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25 - #90. (외전) 조연주 (15)
신정경의 일이 잘 마무리가 되었고, 당분간 그녀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편은 현오를 돌봐주겠다는 호언장담을 했던 것을 착실하게 지켰다.
가정이 평안하니 일을 하기가 편했다.
현오가 아빠와 시간을 계속 보내니 무척 좋아했다.
물론 이것도 남편이 일을 나가기 시작하면 결국 칸나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해솔이가 자신이 한 말을 지키려 하는 모습은 그녀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엔터 회사의 알짜 베기를 뜯어먹기 위해 노력을 하자 안팎으로 공격을 당한 대형 기획사들은 빠른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침몰하는 건물 안에 있어봤자 잃기만 할 겁니다. 무슨 의리로 계속 거기에 있는 겁니까? 다들 탈출하느라 정신없는데.”
그나마 회사를 굴러가게 만드는 인재를 빼돌리고.
“주가가 한없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소속 연예인을 다독이진 못할망정 오히려 협박을 해서 현재와 같은 상황을 만들었고요. 지금의 대표는 수습을 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대로 주가가 휴지조각 되는 걸 두고 보실 셈입니까?”
주주들을 움직여 현 대표를 몰아내기 위해 힘을 썼다.
현재 대표는 감옥 간 전대표의 사람이기에 몰아내줄 필요가 있었다.
‘다만 너무 빨리 쳐내는 건 안 될 일이야.’
그들이 하는 트롤짓은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됐다.
좀 더 회사를 망쳐주길 바라며 회사를 흔드는 것에 집중했다.
[끝도 없이 떨어지는 엔터주. 유일한 빨간불은 허니 엔터 뿐.]
[비상 걸린 엔터계. 엔터 회사가 쏘아 올린 공은 정치권으로 번졌다.]
오랫동안 나라를 주름 잡던 정치인들이라 한 번 작정하고 파기 시작하니 이곳저곳에서 비리가 튀어나왔다.
“대표님! 드디어 터졌습니다.”
“때가 됐군요.”
검찰은 신나게 춤칼을 췄고, 그녀도 본격적으로 엔터 회사들에게 칼을 휘두를 때가 왔다.
처음으로 위약금을 지불해서라도 회사를 탈출한 연예인이 나타난 것이다.
이적을 약속한 회사에서 위약금을 대신 지불하겠다고 하고 연예인을 데려간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른 회사에서 다 떼어먹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대형 엔터 회사에서는 단순히 연습생을 키우고 아이돌을 제작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돈벌이를 위해 투자를 해왔다.
그녀가 노리는 것은 그 분야였다.
돈을 가져다줘야 하는 연예인들이 탈출을 위해 스케줄을 뛰질 않으니 돈이 도는 게 멈춰지고, 그로인해 회사는 가장 먼저 인력을 줄였다.
하지만 인력으로는 회사에서 보는 손해를 수습할 수 없었고, 무능한 수뇌부들은 주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해고당한 인력들은 어떻게 할까요?”
“이미 능력 되는 사람들은 다 빼왔어요. 우리는 줍지 말죠. 괜히 먹었다가 탈날 수 있습니다.”
“예.”
인력이 부족한 다른 회사들은 대형 기획사 출신의 직원을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
다만 그들이 대형 기획사에서 못되게 들인 버릇으로 새로운 회사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을진 알 수 없었다.
‘괜히 물이나 들이지.’
허니 엔터에도 인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던 물에 괜히 더러운 흙을 넣어 흙탕물로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그럼, 이제 슬슬 접촉해보죠. 돈이 흐르는 게 막혔으니 꽤나 마음이 급할 겁니다.”
♧ ♧ ♧
엔터 회사의 큼지막한 것들을 떼어먹는 재미가 붙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야근을 한 그녀.
늦은 밤 회사를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또각또각또각-
어둠이 내려앉은 주차장은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으나 연주는 아무렇지 않게 그곳을 걸어갔다.
이곳은 그녀에게 집과 같은 공간이었기에 당연한 거였다.
