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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34화 (631/849)

Chapter 634 - #91. 최관 (9)

딸랑-

누군가가 가게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그녀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에 대한 설렘이 가득한 눈빛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은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가 나타나면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생각하며 1초 1초 시간을 셌다.

어서 그가 나타나기를.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다.

특히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 걱정 할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일이 무척 잘 해결 돼서 큰일이 다 지나갔다고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예전보다 훨씬 안심하고 만날 수 있게 됐다는 사실도 꼭 말해주고 싶었다.

‘아예 조심을 안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훨씬 안전해졌으니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아~ 익숙하지가 않네.’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너무 낯설게 느껴져 최관은 얼굴을 푹 숙이고 잠시 얼굴에 오른 열을 식혔다.

그녀를 따라 붙는 경찰들도 없었고, 내부 불만도 선배님들의 활약 덕분에 쑥 들어간 상태.

딱 숨을 좀 돌릴 수 있게 되자마자 그녀가 선택한 것은 형부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는 것이었다.

‘예전이라면 좀 더 조직 일에 신경을 썼을 텐데.’

연주 언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녀가 일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지 모르지 않다.

보스께서는 집을 나간 연주 언니에게서 완전히 시선을 떼려하지 않았기에 꾸준히 애들을 시켜 그녀의 삶을 지켜봐왔다.

그걸 정리해서 보스에게 전달하는 게 그녀의 일 중 하나였고 말이다.

그렇기에 처음 형부의 존재를 알게 됐을 때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적당히 성욕 처리하려고 만나는 사이일 거라 생각했지. 그게 언니 성격에 맞는 일이기도 했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자신이 이 자리에 나온 것도 어색하지만 연주 언니가 진심으로 남자를 사랑해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현실도 꽤나 어색한 일이었다.

과거의 그녀에게 지금 현재의 상황을 말한다면 재미없는 농담이라고 대답할 거다.

그땐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언니는 마음을 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났고, 자신은 언니의 남자를 사랑하고 있기까지 하다.

‘내가 언니였다면 내 남자를 흔쾌히 언니에게 양보할 수 있었을까?’

보스께서 하라고 명령을 했으면 언니에게 넘기긴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결코 연주 언니처럼 흔쾌히 넘겨주진 못했을 터다.

‘역시 후계자는 언니께서 올랐어야 했어….’

그랬다면 이번 일도 이렇게까지 헤매지 않고 단숨에 해결했겠지.

진하게 드는 패배감이 굴욕적이지 않은 것은 그녀가 진심으로 연주 언니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포부터가 틀리니까.’

당시에 그녀가 언니에게 가졌던 낯설면서도 악의적이었던 추악한 감정을 여전히 기억한다.

‘빼앗고 싶었으니까.’

그때의 감정을 언니가 알았다면 배은망덕하다며 욕을 했을 것이다.

그녀는 때때로 그때의 추악했던 감정을 떠올리며 호되게 스스로를 다그치곤 한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언니가 가졌어야 할 자리를 운 좋게 꿰찼으니 현오에게 넘기기 전까지 조직을 망치지 않고 관리해야 한다는 다짐과 본인에 대한 질책.

그것이 이번 일에서 몸을 자꾸만 사리게 했던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처제.”

더 이상 민폐를 끼칠 것을 걱정해서 그와의 인연을 억지로 끊고 싶지 않았다.

“!!”

혹여나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이가 있을지 몰라 예민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불쑥 형부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미안, 놀랐어?”

뒤쪽에도 문이 있었나보다 생각한 그녀가 목도리와 마스크 그리고 모자까지 착실하게 잘 챙겨 입은 것을 보고 안도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형부. 어서 오세요.”

“우리 진짜 오랜만이지?”

“예. 얼굴은 잘 가리고 오셨네요. 잘 하셨습니다.”

마주 앉아 있어도 쉽게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진이 찍힌다 해도 누구인지 알아내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거다.

그의 맑은 눈동자와 예쁜 눈매가 워낙 특별한지라 결국 정체를 알아내게 될 테지만 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처제가 안 만나준다니까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얼굴 가리고 다니는 거야 워낙 익숙해서 불편하지도 않았고.”

그녀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형부에게 최대한 얼굴을 가린 상태로 와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다만 얼굴을 제대로 가리지 않았다고 해서 만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하하! 나도 농담이었어. 근데 살이 왜 이렇게 빠졌어. 얼굴이 반쪽이 됐잖아. 속상하게.”

형부가 그녀의 얼굴을 보며 걱정을 한다.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뺨에 닿는다.

바깥에 있다가 와서 차가워야 할 손이 이상하게도 따듯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형부는 저만 보면 걱정부터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남한테 걱정을 사는 스타일은 아닌데도 말이죠.”

자꾸만 고개가 밑으로 내려간다.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하는 게 이토록 어려울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는다.

눈앞에 칼이 들이밀어져도 꿈쩍도 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의 앞에서는 그녀의 모든 생활 습관 같은 것들이 사라지고 수줍은 처녀만 남아버린다.

“내가 그랬나? 음…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 처제가 날 엄청 걱정 시키는 건 맞으니까.”

“뉴스 일 때문에 걱정이 많으신 것 같은데 이제 다 끝났습니다. 더 이상 걱정하실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정말 잘 끝났어?”

“예.”

“다행이다.”

“…….”

그녀는 힐끔 고개를 들어 형부가 기뻐하는 표정을 지그시 바라봤다.

형부가 연기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TV 속이 아니라 실제로 보게 되니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사전에 알게 돼서 다행이지, 아니였다면 그는 끝까지 말하지 않을 셈이었나보다.

다행이었다.

도움을 받아놓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헤실헤실 웃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저 알고 있습니다.”

