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33 - #91. 최관 (8)
“시발 너 진짜 일 제대로 해결해놔라. 내 가족들한테 조금이라도 문제 생기면 너도 그 새끼도 가만 안 둬.”
쿵!
“…….”
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간 동기의 협박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개새끼들이….”
조폭들이 저지른 일이 생각보다 그녀를 위협적으로 조여들어오고 있었다.
“반장님.”
“말해.”
“이거 아무래도 한 둘이 아닌 것 같습니다.”
“씨발….”
오늘 아침.
경찰서가 떠들썩했다.
요즘 조폭들을 붙잡아 들여오고 있는 탓에 시끌벅적한 것이 기본이긴 했지만 오늘 경찰서에 시끄러운 이유는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 때문이었다.
“이건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닙니까? 이놈들 제정신이 아니에요. 감히 경찰들을 건드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거 수습 가능해요?”
조폭들이 반격을 시작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막 나갈 줄은 몰랐다.
이건 권명주의 실수가 맞았다.
하지만 권명주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분명 상대를 우습게보지 않고 대비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폭들의 대응이 상식선을 뛰어넘어버렸기에 그녀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백지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시발, 나도 모르겠는데.”
“모른다고 하시면 안 되죠. 이거 다 누구 탓인데요.”
“내 탓이라고? 이게 나 하나 잘 되자고 하는 일이냐? 일 잘 되면 너희들도 한 단계씩 진급하는 거야!”
“누가 뭐래요? 어쨌든 일 시작한 것도, 진행하는 것도 수습해야 하는 것도 저희가 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시키면 따르는 거지.”
“그래서 나보고 해결 방안을 말해달라고?”
“예. 이거 수습 안 하면 큰일 납니다. 얘네들 제정신이 아니에요. 멀쩡한 정신으론 이런 짓 못하죠.”
“얘네 선 넘는 순간 온갖 지랄 다 날 겁니다. 뉴스감이라고요. 뉴스감!”
“시발.”
욕이 나왔다.
자신을 노릴 거라고만 생각해서 집에 들어가지 않은지가 며칠 째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놈들 머리가 미쳐 돌아가는지 자신이 나타나지 않으니 주변 인물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칼을 겨눈다거나 시비를 걸어온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큰 위협을 느꼈다.
“출근하는데 시발 그 새끼들이 노골적으로 나 쳐다보면서 히죽 웃더라고. 뒤통수가 쎄해서 소름 돋아 죽는 줄 알았어.”
“넌 가족이 없으니까 그나마 낫지! 그 새끼들이 내 딸 학교까지 따라갈까봐 시발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왔어. 내가 괜히 지각한 게 아니라고.”
“지금 형사가 조폭한테 쫄았다고 말하는 거냐? 쪽팔린 줄 알아야지!”
“네가 한 번 당해봐. 시발! 누가 나 때문에 이래? 내 가족들이 위협 받은 거잖아!!”
그랬다.
조폭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경찰들이 사는 집 앞에 떡하니 나타나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는 것 자체가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런 짓도 안 하고 있지만, 이런 미친 짓까지 했는데 더한 짓도 못할 게 뭐란 말인가?
“애초에 벌집을 건드리는 게 아니었어. 왜 피해를 우리가 봐야 하는데!!”
형사들은 피가 난자하는 광경을 봐도 무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 가족들 앞에 조폭이 나타난다면 그것만큼 무섭고 두려운 일이 없음을 이번에 뼈 저리게 깨달았다.
그들이 가족을 24시간 곁에서 지켜주며 보호해줄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거 접자. 지금 그 새끼들이 자진해서 잡혀 와서 업무도 마비가 됐어.”
“그만해, 시발!! 조폭들한테 쫄아서 수사 종료하라고? 네가 그러고도 형사냐?!”
권명주는 주변에서 쏟아지는 질책과 비난의 눈초리에 덤덤할 수가 없었다.
한두 명은 웃어넘길 수 있겠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욕하고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이런 식으로 경찰을 협박한 조폭들에 대한 분노도 섞여 있긴 했다.
“시발, 그 개새끼들도 가만 안 둘 거다. 내가 그 새끼 얼굴 똑똑히 기억해놨어.”
“그 개새끼들 잡는 건 나중에 할 일이고. 일단 이 사태는 멈춰야지.”
하지만 조폭들에 대한 복수는 나중 일이었고, 정말 그들이 뭔 짓을 저지르기 전에 이 사태를 멈추는 게 제일 중요했다.
“너 수사 그만 할 거지? 벌집을 건드릴 거면 제대로 전문가를 붙여서 뗐어야지. 너 때문에 사방으로 흩어진 벌떼들이 애꿎은 우리들을 쏘고 있다고!”
“그 새끼들 때문에 일을 못하겠어요. 조폭 잡는 게 벼슬입니까? 이게 뭔 민폐에요!”
지금 경찰서에 붙잡혀 오는 조폭들의 숫자는 한 부서로 수습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덕분에 다른 수사과에서도 시간을 들여서 조폭들을 잡아 들여야 했고, 그로인해 뜻하지 않은 인력난이 생긴 상태였다.
뭔가 일을 하고 싶어도 조폭들이 난동을 피워대니 제대로 경찰서가 돌아가질 않는다.
‘꾸역꾸역 협조를 해주고 있는 상황에서 조폭들이 집앞에 떡하니 나타나서 지켜보는 일을 당했으니 열이 안 받을 수가 없지.’
이는 그녀가 최관의 조직을 흔들기 위해 준비했던 방법을 역으로 당한 거였다.
‘남의 아이디어를 이런 식으로 써먹다니.’
이런 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면 동료들에게 협조를 받는 것이 은근히 중요하다.
