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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01화 (599/849)

Chapter 601 - #88. (외전) 진주아 (1)

진주아는 아이돌로 데뷔에 실패하면서 배우로 일을 전향했다.

그리고 시작부터 놀라운 연기력을 뽐내며 주목을 받아 여배우로서의 입지를 빠르게 다져나갔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선배 여배우들의 기 싸움이 대단해서 그 텃세를 이겨내고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텃세를 실력과 외모로 이겨내면서 팬이 생기고 이름값과 연차가 올라가면서 점점 촬영장에 다니는 것이 편해졌다.

“선배님~ 오늘 의상이 정말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꾸준히 연기자로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덧 그녀를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후배도 나타났다.

끝내 아이돌로 데뷔하지 못하게 됐을 땐, 앞날이 막막하고 나 자신이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에 실망감이 컸었다.

그런데 배우로 전향하고 나서부터는 일이 굉장히 잘 풀렸다.

‘해솔이를 만나고 난 이후부터 일이 잘 풀렸지.’

처음 해솔이를 만났을 때, 솔직히 좌절했다.

회사에서 저런 애를 내버려두고 여자 아이돌을 선택할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회사는 남자 아이돌을 데뷔시키겠다는 선택을 했다.

그땐 잠깐 해솔이를 원망한 적도 있다.

‘왜 하필 이 순간에 나타나서….’

지금도 가끔 생각을 한다.

아이돌로 데뷔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배우도 좋지만 어릴 적부터 꿈 꿔왔던 것은 무대 위에 서는 것이었다.

아쉬움이 조금도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악! 갑자기 왜 꼬집어?”

“몰라.”

이미 머릿속으로는 그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납득도 했으면서 괜히 해솔이의 옆구리를 콱 꼬집어버렸다.

태양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녀는 요즘 학부모들과 신경전을 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남편이라는 놈은 스케줄로 바쁘다는 핑계로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옛날 생각도 나면서 얄미워진 것이다.

“우씨. 이게 진짜.”

“꺅! 무거워. 저리 가!”

“누나라고 꼬박꼬박 불러주니까 남편이 우습지? 엉? 아주 혼쭐을 내줘야겠어.”

“그만하라고~! 아흣! 손이 어디로 들어가는 거얏!”

진해솔이 그녀를 덮쳤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야릇해지고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으응…! 으읏, 응!”

이 남자한테는 화도 제대로 못 낸다.

‘너무 좋아!’

그의 손에 몸이 녹아내린다.

그에 대한 불만도, 얄미움도 전부 다 말이다.

‘내가 복 받은 년이지. 너무 쩨쩨하게 굴지 말자.’

밤일 잘 하는 남자에 얼굴만 보고 살아도 30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은 외모를 가진 남자.

심지어 그는 돈도 잘 번다.

유일한 흠은 여자가 많다는 점인데, 잘난 남자와 살려면 그 정도는 어쩔 수 없이 배려해줘야 했다.

그가 아니고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한바탕 후끈한 열기가 지나가고….

성욕을 어느 정도 풀어서 너그러워진 진해솔이 물었다.

“그래서 뭔 일인데.”

“뭐가.”

“불만이 생겼으니까 아까 꼬집은 거잖아.”

“치.”

눈치 없이 모르는 척 굴더니 이럴 땐 또 쓸데없이 눈치가 좋다.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만지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물어보면 털어놓지 않을 수가 없어진다는 걸 알고 있는 듯 했고 말이다.

“태양이 학교 학부모 모임 말이야.”

“응.”

“거기서 자꾸 오라고 하네.”

“그때, 누나한테 되게 귀찮게 굴었다고 했었지?”

“응. 요즘 학부모들 극성인 건 아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모임이 잦더라고. 더 어이없는 건 참석을 안 하면 벌금을 내기로 자기들끼리 룰을 정했다면서 나보고 지키라는 거야.”

“그건 좀 아니다.”

“그치?? 어이없지??”

“응.”

“그래서 난 그런 식의 룰은 지킬 수 없으니 빼달라고 일하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이러니까 어차피 연예인들 스케줄 들쭉 날쭉하는 거 아니냐, 요즘 나오는 작품도 없으면서 뻔한 거짓말을 한다. 이러는 거야!!”

하도 지랄지랄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참석을 하면 뭘 하는 줄 아는가?

대단히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수다 떠는 게 전부야. 진짜 어이없지 않아?”

