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45화 (640/849)

Chapter 645 - #92. 아현 (8)

주변 사람들은 빌보드 1위 작곡가가 됐으니 그녀의 삶이 많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가수인 것도 아니고, 빌보드를 점령했다고 해서 대단하게 무언가가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나마 좀 체감이 될 만한 변화가 있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두둑한 통장이랄까?

근데 그조차도 아직 정산이 안 돼서 현실감 있게 와 닿지는 않았다.

거기다가.

‘이미 경험해 본 거라서. 기쁘긴 하지만 엄청 호들갑 떨만한 일은 아닌데…푸흣!’

히죽-!

입가가 자꾸만 벌어져서 턱이 얼얼하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칭찬에 발이 땅에 붙어 있을 세가 없었다.

사실 그녀는 이미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바로 에어플레인.

해솔이가 소속 되어 있는 그룹에 곡을 주면서 이번과 같은 상황을 경험해 본 바가 있는 것이다.

‘기분 좋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주목을 받는 건 가수이지 곡을 만든 작곡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다.

누가 그녀를 욕하든 ‘그래, 그럴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누군가가 그녀를 시기한다 해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쟤 좀 재수없다. 에어플레인이 워낙 잘 해서 좋은 성적을 낸 거 아니야? 곡은 별로던데.’

‘너도 그렇게 생각했어? 나도.’

‘그치그치? 자기가 잘난 것처럼 콧대 높이고 다니는 거 엄청 꼴불견임.’

‘그러니까. 재수없어. 지 능력이 대단한 줄 알아.’

‘나도 작곡 지망생 되기 전에 허니 엔터에서 연습생 생활 할 걸 그랬어. 그랬으면 에어플레인 곡은 내가 만든 곡이 됐을 텐데.’

그녀의 이름값이 올라가는 것에 시기심을 느낀 지인이 다른 지인과 뒷담화를 할 때 들었던 말이다.

자존심 상하지만 그땐 차마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곡이 빌보드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에어플레인 이름값이 크게 작용했으니까.

만약 다른 가수가 불렀다면?

빌보드는 어림도 없었을 거다.

에어플레인이 불러주었기에 그녀의 곡이 잘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근데 원래 다 그런 거 아닌가?’

빌드번.

이번에도 에어플레인과 사정이 비슷하긴 하다.

빌드번은 에어플레인 만큼 유명하고 대단한 가수다.

그러니 이번에도 가수빨이라고 욕을 들어야 할까?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비아냥대면 그녀는 언제까지 가수빨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냔 말이다.

‘대단한 가수가 내 음악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내 능력인 거 아닌가?’

허니 엔터가 어디 허투루 일하는 곳인가?

그녀가 곡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다면 아무리 회사 출신 연습생이었다 해도 거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가 회사에서 제일 애지중지하는 에어플레인과 연결을 시켜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빌드번에게 그녀의 곡을 들려 줄 수 있었던 건 반칙에 가까운 인맥빨이 맞다.

하지만 그 곡을 듣고 부르겠다고 한 건 빌드번의 선택이다.

거기다가 애초에 곡을 제대로 작곡하지 않았다면 로잘린 언니가 연결을 시켜줄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내 능력이 맞아. 남한테 흉들을 만큼 못나지 않았어.’

빌드번과 만나서 곡에 대해 여러 얘기를 나눴고, 그렇게 완성 된 게 빌보드 1위를 했다.

쪽팔림과 부끄러움을 견뎌내고 어떻게 곡을 만들었는지 숨기지 않고 털어놨다.

그는 그녀의 희생에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했고, 찰떡처럼 곡을 소화해내는 것으로 보답을 했다.

‘그런 노력으로 만들어진 곡이야. 이 정도면 나도 나름 칭찬 받을 만하잖아.’

그녀의 이런 생각 변화는 곡에 고스란히 묻어나며 성장의 발판이 되어 주었다.

-이젠 혼자서 해도 될 것 같은데? 앞으로는 습작곡은 보내줄 필요 없어.

-으앗! 저 아직 한참 부족한데….

-겸손 그만! 그거 쓸데없어.

로잘린의 따끔한 일침에 아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앞으로 계속 연락 드려도 될까요?

-그럼 먹을 것만 쏙 빼먹고 입 닦을 생각이었니? 자주 연락 안 하면 죽을 줄 알아.

로잘린과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현은 만족할 수 있었다.

사실 일도 이미 의뢰가 꽤 많이 들어와서 공부와 병행하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고국에서 그녀의 곡을 빌드번이 불러서 1위에 올랐다는 걸 알고 의뢰를 왕창 넣은 것이다.

반응이 온 건 국내뿐 만이 아니었다.

해외에서도 빌보드 작곡가는 귀하다.

