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21 - #90. (외전) 조연주 (11)
“남자가 있다는데 어떡하지?”
“네가 뭐가 부족해서 임자 있는 여자를 짝사랑하냐? 너랑 나이차이도 많이 나잖아.”
“아니야! 고작 해봐야 5살 차이야.”
“5살이면 많은 거지.”
“허니 엔터 대표잖아. 그 정도 미인에 그 정도 재력이면 나랑 잘 어울리지 않나? 특히 난 그 서늘한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
“도도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조연주 대표는 좀 빡센 것 같은데. 그 사람 바늘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잖아.”
연예계에서 살아가면 자연스레 인맥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맥은 본인에게 도움이 될 만큼 긍정적인 인맥을 뜻한다.
쉽게 나쁜 길로 빠지기 쉬운 만큼 주변 인물들을 까다롭게 사귀어야 했다.
‘끼리끼리 논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질 나쁜 사람과 어울리다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점점 타락하게 되는 법이었다.
그런 점에서 신정경은 주변 사람들을 꼼꼼하게 따져가면서 인맥을 맺었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 위치에 걸맞은 제대로 된 인성을 가진 사람.
남을 질투하지 않을 만큼 실력적으로 빠지지 않은 능력 있는 사람.
그리고 인맥을 맺었을 때 적어도 자신에게 손해를 주지 않은 사람으로 말이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게 진짜 짜릿한 거야. 넘어트렸을 때 정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여자관계도 깔끔한 놈이…. 말만 들으면 여자를 주렁주렁 달고 사는 놈 같다?”
“흐흐, 이렇게라도 자신감을 가져야지.”
“너 그 회사 들어가고 자존감 많이 떨어진 것 같아. 예전에 안 이랬잖아?”
“후유증이 장난 아니야.”
“회사 하나 잘못 들어갔다가 이게 뭔 꼴인지 모르겠네. 어휴~”
“덕분에 좋은 인연을 맺게 됐으니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네가 호구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게?”
친구가 답답하다며 자기 가슴을 툭툭 두드린다.
그 모습을 허허 웃으면서 넘긴 신정경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크~ 인생이 쓰다. 써. 0고백 1차임 당하고 이제 난 무슨 낙으로 사냐.”
“포기 안 한다며.”
“못하지! 내가 쟁취해낼 거야. 어떤 남자인지 모르겠지만 나보다 못난 놈일 확률이 높으니까.”
얼굴도 잘 생겼고, 돈도 많고, 나름 명예도 갖고 있는 신정경이다.
그런 남자가 유혹을 하는데 참을 여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남자만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라는 법 있냐? 여자도 이 남자 저 남자 만날 수 있는 거야. 그러다가 더 좋은 남자에 정착하는 거고.”
“그 남자가 너고?”
“흐흐, 아마도?”
어떤 남자와 사귀고 있다 해도 자신이 있었다.
꿈에서나 그리던 이상형이 그대로 현실에서 나타나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이 여자라면 결혼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확신도 들었다.
자신 같은 남자라면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자신이 있었다.
‘너무 빨리 접근했다가 역효과를 봤으니 이제부터는 천천히 다가가자. 지금은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문제는 그가 여성을 대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친구야.”
“엉?”
“그래서 말인데, 네가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내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게 한 가지 있었다.
몸이 가까우면 마음이 가까워지는 법 아니겠는가?
그녀와 될 수 있으면 자주 만날 필요가 있었다.
헌데 그녀는 한 회사의 대표이기에 자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자주 만날 수 있게 도와 달라?”
“너는 파티 같은 곳 자주 가잖아. 재벌이니까 직접 주최하기도 하고.”
“그렇지.”
“그런 곳에 조대표님을 초대해줘.”
“흐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긴 한데….”
“내가 거기 참석하면 너한테도 좋은 거 아니냐?”
“연예인이 오면 좋기야 하지.”
연예인들을 괜히 얼굴마담 시키는 게 아니다.
그들이 참석해주는 것으로 그 자리가 더 빛이 나는 게 사실이니까.
“좋아, 조대표가 출석하는 곳은 너도 100% 출석하겠다는 거지?”
“응.”
“알았어. 너 말한 거 꼭 지켜라?”
“무조건 지키지. 너는 자리만 만들어줘. 너도 최대한 자주 만들어줘. 나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하라고. 알겠지?”
“콜!”
재벌 아들인 녀석이 호언장담을 했으니 자리는 제대로 만들어줄 것이다.
‘아~ 연락하고 싶다.’
그녀에게 개인 연락이 부담 된다는 거절을 들었기에 예전처럼 문자 메시지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생각나는 사람인지라 손이 근질근질했다.
‘회사에 찾아가면 안 되겠지?’
아직 전 소속사와의 계약 문제가 해결 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녀의 회사를 찾아간다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기에 몸을 사릴 필요가 있다.
‘확 스캔들 인정해버릴 걸 그랬나.’
허니 엔터에서는 자신과 계약하고 싶어 하고 있으니 그랬다 해도 별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 보여야 되는데 그런 짓을 하면 안 되지.’
신정경은 인내심을 갖자 생각하며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곧 그녀를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 ♧
“연주씨!”
“…?”
보통 자신을 부르는 호칭으로는 조대표가 가장 대중적이었고 실제로 대부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파티장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낯선 호칭인 ‘연주씨’라고 불렀다.
자신의 이름이 불렸기에 다른 사람을 불렀을 리 없었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확인해봤다.
“신정경씨?”
그리고 그곳에는 놀랍게도 낯이 익은 남자가 서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여기서 연주씨를 만나니까 정말 반갑네요.”
“신정경씨도 여기 초대 되셨군요. 몰랐네요.”
