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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09화 (607/849)

Chapter 609 - #89. (외전) 로즈 박복순 (5)

“그런 일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일단 저희 쪽에서 자체적으로 조사가 필요한 것 같은데,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직원은 그녀의 말을 어느 정도 믿어주면서도 자체적으로 조사 할 필요를 분명하게 알렸다.

그녀가 허니 엔터의 관계자가 아니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이에요. 따로 조사하면 얘기 나누는 걸로 하죠.”

그녀는 허니 엔터 쪽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을 확신했다.

그녀가 그동안 탄탄하게 다져 온 인맥이 다양한 곳에 뿌리 박혀 있어서 다행히 범인을 알아낼 수 있었는데, 이 바닥에 영향력이 대단한 허니 엔터가 조사를 하는 거면 훨씬 더 자세하게 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허니 엔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 다시 한 번 만남을 요청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추잡한 짓을 저지를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참담한 일이 일어났더군요. 로즈씨가 아니었으면 한참동안 모르고 있었을 겁니다. 그 수작질이 과연 유의미 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 본다면 꽤 위협이 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허니 엔터가 자체적으로 조사해서 그런지 그녀 혼자서 조사 했을 때보다 더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일이 일어난 이유는 짐작 했던 것처럼 허니 엔터가 너무 독보적으로 잘 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에어플레인의 성공은 그렇다고 쳐도 그 후배 그룹이 에어플레인의 도움으로 금방 정상의 자리에 위치하자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다.

문제는 이번 일이 대형 기획사 하나만의 수작질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름 최고의 대형 기획사라는 놈들이 모여서 이런 추잡한 짓을 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허니 엔터를 제외한 대형 기획사가 은밀하게 손을 잡고 허니 엔터를 견제하기 위해 사전 작업을 치고 있었다.

그녀의 학원을 견제하는 것은 그 프로젝트의 일환 중 하나였고 말이다.

“꽁꽁 숨겨두고 있었을 텐데 잘도 알아내셨네요. 저도 이거 알아내느라 며칠을 고생했는데. 인맥을 싹 다 굴려서 겨우요.”

“대표님께서 얘기 듣더니 직접 나서셨습니다.”

“아~ 그분이 나섰으면 이해가 되네요.”

똑같이 한 남자를 남편으로 두고 있는 사이이긴 하지만, 그녀는 도통 편하게 대할 수가 없던 여자다.

사실 이번 일도 직원이 아니라 그녀에게 직접 말을 하는 것도 가능했었다.

하지만 차라리 직원에게 말하는 게 더 속이 편하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로즈는 그녀를 어려워 했다.

“저희 때문에 피해를 보신 점 정식으로 사과드립니다.”

“너무 잘 나가면 질투를 사기 마련이죠. 그래도 당황스럽긴 하더라고요. 절 건드릴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원래 음습한 놈들은 작은 것부터 깔짝대면서 간을 보는 걸 잘 합니다. 천천히 좀 먹어 가는 거죠. 저희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로즈씨 학원에 다니다가 그만둔 학생들이 그쪽 학원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정말요?!”

“예, 그리고 선생 쪽으로도 접근을 하고 있는 게 드러났습니다.”

“우리 학원 선생이요?!”

철썩 같이 믿고 있던 건 아니다.

일을 하다보면 좀 더 많은 돈을 주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게 비즈니스니까.

놓치지 싫다면 그만큼 더 투자를 하는 게 맞는 거다.

하지만 대형 기획사가 의도적으로 그녀의 학원에 피해를 주기 위해 선생을 노려서 데려가려하는 상황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기분이 안 나쁠 수가 없네요.”

“이런 수작과 방해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찍 알아서 다행인 거죠.”

“근데 이걸 알았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가요?”

학원이 불법적으로 세워진 것도 아니고, 뒤로 학생을 빼돌리는 것도 계약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학원을 다닐지, 저 학원을 다닐지 선택하는 건 학생이 하는 일이지 원장인 그녀가 강요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생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으로 이직을 하는 걸 막을 방법은 없다.

그녀가 더 좋은 조건을 내거는 것밖에는.

“안타깝게도 로즈씨네 학원이 겪고 있는 문제를 저희 쪽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방해를 하려고 할지 미리 알아내서 최대한 막는 방법을 알아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피해를 입은 것도 저고, 이걸 해결해야 하는 것도 저라는 거네요.”

“죄송합니다.”

“그런 말 몇 마디로 때울 수 있으면 저도 참 좋을 텐데 말이죠.”

허니 엔터와 관계를 위해 뭐라 할 순 없으나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숨기지 않았다.

“그래도 그동안 쌓아 오신 게 있으시니 큰 피해를 입진 않으실 겁니다. 이 바닥만큼 소문이 빠른 곳도 없지 않습니까. 로즈씨 학원 출신 애들 실력이 유난히 좋다는 게 소문 난지 오래입니다. 덕분에 저희 회사 연습생 풀의 질도 무척 높아졌고요.”

허니 엔터도 그녀가 많이 불편해 한다는 걸 느꼈는지 달래기를 시도했다.

그녀가 허니 엔터 덕을 본 건 사실이지만, 반대로 허니 엔터도 그녀의 덕을 본 게 있었다.

일방적으로 한 쪽이 덕을 보는 관계였다면 불편하다는 티를 팍팍 내는 것도 불가능 했을 것이다.

“갑자기 제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네요?”

“금칠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거죠.”

“립서비스로 넘어가려고 하는 거면 사람 잘못 봤어요. 제가 이런 거에 넘어갈 정도로 순진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정말 그런 거 아닙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로즈씨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도움을 주진 못하지만, 그래도 그녀와 끈은 놓지 않고 싶다는 간곡한 부탁.

