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94 - #86. 정리 (12)
“이건 그러니까….”
“???”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칸나와 그녀에게 유모님의 개인 사정을 함부로 설명을 할 수가 없었던 나의 고뇌로 우리 둘 사이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으…히이…으으…응….”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칸나를 보고 당황해서 미처 닫지 못했던 문 사이로 소리가 새어 나오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문을 열었을 때 유모님이 여전히 절정에 휩싸여 있는 게 보여서 최대한 태연하게 문을 닫았다.
“말이 좀 이상한 건 아는데 섹스는 안 했어.”
“네에~”
표정이 영 믿는 것 같지가 않다.
“뭐야, 믿는 거 맞아? 내 말 의심해?”
“아뇨오. 그럴 리가요. 주인님이 그러시다면 그런 거죠.”
“진짜 이상한 거 아는데, 진짜야.”
“네에~ 믿는다니까요? 왜 자꾸 그러세요. 저 방에 들어갈래요.”
“비밀로 해줄 거지?”
“그럼요~ 주인님께서 비밀로 하라는데 들어야죠.”
칸나가 여전히 묘한 태도를 취한다.
일단 비밀로 하라고 했으니 이 일을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는 않을 거다.
칸나를 계속 붙잡고 변명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그녀를 방으로 들여보내고 내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었다.
칸나의 일은 나중에 유모님에게 말해서 상의를 해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날, 유모님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은 멀쩡한 모습으로 아니, 굉장히 멀쩡하다 못해 피부가 반들반들한 모습으로 나타나 일을 했다.
“요새 얼굴이 안 좋더니, 오늘은 좀 괜찮네?”
정화씨는 근래 유모님의 변화를 알고 있었는지 안색이 좋아보이자 바로 알아봤다.
“제가 그랬나요?”
유모님은 찔리는 게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건강이 안 좋은가 싶어서 걱정했어.”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괜찮습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쉬는 거 어때? 어제 애들 봐준다고 고생했잖아. 오늘은 내가 아이들 볼 테니까 쉬는 게 어때? 밖에라도 나가서 기분 전환하면 더 좋고.”
유모님의 상태가 안 좋은 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닌지라 정화씨가 그녀를 쉬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전 정말 괜찮습니다.”
“내가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그래.”
“그…음….”
유모님은 이대로 하루를 쉬는 게 너무 양심에 찔렸는지 거절하고 싶어 안절부절 못했다.
그리고 그런 유모님과 나를 번갈아서 바라보는 칸나의 시선이 느껴졌다.
“오늘은 하루 쉬어요.”
“사장님?”
“몸이 괜찮아도 하루 쉴 수 있는 거죠. 바깥에 나가서 놀다 오는 것도 좋겠네요. 어제 나가보니까 날이 좋더라고요.”
“맞아~ 가을이라서 그런지 낙엽이 너무 예쁘더라. 아! 칸나도 오늘 쉬어. 둘이 같이 놀러 다녀오면 딱 맞겠다.”
정화씨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이면 칸나와 유모님을 붙여 놓는다고?
아직 유모님에게 칸나한테 들켰다는 걸 말하지 못한 상태였다.
칸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럼 그럴까요?”
“응~ 애들 걱정하지 말고 실컷 놀다 와~”
주아 누나가 오늘 스케줄 때문에 나가서 정화씨가 혼자서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쌍둥이를 그녀 혼자서 돌보는 게 힘들 수 있으나 아이들이 워낙 얌전한 편이라서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해솔이 너는 오늘 일 있어?”
“회사 가서 몸 좀 풀고 오려고요. 너무 오래 안 해서 멤버들끼리 춤 연습 하기로 했거든요.”
“그럼 오래 걸리겠네?”
“거의 하루 종일 걸릴 거에요.”
애들이 워낙 연습 벌레인지라 한 번 연습을 시작하면 5~6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콘서트 때 부르는 리스트에 들어가는 곡을 다 연습하면 그보다 더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이런 식으로 꾸준히 연습을 해줘야 안무를 잊어버리지 않을 수가 있다.
미루면 미룰수록 힘들어지는 건 나중에 콘서트에서 무대를 할 우리들이었다.
“오랜만에 멤버들 보는 거니까 연습 끝나면 저녁까지 먹고 들어올 것 같아요.”
“알았어.”
“혼자 쌍둥이 괜찮겠어요?”
“엄마는 못하는 게 없는 법이야.”
