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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656화 (651/849)

Chapter 656 - #93. 민영 (10)

한민영에게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은 비앙카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 굴러 들어오는 먹잇감은 나름 별미였다.

“어때?”

“너무 쉬운 걸 명령하셔서 살짝 김이 좀 빠집니다.”

“내 취미 생활이야. 알지? 내 의뢰는 뭐든 1순위인 거.”

한민영으로부터 전달 받은 정보와 증거를 통해 스토커를 찾아내야 했다.

“물론입니다. 사장님.”

“명의는 다 네 것인데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건 곤란해?”

“하하, 역시 그런가요. 그럼 예전처럼 아가씨라고 부르겠습니다.”

스토커를 쫓는 일을 시킨 곳은 그녀의 은밀한 취미를 위해 만들어진 개인 사설 단체였다.

이들은 그녀가 원한다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가능한 처리반이었다.

그러다가 걸리면 어떻게 하냐고?

법적으로 비앙카와 그들은 얽힌 게 1%도 없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이들이 세상에 드러난다 해도 결국 사장만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요즘 일은 많이 들어와?”

“아무렴요. 이쪽 일은 매일매일 인력 부족입니다. 워낙 화려하게 노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보통 재벌 가문 출신들은 인맥을 통해 처리를 맡은 사설 단체를 소개 받게 된다.

하지만 비앙카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배후를 알 수 없는 단체에 자신의 약점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돈 주고 처리를 맡긴다고 해서 그게 오물 하나 튀지 않고 처리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쪽에서 이걸 약점으로 잡고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가능성이 0.1%만 있어도 마음을 놓고 맡길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모아 사설 단체를 만들었다.

‘내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 있는 것들로.’

인형 실비아와 합쳐져 성격에 큰 변화가 온 비앙카한테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건 굉장히 쉬운 일이 됐다.

어릴 적부터 그녀에게 후원이라는 큰 은혜를 받은 그들은 결코 배신하지 않으니까.

‘이런 좋은 녀석들을 키우고 있었으면서 제대로 써먹지도 않다니. 과거의 나는 너무 무르다니까.’

과거의 비앙카가 열심히 후원해서 키워 놓은 인재들을 쏙쏙 골라와서 자신을 위한 단체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덕분에 지금은 그녀의 뒤 아니, 밑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훌륭한 기둥이 된 것이다.

“근데 정말 아무것도 받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동안 후원을 해주신 만큼 갚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나는 너희들한테 투자를 한 게 아니라 후원을 한 거야. 후원이 뭔지 몰라? 코 묻은 돈 받아서 뭐하라는 거야? 차라리 까까나 사먹어. 너희들로 장사할 생각이었으면 이렇게 안 썼지.”

그녀 개인의 의뢰만 받던 곳이 어느새 커져서 다른 재벌들의 뒤처리 의뢰를 맡는 곳으로 커졌다.

일방적인 그녀의 투자금으로 운영 되는 것이 아닌, 내부에서 돈이 돌다 보니 훨씬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저런 건방진 말도 할 수 있게 된 것이고 말이다.

‘쯧쯧, 그거해서 몇 푼이나 번다고….’

과거에 ‘영업 뛰는 건 상관없어. 다만 내 의뢰는 무조건 1순위야.’라고 허락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돈 몇 푼 벌겠다고 몸 갈아서 일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그녀의 돈을 받으며 지내다가 가끔 시키는 일이나 재깍재깍하면 별 말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영업 뛰는 걸 허락하자 이름조차 만들어두지 않은 ‘개인 사설 단체’는 무럭무럭 자라나 그녀의 드러나지 않은 힘의 큰 축을 차지하게 될 정도로 커졌다.

소소하게 취미를 위해 움직이기도 하지만, 기업을 운영하면서 그들의 힘이 때때로 필요할 때가 있었던 것이다.

‘가령 칸나의 집안을 삼킨다든지 하는 거.’

다른 가문의 후계자 싸움에 은근슬쩍 끼어들어서 이득을 취하는 건 꽤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투자였다.

패배하게 된다면 그쪽 가문과 원수가 될 수 있지만, 성공한다면 뿌리 한 자락은 뽑아 올 수 있었다.