로잘린이 도움을 줘서 빌드번 만큼 대단한 가수는 아니어도 괜찮은 실력을 가진 가수들과 연결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의 의뢰만 받아도 앞으로 아현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충분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게 곡을 꾸준히 성공시키고 인정을 받으면 로잘린처럼 움직이지 않아도 곡 의뢰가 들어오는 인기 작곡가의 반열에 들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는데 결혼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유학 끝나면 결혼하겠다고 했었던 거 아직도 달라지지 않았어? 지금 상황 보면 네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결혼은 불가능한 것 같은데.

로잘린 언니의 걱정.

그땐 막상 일이 닥쳐오면 마음이 달라질 것 같아서 불안했는데, 오히려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린 지금은 생각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땐 언니 말 듣고 제 마음이 변하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걱정이 많았어요.

근데 막상 상황이 닥치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커리어에 대한 욕심으로 해솔이와의 결혼을 뒤로 미루고 싶어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

-근데 정작 그런 상황이 되니까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결혼을 하기 싫어질 거라고?

아니, 오히려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예전보다 더 강해졌다.

빌보드 작곡가 정도면 해솔이의 여자라고 알려져도 심하게 욕을 먹지 않을 것 아닌가?

주아 언니와 민영 언니는 여배우로 이름값이 높고, 로즈 언니는 학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그 외에도 그의 여자들 대부분이 잘 나가는 사람들이다.

거기다 그의 팬들이 도끼눈을 뜨고 여자들을 평가하고 있기도 했다.

커뮤니티에서 해솔이의 다른 여자들을 찾고 있는 건 꽤 오래 된 일이었다.

그들은 그의 여자가 밝혀지면 외모, 능력, 교우관계, 과거 평판 등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나선 평가를 하는 거다.

진해솔과 그 여자가 어울릴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진짜 어이없지. 팬이라고 해서 해솔이 여자를 평가 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닐 텐데.’

더 어이가 없는 건 그런 팬들의 말에 아현이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젠 당당하게 프러포즈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외 가수들에게 곡을 써주는 작곡가.

국내 가수들이 의뢰를 넣어서 곡을 받으려고 하는 작곡가.

‘이 정도면 해솔이 짝으로 괜찮지 않아?’

그렇기에 인정을 받고 있는 지금이 프러포즈를 할 때인 것이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해솔이와 진짜 가족이 되고 싶었다.

♧ ♧ ♧

“혹시 걔랑 연락 하는 애 있어?”

“걔? 누구?”

“누구긴 누구겠어. 이아현이지.”

“엑! 언니는 아직도 걔랑 연락해? 난 안 한지 꽤 됐는데.”

“아니, 거창한 연락은 아니고, 그냥 안부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잖아.”

“해봤자 좋은 소리 못 들을 것 같던데. 걔가 우리를 ”

“그래도 사람이 친분이 있는데 새해 인사 정도는 해야 정이지 싶어서 말이야.”

“그래서 연락을 넣었다?”

“그렇지.”

“그랬는데 이런 소릴 하는 거 보니까 제대로 씹힌 모양이네.”

“씹힌 건 아니거든?!”

“그럼 뭔데?”

“아니, 내가 연락할 줄 몰랐다는 반응이기에 물어본 거야. 걔 어느 순간 단톡 나가버렸잖아.”

이아현.

국내에서 잘 나갔다.

부러웠고, 시기, 질투심을 안 느낄 수가 없었다.

처음 알게 됐을 때 그녀보다 아는 게 없는 초보였다.

미디 프로그램도 다룰 줄 몰라서 그녀들이 친절하게 가르쳐줬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 이들의 사이는 180도 바뀌어 있었다.

누구는 잘 나가는 작곡가로 돈을 쓸어 담고 있었고, 누구는 여전히 작곡가 지망생으로 근근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도대체 쟤보다 자신이 뭐가 부족해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인맥만 있으면 나도 이아현처럼 될 수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아현과 자신이 다른 점은 인맥이 있고, 없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영리하게 굴지 못했던 과거가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땐 나도 이아현처럼 기회가 오면 작곡가로 데뷔할 수 있을 줄 알았단 말이야.’

인맥의 힘으로 기회를 얻는 것.

그게 이토록 힘들다는 걸 예전에 알았다면 이아현에게 그런 식으로 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서 과거를 바꿀 순 없으니 미래를 위해서 뭐든 지금이라도 해봐야 했다.

‘이대로 꿈을 접을 순 없어.’

그래서 뜬금없이 생각나서 혹은 좋은 소식을 알게 돼서 정으로 연락을 한 사람처럼 연락을 했다.

그녀가 아는 아현이라면 무슨 일이 있었든 헤실헤실 착하게 웃어줄 아이였으니 말이다.

