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38화 (833/849)

Chapter 638 - #92. 아현 (2)

위우우우우웅-

“우왕.”

“저번에 여행 갔을 때 타봤으면서 그렇게 신기해?”

“응. 구름 너무 예쁘지 않니? 위로 올라오니까 세상이 이렇게 작아지는 것도 신기하고. 이 기분으로 작곡하면 딱일 것 같은데 아쉽다.”

머릿속이 뻥! 하고 트인 기분이다.

이래서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는 걸까?

단순히 평소 생활하던 공간에서 벗어난 것뿐인데도 색다른 자극에 손이 간질간질하다.

“흐흥~ 흥~ 흐응~ 음음~ 음~”

어설프고 단조로운 멜로디를 허밍으로 부르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긴다.

좋아하던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건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도 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자체를 즐기고 싶었던 그녀는 떠오르는 영감들을 허밍으로 흘려 보내기로 했다.

평소였다면 허밍으로 영감을 즐기기보단 혹시나 잊어버릴까 허겁지겁 오선지에 그려 넣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좋은데?”

해솔이가 그녀의 허밍을 듣고 음을 얹는다.

가수 아니랄까봐 그의 매력적인 음색이 멜로디에 더해지니 노래가 한층 더 살아났다.

“흐흥~”

남들에게 피해가 갈까 작은 목소리로 함께 노래 부르는 이 순간이 무척이나 짜릿하고 재밌었다.

그렇게 해솔이와 노닥거리면서 비행시간을 견디고 도착한 새로운 나라.

음대로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만한 대학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여기서 음대에 다니게 된다는 거지? 으앙! 아직도 믿겨지질 않아.”

이국의 도시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진 그녀는 해솔이를 데리고 구경에 흠뻑 빠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다못해 터질 것 같았다.

그의 도움을 받아 정말 오랫동안 준비했던 유학이다.

“혼자서 유학가기 무섭다고 했던 사람 어디 간 거야? 너무 좋아하잖아.”

“어떻게 안 좋아하겠어! 이렇게 멋진 곳인데! 너는 활동하면서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녀서 감흥이 없는 것 같은데 나 같은 사람한테는 엄청 큰 변화라구!”

벌써부터 머릿속에 음률이 흐르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노래가 들리고 있는 게 맞다!

“저기 버스킹 하나봐? 노랫소리 들려? 안경 썼지?”

“응.”

“가자가자!”

혹여나 소리가 끝나버릴까 노심초사 하며 해솔이의 팔짱을 낀 채로 함께 달렸다.

♧ ♧ ♧

유학을 위해 미리 준비해뒀던 집도 문제없다는 걸 확인하고, 학교까지 타고 다닐 차도 무사히 기한에 맞게 도착을 했다.

아무리 생활을 본래의 집에서 할 거라지만, 간단하게 생활할 수 있는 도구들이 필요한 건 사실인지라 해솔이와 팔짱을 끼고 마트를 돌아다니면서 거하게 쇼핑을 했다.

막상 마트에 가면 이것도 사야 할 것 같고, 저것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이 어느새 물건들로 꽉 채워지게 됐다.

“내가 사려고 했는데.”

“이 정도는 내가 하게 해줘. 너 앞으로 공부하느라 고생할 텐데 남자 친구가 이 정도 내조는 해줄 수 있는 거잖아. 네 남친 넘치는 게 돈이야. 알지?”

“흐흥~ 고마워~!”

자신이 돈을 번 것 그 이상 아니, 몇 배로 많은 돈을 긁어 모은 것이 바로 해솔이다.

이 정도 자잘한 구매는 그의 통장에 작은 흠도 가지 않을 것이다.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신혼부부 된 것 같아.”

“미리 예행연습 한다고 치면 되지.”

“꺄악! 어떡해!”

유학을 가면 혼자서 외로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솔이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같이 와줘서 고마워.”

