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00화 (598/849)

Chapter 600 - #87. 마무리 (完)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아름다운 사람 정확히는 아름다운 살인마를 찍고 싶었습니다.”

나한테 왜 이 역을 제안했는지 물어보자 감독님이 한 말이었다.

스릴러 영화 속 살인마는 어릴 적 좋지 못한 경험을 통해 성격이 비틀어지면서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그 맛을 잊지 못해 살인을 하는 쾌락 살인범이었다.

어릴 적 자신의 외모 때문에 각종 범죄에 얽혀든 그는 아름답지 않은 것을 증오한다.

“그 기준은 못 생긴 외모가 될 수도 있고, 성격이 될 수도 있고, 직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각종 편견에 휩싸인 캐릭터죠.”

감독님은 살인범에 큰 공을 들였는지 내가 이 캐릭터에 대해 궁금해 하자 다양한 정보를 쏟아냈다.

“주인공이 아니지만, 어쩌면 주인공보다 더 주목을 받는 영화의 핵심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살인범이 너무 특별한 게 문제가 되진 않을까요? 살인범이라면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캐릭터인데, 이렇게 화려하면 눈에 잘 띄잖아요.”

“화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면의 추악함이 대비 돼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독님은 아름다운 살인범 컨셉을 버리지 않을 생각인 듯 했다.

나 또한 이제서 내 말 몇 마디에 컨셉을 버릴 거면 아예 영화를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감독님이 이 정도 줏대를 갖고 있다면 긍정적으로 작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미팅하는 내내 꽤 치열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생각보다 감독님과 대화가 잘 통해서 분위기가 무척 긍정적으로 진행이 됐다.

“오늘 대화 즐거웠습니다. 감독님.”

“아하하! 저야 말로 우리 작품에 관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대본을 넣긴 했어도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실 거라곤 상상도 못했거든요.”

실제로 그 대본은 직원의 실수로 들어간 거였다.

대본이 좋기는 했지만, 천만 영화를 통해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큰 상황에서 스릴러를 선택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그 작품은 운명처럼 내 눈에 들어왔고 결국 선택을 받았다.

나는 이 작품이 이대로 제작이 된다면 호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쭉 잘 부탁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

내 말이 캐스팅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임을 모르지 않은 감독님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가제)’는 내 다음 스크린 작품으로 선택을 받았다.

내가 캐스팅이 된 이후.

영화의 투자는 빠르게 마감이 됐다.

내 이름값이 투자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기존에 구하고 있던 투자금액보다 더 많은 투자금이 들어와서 감독님은 행복한 비명을 내질렀다는 후문이 있다.

착착 촬영 준비가 되는 사이.

나는 연화정 감독님으로부터 배웠던 것들을 떠올리며 새 작품의 캐릭터에 빠져들었다.

연화정 감독님의 작품 때처럼 어두운 역할이었지만 캐릭터의 성격이 겹치는 건 아니었기에 걱정 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이번에 맡은 역할 조윤강은 속에 곪은 상처가 있는 사람치고 남들에게 부러움을 살게 너무도 많았다.

‘이렇게 잘난 게 많은데도 어쩜 이렇게 못났을까.’

똑똑해서 돈 잘 버는 잘 나가는 변호사에 그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넘쳐나고,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여자들도 가득했다.

잘난 외모로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사람.

하지만 그는 본인의 잘난 외형을 음습한 취미에 이용했다.

그 취미가 자신의 모든 것을 파괴할 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행동하지만 모든 일에 행복감을 느끼기보단 불평과 불만을 쌓는 사람이다.

‘재판에서 이기면 제대로 일하지 못한 검사를 멍청하다고 비웃고, 재판에서 지면 의뢰인이 병신 같아서 진 거라고 욕하지.’

자신에게 호감을 보내오는 여자는 역겹고, 순수한 어린아이는 말도 섞고 싶지 않을 만큼 역겹다고 느끼는 사람.

세상을 삐뚤게 보는 사람이라 쉽게 캐릭터에 녹아들 수가 없었다.

“그냥 세상 모든 게 싫고 항상 화가 난 사람인 건가.”

자신에게 무관심한 세상이 캐릭터를 이해하는 게 어려웠으므로, 그가 세상을 이렇게 보게 만들었던 어린 시절을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엄연히 이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살인범 조윤강이 아니었다.

그를 수사하고 쫓아서 기어코 잡아내는 형사였지.

사실 영화에서 형사와 살인범의 대결은 흔하게 있는 대결구도였다.

그 대결 구도에서 식상해 보이지 않도록 다양한 장치를 더하기 마련이었고, 주인공 형사는 특이하게 귀신을 보는 무당 형사였다.