정보를 슬쩍슬쩍 공유해주기도 하고, 건너건너 사건에서 찾던 놈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젠 다 텄군.’
괜히 일을 도와줘봤자 본인한테 도움 될 게 하나 없는데, 조폭들에게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기까지 한다?
협박을 한 조폭들에 대한 원한도 원한이지만,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든 권명주에 대한 미움이 쌓이는 게 당연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가 미처 대응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사이.
윗선에서 그녀의 프로젝트를 접으라는 강제 명령이 떨어졌다.
손쓸 틈도 없이 일방적으로 패배 당해버린 것이다.
♧ ♧ ♧
조폭들이 출근하는 경찰들 집 앞에 나타나서 기분 나쁜 웃음을 짓는다?
자칫 잘못하면 조직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엄청난 행동이었다.
경찰들은 본래부터 조폭에게 자존심을 쉽게 꺾는 놈들이 아니었다.
아마 이번 수사를 어떻게든 종료시켰어도 자존심이 크게 상한 경찰들이 조폭들에게 보복을 가할 게 분명했다.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이런 식의 행동을 할 필요가 있었다.
‘진짜 광기를 보여줘야 했으니까.’
가짜 광기로는 그들을 겁 줄 수가 없었다.
이놈들을 건드리면 큰일 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건드리면 제대로 물어뜯어서 살점을 취하겠다는 공포.
그것이 조폭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자 최고의 방법임을 확신했다.
경찰들도 독하기로는 만만치 않은 것들인지라 진심으로 물어뜯을 기세가 필요했다.
다행이도 그녀가 선택한 미친 짓을 모두가 흔쾌히 따라주었다.
그렇게 본인 스스로도 미친 짓이라는 걸 알면서 시작한 짓을 쓴지 며칠 후.
최관은 경찰들이 수사를 멈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붙잡아두었던 조폭들이 일제히 훈방 조취 되었으며, 조폭들을 무리하게 잡아들이는 일이 전부 사라진 것이다.
영업장을 알짱거리면서 억지를 부려서 영업정지를 먹였던 것도 깔끔하게 해결이 됐다.
그녀도 경찰의 행동에 맞춰 경찰들의 집 앞에 잠복시켰던 애들을 치웠다.
그리고 그녀가 한 미친 짓을 들은 선배들이 우르르 그녀의 집무실로 찾아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그 새끼들은 우리한테 안 된다니까. 으하하하!!”
“오늘 소식 듣고 아주 속이 다 시원했다고! 하하하!”
“역시 우리 보스가 아무나 후계자를 세운 게 아니야.”
“보스는 경찰들을 갯벌에 굴리더니 후계자는 시작부터 협박을 해서 꼬리를 말게 하는구나! 으하하!”
선배님들을 경찰들과의 일을 해결하는 과정이 마음에 쏙 들었다며 매우 흡족해 했다.
아마 정치인들의 힘으로 눌렀다면 이토록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꼬리를 말아도 아마 보복은 할 겁니다. 그러니 죄송스럽지만, 당분간은 계속 몸을 사려주십시오.”
“그 정도는 어쩔 수 없지. 그 새끼들 자존심 많이 상했을 거야. 당분간 다들 몸을 좀 더 사리자고.”
“흐흐! 내가 그럴 줄 알고 미리 손 써뒀어. 그러니까 그렇게 심하게 보복하지 않을 거다.”
“네가?”
“그래! 큰 거 두둑하게 챙겨줬어. 아랫놈들은 이가 바득바득 갈릴지 몰라도 윗선은 아마 희희낙락하고 있을 거다.”
경찰들이 한 발 물러났다고 해도 당분간 조직이 숨을 죽여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배님이 적절하게 윗선에 손을 써놓은 덕분에 몸을 사릴 필요도 없어진 듯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허허허, 그래그래. 나만 믿으라고. 늙은이가 이 자리에 앉아서 대우 받고 있으면 그 값은 해야하는 거 아니겠냐.”
“이거 내 얼굴이 부끄러워지는구만. 나도 돌아가면 아는 사람 쪽으로 손을 좀 써두마.”
“감사합니다. 선배님,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어허허!! 아니야, 아니야. 우리가 술 한 잔 주겠네.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술자리가 진행 되는 내내 분위기가 무척이나 좋았다.
그녀는 이번 일로 선배들의 완전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선배님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뻗기 시작하니 조직이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아무것도 안 하고 계셨던 거구나.’
조직이 흔들리지 않게 다독일 수 있었는데 일부러 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빠르게 안정화 되는 조직을 보면 아직 자신이 선배님들의 영향력에 따라갈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됐고 말이다.
그들이 후계자로 자신을 별 다른 반발 없이 받아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날 믿어서라기보다는 보스의 결정을 존중해주신 거지.’
이번 일로 큰 피해를 입은 영업장들에서도 불편함을 드러냈던 것이 언제냐는 듯 정상 영업을 시작했고, 경찰들이 조폭을 대거 검거 했다는 소식을 떠들던 여론은 잠잠해졌다.
어차피 기자들이 계속 취재를 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은 금방 식어버리기 마련이었다.
보복을 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경찰들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윗선의 강요에 독기를 풀 수밖에 없었고,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던 조직이 정상화 되었다는 생각이 들 무렵.
“드디어….”
그녀는 애타게 만나고 싶었던 그리운 ‘님’을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좋지 않은 상황 때문에 본의 아니게 오랫동안 만남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뭐라고 기다려주고, 걱정해준 형부와의 재회였기에 그녀는 답지 않게 설렌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늘은 정말 그와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동생들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경찰들이 그녀를 노렸던 일이 있었기에 동생들은 위험하다며 걱정을 드러냈지만, 그녀는 이 순간 만큼은 다른 이에게 방해 받고 싶지가 않았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그녀는 형부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설렌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