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87 - #86. 정리 (5)
유모님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 말에 대답을 했다.
“사장님께서 도움을 주실 수 있는 일이긴 합니다만, 그게 과연 좋은 선택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좋은 일이죠.”
“글쎄요. 그런다고 제가 여기서 계속 일을 할 거란 생각은 안 들어서요.”
내가 도울 수 있는 문제라고 해서 기분이 좋았는데 유모님은 영 떨떠름해 보인다.
“일단 들어보고 함께 생각해보죠.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둘이 고민하는 게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겁니다.”
내 설득이 통했는지 유모님이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곤란해진 건 정령 때문입니다.”
“정령….”
그녀의 정령이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는 모습을 보는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말하기 꺼려한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평소 정령과 저는 동등한 관계지만, 제가 정령에게 해줄 수 있는 일보단 정령이 제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많다 보니 제 쪽에서 배려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저희들 사이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몇 가지 약속도 존재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개인적인 문제는 약속 때문인가 보네요.”
“네, 맞습니다. 저는 제 정령에게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약속한 소원권을 사용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걸 지켜야 하죠.”
“지키지 않으면요?”
“지키지 않으면 정령을 잃게 됩니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 알 수 없죠.”
지키지 않았을 때의 패널티가 굉장히 쎘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실 유모님은 정령을 가족처럼 여겼다.
그래서 그녀에겐 너무나도 치명적인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럼 정령이 말한 소원을 들어주면 되겠네요. 문제는 소원이 들어주기 간단한 게 아니었을 거고요.”
“그렇죠. 사실 정령이 소원을 말한 건 한참 됐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들어주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정령이 말한 소원이 뭔가요?”
실 유모님답지 않게 말하는 걸 굉장히 머뭇댄다.
도대체 무슨 소원이기에 저러나 했는데….
“정령은 다양한 소리를 모으는 게 취미입니다. 특히 제가 내는 다양한 소리를 수집하죠. 좀 심하게 말하면 방귀 소리까지 수집을 합니다.”
“!!”
방귀 소리까지?
정령의 취향이 이렇게까지 기괴할 줄은 몰랐다.
“그럼 이번에도 소리를 수집하는 건가요?”
“예. 그런데 그 소리가 좀….”
“말씀해보세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 같은데.”
“사실 사장님의 도움이 꼭 필요한 부분이긴 합니다. 정령이 소원으로 말한 건….”
별 생각 없이 도와줘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던 내 뒤통수에 커다란 돌멩이가 날아왔다.
“사장님과 제가 섹스를 하면서 내는 소리입니다.”
“…예?”
“정령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저는 사장님과 섹스를 해야 합니다.”
“예?!”
“정령을 잃지 않기 위해서 뭐든 다 할 수 있는 게 접니다. 그게 절 가족처럼 대해주시면서 잘해주셨던 사모님과 언니를 배신하는 일이라 해도 말입니다.”
“…….”
“부탁드립니다. 저와 하룻밤을 보내주십시오. 그 이후에는 조용히 떠나겠습니다.”
그제야 왜 실 유모님이 그만두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됐다.
정령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와 잠을 자는 건 믿고 있었던 그녀들을 배신하는 일이 되는 거다.
그런 짓을 해놓고 태연하게 얼굴 보면서 웃고 떠들 수는 없는 노릇인 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실 유모님이 이런 말을 할 줄이야. 사정은 알겠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자자고 부탁을 하는 건 좀….’
그녀가 잠자리를 하지 못할 만큼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아니고, 미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이와 갑자기 잠자리를 할 수 있을 리 없다.
“섹스를 꼭 저와 해야 하는 겁니까?”
“예. 정령이 본의 아니게 사장님께서 사모님과 섹스하는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소리가 너무 독특해서 신기하다고 했고요. 그 호기심이 이런 상황을 만든 거빈다.”
“…섹스하는 소리가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그게 어떻게 평범할 수…아!”
“유모님도 그 소릴 들었어요?”
정령은 소리를 수집하는 걸 취미로 한다고 했고, 그 정령이 내 섹스 소리를 듣고 독특하다고 했으니 분명 수집을 했을 것이다.
사람도 아닌 존재가 내 깊은 사생활을 침범했다는 사실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수집한 소리를 유모님은 적나라하게 모두 들은 것 같았고 말이다.
시종일관 무덤덤한 태도를 보여주던 유모님의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이곳에는 정령을 막을 수단이 존재하지 않다보니 죄송합니다. 제가 말로 잘 설명해서 이후에 똑같은 짓은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음, 막았다고 하니 다행이긴 한데…. 결국 꼭 나랑 섹스하는 소리를 정령이 가져야 한다는 거네요.”
“네. 다른 사람은 안 됩니다.”
남다른 정력을 가지고 있다 보니 섹스를 하게 되면 여자 여럿을 실신시키는 나다.
정령도 그 점에서 특이함을 느낀 것 같았다.
여자들이 내는 신음소리도 평범하지 않은 편이었고 말이다.
몇 배 이상으로 증폭 된 쾌락으로 몸이 절여지는데 입을 다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곤란하네요. 난 유모님과 섹스를 할 생각이 없거든요.”
“!!”
“정령을 설득해서 다른 걸 바라게 하는 건 불가능한 건가요?”
“불가능합니다. 결국 절 떠날 겁니다. 하룻밤만 부디 은혜를 내려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떠날 때까지 급료도 받지 않겠습니다.”
“아뇨아뇨. 그걸 왜 안 받아요?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세요.”
“그럼 어째서 이러시는 겁니까?”
“저는 오히려 유모님이 당황하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누가 그런 제안을 받고 선뜻 받아들이겠어요.”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하룻밤 놀잇감으로도 삼지 못할 정도로요?”