학부모들끼리 친분을 다지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그걸 참석을 안 하면 벌금을 내놓으라고 하냔 말이다.

“나한테 엄청 질척거려. 쓸데없는 가쉽을 엄청 좋아해. 나한테 연예계 얘기를 듣고 싶은가 봐. 근데 듣고 싶은 게 연예계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연예인 흉보는 얘기를 말해주길 바라더라. 그래서 더 상대하기 싫더라고.”

“누나 엄청 고생했겠네. 다른 사람이었으면 바로 상대 안 하면 됐는데, 하필 태양이 같은 반 학부모라 그럴 수도 없는 거잖아.”

“응.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모임에 몇 번 참석하긴 했는데,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가 현타가 오더라. 그래서 이후로 안 나갔어. 태양이가 나 때문에 불이익 당하면 어떡하나 걱정 돼서 억지로 나갔는데, 생각을 해보니까 그 사람들이 태양이한테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 만약 뭔가를 해도 내가 막아줄 능력도 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걔랑 놀지마!’ 일 텐데, 태양이는 지금도 인기가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놀지 못하면 손해를 보는 건 그 아이라는 뜻이다.

“우리 누나 멋있네. 그 사람들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안 받았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뭐라고 하는 거야?”

“응. 안 나가니까 안 나온다고 뭐라 하네. 아무래도 초반 단추를 잘못 잠근 게 문제인 것 같아. 너무 힘주고 나가면 학부모들이 날 어려워 할 것 같아서 좀 편하게 입고 갔거든."

"에이~ 편하게 입고 갔다고 사람을 무시한다는 게 말이 돼?"

"거기다가 학부모들이랑은 될 수 있으면 잘 지내는 게 좋다는 말을 들어서 호구처럼 굴었거든. 그래서 날 만만하게 봤나 봐.”

“와~ 우리 누나가 만만하다고? 그 사람들 진짜 잘못 봤네. 우리 누나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데."

"뭐?"

진해솔의 말에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니 질겁하며 말을 돌린다.

"크흠, 그래서 내가 도와줄 일은 없는 거야?”

“흠…네가?”

그녀는 애물단지를 보듯이 그를 바라봤다.

그가 나서는 게 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따져봐야 했다.

하지만 육아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었으므로 일단 그의 손길을 거절하진 않기로 했다.

“뭐 어떻게 도와주려고?”

이 상황을 해결해줄 만큼 좋은 아이디어를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그랬는데….

“음~ 그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는 건 어때?”

“우리 집에? 굳이 그런 사람들을?”

해솔의 말에 곧장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뭔가 꿍꿍이가 있어서 저런 말을 했겠거니 싶어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막연하게 그 사람들이랑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부터 들었던 거다.

“그 사람들이 여기 오면 좀 달라질까?”

“우리야 여기서 살아서 별 생각이 없는 거지, 여기 저택이라고 불러도 될 수준이야. 그 사람들이 이 집을 보고도 변화가 없다? 말도 안 되지. 누나가 너무 편하게 해줘서 쉽게 보고 수작을 부리는 거라며. 그럼 더 이상 편하게 못 보게 만들어주면 되는 거잖아. 너무 노골적인 자랑이긴 해도 부를 자랑하는 것만큼 확실한 효과는 없어.”

진해솔의 말을 들으니 솔깃해진다.

그녀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으리으리한 저택 수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림 같은 전원주택이다.

어릴 적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며 한 번쯤은 그림을 그려봤을 그런 집.

더불어 이런 집에서 산다는 걸 알게 되면 그녀에 대한 생각이 바뀔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가 누나가 일할 때처럼 화장 하고, 옷도 쫙 빼 입으면? 그걸로 끝이지. 딱히 누나가 뭐를 안 해도 고개 숙일 걸? 사람들이 괜히 명품에 집착하고 과시하길 좋아하는 게 아니거든.”

장담하건데 그 사람들, 절대 그녀를 편하게 대하지 못할 거다.

그녀도 해솔이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해졌다.

“솔직히 나는 학부모 모임에 로망이 있었어.”

“어떤 로망?”

“같은 또래 아이 키우는 학부모들이잖아. 그래서 같이 애들 얘기하면서 친해지는 거지. 애들 얘기, 사람 사는 얘기 그런 거 하면서 수다도 떨고 말이야.”