죽어서 귀신이 된 이들이 무당 형사에게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요청을 해오고, 형사는 유령이 주는 단서를 따라 조금씩 조윤강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귀신들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너무 쉽게 범인을 검거하게 되므로, 귀신은 아주 작은 단서만 짧게 줄 수 있다는 설정을 해뒀다.

생애 가장 강했던 기억을 5초 정도만 형사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형사가 귀신을 보니까 일상생활에서 불쑥불쑥 귀신이 튀어나오는 걸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거지.’

메인 빌런을 쫓는데 시간을 다 할애한다면 보는 사람들은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형사가 귀신을 보는 무당이지 않은가?

수사를 하면서 지루할 수 있는 부분에 적절하게 귀신을 넣어놔서 공포감을 이어가도록 만들어놨더라.

아직 영화를 찍지도 않았는데 끝을 말하긴 뭐하지만, 메인 빌런 조윤강은 철저하게 무너진다.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안다는 말처럼.

자신을 사랑해주던 애인, 함께 우정을 나눴던 친구들, 그리고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 온 동료들까지 추악한 그의 본모습에 경악하며 그를 외면한 것이다.

마침내 혼자가 된 조윤강의 곁에 남은 건 그의 손에 죽어 귀신이 된 존재들 뿐.

절망하게 된 조윤강의 마지막 절규는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될 예정이었다.

“빨리 찍고 싶네.”

외면의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진짜 아름다운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특히 내가 형사가 아니라 살인마를 연기한다는 점에서 더 좋았다.

만약 형사로 섭외가 들어왔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서 빨리 촬영 날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하루하루 살인마가 되기 위해 캐릭터에 집중했다.

♧ ♧ ♧

[진해솔 차기작 <아름다운 사람> 살인마로 캐스팅 되다!]

[악역 맡은 진해솔, 과연 어울릴까?]

[천만 영화배우 진해솔 악역 연기 도전. 대중들 반응은 글쎄?]

[드디어 촬영 시작! 진해솔 미리 보는 현장 포토 프리뷰!]

[살인마가 이렇게 잘생겨도 되나요? 여심을 뒤흔드는 아름다운 살인마로 변신한 진해솔.]

[에어플레인 진해솔 공포 스릴러 영화에 도전한다!]

내가 공포 스릴러 장르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너무 의외로 느껴졌는지 언론에서 꽤나 호들갑을 떨었다.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어대도 영화 촬영은 무난하게 이어졌고,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 영화를 통해 내 연기력에 물음표를 보내던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살인마 역할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촬영하기 어려웠고, 감정을 꽤나 많이 소모해야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한 만큼 결과가 좋았기에 만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만의 만족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영화가 개봉 되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사람> 진해솔의 놀라운 연기 변신. 극찬 받다!]

[영화 아름다운 사람 까보니 대박?]

[살인마 진해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살인마! 치명적이고 위험하다!]

[연기력 논란을 불식시킨 진해솔, 연기력 호평!]

[액션 연기가 끝이 아니었다! 진해솔 남배우 브랜드 파워 1위에 뽑혀….]

[극장가를 장악한 ‘아름다운 사람’. 국내 공포 영화 박스 오피스 1위. 역대급 공포 영화!]

[평론가 이지숙 “권선징악이 완벽한 영화.” ‘아름다운 사람’ 호평.]

[아름다웠기에 더 짜릿했다! 진해솔의 처절하게 망가진 연기에 숨 막힌 채 봤다.]

계획했던 것처럼 내 연기는 호평을 받았다.

감독님이 계획했던 것처럼 처절하게 망가진 살인마의 모습이 관객들의 마음에도 쏙 들었던 것 같다.

영화는 장르가 공포임에도 불구하고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관객수 425만 명이라는 굉장한 수치를 기록하고 극장가에서 내려왔다.

이제 누구도 진해솔이 연기자로 훌륭히 자리 잡았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한편….

유모님과의 관계는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들에게 들켰다.

애초에 오래 숨길 생각도 없어서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기어코 유모님에게까지 나쁜 손을 뻗었냐며 옆구리를 뜯기긴 했지만, 유모님이 걱정했던 것처럼 큰일이 생긴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유모님이 누나들이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메이드들의 포지션에 서겠다고 말을 해서 지저분해질 수 있는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한 게 컸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유모님이 알아서 누나들과의 관계를 정리해버렸으니 말이다.

누나들은 유모님까지 나한테 넘어 올 줄은 몰라서 당황했을 뿐, 반대하거나 싫다거나 하는 건 아니라며 유모님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나는 정말 복 받은 놈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낀 순간이었다.

란나는 저번에 한 번 언급했다시피 무사히 아들을 낳았고, 유모님은 한동안 그 아이를 돌보기 위해 주거지를 옮겼다.

그 과정에서 란나와 내 사이에 얽혀 있는 비밀을 유모님에게 밝혀야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자신이 참견할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겠다고 했다.

