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02화 (600/849)

Chapter 602 - #88. (외전) 진주아 (2)

“무슨 꿍꿍이로 우릴 집에 초대한다는 걸까요?”

학부모들은 진주아가 집을 초대하는 것에 수상한 꿍꿍이가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본인들이 저지른 짓이 있는지라 지레 찔린 것이다.

하지만 진주아가 드디어 얼굴을 보여준다는데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더욱이 그녀는 앙큼하게도 앞으로 일이 바빠 학부모 모임에 가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서라는 핑계로 집에 초대를 했다.

“정말 가는 거에요?”

“그동안 여배우라고 괘씸하게 우리 무시하던 거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둘 순 없잖아요.”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 것 자체를 무시라고 생각한 그들이 씩씩거리며 전투의지를 다졌다.

이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슬슬 발을 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여론을 거스르지 못했다.

그렇게 잔뜩 의지를 불태우며 도착한 진주아의 집 앞.

“…….”

“…….”

“…들어갈까요?”

“드, 들어가야죠! 갑시다!”

“근데 정말 여기가 맞을까요? 우리가 주소를 잘못 안 걸지도 모르는데.”

“…다시 확인해봤는데 여기 맞대요.”

흔히 재벌집이 이러할까?

그들은 거대한 담벼락과 대문 앞에서 잔뜩 쫄은 채로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이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게 나올지 짐작도 안 된다.

“아무리 연예인들이 돈을 잘 번다지만 이런 집까지….”

“여기 땅값이 얼마지?”

“교통이 좋아서 절대 낮진 않을 것 같은데요.”

그들이 본 것은 아직 대문 뿐이다.

허나 그들의 뾰족했던 목소리는 둥굴둥굴하게 깎여나갔고, 컸던 소리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움직임도 소극적으로 바뀌어버린 그들은 초인종을 누르는 것도 머뭇거리며 한참동안 대문 앞을 서성였다.

“엄마아~ 태양이 집에 언제 드러가?”

그들의 머뭇거림을 멈춘 것은 아이들의 칭얼거림이었다.

“어어~ 그래. 들어가야지.”

태양이한테 보여주겠다고 예쁘게 차려 입은 분홍 드레스.

그걸 입혀주면서도 속이 좋지 않았다.

이 드레스는 딸아이 생일선물로 그녀가 해줬던 아주 비싼 드레스였다.

엄마 생일날 이걸 입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겠다며 환하게 웃었던 딸아이는 남자에게 눈이 돌아서 옛날 약속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저렇게 애써봤자 태양이는 다른 여자들이 많아서 신경도 안 쓴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고 말이다.

“이야하~”

“세상에, 세상에 이게 집이야?”

“태양이 집 이쁘다아~!”

“우와아아아!”

“짱 커!!”

“나 이거 태양이 그림에서 봐써!!”

초인종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문이 열렸다.

그리고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예상했던 대로 그림 같은 저택이 나타났다.

새하얀 벽돌에 파란색 지붕.

한쪽에는 놀이기구가 설치되어 있었고, 잘 관리 된 연못도 있었다.

잔디는 일정한 높이로 관리가 되어 있었으며 정갈한 나무들이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이런 집은 드라마에서도 보지 못했던 수준인지라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렇게 큰 집에서 살면 혼자서 관리는 절대 못하겠는데?”

“혼자서 하겠어? 당연히 사람을 고용했겠지.”

“아니, 이렇게 잘 살면서 왜 티를 안 냈대?”

“그러게 말이야. 이 정도면 재벌급 아닌가?”

학부모들의 대화가 착잡해져가는 반대로, 태양이를 만날 생각에 신난 아이들은 깨발랄하게 정원을 뛰어서 저택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태양아~!!!”

“꺄아아~!!! 왕자님!!”

때맞춰 현관문이 열리고, 멋드러진 정장을 입은 태양이가 나타났다.

“안녕.”

연예계의 외모 탑급에 속하는 진해솔과 진주아의 아이다.

진태양이 꼬마 신사 정장을 입고 웃으면서 맞이해주니 애들이 미쳐 날뛰었다.

“태양이 너무 머싯어!!!”

“뽀뽀하자!!”

“비켜어~! 태양아!! 나 오늘 어때? 너 보여주려고 드레스 입었어!”

학부모들은 태양이에 환호하는 애들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하지만 그들의 한숨도 얼마 가지 않았다.

태양이의 뒤에서 나타난 진주아와 진해솔의 모습에 압도 되어 버린 것이다.

“헉!”

