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11화 (609/849)

Chapter 611 - #90. (외전) 조연주 (1)

“업계 사정 다 아는 사람들이 뒤로 그런 짓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그렇게 무서웠습니까?”

조연주는 거침없이 자리에 있는 중년 여성들을 몰아붙였다.

누구도 그녀의 서슬 퍼런 시선에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조대표,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우리 앞에서 화낼 건 아니죠. 우리는 그냥 자주 만나다보니 친분이 쌓여서 한 번 마음 맞춰서 이런 걸 해볼까 저런 걸 해볼까 하다가 한 일이었어요. 우리라고 일 맡긴 친구가 허니 엔터랑 친분이 깊은 학원을 건드릴 줄 알았나?”

“맞아요. 우리가 사람을 잘못 쓴 건 인정하는데, 이렇게 뾰족하게 나오면 서운해집니다.”

“우리도 상황 듣고 얼마나 놀랐는데요? 내 앞에서는 싹싹하게 굴어서 능력도 있으니 괜찮겠다 싶어 밀어준 거라고요. 우리도 뒤통수 맞은 거나 다름없어요.”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꼬리를 짜르기 위해 변명하는 꼴을 보니 결국 저것밖에 안 되는 것들이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도 나오질 않는다.

‘저런 것들이 대표니 회사 꼴이 그렇지.’

에어플레인이 성공하면서 해외에서 K-POP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그 덕분에 다른 아이돌 그룹도 예전보다 쉽게 해외에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해외라는 거대한 사업장이 생겼으니 그곳을 공략하느라 정신이 없어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해외 시장에 나갔다가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여 애꿎은 국내 시장만 건드리고 있었다.

작은 파이를 나눠먹으며 어떻게든 귀퉁이 조금이라도 더 빼앗아 먹어보겠다고 말이다.

“참 유치하십니다.”

“험험. 아니~ 조대표도 끼고 싶었으면 우리 모임에 꼬박꼬박 얼굴이라도 내밀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우리도 조대표 끼고 했을 거 아니냐고.”

“제가 거길 왜 갑니까? 시간 아깝게.”

“화가 난 건 알겠는데 말이 너무 뾰족한 거 아닌가?”

이젠 슬슬 화난 척까지 하려고 한다.

그런다고 쉽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던 그녀가 매섭게 눈을 째리면서 대표들에게 물었다.

“쓸데없는 얘긴 필요 없고. 그래서 계속 할 겁니까? 그 같잖은 프로젝트인지 뭔지.”

“흠흠!”

“크흠.”

대표들이 서로 헛기침만 하고 대답을 하질 않는다.

머릿속에서 얼마나 짱돌을 굴리고 있을지 눈에 훤하다.

기본적으로 그들과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하는 게 본인들에게 더 이득이 될지 확실하게 계산이 서야만 움직이니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 계산을 끝냈는지 그들이 말했다.

“허엄! 그걸 어디 이 자리에서 바로 결정할 수 있나. 비즈니스가 얽힌 일인데.”

“어찌됐든 시작을 했는데 아무것도 못해보고 끝낼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럼그럼. 우린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요. 그만두라고 하는데, 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만 둘 수도 없어요.”

“정 그렇게 부러우면 우리가 배려를 좀 해줄 테니 끼든가요.”

“하! 끼라고요? 저희 회사 프로젝트 베끼기한 계획에? 지금 저 열 받게 하려고 작정하고 오신 겁니까?”

“커험험.”

시종일관 팩트로 내려치는 조연주 대표의 말에 대형 기획사 사장들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솔직히 살짝 맛만 보자고 시작한 일을 제대로 뭔가 해보기도 전에 다 들켜서 무척 쪽팔린 상황이었다.

허니 엔터에서 새롭게 여자 아이돌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를 듣고 대형 기획사들끼리 어떻게든 허니 엔터를 눌러보고자 한 일이었다.

남자 아이돌이 잘 되는 건 그렇다 치겠는데, 가뜩이나 치열한 여자 아이돌 쪽으로까지 진출하는 건 너무 상도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은 시작하기도 전에 걸려서 체면만 잔뜩 상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물러나기엔 그들도 자존심이 있기에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으로 무리수를 던진 것이다.

