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27 - #91. 최관 (2)
[형부님 : 오늘 날씨 참 좋다. 비 내리고 난 이후에 쌀쌀해졌는데 아직 해는 따듯해.]
형부에게서 이따금씩 도착하는 문자는 그녀에게 큰 위안을 주고는 했다.
항상 만남을 거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부는 그녀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꾸준히 그녀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문자가 없었다면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형부를 만나러 갔을 것이다.
그것이 그를 위험하게 만들고, 그녀의 약점을 적에게 알릴 수 있는 위험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감사합니다.]
말주변이 없는 그녀는 형부의 감사한 관심에도 보답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무뚝뚝한 감사 인사밖에는.
띠링♪
[형부님 : 오늘 길이 미끄럽더라. 운전 조심해.]
[알겠습니다. 형부도 조심하십시오.]
띠링♪
[형부님 : 와인을 마시다가 갑자기 처제가 생각났어. 분위기가 좋아서 처제랑 여기에 함께 오면 좋을 것 같아.]
[예. 꼭 함께 가보고 싶습니다.]
띠링♪
[형부님 : 현오는 쑥쑥 잘 자라고 있어. 보고 싶을 것 같아서.]
[형부님 : (사진1) (사진2) (사진3) (사진4)]
[감사합니다. 현오랑 형부 선물을 보냈습니다.]
삼일에 한 번 혹은 이틀에 한 번 혹은 나흘에 한 번.
매일 오는 연락이 아니었기에 형부로부터 오는 연락이 그녀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했다.
때로는 문자 이후 그녀에게 시간이 되는지 묻고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혹여나 이 전화를 받았다가 나쁜 소식을 전달하는 건 아닐까 겁을 내면서도 통화 연결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통화를 시작하고 나면 형부의 다정한 목소리와 위로에 사르르 녹아버린다.
정신을 차리면 기본적으로 2시간은 흘러버리고 말이다.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아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는 형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갈증을 느꼈다.
‘만나고 싶다. 닿고 싶어.’
욕심.
현재 그녀가 앉아 있는 후계자 자리도 욕심을 내지 않았던 그녀가 유일하게 욕심을 내게 만드는 사람.
그게 바로 형부였고, 그에 대한 감정은 나날이 질척하고 음울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형부는 그녀가 이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나만 바라보게 하고 싶어.’
이런 질척한 감정을 느끼고 있기에 더더욱 그와는 거리를 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부를 지키는 대상은 경찰들도 있지만, 자신도 해당이 되는 상황이다.
최대한 자신의 욕망이 폭발하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며 형부와 관계의 거리를 벌리는 것.
그것이 그녀가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형님!”
“왜.”
“그…형님을 찾아오신 분이 계십니다.”
“약속한 게 없는데 무슨 소리야. 누가 왔는데. 설마 안으로 들였어?”
“어…예. 들였습니다. 그게 저희가 붙잡을 수 있는 분이 아니라서요.”
“누군데 이런 무례한 짓을 하지?”
약속도 없이 찾아왔는데 부하들이 감히 막지 못한 존재라니?
정치인이 그렇게 찾아와도 절대 쉽게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을 아이들이기에 의문이 들었다.
“그게 그 첫째 아가씨 남편분이십니다.”
“뭐?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다시 말해봐.”
“첫째 아가씨 남편 분이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여기가 어디라고 온단 말인가?
이곳은 그녀가 사는 곳이지만 조직원들도 함께 지내고 있는 공간이었다.
말 그대로 조폭들의 소굴이라는 뜻이다.
과거에 형부와 연주 언니가 이곳에 와서 보스를 만나고 간 적이 있지만, 그건 보스가 계시기에 특별하게 허용 된 거였다.
그런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이곳은 아무나 드나들 수 없고 또 드나들어서도 안 되는 공간이었다.
‘여길 분명 주시하고 있을 텐데….’
조직의 주거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분명 주시하는 눈도 있을 터.
이런 곳에 형부가 나타났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왔다.
“처제!”
마당으로 가자마자 그녀의 눈을 환하게 만들어주는 훤칠한 미남이 그녀를 향해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주변에는 그를 훔쳐보고 있는 조직원들이 실시간으로 늘어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첫째 아가씨의 남편이기도 하지만, 유명한 연예인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조폭들도 TV를 보고 남자 아이돌을 좋아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그녀가 해맑게 반갑다는 듯 웃고 있는 형부에게 말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오신 겁니까.”
남들이 그와 자신의 사이를 알 수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녀의 낯선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하게 될 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어…미안? 내가 너무 갑자기 방문했지?”
형부는 그녀가 이렇게까지 격하고 냉정한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얼떨떨한 얼굴로 머쓱하게 대답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의 품에 달려가 키스를 하며 숨결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와 그의 사이는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는 그대로여야만 했다.
“예, 적어도 미리 언질을 해주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긴 일반인이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적어도 연주 언니와 함께 오셨어야 합니다.”
“으음…미안.”
“일단 오셨으니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너희들은 모두 물러나라. 근처에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고.”
“예, 형님!”
이 정도로 내외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눈치가 빠른 녀석이 봐도 그와의 관계를 선뜻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시선이 없는 안전한 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태도를 바꿔서 형부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형부.”
“응? 갑자기?”
그녀를 졸졸 따라오던 형부가 갑작스러운 사과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본의 아니게 바깥에선 매몰찬 모습을 보여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 처제 지금 많이 위험해?”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괜한 소문이 나지 않게 주의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가령 나랑 처제가 가까운 사이라는 소문 같은 거?”
“예.”
일반인인 형부는 조금도 엿보지 못할 세계가 있다.
“내가 오늘 여기 온 게 정말 큰 실수였나보네. 조심하면서 오긴 했는데 처제한테 이렇게까지 큰 민폐 끼치는 일일 줄은 몰랐어.”
