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35 - #91. 최관 (10)
이게 평범한 사람들이 말하고 다니는 흔한 ‘데이트’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건 꽤 오랜 시간을 흘려보내고 난 후였다.
그와 밥을 먹고, 손을 잡은 채로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공원을 걸어 다니며 설치되어 있는 조형물을 뒤로 두고 어색하게 사진도 찍어봤다.
반짝반짝 빛나는 형부에 비해 자신은 초라하기 그지없어 찍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지만, 형부가 꼭 남기고 싶어 해서 어쩔 수 없었다.
형부와 조직의 일과 연관 되지 않은 평범한 대화를 나눴다.
“정말 많이 자랐네요. 보지 않을 때마다 쑥쑥 커버려서 아쉽습니다.”
“이제 자주 놀러와. 현오가 처제 오면 엄청 좋아하는 거 알지?”
형부의 핸드폰에 있는 현오의 사진을 공유 받기도 하고.
“이거 사줄게. 처제랑 잘 어울릴 것 같아.”
“너무 밝은 색이라서 저랑 어울리지 않을 겁니다.”
“일단 입어 봐.”
길거리 옷가게에 들어가 옷을 선물 받기도 했다.
항상 입던 검은색 정장이 아닌 하얀색 니트와 청바지를 말이다.
“나중에 나 만나러 올 때 이거 입어줘.”
“…예.”
이런 걸 입을 생각을 해본 적 없어서 무척 어색했지만, 형부가 바란다고 하니 싫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답지 않은 일은 더 있었다.
평소에는 국밥에 깍두기 넣어서 먹었을 저녁을 고상한 분위기와 클래식이 흐르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었던 것이다.
전형적인 데이트의 형식이었으나 형부가 데이트를 꼬집어서 말하지 않았으면 끝까지 눈치 채지 못했을 거다.
지금 그녀가 형부와 하고 있는 것이 ‘데이트’라는 것을 말이다.
“근데 처제.”
“예?”
“데이트 하고 있을 때는 호칭을 다르게 하는 게 어떨까?”
“…데이트요?”
“응. 근데 왜 그거에 놀라? 설마 데이트 하고 있었던 거 몰랐어? 남녀가 만나서 밥 먹고 산책도 하고 이따가 키스도 할 건데 데이트가 아니면 뭐야?”
“!!”
정확히는 자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시간이 생겼을 때 생각났던 게 형부와 만나야 한다는 거였다.
이 자리가 데이트를 하는 자리라고 자각을 하고 만난 게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데이트가 맞는 것 같습니다.”
“응. 그래서 하는 말인데, 데이트 할 때만큼은 호칭을 처제, 형부 말고 다른 걸로 불렀으면 좋겠어.”
“아!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겠군요. 제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아니지, 그런 문제가 아니야.”
형부가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손을 잡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눈치 챘는지 형부는 데이트 하는 내내 그녀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사실 그녀도 그의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아 땀이 나도 손을 놓지 않았다.
굳이 그녀가 좋다고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내서 그것을 해주는 형부의 세심한 배려가 좋았다.
어두침침한 자신과 달리 반짝반짝 빛나는 그가 좋았다.
“처제랑 내 사이를 제대로 정립하고 싶은 거야.”
“!!”
두 사람의 사이를 설명하기 편한 단어가 존재하기에 굳이 관계를 다시 재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형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에 감동하면서도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는 게 무척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어. 처제는 날 어떻게 부르면 좋을 것 같아?”
“죄송합니다.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말씀드릴 만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처음 그와 만났을 때 시작이 ‘형부’였기에 그를 다른 무언가로 부른다는 게 너무 어색했다.
하지만 형부는 오늘 제대로 작정을 했는지 그녀가 빼는 걸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생각해봐. 응? 나는 개인적으로 자기야라고 부르고 싶어.”
“쿨럭! 그, 그런 건….”
온몸이 오글거린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어보지 못할 단어였다.
“싫어?”
“…예.”
“그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누나?”
“흡!”
심장이 떨어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그녀가 형부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 조폭들이 나이로 대접을 받는 곳인가?
그건 보스 시절에 활약했던 선배님들이 아니고서야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렇지 않게 나이 어린 형부를 깍듯하게 대할 수 있었던 거였다.
“그, 그건 곤란합니다. 안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처제가 싫어할 것 같아서 장난으로 말한 거야. 그럼 이름으로 부르는 건 어때? 이 정도면 처제도 양보해줄 것 같은데.”
“이름을 말입니까?”
“응. 관이야~ 이렇게? 누나도 싫다며.”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보스와 연주 언니가 전부였다.
선배님들은 이번 일로 그녀를 ‘작은 보스’라고 부르기로 말을 맞췄는지 요즘에는 그렇게 불리고 있었고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형님이라고 깍듯하게 불렀다.
그렇기에 새삼 그의 목소리로 불리는 자신의 이름이 너무 어색하게 다가왔다.
간질간질-
“!!”
형부의 입에서 ‘관이야’ 라는 자신의 이름이 나오니 심장 부근이 뻐근해지고 온몸이 또 간질간질해졌다.
하지만 적어도 ‘누나’라거나 ‘자기야’라거나 하는 식으로 불렸던 때보다는 훨씬 견디기가 편했다.
그런 단어는 그녀에게 너무 해로운 단어였다.
“이름…예, 그걸로 불러주십시오.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한 번 불러볼까?”
“읏.”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지만 형부는 그녀에게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형부의 입에서 나올 자신의 이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그 전에 처제는? 처제는 나 어떻게 부를 거야.”
“어…형부라고 부르는 건….”
“안 되지. 다른 거! 생각해놓은 거 없어?”