연예인이 괜히 연예인인가?

종족이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그게 정답이다.

더욱이 그들이 제대로 마음 먹고 차려 입는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쳐다보기도 힘든 엄청난 위력을 내보일 수 있는 거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진작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일한다고 바빠서 격조했습니다.”

조각상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해온다.

그 옆에는 그동안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아등바등했던 여자가 여신이 되어 서 있었다.

진주아의 ‘진심 모드’는 그만큼 위력이 대단했다.

인사도 제대로 못 받아 줄 만큼 충격 받은 학부모들이 뻣뻣하게 서 있으니 그들이 웃으면서 안으로 안내를 했다.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있는 걸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이해해주면서 말이다.

“너, 너무 갑자기 초, 초대를 해, 해주셔서…급하게 그냥 조금 준비해봤어요.”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니 쳐다보지 않는 것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낸 학부모장이 진주아에게 손에 든 쇼핑백을 내밀었다.

“어머, 뭐 이런 걸 준비하셨어요. 마음이라고 하시니 감사히 받을게요. 칸나, 도와줄래?”

“네~ 사모님.”

비정상적인 메이드복이 아닌, 정상적인 작업복을 입은 칸나가 쇼핑백을 대신 받아들고 주방으로 갔다.

“엄마! 나 친구들이랑 놀이방 가도 돼요?”

“일단 밥 먹고 가. 밥 먹고 놀이방 가서 친구들이랑 노는 거야.”

“네에~ 얘들아! 밥 먹자.”

어른들의 미묘한 사정을 모르는 태양이는 친구들이 집에 온 게 좋았는지 천진난만했다.

“태양이는 집에 놀이방도 있대!”

“거기에 장난감 같은 거 잔뜩 있어. 아빠가 만들어준 방이야.”

“우와!”

“재밌는 거 많으니까 밥 먹고 거기 가서 놀자.”

“응!”

식탁에는 아이들이 먹는 것과 어른이 먹는 것이 따로 차려져 있었다.

아이들 위주로 차리면 음식들이 너무 달고, 어른 위주로 차리면 애들이 흥미를 잃을 테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야…이거 준비하시느라 고생하셨겠어요.”

“집이 너무 좋네요.”

진주아에게 학부모 모임 참석에 대해 한 마디 따지려고 했던 사람들 모두 식사 내내 그런 쪽으로는 언급조차도 못했다.

그들은 두 사람과 눈도 못 마주치고 음식만 열심히 씹었다.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집 구경을 했다.

참고로 이 집을 관리하는 사람은 멜리사와 비앙카 그리고 칸나.

그녀들 모두 재벌집 딸로 눈이 굉장히 높고 예술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이었다.

“그림에 대해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여기 걸린 그림들이 심상치 않다는 건 알겠어요.”

“이거! 저 이거 아는 그림인데…. 진짜 진품인가요?”

“제가 알기로 진품일 거에요.”

“그럼 저게 진짜 경매에서 6억에 낙찰 받은 희연 작가 작품이라는 거네요?! 어머어머!”

집에 걸려 있는 그림과 여러 미술 작품들은 메이드들이 주기적으로 교체를 해 놓는다.

집이 바뀌면 대부분 그러려니 하는 편이었고, 그나마 집에 장식 된 것들이 교체 되는데 신경을 쓰는 사람은 주아 엄마인 정화의 몫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별스럽지 않게 생각한 미술 작품들이 꽤 강렬한 인상을 줬는지 이후로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워졌다.

그동안 진주아를 괴롭혔던 게 없던 일인 것 마냥 말이다.

“바쁜 사람인 거 아는데 저희가 너무 팍팍하게 했죠?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요. 내가 사과할게요. 우리가 주아씨랑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아요.”

당연하지만 태도를 바꾼 그들은 먼저 사과를 청해왔다.

뻔한 태도 변화였기에 그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주아는 연기력을 발휘해서 그들의 사과를 적당히 좋게 받아들였다.

앞으로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모르는 이들인데 너무 과하게 나가면 평판에 좋지 않을 게 분명했다.

“똑같이 아이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서로 이해를 하고 돕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네요.”

직접적으로 사과를 받아주진 않았으나 서로 이해하고 돕는 관계가 되자는 말로 척을 지지는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덕분에 안색이 좋지 않던 학부모들도 안도할 수 있었다.

분위기가 좀 풀리자 그때부터 학부모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주로 그녀의 남편에 대한 질문이었다.

“둘이 잉꼬부부라더니, 정말 사이가 좋으시네요.”