“정신 차리고 회사나 잘 운영하세요. 골프 치러 다닐 시간에 회사 아이돌은 뭘 하고 지내는지, 연습생들은 얼마나 잘 가르치고 있는지를 챙기시란 말입니다. 허니 엔터가 잘 안 된다고 해서 그 수혜를 그쪽 회사가 받을 것 같으십니까? 이 나라에 생긴 엔터 회사만 몇 개 인줄 아시고 그런 주장을 하십시오.”

완전히 쭈구리가 될 정도로 기획사 대표들의 기를 죽여 놓은 그녀는 분을 다 풀지 못한 채로 혼자 방을 나가버렸다.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화가 많이 나 보이십니다.”

“그래?”

“예, 물 가져다드릴까요?”

“됐으니 차에나 타지.”

가게를 빠져나온 그녀를 맞이한 건 비서였다.

그녀는 비서와 함께 차에 올라타자 마자 표정을 싹 바꿨다.

“깜짝 놀랐는데 연기하신 거군요. 다행입니다. 대표님께서 이렇게까지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신 게 처음이라 놀랐습니다.”

“멍청한 사람들이라 무시하고 싶지만, 그래도 이 정도 성의는 보여줘야겠다 싶어서.”

그들이 저지른 수작질에 그녀가 크게 화가 났다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서로 득의양양해 할 것이다.

그녀 앞에서는 쭈구린 척 했으나 뱀과 같은 그들이 진심으로 그녀에게 수그린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일로 그녀를 더 무너트리고 싶어 할 것이다.

‘거기다가 수작질을 한 걸 들켰으니 앞으로 더 은밀하게 행동하겠지. 노괴물들’

예전처럼 총명하게 회사를 이끌어 가기에는 너무 노쇠한 늙은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이 바닥에 미치는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오해를 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조대표가 이번 일에 위기감을 느끼고 반응했다.’ 라는 착각을 하도록 말이다.

“저것들이 힘을 합쳐봤자 뭐 얼마나 대단한 걸 할까. 물결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갔는데 그걸 모르고 아등바등 자리 차지하고 아직도 지들이 최고인 줄 알지.”

이 바닥도 이제는 물갈이를 해야 할 때가 왔다.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괴물들을 깔끔하게 털어내 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여야 그들의 회사가 살아날 것이다.

‘알아서 자멸하고 있어서 따로 손을 대진 않았는데….’

먼저 다가와서 죽여 달라고 하니 그들이 원하는대로 해줄 생각이었다.

‘멍청한 년들.’

그녀의 손에 들린 그쪽 비리 증거들만 해도 수두룩이다.

이게 세상에 알려지면 굉장히 곤란해질 사람들이 많다.

당분간 사회면이 시끌거리겠다는 생각과 함께 익숙한 두통이 찾아온다.

‘한동안 괜찮더니 또 도진 건가.’

아이를 낳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일에 대한 압박감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어떤 일이든 완벽하지 않으면 쉽게 넘어가지 않았던 그녀가 어느새 가정을 위해 일을 뒤로 미루고 가정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일을 할 때는 언제나 한 눈 팔지 않고 끊임없이 집중하던 그녀가 때때로 핸드폰에 있는 현오의 사진을 본다던가 사적인 전화통화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그녀가 의식하지 않는 사이 생긴 변화였다.

‘원래라면 당연했어야 하는 일인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서 점점 육아에 쓰였던 시간을 줄이고 일에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육아를 하면서도 일에 소홀했던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일에 올인을 하던 그녀의 인생에서 가정이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보니 예전만큼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일에 집중을 했던 게 문제였을까?

그녀는 과거의 버릇이 점점 튀어나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핸드폰을 꺼내서 메시지함을 보자 아이로부터 연락이 와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유모의 도움을 받아서 작성했는지 문법이 잘 맞았지만 현오의 손길이 닿았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문자 내용을 확인하면서 그녀를 괴롭히던 두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비록 잠깐의 통증 완화이긴 했으나 그만큼 아이가 주는 행복이 컸다.

“회사로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지.”

“예, 대표님.”

그녀는 원래 회사로 가려던 목적지를 바꿨다.

아이가 그녀를 보고 싶어 하고 있는데 무정하게 일을 하러 갈 순 없었다.

더욱이 또 다시 도진 두통 때문에 일에 집중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엄마아!!”

집에 도착하자 미리 차를 타고 집에 돌아 온 현오가 그녀를 맞이해준다.

“아들.”

그녀는 달려오는 아들을 번쩍 들어올려서 품에 안았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이젠 안아 올리니 제법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오늘은 뭐 했니?”

“지혀니랑 놀아찌!”