“한 번만 더 고맙다고 하면 100번 채우겠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빙긋 웃는데, 그 웃음이 너무 찬란해서 심장이 뻐근해졌다.

‘하, 심장에 해로워.’

여러모로 그녀의 남자 친구는 건강에 좋지 않다.

사람을 충동적이고 파렴치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츄웁, 쮸웁! 쪼옥!

남자 친구의 멱살을 잡아 밑으로 끌어내리고 냅다 덮쳐버렸다.

팔은 자연스럽게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는다.

유학 온 첫 날의 밤은 그렇게 남자 친구와 화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 ♧ ♧

작곡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교류를 하는 것이 생각보다 좋았다.

더군다나 이곳에 입학하는 사람들 모두 작곡에 ‘진심’인지라 대화가 잘 통했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그녀가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해도 된다는 점이었다.

작곡 학원에 다니며 쌓은 지인들과 대화를 할 때면 항상 조심을 해야 했다.

‘눈치가 보였으니까.’

그 사람들보다 훨씬 늦게 작곡에 입문해놓고 잘나가도 너무 잘 나가고 있는 그녀.

부러움과 더불어 시기와 질투가 따라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별 생각 없이 저지른 일도 애가 변했다며 뒷담화로 바뀌어버리곤 했다.

그들의 뒷담화를 우연히 들은 이후, 그녀는 지인들과의 교류를 점점 줄여나갔다.

이미 그녀를 싫어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잘 해보려 애쓴들 달라지는 게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헌데 이곳에서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왜냐면.

“이게 네가 만든 곡이야? 너무 좋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그녀 못지않은 천재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겸손이 미덕인 우리나라와 달리, 이들은 자신을 꾸미는 말을 해도 쿨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오히려 겸손한 척 하면 이해할 수 없어했다.

“이게 동양인의 그 특유 성격 그런 거지?”

오히려 저런 말로 그녀의 겸손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줄 정도다.

“내가 너였으면 잔뜩 알리고 다녔을 텐데 말이야.”

“네가 네 음악을 사랑해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하겠어. 넌 좀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이래서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나보다.

동양인에 대한 차별 없는 친구를 사귀었고, 그 덕분에 알게 모르게 낮아졌던 자존감을 채울 수 있었다.

학원에서 배웠던 내용이 수업에 나올 때도 있었지만, 그때보다 훨씬 깊은 내용을 공부할 수 있어졌다는 것도 너무 즐거웠다.

공부가 즐겁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어느새 그녀도 그 말을 스스로 내뱉을 만큼 유학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요즘 점점 집에 돌아오는 날이 적어진다?”

“앗.”

“유학 생활이 그렇게 재밌어?”

“으응? 아니, 그냥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니까 걔네들이랑 어울리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어 버려서.”

유학 생활이 너무 즐거운 나머지 잠깐 남자 친구에게 소홀하게 됐다.

오기 전에 소홀하게 대하면 삐질 거라 했는데 그걸 깜빡해버린 것이다.

낯선 문화를 경험하고, 그렇게 얻은 영감을 곡으로 만들면 친구들이 칭찬을 해준다.

“아닌 척 할 필요 없어. 장난이었으니까. 좋은 친구들을 사귄 거지?”

“응! 나랑 대화가 너무 잘 통해. 내가 모르는 것들은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고, 동양인이라는 걸로 차별하지도 않고. 색다른 문화를 경험해보는 것도 즐거워. 내가 모르던 걸 배울 수 있는 수업도 즐겁고.”

“유학이 잘 맞아서 다행이다.”

다행히 남자 친구는 당분간 그녀가 유학 생활에 집중하는 것을 이해해줬다.

다만 모든 일이 유학 생활처럼 잘 진행 된 것은 아니었다.

“작곡가님 곡 분위기가 많이 바뀌셨어요. 저희는 예전 작곡가님 분위기가 좋았거든요.”