스산한 분위기를 낸다고 해서 집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삐빅-
차키로 차문을 열고 걸어가던 그녀.
또각또각또….
돌연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빈공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와.”
아무도 없는 공간이었기에 의문이 들기도 잠깐.
빈 공간에 사람이 나타났다.
다만 그 인영은 매우 초췌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조대표!”
“검찰에서 조사 받고 계신 줄 알았는데 여긴 어떻게 오신 겁니까?”
“조대표!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나, 나 좀 살려줘. 자기밖에 내가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서 그래.”
“…살려달라고요? 부탁 할 사람을 잘못 찾아 온 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한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게 말이 되질 않았다.
그녀가 무슨 힘이 있어서 저 사람을 구해준단 말인가?
“아닌 척 하지마. 내가 조대표를 모를 줄 알아? 조대표 출신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고.”
“제 출신을 안다고요…?”
연주는 끝까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지만, 궁지에 몰려 있는 그녀는 고양이를 물 기세로 말했다.
“조대표, 전국을 주름 잡는 조폭 딸이잖아.”
“…….”
“나도 우연히 알게 됐어. 조대표 동생이랑 내가 연이 있거든. 지금은 어쩐 일인지 연락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조대표를 찾아왔어. 조대표라면 나 구해줄 수 있잖아.”
그녀의 친동생이 뿌려놓은 똥은 아직도 다 지워지지 않고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친동생에게 사정을 들었다면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충분히 납득이 갔다.
‘설마 그 끔찍한 짓에 걔가 연관이 되어 있는 건 아니겠지?’
저들이 저지른 짓이 어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나?
하지만 그녀가 아는 친동생이라면 짐승 같은 짓도 충분히 했을 것 같았다.
미리 외국으로 치워버리길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제가 대표님을 왜 구해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우리 함께 해왔던 정은 어디로 간 거야. 응? 물론 조금 다툴 때도 있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잖아, 우리.”
“나쁘지 않았다고요? 요 근래 만났을 때 개수작을 부리셔서 제가 경고하러 갔던 건 기억납니다. 그러니 그런 기분 나쁜 농담은 그만하시는 게 어떨까요? 당사자가 멀쩡하게 두 눈 뜨고 있는데 괜한 소리로 불쾌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습니다.”
저 자의 입에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쾌한 경험을 한 거였다.
정을 얘기할 정도로 그들과 그녀가 좋게 얽힌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단 말인가?
오히려 그들 때문에 피해를 입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면 흔쾌히 대답을 해줬을 것이다.
“매정하게 이러지 말자. 나 정말 이대로 있으면 강제로 자살 당해. 응? 한 번만 구해줘. 내가 그동안 자기한테 서운하게 한 거 있으면 다 사과할 수 있어. 앞으로 자기한테 잘 할게.”
“이미 제 손을 떠난 일입니다. 출신이 그쪽인 건 사실이지만 모든 걸 포기하고 나온 지 오래고, 이미 후계자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보스는 자기 어머니잖아. 응? 부탁을 하면 들어줄 수밖에 없을 거라고! 나는 정말 피라미에 불과해. 나 같은 거 하나 빼준다고 크게 문제 되거나 힘든 일이 아니라니까?”
만약 그녀가 관이한테 사람 한 명만 빼달라고 한다면?
자신이 아는 관이라면 기꺼이 해줄 것이다.
그럴 능력이 없는 건 아니다만, 그녀는 본인이 저지른 죗값을 제대로 치르길 바라는 입장이었다.
“제가 한 말을 잘못 알아들으신 것 같습니다. 제 말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뭔가 일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
“사람이 그렇게 매정하게 말할 건 없잖아. 그리고 나 농담 한 거 아니야. 정말 죽을 수도 있어!”
“저도 농담한 게 아닙니다. 저 같은 사람보단 훨씬 도움이 될 만한 인맥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그쪽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그동안 거들먹거리면서 돌아다녔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처절하다.
솔직히 지금 여기에 있는 것도 의심이 됐고 말이다.
‘도주 위험이 커서 구속 수사하고 있던 걸로 아는데. 설마 도망?’