“그래. 재밌었니?”

“웅. 엄마는 머해써?”

“엄마는 일했지.”

“재미써써?”

“음…재밌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꾸나! 수고해써!”

배려심 깊은 아들은 그녀가 물어 온 걸 엄마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는 걸 좋아했다.

그것이 사랑이든 걱정이든.

그렇기에 그녀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서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한 적 있는데, 현오가 그걸 들었는지 언제부터 그녀가 집에 오면 어깨를 토닥여주며 앙증맞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줬다.

아기가 어른에게 하는 말이라기엔 좀 웃긴 소리라서 고쳐야 한다는 건 알지만, 아들이 해주는 수고했다는 말에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려서 도저히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말 할 수가 없었다.

“마침 잘 됐네, 현오는 엄마랑 같이 씻으면 되겠다.”

“여기 있었니?”

아들을 품에 안고 집 안으로 들어왔는데 남편이 태연하게 나타나서 말을 걸었다.

“현오 제가 데려다줬어요.”

“그랬구나.”

“히히히!”

현오가 좋다는 듯 발을 허공에 동동 구른다.

오늘 아빠랑 같이 있어서 이렇게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일 때문에 바쁘죠?”

“아아.”

그녀는 현오를 내려놓고 말했다.

“화장실 들어가 있어. 엄마 곧 갈 테니까.”

“네에~!”

신난 현오의 뒷모습을 잠시 보다가 목 단추를 풀면서 말했다.

“마침 방금 그치들이랑 만나고 왔다.”

“그랬어요?! 그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데요?”

“그런 것들이 하는 행동이야 뻔한 일이지.”

남편에게 굳이 알게 하고 싶지 않은 걸 시시콜콜 말할 생각은 없었다.

“사과도 안 해요?”

“그런 걸 받고 싶지도 않아. 그건 됐고, 학원 쪽으로는 완전히 손을 뗄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

그쪽 통로로는 들켰으니 다시 같은 방법을 쓰지 않을 거다.

좀 더 은밀하고, 치명적일 수 있는 부분에서 그녀를 공략할 것이다.

“네, 그럴게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음. 그쪽은 피해자니까 신경 써야 하는 건 당연해. 우리 입장에선 그치들이 뭔 수를 더 쓰기 전에 상황을 알아내서 다행이었고.”

“그럼 일은 다 해결 된 거에요?”

“…대충.”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기 뭐했으나 반대로 시시콜콜 모든 얘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일은 발을 담그지 않는 게 제일 좋은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남편이 그녀가 잠깐 고민했던 것에서 눈치를 챘는지 집요하게 그녀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옷을 벗고 씻기 위해 준비를 하는 내내 말이다.

“뭔가 있죠? 미묘하게 망설이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랑 다 안 끝난 것 같은데.”

“그런 거 없다니까.”

“대외적으로는 없을지 몰라도 뒤로는 무슨 수작을 벌일지 모른다는 뜻인 거죠, 그거?”

“…….”

“누님이 가만히 당해주실 분은 아니니 그 사람들 상대할 방법은 있는 거겠죠?”

“네가 들을 필요 없는 얘기야.”

“어떻게 그래요? 누님을 건드렸는데.”

앞으로 있을 일을 남편에게 말해주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얘기를 남편에게 들려주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히 그의 귀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으면 좋겠달까.’

어둡고 난잡하며 추잡한 얘기다.

남편이 가끔 아니, 꽤 수시로 세상 다 산 것처럼 어른스러운 척 하곤 하지만 본질은 ‘진짜’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다른 연예인들이 대게 그러하듯, 쉽게 접할 수 있는 유흥들.

그러니까 대표적으로 술, 담배, 섹스, 마약 같은 것에 관심과 흥미 자체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아니, 섹스는 관심이 좀 많긴 하지. 그걸 가족한테 쏟으니 큰 문제 없겠지만.’

그녀가 알기로 남편은 자리에 따라서 술을 마시기는 해도 먼저 술 마시자며 자리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알고 있다.

클럽 같은 곳도 초반에 거절할 수가 없어서 다녔던 적은 있어도 자기가 좋아서 간 적은 없다고 알고 있다.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담배는 피우지 않으며,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가 한다면.

스케줄이 없을 때 그의 행적을 조사하면 바로 알 수 있다.

‘가족.’

그녀는 이미 버린 지 오래인 가족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자신의 개인적인 시간 대부분을 가족과 함께하는 것에 쏟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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