 된 이곳에서 계속 일하는 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할 일이 없어져서 그만두겠다고 한 거지, 일이 계속 있었으면 이런 말을 먼저 하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텐데….

“그 아이를 돌보겠다고 하면 최소 2년 정도 더 연장하게 되겠죠?”

“아무래도 그렇겠죠. 개인적으로 저는 2년보다는 넉넉하게 3~4년으로 계약을 했으면 합니다.”

그때쯤이면 또 다른 아이가 태어나 실 유모님을 또 고용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금 현재는 최소 3년을 계약하고 싶었다.

“죄송하지만 안 될 것 같습니다.”

“네?”

유모님이 설마 내 제안을 거부할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기에 잠시 생각이 멈추고 멍해질 정도였다.

“어…그럼 이대로 그만두시겠다는 건가요?”

“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개인적인 이유라서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개인적인 이유.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도 할 수가 없어지는 거다.

“개인적인 이유가 혹시 저희 때문인 건…?”

“정말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사장님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허어…유모님이 이렇게 그만두신다고 하니 갑자기 막막해지네요. 생각도 못하고 있는 일이어서.”

“당장 바로 그만두고 가겠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길면 3개월 정도 더 일하고 갈 수 있습니다.”

3개월은 시간을 주겠다는 말을 들으니 당황스러웠던 마음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긴 시간을 들여서 빈자리를 채울 필요는 없을 겁니다. 칸나씨가 워낙 일을 야무지게 잘해서 제 빈자리가 크지 않을 테니까요. 아, 그리고 죄송하지만 새롭게 주신 일은 다른 분을 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정말 너무 아쉽네요. 유모님만큼 마음에 쏙 드는 분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은데.”

실 유모님처럼 책임감 있고 일 잘하는 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를 구한 것도 꽤 오랜 기간 서류를 유심히 살핀 것이지 않은가?

나중에 후회를 할 바에야 지금 질척여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말했다.

“개인적인 일인데 자꾸 물어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도움을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해결이 돼서 유모님이 계속 일해주시면 참 좋을 것 같고요. 이대로 유모님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럽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