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44 - #92. 아현 (7)
사실 아현에겐 한 가지 고민이 있다.
‘솔직히 한 가지는 아니지.’
사는 게 뭐 이리 복잡한지.
고민은 늘 갖고 있다.
지금 당장 로잘린에게 상의하고픈 고민은 이거였다.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 결혼! 진해솔이랑 결혼하려고?
-네에.
-나쁘지 않지.
-언니는 결혼 안 하세요?
-나? 나는 안 할 거야. 죽을 때까지.
-왜요? 다들 결혼하고 싶어 하던데.
-혼자 살아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수 있는데 왜 그래야 해?
확실히 요즘 잘 나가는 여자들 사이에선 결혼을 거부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고 들었다.
-근데 내가 너 같은 경우라면 결혼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
-저 같은 경우가 어떤 경우인데요?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있는 거잖아. 그 정도면 서로 잘 맞는다는 거 아닌가? 나는 여태까지 그런 남자를 못 찾았어. 마음에 차는 상대가 없으니까 결혼 생각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거지. 근데 너는 아니잖아.
-그렇죠.
사실 아현이와 해솔은 거의 결혼했다고 봐도 좋을 만큼의 생활을 하고 있다.
서로의 집을 공유하고, 생활의 많은 것을 공유한다.
어느덧 해솔이는 자신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해진 사람이 된 것이다.
-이야~ 그렇죠오? 진짜 찐한 사이긴 한가보구나.
-결혼을 하면 해솔이밖에 생각이 안 날 정도에요.
그녀의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해솔이밖에 없다.
다만 예전에는 그녀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결혼에 대한 생각을 일부러 피했었는데 이젠 그럴 수 없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는 게 이번 고민의 시작이었다.
-흐응~ 그 정도면 그냥 결혼해.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 끌다가 후회하지 말고.
-주변에서 너무 결혼해라 결혼해라 하니까. 그 사람들 호들갑 때문에 떠밀려서 하기는 싫더라고요.
특히 오랫동안 그녀를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엄마다.
해솔이와 사귀는 것을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엄마는 요즘들어 결혼에 대해 부쩍 얘기를 꺼내오고 있었다.
‘너희는 언제 결혼해?’
‘해솔이가 결혼하자는 소린 안 해? 네가 여잔데 좀 밀어 붙여 봐!’
‘차라리 덜컥 애라도 가지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걔 다른 여자들 많이 만나고 다니는 것 같은데 정말 괜찮은 거니?’
‘엄마 친구 중에 네 또래 아들이 하나 있는데 한 번 만나볼래? 애가 참 건실하다더라.’
‘엄만 네 나이 때 너 낳았어, 얘! 언제까지 혼자서 지내려고?’
‘결혼하자고 네가 먼저 프러포즈를 좀 해봐.’
그녀의 나이가 이십대를 넘어 삼십대에 들어섰다.
사실 이십대 중반부터는 나이를 굳이 세면서 살지 않았기에 새삼 나이를 떠올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그런 사람들 말은 그냥 무시해. 네 인생에 하등 도움 될 거 없으니까.
-엄마가 제일 유난이셨는데요.
-에이씨, 나 원래 조언이니 뭐니 이런 거 낯간지러워서 잘 못해! 네가 알아서 걸러 들어.
-아하하! 네, 언니.
로잘린 언니의 탈룰라에 잠깐 웃음이 돌았다.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하는 거지. 뭐가 제일 마음에 걸리는 거야. 돈은 너도 작곡으로 꽤 벌었다고 하지 않았어? 더군다나 남편이 진해솔이 될 텐데.
-그냥 겁이 좀 나는 것 같아요. 내가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가장 큰 두려움운 아이를 낳는 거다.
주아 언니나 다른 언니들이 해솔이의 아이를 가지는 걸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긴 했다.
동생처럼, 조카처럼 그녀들의 아이를 돌본 적도 있다.
언니들이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면서 과연 자신이 저런 대단한 모성애를 보여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계속 미루기만 했는데,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동안 핑계거리는 많았다.
아직 나이가 젊어서 혹은 직업적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지 못해서라는 핑계를 댔다.
나이가 적당히 찼을 땐?