“사람이 어쩜 그렇게 순식간에 바뀌는지 모르겠어. 이게 연예인병? 뭐 그런 건가 싶더라니까?”

“어떻게 연락이 왔기에 그래?”

솔직히 어떻게 답장을 받았는지 고스란히 대답하기엔 쪽팔렸다.

[축하 인사는 감사하지만, 이런 연락 거북하네요. 앞으로 축하 인사 해줄 필요 없으니 보내지 말아주세요.]

이런 말을 들었다고 말하는 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이아현의 너무 달라진 태도에 놀라서 답장을 여태까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 화가 났다.

그녀가 답장을 보내지 못한 것은 이아현의 변한 태도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작곡가 지망생과 빌보드에 자신의 곡을 보낸 적 있는 유명 작곡가.

누가 봐도 체급 차이가 심하게 나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이 문자에 화가 나서 따진다면 이아현과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어질 게 뻔했다.

결국 그녀는 애써 읽지 않은 척 메시지를 닫아버렸다.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고 나서 분한 기억으로 안에 담아둔 것을 학원 동기생들과 만났을 때 꺼낸 것이었다.

그녀들 모두 이아현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기에 함께 흉을 보기 위함이었다.

“연락하지 말라고 하더라. 이제 나랑 지는 급이 다르다는 거지. 걔 단톡방에 나가기 전에 되게 음침하게 다녔잖아. 말도 잘 안 하고. 유학 가서 적응 못하고 거기서도 그러고 다니는 건 아닌지 걱정돼서 연락 해본 건데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하니까 어이가 없더라.”

“언니는 참. 그런 걸 뭐하러 신경 써주고 있어? 말없이 단톡 나갔을 때부터 문제 있는 애인 거 뻔히 보였잖아.”

모두가 그녀의 말에 익숙하게 맞장구를 쳤다.

이아현 흉을 보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기에 별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녀가 잘 나가면 잘 나갈수록 그들의 뒷담은 더 추악해지고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물어본 거야. 얘가 나한테만 이러나 싶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걔한테 친절하게 대해준 기억만 있거든.”

“유학 간다고 설치고 결국 갔잖아. 그러니까 상대도 하지 않겠다는 거 아니겠어?”

“진짜 연예인병 무섭다더니, 실제로 경험해보니까 차원이 다르더라. 그 순하던 토끼 같은 애가 어휴~ 이래서 졸부는 안 된다는 소리가 있는 거야.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진짜 인성을 보려면 성공해봐야 한다고. 걔 막 순진한 척, 착한 척 하면서 남자들 환심 샀었던 거 기억 해?”

가뜩이나 이아현이 요즘 빌드번에게 곡을 줘서 잘 나가고 있다는 걸 알아서 질투심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황이었다.

당사자가 해외로 유학을 나가 없으니 거리낌 없이 속에 쌓아뒀던 얘기를 꺼내면서 흉을 봤다.

“어?”

하지만 한 사람 흉보는 걸 앉은 자리에서 2시간 3시간씩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화제가 자연스럽게 바뀌고, 깔깔 웃고 떠들던 와중.

누군가가 핸드폰을 확인하다가 우연히 인터넷에 떡하니 올라 온 기사를 확인했다.

“어머어머어머! 언니! 이것 좀 읽어봐.”

“뭔데?”

“진해솔, 새 여자 얼굴 밝혀졌다 나봐.”

“와~ 누군지 몰라도 좋겠다. 나는 어디서 잘난 남자 뚝 안 떨어지나? 그 여자는 인생 폈네.”

“그럼 뭐해? 남자가 지조가 있어야지. 이 여자, 저 여자 껄떡 대는 스타일 별로인 듯.”

“근데 이건 진해솔이 껄떡대는 건 아니지 않아? 여자들이 가만히 안 두잖아.”

“걔가 은근 철벽이라던데.”

“돈 많지 얼굴 잘 생겼지 부족한 게 뭐가 있겠어. 그러니까 여자가 줄을 서지.”

진해솔의 새 여자가 밝혀졌다는 소식.

솔직히 요즘에는 시들해진 이야기였다.

그냥 또 새 여자가 생겼구나 부럽다~ 누구지? 예쁜가? 라는 생각만 든다.

하지만 이 기사를 가장 먼저 확인한 여자가 말하는 건 그 부분이 아니었다.

“내가 말한 건 그 부분이 아니야! 상대를 보라고.”

“어디보자…허니 엔터 연습생 출신의 현직 유명 작곡가인 미모의 여성…현재 유학 중이며 빌드번의 이번 노래를 작곡한 능력…자로 알려졌다?”

“이거 이아현 아니야?”

“누가 봐도 이아현인데?”

허니 엔터 연습생 출신.

현직 유명 작곡가.

현재 유학 중.

빌드번의 노래를 작곡했다.

이 모든 정보가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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