그녀가 도망쳐서 이곳에 나타났다면 더더욱 골치 아파진다.
저 사람을 잡기 위해 경찰들이 그녀의 경로를 되짚어서 올 것이고 그럼 지금의 만남을 그들에게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보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저 자가 알고 있는 자신의 출신 같은 것을 말이다.
“없어. 정말 없다고! 내 인맥에서 멀쩡한 사람은 자기뿐이야. 정말 절박해서 도와달라고 한 거야. 이번 일로 이득 많이 봤잖아. 우리 회사에서 신정경도 뺏어갔다며! 나만 구해주면 그거 계약 해지하는 거 힘들지 않게 해줄게. 그 정도면 자기한테도 괜찮은 거래 조건 아닌가?”
분리수거 안 되는 쓰레기.
그걸 왜 자신이 치워야 한단 말인가?
하고 싶지도, 할 생각도 없는 일이다.
“굳이 당신한테 도움을 바라야 할 정도로 무능하지 않습니다. 바빠서 그럼 이만.”
연주가 절박하게 매달리는 그녀를 지나쳐가려는데 돌연 무릎을 꿇더니 다급하게 말해왔다.
“그, 그럼 미, 밀항만 도와줘! 밀항까지만 도와주면 돼!! 그럼 내가 섭섭지 않게 사례할 수 있어!”
처음에는 자기를 꺼내달라고 부탁을 해오더니 그게 안 된다고 하니 이젠 밀항을 도와달란다.
“그냥 죗값을 치르세요. 그 정도 큰일을 저질러놓고 책임조차도 지지 않을 생각입니까?”
이 사람의 형량은 굳이 따질 필요 없이 무조건 무기징역일 것이다.
저지른 죄에 비해 무기징역은 너무 낮다고 생각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이 나라의 최고 형량인 것을.
“나도 그러고 싶어. 근데 날 죽이려고 온 킬러가 있었어. 내 꼴 보이잖아. 나 겨우 살아왔어. 이대로 날 도와주지 않으면? 네가 날 죽인 거나 다름없는 거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남탓으로 동정심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그녀는 더 이상 상대해주기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몸을 돌려 차문을 열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정으로 말씀드리는데, 얌전히 계시다 재판 받고 가세요. 괜히 소란을 일으켜봤자 본인이 말했던 것처럼 신변만 위험해질 겁니다.”
누군가가 정말 킬러를 보냈을 수도 있지만, 그게 그녀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 나 좀 살려줘… 나 좀 살려달라고…너 밖에…너 밖에 도와줄 사람이 없는데…이러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으아아아아!!!!”
궁지에 몰린 쥐는 호시탐탐 고양이가 방심할 틈을 노리기 마련이고.
고양이는 그런 쥐를 가소롭게 제압하기 마련인 법.
“아아악!”
챙그랑!
“이봐요. 내 출신이 어디인지 알았으면 대충 짐작이 안 됩니까?”
숨겨두고 있었던 칼을 꺼내 휘두른 쥐를 고양이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제압해버렸다.
칼을 쥐고 있는 손목을 잡아 채 힘을 주자 들고 있던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흐아아악!!! 놔아!! 놓으라고!!”
“나를 헤친다고 당신이 죗값을 받지 않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일로 그쪽 형량이 늘어났네요.”
어찌됐든 이 인간이 이렇게 된 건 자신의 탓이니 어찌 보면 제대로 원수를 갚으러 온 게 맞기는 하다.
그게 비록 얻어걸린 상황이지만 말이다.
그녀는 아프다며 살려달라고 우는 범죄자를 몸으로 막아내고 핸드폰을 꺼내 잠시 고민했다.
주차장에는 cctv가 존재하고, 칼부림을 해온 것이 적나라하게 찍혔으니, 이 귀찮은 인간을 다시 사회에 격리시키기 충분할 것이다.
‘문제는 이게 기사로 나면 우리 회사에도 어쩔 수 없이 오물이 튄다는 건데.’
평소 친분이 있으니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니겠냐는 시선이 있을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소란스럽지 않게 이번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경찰에게 연락을 하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