그렇게 아침 식사를 끝내고, 유모님과 칸나가 둘이서 외출 준비를 하고 나도 연습실을 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어디서 놀기로 했어? 태워다 줄 테니까 기다려.”
“어? 정말요? 택시 타고 가려고 했는데.”
“먼저 차에 가 있어.”
일단 나는 칸나에게 차키를 줘서 먼저 보냈다.
그리고 조금 시간차를 두고 유모님과 함께 집을 나섰다.
“어제….”
“!!”
유모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리가 짧았기에 빠르게 용건을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유모님한테 어제 얘기를 꺼낸 순간,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절정을 못해서 내게 도움을 요청해놓고 내가 손을 대기만 해도 갔던 게 많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크흠, 어제 사고가 좀 있었어요. 유모님 방에서 나가다가 칸나한테 들켜버렸거든요.”
“카, 칸나한테요?”
“유모님 개인적인 사정이 얽힌 일이라서 얘기를 못했어요. 아마 지금 우리 사이를 오해를 하고 있을 겁니다.”
솔직히 오해를 안 하기도 묘한 관계이긴 하다.
일방적으로 자위를 도와주는 관계?
그게 도대체 뭐냔 말이다.
“오해라면 역시 사장님과 제가 그걸 했다는 오해겠죠?”
“네. 일단 나중에 설명할 테니 비밀로 해두라고 해놨습니다만 아마 지금 많이 궁금할 겁니다. 분명 차에서도 어제 일을 물어볼 거고요.”
“…그렇겠죠.”
“제가 뭔가 설명을 하는 것보단 유모님께서 직접 하시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습니다. 제가 설명하는 게 맞아요.”
“솔직하게 말씀하시든, 거짓말을 하시든 아니면 아예 대답을 하지 않으시든. 전 상관없습니다. 유모님이 편하신 대로 해주세요.”
부담이 많이 되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말을 덧붙였다.
“제가 먼저 가서 칸나랑 운을 띄워두겠습니다. 유모님은 천천히 오세요.”
“네.”
유모님을 두고 차로 먼저 이동했다.
차에 얌전히 타고 있는 줄 알았던 칸나는 어느새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왔는지 봉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뭐 샀어?”
“커피랑 이것저것 먹을 거요. 뭐 드실래요?”
“음, 나는 그냥 안 먹을게. 빈속인 게 연습하기 좋아.”
배가 찬 채로 연습실에 갔다간 멀미가 날 거다.
“연습을 하려면 오히려 속을 더 든든하게 해야 좋은 거 아닌가요?”
“배부르면 몸이 둔해져서 안 좋아. 그나저나 오늘 어디 갈 거야?”
“쇼핑 좀 하고 언니랑 콘서트 보려고요.”
“콘서트? 갑자기 쉬는 날인데 콘서트를 보는 게 가능해?”
“후후! 돈이 많으면 불가능한 게 없답니당♥”
“그래, 잘 다녀와.”
“근데요~”
“응.”
“언니는 왜 안 와요?”
“천천히 오라고 했거든. 너랑 얘기 좀 하려고.”
“저랑요?”
“어제 일 말이야.”
내가 드디어 본론을 꺼내니 칸나가 아~! 하고 까먹고 있었던 일인 것처럼 반응했다.
누구는 그걸로 한껏 마음을 졸이고 있는 중인데 말이다.
“그건 왜요? 저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그래. 앞으로도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서.”
“네엥~ 그럴게요.”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하는 것을 보니 칸나가 유모님과 내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괜히 지레 짐작으로 찔려서 우리 둘이서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이러면 굳이 유모님 사정을 말해줄 필요는 없겠네.’
그때, 유모님이 차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 언니도 뭐 사왔네요. 나도 먹을 거 사다놨는데.”
유모님의 손에도 칸나처럼 봉지가 들려 있었다.
생각 할 시간을 벌기 위해 편의점에 다녀온 걸로 보였다.
부스럭대는 봉지를 칸나에게 넘긴 유모님이 내가 미처 막기도 전에 말했다.
“사장님이랑 내 사이, 오해하고 있다고 들었어. 완벽히 오해야. 내가 사장님한테 일방적으로 도움을 부탁드렸어.”
“넹?”
그녀가 사온 봉지를 뒤적이던 칸나가 어리둥절해져서 물었다.
“주인님께 뭘 부탁드렸는데요?”
“잠깐, 유모…!”
“자위하는 거.”
“네에에?!”
“…….”
늦었다.
이미 핵심을 다 말해버렸으니까.
당황스러운 얘기를 들은 칸나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떨렸다.