“보통 평범한 가정이면 그렇게 됐겠지.”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태양이 유치원 때는 모임 같은 건 없어도 가끔 만났을 때 되게 편하게 얘기 나눴었잖아.”

“그랬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우릴 배려해주셨던 것 같아."

"응, 그런 것 같아."

"많이 서운했겠다.”

잔뜩 기대했는데, 완전 실망해버렸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남편에 괜히 울적한 감정이 넘쳐버려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해솔이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준다.

가끔 아니, 수시로 그는 연하가 아니라 연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연하 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모습은 그녀의 취향에 딱 맞아서 얼굴을 붉히게 만들곤 한다.

‘부끄러워.’

그를 만나 연인이 되고, 아이를 낳아 부부 사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가 멋있어서 큰일이었다.

슬슬 콩깍지가 떼어질 때도 됐는데.

내 눈에는 여전히 멋있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그럼 나 정말 초대한다?”

“그래, 양해를 구하는 대신 미안하니까 집으로 초대한다고 해. 아이들도 전부 데리고 오라고 하고.”

“괜히 고생하는 거 아니야?”

“누나가 이렇게 스트레스 받아 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들어. 그 사람들이 누나한테 자꾸 이상한 수작 부리는 거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었고. 그날 진짜 제대로 기 살려 줄 테니까 딱 기다려.”

“설마 너도 참석하려고?”

“우리 집에서 제일 자랑해야 할 게 나 아닌가? 내가 빠지면 그 사람들이 위화감을 어떻게 느끼겠어.”

“풋!”

진해솔의 잔망스러운 애교에 웃음이 나왔다.

사실 저 말이 맞기는 하다.

진해솔 만큼 자랑하기 좋은 게 없으니 말이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집에 있는 진해솔을 본 순간, 학부모들은 입에 접착제를 바른 듯이 아무 말도 못할 것이다.

‘매일 보는 얼굴이면서도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얼굴이니까.’

그를 앞에 두고 멀쩡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그녀가 기억하는 학부모들 중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 ♧ ♧

처음 시작은 연예인 진주아의 아들 진태양에게 제 딸들이 쓸개라도 빼줄 듯이 군다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였다.

의외로 진주아가 스타답지 않게 수수한 차림새로 나타났다는 점도 그들이 그녀를 우습게 볼 수 있는 원인이 되어주었다.

그것이 그녀의 입장에선 ‘배려’였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말이다.

‘돈 많이 벌었을 줄 알았는데, 입은 옷에 명품 하나가 없던데요?’

‘아들을 낳았는데도 대접을 못 받았나보네~ 쯧쯧쯧!’

‘TV에서는 엄청 잉꼬부부니 뭐니 하던데 다 거짓말이었나봐.’

잘난 외모에 잘 나가는 직업, 거기에 완벽한 남편에 아들까지.

아예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동경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배려심 때문에 부러움은 질투를 낳았다.

그리고 질투심은 내부 소속의 학부모들을 끈끈하게 만들었고, 그 반작용으로 진주아에 대한 적개심이 강해졌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왕따’를 한 것이다.

물론 그걸 받아들이는 쪽은 사정이 좀 다르겠지만 말이다.

진주아는 그들의 악의를 빠르게 읽고 어정쩡하게 손절을 쳐버렸다.

태양이의 학부모이니 연락은 받겠으나 쓸데없이 시간을 내서 만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학부모들 쪽에선 더 안달이 나서 진주아를 이겨보겠다고 되도 않은 짓을 시작했다.

그 결과.

“솔직히 벌금은 좀 너무 갔어요.”

“왜 이래요? 나 혼자 생각한 건 아니잖아요? 다들 그러자고 동의했으면서!”

“서로 사정 다 알면서 너무 팍팍하게 굴었잖아요. 우리도 다 일하면서 애들 돌보는 입장인데.”

“그래서 이제와 누구 잘못인지 따져보자는 거에요?”

벌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할 거라는 그들의 예상과 달리, 진주아는 학부모 모임에 더 이상 참석하지 못하겠다며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렸다.

그녀의 예상치 못한 단호한 태도에 학부모들은 당황했다.

만만한 줄 알고 툭툭 건드렸다가 예상외의 반응에 당황한 것이다.

‘만만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닌데.’

뭔가 잘못 됐다는 직감이 들자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내부에서 누구 잘못이니 누가 시작했느니 하며 분열이 일어날 무렵.

진주아가 의외의 제안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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