“이 집에서 두 분이 같이 사시는 거죠?”

태양이는 아빠가 놀아주는 게 무척 재밌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친구들에게도 그 재미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결국 식사를 끝낸 태양이가 해솔을 데리고 친구들과 함께 놀이방으로 끌고갔다.

그 모습을 누구도 나쁘지 않게 봤다.

오히려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 분이 평소에도 저렇게 아이 돌보는데 도움을 주시나요?”

학부모 중에는 남편과의 사이가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여자들의 유혹이 끊이지 않은 탓이다.

남자가 더 어리고, 더 예쁘고, 더 능력 있는 여자를 따라 가는 건 막을 수 없는 일.

그렇기에 아이를 낳고도 여전히 남편에게 사랑 받는 그녀의 노하우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남편이 아이를 워낙 좋아해서 제가 딱히 말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아이한테 뭐든 해주고 싶어 하는 편이에요. 놀이방도 해솔이가 스스로 공들여서 만든 방이고요.”

“주아씨가 워낙 예쁘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남편이 알아서 잘 해주나보네요.”

부러우면 진 거라는데, 그들은 이미 패배한지 오래였다.

너무 뻔한 상황이었지만 솔직히 속이 시원하기는 했다.

꼬장이란 꼬장은 다 부리던 사람이 결국 그녀가 가진 것들에 자존심을 버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이래서 사람이 갑질을 하나 봐.’

복수는 짜릿했고, 남편의 조언을 따르기로 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해서 날이 저물 때까지 집에 머물렀던 학부모들이 모두 돌아가고, 주아는 피곤해 하는 남편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뭐야? 수고했다는 칭찬이야?”

“응, 맞아.”

“그치. 나 오늘 좀 수고를 하긴 했어. 애들이 나를 완전 놀이기구로 생각하더라. 등에 태워주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애기들 손힘이 그렇게 셀 줄 상상도 못했어. 원숭이인가 싶더라니까?”

그녀가 어깨를 주물러 주는 것을 엉뚱한 이유로 오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엉뚱한 모습도 나름 귀여워서 좋았다.

남들이 부러워 할 남편이 그녀의 남편이라는 점도 뿌듯했다.

‘역시 동창회 나가서 자랑할 건 차랑 애인이 최고인가.’

직업도 자랑거리 중 하나겠지만, 그래도 최고는 부를 증명할 수 있는 차와 애인이 최고인 법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오늘 주아는 확실하게 과시욕을 충족시켰다.

‘이런 느낌, 중독 되어버릴 지도.’

오늘 이쁜짓 했으니 이쁨을 줘야 서운하지 않을 것이다.

학부모들이 남편을 어떻게 다루는지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했으나 끝끝내 알려주지 않았던 노하우.

상을 줄 때는 정말 진심으로 후하게 해줘야 한다는 거다.

“이쁜 짓 많이 했는데, 나한테 바라는 거 있어? 오늘 특별히 소원 들어줄게.”

“소원? 진짜?”

“네 말 듣길 잘한 것 같아. 사이다 마신 것처럼 속이 뻥 뚫렸다니까. 으히히!”

“그 사람들이랑 잘 풀린 것 같긴 하던데.”

“응. 태도 변화가 아주 그냥! 너도 그걸 봤어야 했어. 어쩜 너한테는 꼼짝을 못하니? 눈을 쳐다도 못 보더라?”

“하하. 연예인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으니까 그랬겠지.”

“나는 뭐 연예인 아니니?”

“그래서 오늘 우리 누나 어깨에 뽕 좀 들어갔나? 남편 자랑 마음껏 해서?”

“…응.”

농담으로도 아니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만족했다.

“그럼 정말 내가 바라는 거 다 해주는 거야?”

“해준다고 할 때 빨리 말해. 마음 바뀌기 전에.”

“헉! 그럼 저…코스프레 가능합니까?”

“네가 그럼 그렇지. 코스프레 뭐?”

“흐흐, 그건 좀 생각해볼게.”

주물주물-

애들이랑 놀아주느라 지쳤던 게 언제냐는 듯 남편의 손이 옷 안으로 쑥 들어온다.

“아잇, 피곤하다며?”

“오늘 태양이가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아서 피곤했는지 일찍 골아 떨어졌잖아. 이때 아니면 언제 편하게 하겠어.”

애가 나이가 좀 들었다고 슬슬 밤에 잠을 안 자려고 해서 부부의 시간이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10시면 애가 잠들어서 편하게 침대를 쓸 수 있었는데 이젠 10시에도 눈이 말똥말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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