“아, 아니. 그걸 왜 사장님한테 부탁드려요?”
“그게 상황이 좀 복잡한데, 간단하게 설명하면 내가 자위를 제대로 못해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렸어.”
“언니 자위 한 번도 못해보셨어요?!”
“그쪽으로는 전혀 흥미가 없어서."
두 사람의 얘기를 계속 듣고만 있을 순 없었다.
"잠깐잠깐!! 칸나, 거기까지만 하자. 개인적인 사정을 그렇게 캐묻는 건 실례잖아.”
“아! 맞아요. 죄송해요, 언니. 안 물어볼게요. 굳이 힘들게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언니한테는 말하기 쉽지 않았을 일일 텐데, 제가 너무 배려 없이 행동했죠?”
“아니, 내가 저지른 일이니 책임도 내가 하는 게 맞아. 그것 때문에 사장님이 피해를 보는 건 절대 안 될 일이니까.”
"정말 괜찮아요?"
"네, 사장님. 저 때문에 피해를 입으셨는데도 배려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감당해야 할 문제니까요. 언제까지 사장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일이고요."
유모님이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우리 둘의 눈치를 보던 칸나가 슬그머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때 거기가 그렇게 축축 젖어 있었던 거군요.”
칸나의 말에 문득 어제의 처참했던 내 옷 상태가 떠올라서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섹스를 안 하신 거네요? 주인님, 대단하시다. 참기 힘들었을 텐데.”
“흠흠. 아무튼 그렇게 된 거니까 칸나 너는 괜히 오해하지 말고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도 마.”
“네! 당연하죠. 이런 걸 함부로 말하고 다닐 만큼 쓰레기는 아니에요!”
라고 전(前) 쓰레기 재벌3세가 말했다.
“근데 자위를 왜 못하시지? 언니, 제가 도와드릴까요?”
“네가?”
그리고 예상치 못한 손길을 내민다.
자위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깜짝 발언이었다.
“네가 도와준다고? 그걸??”
“아, 물론 주인님이 허락해주신다면요. 제 몸은 주인님 거잖아요. 헤헤.”
얘가 나와 가족들 앞에서는 개과천선한 순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왕년에 놀던 짬이 굉장한 녀석이다.
재벌 망나니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나쁜 짓은 저지르고 다녔는데, 그 나쁜 짓 중에는 남자를 갖고 노는 것이 꽤 빈번했다.
그나마 그녀가 정상참작이 되는 것은 그런 범죄 행위에 가담하기 보단 주로 방관하며 구경하는 입장이었다는 거다.
‘그게 죄를 짓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 건 아니지만.’
칸나는 내가 궁금해 하면 왕년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곤 하는데, 그걸 들어보면 정말 가관이 따로 없다.
사람을 도대체 뭐로 보는 건지.
그들이 돈이 많다고 해서 사람을 그렇게 능욕하고 장난감처럼 다룰 자격이 있는 건 아닌데, 사람을 갖고 노는 짓이 악마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갖고 노는 그들이야 말로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려나 모르겠다.
갑자기 얘기가 다른 곳으로 흘러갔는데, 다시 주제로 돌아온다면 그런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 하는 짓을 칸나가 꽤 오랫동안 보아왔다는 거다.
“도와준다면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야?”
“제가 그런 쪽으로 의외로 지식이 많아요. 애들끼리 레즈섹스 하는 것도 본 적 있고요.”
“난 그쪽 취향이 아니야.”
“저도 아니거든요? 주인님이 두 눈 부릅뜨고 계신데 언니랑 섹스를 할 리가 없잖아요. 아니면 꼭 주인님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에요?”
“아니! 그런 거 없어.”
유모님이 결백을 주장하듯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럼 제가 도와줄게요. 그리고 이건 우리끼리만의 비밀이었는데, 주인님께선 아무래도 사모님들을 챙기는 게 먼저다 보니 저희들 순서가 오는 게 드물거든요. 그래서 자주 자위를 즐기고 있어요. 도구도 준비가 되어 있다 보니 그걸 안 쓰는 게 바보일 정도거든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저한테 한 번 맡겨보세요. 주인님이 해주신 것만큼 환상적으로 보내는 건 못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준은 가르쳐드릴게요.”
칸나가 자신감을 보이며 하는 말에 유모님과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신경 써야 하는 여자들이 많다 보니 메이드들은 한없이 순서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메이드들은 성욕이 쌓이면 스스로 해결을 해야 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그걸 자위로 해결하고 있다는 건 몰랐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