“아무튼 그 스토커라는 사람은, 최대한 빨리 조사해오겠습니다.”

“그래.”

그들이 스토커를 찾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마인드로 돈과 각종 첨단 기계를 활용하면 사람 한 명 터는 것은 너무도 가뿐한 일이었다.

처음 시작은 택배를 가져온 사람에 대한 조사다.

“네? 택배요? 그걸 일일이 기억하고 있진 않죠.”

“본인이 가져다 둔 택배에 동물 사체랑 협박 편지가 들어있었어요.”

“헉! 진짜요? 언제 배달한 건데요?”

한민영의 집에 택배를 가져다 둔 사람은 퀵서비스로 근무하고 있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아아~ 어렴풋이 기억나요. 택배에 이상한 냄새가 나긴 했거든요! 제가 원래 하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잘 기억 못하는데 그건 냄새 때문에 기억에 남았어요.”

“어디서 택배를 받았는지 기억 나십니까?”

“어…수첩을 보면 써있을 거에요!”

다행이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은 탓에 수첩에 의뢰를 전달 받은 위치가 적혀 있었다.

그들은 퀵서비스에게 전달 받은 주소를 시작으로 근처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뒤지기 시작했다.

수첩에 시간이 적혀 있었기에 스토커 용의자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빨랐다.

“스토커는 이 사람으로 추측이 됩니다. 택배 상자를 갖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을 추적해서 집이 어딘지 알아놨습니다.”

유력한 용의자이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이 사람도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택배를 건네줬다고 하면 상황이 난감해질 수 있었다.

“섣불리 접근하지 않은 건 잘했어. 앞으로 이 여자 24시간 감시해. 뭘 먹는지, 뭘 입는지, 어디를 갔는지, 누구랑 연락을 했는지 전부 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이 여자의 모든 것이 털리게 될 것이다.

그녀가 범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스토커를 찾는 과정에서 나오는 희생은 나중에 돈으로 무마시킬 셈이었다.

불쾌한 건 잠시일 뿐, 손에 들어 온 돈은 불쾌감을 금방 잊게 해줄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사람에 대해 조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핸드폰을 해킹하는 것이었다.

몸에서 절대 떼어놓지 않는 핸드폰만 뚫을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삶을 쉽게 알아 낼 수 있다고 보면 됐다.

“스토커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뿐인가?

SNS라는 것은 이런 뒤가 구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주었다.

굳이 번거롭게 이곳저곳을 찔러 볼 필요 없이 그곳에 모든 정보가 모아져 있기 때문이다.

비밀 계정으로 운영하고 있는 스토커의 SNS에는 진해솔에 대한 진한 집착과 그의 여자들을 향한 날선 경계심과 질투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얘가 스토커인 게 맞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처리하실 겁니까?”

“아니지. 그렇게 재미없이 해결하는 건 싫어.”

이 스토커를 어떻게 괴롭혀줘야 재밌을까.

비앙카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 ♧ ♧

스토커의 정체를 확인했으니 그녀에게 선물을 안겨준 한민영에게 진행 상황을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

한민영에게 스토커에 관련 된 얘기를 해야 한다고 하니 냉큼 약속을 잡았다.

“스토커 잡았어요.”

“!!!”

아니나 다를까.

만나자마자 형식적인 인사 대신 냅다 본론을 박아버리니 놀라서 굳어버렸다.

‘귀엽네. 괴롭혀주고 싶게.’

비앙카는 슬금슬금 치밀어오는 못된 욕심을 꾹 눌렀다.

그녀를 건드렸다간 주인님이 결코 가만히 계시지 않을 거다.

그녀는 남을 괴롭히고 싶은 것이지 주인님에게 괴롭혀지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이제 이 스토커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문제인데, 이 부분은 같이 상의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아…경찰서에 신고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처리 문제까지는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는지 한민영씨가 약한 소리를 해왔다.

고작 그렇게 처리하자고 그 돈을 써서 알아 낸 게 아니지 않은가?

“주인님을 납치, 강간하려고 했던 스토커를 고작 경찰한테 보내는 걸로 끝내면 만족하는 거에요?”

“나, 납치 강간이요?”