새롭게 배우면서 얻게 된 지식과 유학 생활에서 받은 색다른 자극으로 만든 곡.

그것이 그녀의 작곡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로인해 기존의 분위기를 좋아하던 회사가 난색을 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 곡도 충분히 좋긴 하죠. 근데 저희 컨셉이 예전 작곡가님 스타일이랑 어울려서 말이죠.”

그들은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했다.

이미 증명 된 그녀의 스타일로 자신의 가수가 무난하게 성공하길 바랐다.

“전 제 음악에 자신 있어요. 이 곡으로도 충분히 성공하실 수 있을 거에요.”

“작곡가님 말씀도 맞기는 하지만요…. 저희들이 바라는 쪽이랑은 곡이 너무 많이 달라서요. 많이 바라는 건 아니고, 이 곡을 살짝 편곡을 해서 예전 분위기를 좀 씌우는 건 어떨까요?”

자신감을 보이며 설득을 하려 해도 들어먹지를 않는다.

‘내가 너무 많이 바꿨나? 그래도 다들 좋다고 했는데….’

누구의 잘못인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둘만 이러는 게 아니다 보니 즐거웠던 유학 생활도 점점 꼬이기 시작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성장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뒤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중심이 흔들리기 시작하니, 예전에는 즐겁던 일도 이젠 아니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넌 어떤 것 같아?”

흔들리기 시작한 마음.

다행스럽게도 그녀에겐 이 마음을 알아주고,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네가 만든 곡, 확실히 예전보다 훨씬 좋아.”

“그치??? 좋지? 근데 왜 자꾸 안 된다는 거냐구!! 나 미칠 것 같아!!”

음악이 좋은데 계약을 퇴짜 맞는 이유.

해솔이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그 답을 내놓았다.

“이런 경우는 하나야. 컨셉이랑 맞지 않으니까.”

“컨셉…하아~.”

지긋지긋할 정도로 잘 아는 얘기다.

그 사람들 핑계 댈 때 다 컨셉 타령을 하니까.

“그게 단순히 핑계이기만 한 건 아닐 거야. 원래 아이돌한텐 컨셉이 진짜 중요하잖아.”

보통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할 때 어떤 분위기의 어떤 컨셉의 곡을 만들어달라고 요청을 한다.

아니면 다수의 작곡가들에게 이런이런 컨셉의 곡을 수소문 중이니 곡을 보내달라고 하던가.

아현이 억울한 점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근데 이 곡이 컨셉이랑 안 맞는 게 아니잖아!”

“그렇지.”

“이 사람들은 그냥 검증 된 걸 쓰고 싶은 거야. 모험은 하기 싫은 거지!”

“네 말도 일리는 있어.”

“나 어떻게 해야 돼? 부족한 게 뻔히 보이는 곡으로 바꿔야 하는 거야?”

“아니. 그냥 너 쪽에서도 매달리지 말고 거절해.”

“정말?”

“응. 안목 없는 사람들이랑 왜 일을 하는데? 내가 예전에도 말했던 적 있는데, 처음에 허니 엔터랑만 일하다가 지금은 다른 회사랑 일하기 시작한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온 거야.”

남자 친구의 조언에 순간 멍해졌다.

그의 말은 결국 좀 더 큰물에서 놀라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그게 뭐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건가….”

그렇게야 할 수 있다면 좋을 일이지만 쉽게 가능한 일은 아니다.

헌데 정작 해솔이는 그녀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이렇게 좋은 곡이 있는데 왜 안 돼? 해보지도 않고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지.”

“난 방법도 몰라!”

“인맥 뒀다가 뭐할래? 내가 연결해줄게. 조언 받을 수 있는 확실한 사람으로.”

또 남자 친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고마우면서도 민망하고 머쓱했다.

좋은 곡을 만들면 합당한 결과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세상이라는 게 그렇게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판이 아니다 보니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녀가 미처 몰랐던 점은 남자 친구의 스케일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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