“응?”

“형부께서 큰 도움을 주셨지 않습니까?”

“…어음, 그걸 어떻게 알았지? 안 들키려고 나름 노력한 것 같은데.”

“노력을 하셨어도 워낙 해주신 일이 커서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선배님들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의 도움을 몰랐을 것이다.

도와주겠다고 말을 하긴 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도움을 받고 싶지도 않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린 것 같았다.

그의 도움으로 지금 이 자리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니 말이다.

‘도움을 받지 않았으면 아직도 조직이 혼란스러웠을 거다.’

경찰들이 쉽게 물러났던 게 선배님들의 영향력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순진하게도.

아무리 돈이 좋다 해도 경찰들이 조폭들에게 체면을 구겼는데, 이렇게 쉽게 상황이 정리 되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은가?

그쪽에서 본보기로 적당한 중간 관리자 몇 명을 내놓으라고 했어도 싸게 먹혔다 생각하며 내어주어야 했을 정도의 사건이었다.

그런데 경찰이 어느 순간부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건 분명 누군가가 손을 썼기 때문이었고, 적어도 그런 영향력을 펼친 건 선배님들의 수환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내가 그쪽 대가리들이랑 자리 만들어서 거하게 대접해주고 두둑하게 챙겨줬다고 했던 그 자리에서 요상한 소리를 들었다?’

‘무슨 소리요?’

‘누가 미리 선수 쳐서 덮으라고 했다더라고. 우리 작은 보스가 했던 일 때문에 난리가 나서 어차피 접으려던 순간에 윗선에서도 그만하라고 하니까 접은 거라고 말이야. 자존심 때문에 얘기를 지어낸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

‘처음 들어보는 얘기입니다. 누가 저흴 도운 거죠?’

‘글쎄다. 나는 작은 보스한테 얘기하면 아는 게 있을 줄 알았지.’

처음에는 도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언질 없이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 형부 빼고는 없었다.

실제로 그는 자신에게 도와주겠다고 몇 번이고 연락을 넣은 사람이었다.

“제가 먼저 알아내고 말하지 않았으면 끝까지 숨길 셈이셨죠?”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았어도 처제가 잘 해결했다고 들어서 괜히 움직인 건가 싶긴 했어.”

“전혀 아닙니다. 형부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이렇게까지 빨리 상황이 수습 되지 못했을 겁니다.”

윗선에서 내려 온 명령 덕분에 경찰들의 자존심이 덜 상한 거다.

그래서 조직원들에게 가해질 보복이 사라진 것이고.

“그래? 내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솔직히 괜히 움직였다 싶었어.”

다만 조금 마음이 불편한 점이 있다면, 형부가 알리고 싶지 않았던 일을 모두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면목이 없습니다. 그런 쪽의 일은 최대한 엮이지 않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전혀 엮이지 않았어. 그냥 어쩌다 보니 생긴 인맥을 좀 사용한 거야. 내 여자가 곤란해졌는데 좀 도와달라고. 그 사람이 꽤 잘 나가서 이 정도 부탁은 아무것도 아니거든. 그러니까 결국 처제를 도와준 것도 내 힘으로 한 건 아니라는 거지.”

“인맥도 결국 본인의 힘인 겁니다.”

사람들이 왜 인맥인맥 하겠는가?

이 사회에서 그 어떤 것보다 위력이 강한 게 인맥이었다.

하지만 형부는 자신이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는지 최대한 자신이 한 일의 무게를 가볍게 하려고 애썼다.

“미안하다는 둥,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하다는 둥 그런 말 말고 그냥 감사하다고 해주고 끝내면 안 될까? 나는 그게 더 좋은데. 그게 보람도 있을 것 같고.”

“…감사합니다.”

“응. 착하다.”

가려진 형부의 얼굴 사이로 눈이 호선을 그린다.

드러난 부분보다 가려진 부분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눈동자 하나에 홀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완벽하게 홀렸음을 인정한 그녀는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억지로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밥 먹으러 갈까?”

“…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형부의 뒤를 따라 가게를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돌연 형부의 손이 불쑥 그녀에게로 내밀어졌다.

“무슨…?”

당황스러워서 왜 이러는지 물었으나 그의 의도를 모를 수는 없었다.

그는 말없이 손을 살짝 흔들면서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내밀었다.

누가 봐도 이건 자기 손을 잡으라는 신호였다.

그녀가 경찰들에게 한 일을 뻔히 알면서도 태연하게 손을 내미는 형부의 대범함에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뭘 걱정하든 그는 모두 쓸데없는 일이라는 듯 간단하게 부셔버린다.

최관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들은 사람 마냥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누군가의 손을 이런 간질간질한 의미를 담아 잡아 본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어릴 적에 보스의 손을 잡았던 그때 이후로 처음일까?’

보스는 꼬질꼬질한 길거리 소녀의 손을 잡고 본인의 집까지 친절하게 데려와 주셨다.

냄새나고 더러웠을 소녀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은 채로 말이다.

“…….”

붙잡힌 손이 너무 어색하고 간지러워 움찔 떨었다.

그때 잡았던 손의 감촉이 자꾸 떠오르는 건 왜일까?

상황은 하나도 비슷하지 않은데 말이다.

그녀가 손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형부가 앞서 걸어가며 그녀의 손을 힘 있게 꽈악 쥐었다.

찌릿-!

그 가벼운 자극에도 번개가 친 것 마냥 소름이 돋고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한 때 언니로부터 빼앗고 싶었던 욕심을 만들어주었던 그.

자신과 얽힐수록 추문에 휩싸일 게 분명한, 누구보다 밝게 빛나고 있는 별이 그녀의 손에 잡힌 순간이었으니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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