“하하, 사실 참석을 안 하려고 했는데 친구 녀석이 꼭 좀 참석해달라고 부탁을 해서요. 어쩔 수 없이 참석했는데 연주씨를 만나게 될 줄 알았으면 빼지 말 걸 그랬어요. 오늘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신정경의 말에서 연주는 눈치를 챘다.
‘내가 참석했다는 걸 알고 왔군.’
그가 일부러 이곳에 참석했음을 말이다.
확실하게 거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또 다시 접근을 할 줄은 몰랐다.
‘왜 포기를 안 했지?’
그 정도 되는 남자라면 여자가 줄을 선다.
굳이 거절당한 여자에게 계속 호감을 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존심인가?’
최대한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했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자존심이 강한 스타일이어서 거슬렸을 수도 있다.
‘귀찮게 됐군.’
아무리 그가 인성 좋다고 소문이 났어도 연예인 성격은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되는 거였다.
적당히 좋게 받아주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제가 이런 곳을 자주 다니는 게 아니다 보니까 되게 어색하네요. 하하. 연주씨가 옆에 있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 되게 든든할 것 같아서요.”
그녀는 생각보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신정경의 집요함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쉽게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군.’
이럴 때는 떼어낼 좋은 방법이 있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안내해드려야죠. 따라오세요. 제가 몇 분 소개시켜드리죠.”
바로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다.
다행이 그는 인기가 많은 연예인이라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어머! 신정경씨네요! 연예인이 왔다고 해서 누굴까 궁금했는데!”
“안녕하세요.”
“정말 반가워요. 제가 신정경씨 음악 정말 잘 듣고 있거든요.”
연주가 본격적으로 그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소개를 시켜주니 신정경인 역시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파티를 자주 다니지 않아 어색하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자 난감해 하는 눈치였다.
“다들 좋은 분들이니 친분을 쌓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그녀는 살려달라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신정경에게 친절히 귓속말로 말해주고 힘내라는 듯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이런 행동이 모두 그를 위해서라고 믿을 수 있도록 말이다.
결국 신정경을 훌륭하게 떼어내는데 성공한 그녀는 파티장을 휘저으며 사교계의 여왕처럼 파티를 즐겼다.
한 명을 떨쳐내도 몇 사람이 더 붙어오다 보니 신정경은 파티가 끝날 때까지도 그녀에게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그녀가 일부러 그가 있는 쪽을 피해서 움직인 탓이기도 했다.
문제는.
“연주씨!”
그가 다른 파티장에서도 나타났다는 점이다.
“…여기에도 참석하셨군요.”
“네! 한 번 참석해보니까 참 좋더라고요. 연주씨가 소개시켜줬던 분들이랑 친해진 게 색다른 경험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친구한테 참석할 만한 파티를 알아봐달라고 했어요.”
“그랬군요.”
“저번 파티는 좀 아쉬웠어요. 이런 자리에서 만난 김에 연주씨랑 더 친해지고 싶었거든요.”
이번에 신정경은 노골적으로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을 해왔다.
연예인이 나타난지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호감을 표하는 걸 서슴없이 말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가 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 미묘한 흐름을 느낀 연주가 말했다.
“앞으로 저희 회사에 들어오시면 지금보다 훨씬 깊은 친분을 쌓을 수 있겠죠.”
“하하! 맞아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회사 얘기로 빠지자 주변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눈초리가 사라졌다.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
이미 스캔들이 한 번 났던 상대인지라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더욱이 한 쪽에서 그녀에게 호감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니 더더욱 말이다.
“저희는 시간이 많으니 지금은 다른 분에게 양보하는 게 어떨까요? 오늘 이 자리에도 신정경씨한테 도움이 될 좋은 분들이 많거든요. 주민 대표님! 주민 대표님이 신정경씨 팬이시죠?”
“네! 맞아요.”
그녀는 아까부터 신정경을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내고 있는 강주민 대표를 불렀다.
부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온 강주민 대표가 신정경을 몽롱하게 바라보며 여지없이 팬심을 드러냈다.
신정경도 팬에게 소홀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아닌지라 강주민 대표를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이후로는 전 파티 때와 똑같이 진행이 됐다.
‘두 번은 우연이라 할 수 있어도 세 번은 절대 우연이라 할 수 없겠지.’
그리고 마침내 다음 파티에서 신정경을 만났을 때.
그녀는 그가 말로 설득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정경씨.”
“네, 연주씨.”
“…아닙니다.”
“오늘 저 어떤가요? 신경을 많이 써봤는데.”
수줍게 미소를 지어오는 신정경.
그는 자신의 꾸민 모습을 보고 그녀가 호감을 느끼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누구인가.
무려 진해솔이다.
그가 아무리 멋지게 꾸민다 해도 그녀의 눈에는 상대적으로 오징어로 보일 뿐인 것이다.
“오늘은 어떤 분께 신정경씨를 소개시킬지 기대 되네요.”
어떤 사람에게 이놈을 떠넘길지.
그녀의 눈이 분주하게 파티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말로 설득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안 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겠지.’
이 사람도 나름 학습능력이 있는지 그날 파티장에서 신정경은 그녀를 매우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그녀도 계속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게 힘들었다.
결국 그날은 신정경을 물고기 똥처럼 달고 파티를 즐겨야 했고, 파티가 끝났을 땐 신정경을 집에까지 데려다줘야 했다.
남편이 알았다면 아마 질투심에 뒤집어졌을 것이다.
‘웬만하면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처리를 하는 게 최선인데….’
벌써부터 눈치 빠른 사람들이 소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신정경이 그녀에게 반해서 쫓아다닌다는 진실을 담고 있는 소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