“아닙니다. 아까 연주 언니를 언급하셔서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누구랑 만나는지도 숨겨야 할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을 가까이에 두고 있는 거야?”
“모두 믿고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자매들입니다. 다만 비밀을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비밀이 될 수 없다.
“그럼 방금 전에 왜 왔냐고 소리친 거 진심이 아니었던 거 맞지?”
형부의 물음에 숨이 턱 막혔다.
방금 전의 일로 형부가 상처를 받았다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미친년.’
그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았다는 걸 알았는데 심장이 쿵 내려앉으면서도 묘한 쾌감이 전해지고 있었다.
저 남자가 자신의 행동으로 기분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에 짜릿함을 느끼는 거였다.
그녀는 잘 열어지지 않는 목구멍을 억지로 열어 답했다.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감히 형부께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다행이다. 정말 큰 실수를 했다 싶어서 어떻게 사과해야 하나 엄청 고민했어. 알다시피 처제가 나한테 그렇게 화를 낸 적이 없었잖아.”
깜짝 놀랐다는 형부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따듯한 차 한 잔을 타서 그에게 주었다.
“루이보스 차네. 향 좋다. 일단 이거 받아.”
그녀는 형부가 넘겨주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었다.
“뭔지 확인 해봐도 되겠습니까?”
“응. 근데 전할 게 있다는 건 핑계였어. 처제 얼굴을 본지 너무 오래 돼서 걱정이 되더라고. 연락을 하면 항상 괜찮다고만 하는데, 정말 괜찮았으면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을 리가 없잖아. 그래서 별 거 아닌데 핑계거리로 삼으려고 가져 온 거야.”
핑계를 삼고 자신을 보러 왔다는 말이 너무 달콤했다.
입안에 한 가득 담으면 달콤함에 이가 떨릴 게 분명하다.
그녀는 잇몸을 씹는 고통으로 인내하며 형부의 말에 쇼핑백 안에 든 것을 꺼내들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건 곱게 포장 되어 진 속옷이었다.
“풋!”
여자가 남자에게 속옷 선물을 한다는 건 노골적인 추파였다.
그건 성별이 바뀐다 해도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 웃었다.”
“정말 이걸 저 주겠다고 사신 겁니까?”
“응. 처제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색깔이 너무 희지 않습니까? 이런 게 저랑 어울릴 리 없습니다.”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직접 입어보고 확인해보면 되지 않을까? 난 언제든 준비 되어 있거든.”
“…….”
그를 당장이라도 침대에 눕히고 탐하고 싶다.
혹은 그에게 자신의 몸을 전부 맡겨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형부가 선사해주는 쾌락은 떠올리기만 해도 솜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효과를 갖고 있었다.
“유혹, 하시는 겁니까?”
분명 그리 목이 마르지 않았었는데 이상하게도 목이 마른 것처럼 입이 마른다.
“응. 나 오늘 멋지지 않아? 처제 유혹하려고 잔뜩 차려 입고 나온 건데.”
어쩐지 오늘따라 너무 예쁘다 싶더라.
그를 본 순간 휘광이 나와 눈이 부셨을 정도였다.
“…형부는 항상 예쁘십니다.”
“하하, 그럼 좀 예뻐해주시든가요.”
물론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내해야만 했다.
형부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안 됩니다. 형부께서 위험해지실 수 있습니다.”
“도대체 뭐로부터 위험해지는 건데?”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 쪽 사정이니 형부께서 아실 필요도 없는 일이고요.”
너무 냉정하게 거절을 해서 또 다시 형부를 서운하게 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때문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변명의 말을 이어갔다.
“부디 제가 선을 긋는 걸 서운해 하지 말아주십시오.”
“응. 그럴게. 근데 나 지키겠다고 계속 못 만나면 우린 언제 만날 수 있는 거야?”
“모든 일이 끝나면요.”
“모든 일이 끝난다라…. 그게 끝나는 건 언제야? 한 달? 두 달?”
“정확한 기간을 말씀드리기엔 어렵습니다.”
“그럼 일 년이 넘어갈 수도 있는 거네?”
일이 잘못 된다면 충분히 그 기간 동안 형부와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 생각이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지 않겠습니다.”
“어렵네. 나는 처제랑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자꾸 시간을 달라고만 하니까. 나 이 정도로 차였으면 투정 조금 해도 괜찮지?”
“…죄송합니다. 얼마든지 하십시오. 제 사정 때문에 형부께 마음의 짐을 얹어드린 것 같아 면목이 없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안 해주고 기다리는 게 쉽지만은 않아. 사정을 알면 도와주기라도 할 텐데 그럴 수도 없고. 연주 누님한테 물어봐도 처제한테 들으라면서 자세한 얘기를 해주지 않으시거든.”
“죄송합니다. 저도 절대 말씀드리지 않을 겁니다. 이쪽 일은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런 생각은 앞으로도 하지도 말아주십시오.”
형부의 끔찍한 말에 펄쩍 뛰었다.
경찰한테 표적수사 당하고 있다는 걸 말하라고?
더군다나 이번 성노예 포주 사건에 얽힌 조폭들이 자신의 산하 조직원들이라는 것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설마 알고 계시는 건 아니겠지?’
아마 모를 거다.
그걸 알았으면 형부가 자신을 만나러 직접 이곳에 왔을 리 없지 않은가?
겁을 먹었거나 그녀의 출신을 경멸하며 정을 떼어내려 했을 것이다.
‘절대 안 돼.’
선을 넘기 전이었으면 몰라도 이젠 불가능하다.
원래 조폭이라는 것들이 그렇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 할 수 있어도 나갈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뼛속 깊이 조폭 그 자체인 그녀도 이 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