“일단 이 스토커 SNS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계획이 굉장히 구체적이에요. 일기로 오늘은 뭘 준비했다, 오늘은 이걸 준비했다, 이 부분은 보안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식으로 적어뒀더라고요. 이건 정말 실행 할 의지가 충분히 넘친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법적으로 끌고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

“스토커에 대한 처벌이 강해지고 있다 해도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아요. 특히 이 경우에는 과대망상일 뿐이라고 우기기 시작하면 사건이 애매모호해지죠. 일단 우리는 이 협박 택배를 보낸 사람이 저 사람이라는 증명 된 증거를 갖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녀가 스토커를 알아낸 방법은 불법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가 있다.

핸드폰을 해킹하고, 금전을 줘서 CCTV를 확보해 범인의 뒤를 밟은 거다.

“이 과정을 경찰한테 설명하려면 엄청 복잡해지죠.”

“결국 경찰에 맡기는 건 안 된다는 거네요….”

“네. 스토커를 해결하려면 저희가 직접 움직여야 하는 거죠.”

“저는 이 사람이 해솔이한테 해코지만 하지 않으면 돼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얼굴이 붉은 것이 화가 많이 난 표정이었다.

스토커의 SNS를 확인하고 화가 나지 않을 순 없었을 것이다.

SNS에 비공개로 적어 둔 일기장에는 해솔이를 강간하기 위한 준비 과정도 적혀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 이 부분 봤어요? 주인님을 강간하고 자기 처녀혈을 먹일 거라는 이 부분.”

“!!!”

“이런 쓰레기한테 고작 해코지만 하지 않으면 봐줄 거라고요? 우리 사이에 괜히 이미지 관리한다고 속일 필요가 있을까요? 이젠 솔직해지죠? 저는 이 년을 불에 태워서 죽이고 싶거든요.”

“!!!”

스토커가 아무리 끔찍한 짓을 저지를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사람을 태워 죽이고 싶다는 말을 태연하게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진짜 태워 죽이겠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로 싫어한다는 거죠. 그 정도 고통은 줘야하지 않겠어요? 이런 짓을 저지를 년한테는.”

민영은 입술이 바짝 말랐다.

상대방이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나오는데 자신이라고 계속 속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꿀꺽 침을 삼켜낸 민영은 덜덜 떨리는 손을 감추지 못하며 살짝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저, 저도 사실은….”

“사실은?”

“아스팔트에 이 년 얼굴 갈아버리고 싶어요. 그리고 감히 해솔이한테 먹이겠다는 그 역겨운 짓거리. 다신 못하게 만들고 싶고요.”

“아하하! 역시, 민영씨는 나랑 잘 맞을 줄 알았어요.”

민영 그녀가 지금은 해솔이의 교육으로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한 때 해솔이의 정액에 중독 되었던 약쟁이 출신이다.

그녀가 한참 중독 증세에 시달릴 때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사람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그럼 어떻게 할까요?”

잠시 보였던 본모습을 서둘러 수습한 민영이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을 평범한 모습을 가장해서 말했다.

“…이 사람이 준비해놓은 걸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게 가능할까요?”

“여기 일기에 쓰인 것들, 전부 다 본인한테요?”

“응. 그래서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는 생각을 함부로 써재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면 좋을 것 같아요.”

“크~ 아주 기발한 생각이에요.”

“근데 이 사람이 진짜 이걸 실행할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잖아요. 그냥 일기만 이런 식으로 적어둔 거면 어떻게 해요?”

한민영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양심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비앙카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달래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요. 모든 일이 시작 되는 건 저 여자가 계획한 일을 실행하려고 했을 때일 거에요.”

“그 정도라면….”

민영에게 남아 있는 양심도 더 이상 쿡쿡 쑤시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앙카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괜히 이런 일에 끼어서 고생하지 말고, 나한테 다 맡겨요.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결과만 말해줄게요.”

“그래도 되겠어요? 괜히 비앙카씨한테 부담을 주는 건 아닌지….”

“전혀! 저는 원래 성격이 좀 못되게 꼬인 사람이라 누굴 괴롭히는 걸 즐거워하거든요. 괜히 도와주겠다면서 제가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가는 게 더 싫어요.”

직접 두 눈으로 괴로워하는 걸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한층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

비앙카와 손을 잡은 것을 잘 한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한민영은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했다 자위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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