‘좀 더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한 위치가 된다면 그때 하자.’
작곡가로서 커리어를 쌓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제법 훌륭한 핑계거리지 않은가?
핑계라는 게 생각보다 달콤해서 쉽게 놓기 어렵기도 했다.
‘돈을 두둑하게 벌었을 땐….’
판이 깔려도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던 것 같다.
작곡가로 인정을 받았고, 주변에서 자신을 대하는 것에 큰 변화가 생겼었다.
그녀도 사람인데 어떻게 안 좋을 수가 있겠는가?
워낙 꿈 같은 상황인지라 영원히 깨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결혼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정확히는 외면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유학 때문에 미뤄졌고.’
유학을 와서는?
당연히 공부하느라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요즘 결혼에 대해 생각하냐고?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40대가 되어도 결혼 용기를 못 낼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언니한테 물어본 거에요. 남자를 많이 만나보셨다니까 결혼에 대해서도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 싶어서요.
-너랑 나랑은 남자에 대한 관점이 많이 다른데 도움이 되겠어? 괜히 나한테 물어봐서 혼란해지기만 할 것 같은데. 거기다가 일단 남자 친구가 진해솔이라는 점에서 상황이 많이 다르지. 나는 너희처럼 진지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어.
-헤헤.
그래도 듣고 싶다는 의미로 바라보고 있으니 로잘린 언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씨, 나 걔 칭찬은 하기 싫은데 하게 만드네. 솔직히 걔처럼 건실한 놈이 어디있냐? 남편 삼기에 부족한 면이 없지. 아! 그나마 있다면 여자 많은 거 하나? 애가 너무 뭐랄까 그런 부분이 좀 있잖아. 숨만 쉬어도 여자가 꼬이는 그런 거 말이야.
-알죠알죠.
-걔가 자기 여자한테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평소 하는 걸 보고 추측해서 하는 말인데, 남편감으로 빠지지 않은 놈인 건 확실해. 으웩, 소름 돋아. 다신 나한테 이런 거 물어보지 마라. 네 얼굴 봐서 딱 이번 만 말해주는 거야.
-고마워요, 언니!
남편감으로 해솔이만큼 분에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그녀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가 결혼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두 눈으로 보고 있는지라 더 그랬다.
-어이구, 지 남친 칭찬하니까 좋아 죽으려고 하네. 오래 만났는데도 여전히 걔가 좋냐?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얼굴이 워낙 사기긴 해. 근데 보통 3년 만나면 식지 않냐? 나야 뭐 남자를 오래 만나고 다닌 건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보통 3년 가기도 전에 질리거든.
-권태기요? 저흰 그런 거 없었어요.
신기하게도 권태기가 없었다.
사실 신기한 건 아니다.
-신기하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로잘린 언니도 궁금했는지 물어왔지만,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다.
어떻게 말하겠는가?
해솔이와 섹스 한 번 해보면 이해할 거라는 말을.
더불어 로잘린과 해솔의 사이가 완벽히 지인에 속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를 질려할 수 있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 못 잃지.’
어쨌든 로잘린 언니와의 상담이 아현에게 의외의 부분에서 도움이 되었다.
그의 특별함을 생각해보면 더 이상 안전을 위해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언니가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갑자기 용기가 나네요.
-결혼은 그럼 언제 하려고?
-유학이 끝나는 대로 바로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애초에 이런 걸 물어 볼 필요도 없었던 거네. 괜히 내 입만 썩었어.
-아니에요. 엄청 도움 됐어요. 저 혼자 결정하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래서 꼭 조언 듣고 싶었어요.
-부모님한테 들으면 됐지.
-엄마 반응이야 뻔하죠. 진작 그러지 왜 여태까지 안 했냐고요.
그래서 더더욱 엄마한테 상의를 해볼 수가 없었다.
결혼에 무한 긍정인 엄마가 아닌가?
오히려 로잘린 언니가 결혼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더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진해솔 같은 남자랑 결혼할 수 있으면 무조건 하는 게 맞다 뭐 이런?
-네.
-근데 유학 끝나고 정말 결혼할 수 있겠어?
-왜요?
-내가 보기엔 유학 끝나도 바빠서 못할 것 같은데?
-제가 바빠요?