형부의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도대체 그를 뭐라고 부른단 말인가?
마땅히 생각나는 호칭이 없었다.
애초에 시작부터 그는 그녀에게 형부였다.
그 형부와 잠자리를 하고 데이트를 하는 입장이 된 게 머쓱하긴 하지만 말이다.
여전히 그녀는 그를 자신의 남자라기보단 형부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마 생각나는 건 아무래도 그거인데….’
형부가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으니 그녀도 그럼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게 가장 편하고 맞을 것이다.
하지만 형부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부를 때와 형부의 이름을 부를 때는 굉장한 차이가 있었다.
‘해솔씨…해솔씨…?’
선뜻 나오지 않는 그 단어를 입안으로 굴려봤다.
간질간질해서 온몸을 벅벅 손톱을 세워 긁고 싶었다.
문제는 긁고 싶은 부위가 어디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는 거다.
그냥 전부 간질간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해….”
목이 턱 막힌 듯 선뜻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형부는 집요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어떤 재촉도 하지 않고 그녀가 제대로 부를 때까지 기다려주고 있었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순 없었다.
결국 그녀가 입술에 침을 한 번 바른 후 말했다.
“해, 솔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으음~! 관이도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 거구나? 존칭은 빼고 불러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정도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 진작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말도 놔줘.”
“제가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형부에게 말을 놓으라고?
절대 불가능하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질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디 여기서 더 어려운 걸 바라지 말아달라는 의미로 간절하게 바라보기까지 하니 형부가 봐주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이렇게까지 싫어하는데 억지로 시킬 순 없지.”
“지금도 충분히 억지로 시키고 계십니다.”
“이름 부르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별 거 아닌 일을 관이 네가 너무 어려워하는 거야.”
“흣!”
“???”
갑자기 불린 그녀의 이름에 본의 아니게 너무 깜짝 놀라버린 것은 그녀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형부는 이미 그녀의 반응을 목격한 이후였고, 상황을 눈치 채기에 충분했다.
“관이야.”
움찔!
“흡!”
“관이야?”
움찔!
“힉!”
“큽…!”
딸꾹! 딸꾹!
그의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이토록 치명적일 줄 누가 알았을까?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놀라서 딸꾹질을 한다는 게 뭔지 경험하게 되었다.
두 볼에 열기가 올라 화끈거렸다.
“그, 그만….”
“관아. 관아? 관아! 관아~”
“아으…하으으으…!”
그만해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데, 형부가 그녀를 놀리는데 진심이었는지 각종 방법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낮은 목소리로 부르다가 높은 목소리로 부르기도 하고 끝을 올려서 부르기도 하다가 그녀의 이름을 늘려서 부른다.
귀를 파고드는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결국 새빨개진 얼굴을 손바닥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
“와~ 진짜 귀엽다.”
“무, 무, 무슨 마,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아…. 부디…부디 그만…해주십시오.”
거기다가 그녀의 이런 행동이 귀엽다며 읊조이는 목소리까지!
그녀는 완전히 무너져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난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야? 이걸 어떻게 안 귀엽다고 할 수 있겠어.”
“아니,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곧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래? 그럼 익숙해질 수 있게 계속 불러줄게. 관아.”
“흣!”
언제 가까이에 다가왔는지!
형부가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대고 그녀의 이름을 로맨틱하게 불렀다.
그녀는 아랫배가 징징 울리고 ‘그곳’에 자꾸만 힘이 들어가 아래에 힘을 꽉 주면서 다리를 오므렸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 신체 변화가 무엇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형부가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한껏 느끼고 있었다.
턱!
“나가자. 관아.”
아직 후식이 나오지 않았지만, 손을 잡고 일으키는 힘을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홀린 듯이 형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부가 빠르게 계산을 하고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아채서 가게 바깥을 빠져나왔다.
차에 올라타고, 운전은 형부가 했다.
그녀는 안전벨트를 차면서 선뜻 침묵을 뚫고 말을 먼저 걸 수가 없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어디 가십니까?”
그래도 어디로 가는지 정도는 알아둬야 할 것 같았기에 용기를 내서 물었다.
“어디로 가기는. 당연히 호텔로 가야지.”
다음 목적지를 들으니 더더욱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지금 호텔로 간다는 건 목적이 매우 노골적인 거였다.
“혹시 싫어? 다른 곳 가보고 싶은데 있나? 사실 밥 먹고 나서 야경보러 관람차 가려고 했었거든. 아마 지금 호텔가면 거긴 다음 기회로 넘겨야 할 거야.”
“…….”
“관람차, 보고 싶어?”
형부가 너무 당연한 걸 묻는다.
그녀의 의견은 들어 볼 것도 없이 호텔로 가는 거였으니 말이다.
입술을 꽉 깨문 그녀가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리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오.”
관람차에 가는 것을 거절했다는 것은 호텔로 가겠다는 의미였다.
두 사람이 호텔에 들어가게 되면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형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바람에 반응했던 몸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었다.
운전을 하던 형부가 무릎에 놓여 있던 그녀의 손을 꽉 잡아왔다.
오늘 하루 종일 붙잡고 놔주지 않았던, 차가운 날씨에도 여전히 온기를 머금고 있는 단단하고 따듯한 손이었다.
그 손을 마주 잡고 있으니 부끄러움이 살짝 가시면서 용기가 생겼다.
해서 그녀는 선뜻 입 밖으로 내뱉기 힘든 단어를 다시 꺼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 해솔씨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주세요.”
“…….”
꽈악-!
형부 아니, 해솔씨가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도로를 주행하는 차의 속도를 올렸다.
차의 목적지는 그가 가고 싶어 했던 호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