하룻밤 놀잇감이라니.
도대체 나를 뭐로 보는 건가.
“전 여자를 그런 식으로 다루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너무 다급해서 말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여자가 많다는 건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여자랑 섹스를 하는 사람인 건 아닙니다.”
“…….”
유모님은 내 주변에 여자가 많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로인해 하룻밤을 부탁하면 당연히 받아줄 거라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절 받아주실 겁니까?”
“뭘 하시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터무니없는 일이에요. 그러지 말고 정령이 좋아하는 걸 선물하고, 소원을 바꿔 달라는 게 나을 겁니다.”
“사장님을 믿고 제 사정을 이미 다 말씀드린 거였습니다! 분명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유모님의 표정에 절박함과 좌절이 가득하다.
나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서로 가족처럼 생각한다면서요. 정령도 유모님을 좋아하고요. 가족 같은 사이라고 했으면서 겨우 이 정도도 부탁도 못 하는 관계가 말이 됩니까? 그리고 정령이 바라니까 남자랑 섹스를 한다고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에요? 유모님은 정령이 하라고 하면 정말 다 할 겁니까?”
솔직히 하룻밤 함께 보내는 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내 가족들이 불쾌해 할 수도 있는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조용히 떠난다고 했으니 그녀가 굳이 이 문제를 들춰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탁을 거절한 이유는 유모님 때문이었다.
‘정령이 저 남자랑 섹스하라고 하고, 유모님은 태연하게 알겠다고 저러고 있는 게 정상은 아니거든.’
섹스를 한 순간의 여흥이나 게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야 하다.
섹스라는 게 한 없이 가볍게 생각하면 그럴 수 있는 행위들이니 말이다.
“전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섹스에 대단한 의미를 둔 적도 없습니다.”
“유모님이 누구랑 섹스를 하든 오지랖을 부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자격도 없고요. 다만 그 대상이 제가 된다면 참견을 안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런 식의 하룻밤은 유모님한테 좋지 않습니다. 지금 저한테 이럴 게 아니라 정령이랑 얘기를 나누는 게 맞는 겁니다.”
정령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은 실 유모님이 유일하다.
“생각을 해봐요. 이런 식으로 한 번 소원 들어주고 넘어갔는데, 다음에 또 부탁을 해오면 어떡할 겁니까? 그때도 정령이 지정해준 남자랑 잘 겁니까? 그런 식으로 계속 몸 굴리는 게 유모님은 정말 즐겁고요?”
“…….”
“제가 좋아서 자자는 거 아니잖아요. 정령이 날 선택해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하는 거지. 솔직히 대답해보세요. 이런 부탁 이번이 처음 아니죠?”
“…….”
“대답 못하는 거 보니까 한 적 있나보네. 정령은 여기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그럼 불러서 둘이 대화 하세요. 앞으로 그런 소원은 받지 않겠다고.”
“안 됩니다!”
도돌이표처럼 유모님은 안 된다는 말만 계속 한다.
“그럼 계속 정령이 시키는 대로 몸 굴리고 다니겠다는 겁니까?”
“이런 소원을 자주 하는 아이는 아닙니다. 지금이 딱 두 번째 하는 겁니다. 정령은 한 번 수집한 소리에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습니다. 수집 욕구도 생기지 않고요.”
“그럼 이번에는 수집한 적 있는 소리를 왜 또 갖겠다고 이러는 건데요?”
“사장님이 그걸 하실 때 들리는 소리가 예전에 수집 했던 소리와 많이 달랐으니까요. 이미 수집한 소리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굳이 하지 말라는 소리를 안 해뒀었던 겁니다. 이번에 이런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다시는 이런 소원은 하지 말라고 하겠습니다. 근데 그러려면 이번 소원은 들어줘야 합니다.”
“…….”
내가 생각해도 정령에게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라는 건 떠나라는 소리나 다름없어 보이긴 했다.
“다른 걸로 협상하면 되지 않을까요? 정령이 좋아하는 걸 왕창 준다던가.”
“…모르겠습니다. 한 번도 그런 식으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가족이라면서요. 유모님은 자기 정령을 그렇게 못 믿어요?”
“저한테 유일하게 남은 가족입니다. 평생 제 곁을 지켜주겠다고 했던 아이에요. 그런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보기에 적당히 보상을 제시하고 소원을 철회해달라고 하면 정령은 그렇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유모님은 정령이 너무 소중하기에 실망시키는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를 수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흐음….’
유모님의 태도를 보니 아예 협조를 안 해줄 순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타협안을 말했다.
“정령이 바라는 건 유모님의 신음 소리겠죠? 저랑 섹스하면서 내뱉을 소리들이요.”
정령이 소원을 빈 이유를 잘 생각해보면 충분히 타협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그렇죠….”
실 유모님은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에 촌각을 곤두세웠다.
내가 정말 해주지 않겠다고 하면 유모님 입장에선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테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섹스는 단순히 넣고 흔드는 게 전부가 아니다.
솔직히 넣고 흔드는 게 아니어도 충분히 즐겁게 성생활이 가능하다.
그걸 도와주는 각종 도구도 존재하며, 그것을 이용한다면 정령이 바라는 소리 또한 충분히 만들어낼 수가 있었다.
“방금 도와줄 방법이 생각났거든요. 유모님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도 정령이 말한 걸 들어줄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을요.”
도움을 준다는 핑계로 그녀를 취하기엔 찝찝한 마음이 크고, 또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만 둘 수밖에 없는 결과를 만드니 머리를 써서 소원을 들어주자는 거다.
정령이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유모님은 아직 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