-빌드번. 잊어버린 거야?
그랬다.
그녀가 계획한 대로 되려면 유학을 끝내고 국내로 돌아가야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빌드번에게 곡을 주게 됨으로써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상황을 알 수 없게 된 거다.
-한 번만 하고 말 거야?
-그럼 기회가 더 생길 수도 있다는 건가요?
-당연하지. 이번 곡이 나와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서 네 향후가 정해질 거야. 근데 내가 보기에 꽤 나쁘지 않을 것 같거든.
현역 빌보드를 드나드는 작곡가의 말인지라 아현이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정말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아현은 결혼을 뒤로 미루고 좀 더 꿈을 위해 시간을 내고 싶어질 것이다.
‘근데 이거 진짜 가능한 일이긴 해?’
하지만 아직 빌드번이 그녀의 곡을 불러준다는 게 확 와 닿지 않아서일까?
아현은 로잘린의 말에도 영 믿음이 생기질 않았다.
-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그냥 이 정도 퀄리티의 곡만 계속 만들면 돼. 초반에 길 뚫어주는 건 내가 해줄 테니까.
-도대체 해솔이한테 뭘 받으셨길래 이렇게 잘 해주시는 거에요?
로잘린 언니가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친절한 건 단순히 친분 때문이라 보기 어려웠다.
그녀의 질문에 로잘린 언니가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어. 말 못 하니까 너도 알려고 하지 마.
-너무 잘 해주시니까 궁금할 수밖에 없잖아요. 이런 가수들이랑 연결해주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네 남친이 널 위해서 배려해준 거니까 눈 딱 감고 받아. 그게 신경 써준 걔한테 보답하는 거야. 그리고 시작만 이렇게 뚫어주는 거지, 나도 그 이상은 못해줘. 이게 받은 값의 끝이야. 정 고마우면 프러포즈라도 하든가.
-으아앙!!
아현은 내적 갈등에 비명을 내질렀다.
잘 되도 문제, 잘 안 되도 문제.
아현의 고민은 결국 오늘도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 ♧ ♧
[Billboard Hot 100 – Billboard]
1. Build Byrne - Skin
2. Mariah C -All I want For…
“미친.”
사고 쳤네.
빌드번과 직접 만나서 곡에 대한 얘기를 나눴을 때 꿈에서 이 광경을 봤던 적이 있다.
그녀의 곡이 빌보드 핫100 1위에 도달한 거다.
이게 또 꿈은 아닌가 싶어 두 눈을 비볐다가 볼을 손가락으로 꼬집어봤다.
“아프네.”
볼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진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 맞나보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이잉-
그와 동시에 핸드폰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와아.”
과장 좀 보태서 연락처에 있는 사람 전부한테 연락이 온 것 같았다.
그녀의 SNS에 빌드번의 신곡을 자신이 작곡했고 홍보해 놨기에 지인들 중에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SNS에 올리지는 말 걸 그랬나….”
홍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그리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올린 거였다.
빌보드 1위를 할 줄 알았으면 섣불리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다.
'그냥 유학 가서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을 뿐인데.'
본의 아니게 엄청난 자랑질을 해버린 게 됐다.
그녀는 살짝 질린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어 누구에게 왔는지 확인을 해봤다.
“이야...그래도 욕은 없네? 헤헤. 다행이다.”
가장 빠르게 축하 인사를 건네 온 사람은 ‘가족’이었다.
여기서 가족은 엄마를 말하는 게 아니라 해솔이와 그 가족들을 말하는 거다.
아무래도 엄마는 이런 쪽으로 소식을 전달 받는 게 느릴 수밖에 없다.
사실 그녀도 엄마에게 먼저 연락하기보단 해솔이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하고 싶었다.
“해솔아!”
그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좋은 곡을 만들었다고 해도 빌드번이라는 유명한 가수와 연결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도대체 뭘 줬는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절대 말 안 해주더라.
곡이 아무리 좋아도 궁합이 맞는 가수와 만나지 않으면 제 값어치를 받지 못하는 법.
그러니 이번에 일이 잘 된 것에 해솔이가 지분을 40% 쯤은 갖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20%, 로즈 언니는 40% 정도?’
그러니 이번 일에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 건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