란나는 초반에 유모님을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유모님이 아이를 돌보는 솜씨를 보더니 홀딱 빠져서 금방 그녀를 받아들였다.

솔직히 육아 지옥에 빠졌을 때, 도와주겠다며 손을 뻗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손을 안 잡고는 못 베기는 법이었다.

아기가 서툴기 그지없는 란나의 손길보다 유모님의 손길을 더 좋아한다는 것도 한 몫했고 말이다.

태양이는 훌쩍 커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어릴 적부터 그랬지만, 학교를 다니는 요즘에도 여자들을 몰고 다니고 있었다.

주아 누나와 내 아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학부모 사이에서 알려졌고, 그로인해 주아 누나가 좀 스트레스를 받아 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큰 문제없이 학교 생활을 하는 중이다.

지현이와 현오는 쌍둥이처럼 커서 그런지 싸우기도 자주 싸우지만, 붙어 있는 시간도 굉장히 많았다.

현오는 여전히 외할머니와 대모인 최관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어린 나이에 벌써 재산이 어마어마했다.

요즘 두 사람은 돈만 벌면 현오에게 뭘 사줄지 고민을 하나보다.

연주 누님이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애썼으나 몰래몰래 쥐어주는 것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현이는 아빠를 닮아 예쁜 외모와 엄마를 닮아 범상치 않은 모델 몸매를 가진 탓에 벌써부터 아동 모델로 활동을 하는 중이다.

복순 누나가 지현이의 끼를 보고 한 번 경험 삼아 시켜봤던 아동모델이 생각보다 잘 돼서 꾸준히 일이 들어왔다.

아빠처럼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지현이는 내게 애교를 가장 많이 부리는 예쁜 딸래미다.

쌍둥이들은….

말해 무엇하겠나?

정화씨를 닮아 얌전한 줄 알았는데, 크면 클수록 장난기가 많아서 유난히 사고를 많이 친다.

그래도 항상 해맑게 웃고 있어서 사고를 쳐도 화를 낼 수가 없더라.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내가 꽤나 정신없이 길을 걸어왔음을 느끼게 된다.

낯선 세상에 덩그러니 떨어져, 아는 사람 없이 시작하게 된 이계 생활이다.

나라는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이는 없었고, 날 이곳에 보내준 존재가 시키는 대로 무작정 여자들을 꼬시고 다녔던 것 같다.

그렇게라도 인연을 만들고 싶었다.

인연을 만들어야 조금이라도 내가 보호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무작정 시작한 관계였는데….’

조금이라도 곁을 지켜 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무작정 마음이 가는 곳에 손을 뻗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가족이 되어 줄 여자들로만 만났다.

만약 그때 누나들과 만나지 않고 좋지 않은 쪽으로 빠졌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오는 여자는 다 받아들이고, 가는 여자 안 붙잡는 인생을 살았겠지.’

가족을 만들기는커녕, 여러 여자들에게 좆질이나 해대면서 코인을 얻고 그것으로 여자들을 조종하거나 세뇌하면서 질 나쁘게 놀았을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소름 돋는달까.’

원래 사람이 그렇지 않은가?

갑자기 얻은 부와 권력에 휘둘려 망가지는 것.

데뷔초부터 인기를 얻었고 날벼락 맞은 것처럼 완벽한 외모를 얻었다.

섹스를 하면 코인을 얻을 수 있다는 황당한 능력으로 문란한 생활을 부추김 받기 까지 한다.

‘내가 여자 복이 있었던 거지.’

내가 별 생각 없이 선택한 길은 의외로 최선의 선택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건 내가 잘났다기 보다는 내 여자들이 대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들 모두가 내가 삐끗하지 않고 밝은 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영향을 준 것이다.

‘이렇게 예쁜 여자들이 이미 내 여자인데, 다른 여자들이 눈에 들어 올 리가 있겠냐고.’

지금도 심심치 않게 나쁜 쪽으로 들어오라는 유혹을 하는 경우가 있다.

유명해지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가만히 두질 않아서 그렇다.

하지만 그런 곳은 호기심으로라도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 늪 같은 곳이니 말이다.

‘그쪽으론 쳐다도 안 봐야지.’

남들은 쓰지 못하는 상점으로 별의 별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 보니 그것을 남용하며 사람을 우습게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태양이가 태어나고 처음 그 아이의 얼굴을 봤을 때부터, 적어도 부끄러운 아빠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부족할 수는 있으나, 부끄러운 아빠는 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아빠아아아!!!”

“어~ 아빠 여깄어!”

가진 능력으로 고작 이런 위치에서 만족하고 사는 게 너무 아깝지 않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오히려 내가 가진 능력으로 이런 행복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서 행복한 가족을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이를 남들에게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다는 것.

남녀 역전 세계에서 아이돌로 살아가기에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이지 않은가?

나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의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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