로즈는 툴툴대면서도 허니 엔터 직원의 호의를 튕기지 않고 받았다.

그녀 입장에서도 허니 엔터는 놓치기 아까운 끈이었으니 말이다.

“시간 되시면 연습생들 만나보고 가시겠습니까? 로즈씨를 보면 굉장히 반가워 할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연습생은 그녀가 학원에서 가르쳐서 허니 엔터에 보냈던 애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애들은 잘하고 있나요?”

“그럼요. 누가 가르쳤는데요. 다들 A반에서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실력파고, 사이도 좋아서 저희가 눈 여겨 보고 있는 중이죠.”

그녀가 회사에 연결해준 연습생들이 A반에서 잘 해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실력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허니 엔터에서 괜히 학원 차리겠다고 나간 그녀와 꾸준히 인연을 이어가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 직원으로 있었을 때도 그랬지만 그녀의 실력은 일류였다.

로즈가 나가고 후임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녀의 빈자리가 매우 컸다.

그걸 로즈 본인도 알고 있기에 서슴없이 자신이 바라는 일을 말할 수 있는 거였다.

“에어플레인 후배들도 잘 돼서 회사에서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고 있다던데 다음 그룹 좀 팍팍 내줘요. 애들한테는 1년, 1년이 금보다 비싼 거 아시잖아요. 지금까지 보낸 애들로만 팀 만들어도 중간 이상은 된다는 거 알죠?”

“하하, 그럼요.”

“그리고 다음엔 여자 아이돌로 데뷔시키겠다고 저한테 약속하시고 데려가신 거 기억하고 있어요.”

“회사에서 이미 다음은 여자 아이돌로 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상황입니다. 이번에 데뷔 인원도 좀 넉넉하게 잡을 생각이고요. 워낙 좋은 아이들로 많이 보내주셔서 놓칠 수가 없더라고요.”

“거짓말을 워낙 잘 하시니까 말씀하셔도 못 믿어요. 직접 증거를 보여주셔야 마음 놓는다고요.”

“이건 비밀인데, 아마 곧 좋은 소식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그녀가 의외라는 듯 깜짝 놀랐다.

이 정도로 확신을 담아 말한다는 건 정말 뭔가 계획하고 있는 게 있다는 뜻이었다.

“정말 뭔가 있나보네요.”

“하하, 더 이상은 대외비라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저도 눈치라는 게 있으니까 더 이상 캐묻지 않을게요. 그리고 앞으로 그쪽이 무슨 짓을 할지 잘 살펴봐주세요. 도움도 안 주실 거면서 그것도 안 해주시면 저 서운해요. 거기에서 더럽게 나오기 시작하면 저 혼자로는 감당 안 되기도 하고요.”

“예. 아시다 시피 대표님께서 이런 일을 두고 보시는 성격이 아니셔서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해결 될 겁니다.”

아무렴 그녀와 한 남자를 공유하고 있는 자신인데 그걸 모를까.

그 여자라면 대형 기획사들의 수작질 따위는 거침없이 부셔버릴 사람이었다.

♧ ♧ ♧

“우리 회식 좀 할까요?”

로즈는 외부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내부를 단단히 결속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다행이도 일이 벌어지기 전에 외부의 수작질을 알 수 있어서 수습을 할 시간이 생겼다.

학원 선생과 다 함께 회식으로 결속력을 다지고, 따로 자리를 만들어서 개인으로 면담을 했다.

그 과정에서 스카웃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차라리 잘 된 것도 있어. 몇몇은 마음에 안 들었으니까.’

고용을 했다고 해서 함부로 해고를 할 순 없으므로 그녀는 마음에 안 드는 선생들까지도 모두 품고 가야만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실력 의주로 스카웃을 한 게 아니라 그녀의 학원에 다니는 선생이라는 이유로 스카웃을 한 탓에 마음에 안 드는 선생까지도 스카웃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야겠어.’

그동안 학원에 서운했던 점이 있다거나 일을 하는데 불편했던 일이 있었는지를 상의하고, 그녀가 꼭 붙잡아 두고 싶은 선생들을 위주로 연봉 협상을 다시 했다.

그녀와 연봉 협상을 한 선생들은 스카웃을 거절했고, 그렇지 않은 선생은 이직을 선택해 자연스럽게 학원에서 치워냈다.

‘오히려 좋아.’

학생들을 빼내가는 것은 이번에 그녀가 계획한 허니 엔터와 콜라보한 새로운 특별반 소식이 알려지게 되며 어느 정도 수습이 됐다.

그녀가 학원의 내실을 다지는 사이.

대형 기획사는 분노한 허니 엔터 대표의 반격에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적한테는 무자비해. 그런 여자를 넌 어떻게 꼬신 거야?”

그녀의 학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남편에게 모두 이야기를 한 상태였다.

로즈는 허니 엔터가 얼마나 업계를 포악스럽게 쥐어 짜내고 있는지 자세하게 남편에게 전달했다.

남편은 로즈가 두려워하는 걸 보면서도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연주 누님이 화가 나셔서 그런 거지, 평소에는 오히려 얌전하고 착하신 분이야.”

“그래, 어련하시겠니.”

“어허이? 왜 또 이렇게 삐뚤어지셨을까.”

한 평생을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채 살았던 그녀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부럽고 질투가 나며, 평범한 자신의 모습을 오랫동안 원망해왔다.

만약 특별한 사람이 그녀의 남편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쓸데없는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쓸데없는 짓을 하고 다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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