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60 - #94. 안신애 (1)
꿀꺽-
침을 삼킨다.
식은땀이 흘렀는지 이마를 타고 주르륵 물방울이 떨어졌다.
등이 흥건하고, 얼굴을 창백했으며, 손에는 자꾸만 땀이 나와서 저도 모르게 옷에 슥슥 닦아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눈앞에 있는 커다란 현관문이 가장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다.
해솔 오빠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상상한 것 이상으로 크고 웅장한 저택을 본 순간 쫄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신애는 한참동안 심호흡으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킨 후에야 초인종을 누를 용기를 가졌다.
안 누른다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저 안에 들어가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니 말이다.
“후우~ 후우~ 할 수 있어. 안신애, 너 그렇게 약한 애 아니잖아?”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현관문 옆에 있는 초인종을 눌렀다.
해솔 오빠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상상한 것 이상으로 크고 웅장한 저택인지라 각오를 단단해야만 했다.
‘여기서 살고 있다는 거지.’
그리고 미래에 그녀가 들어와 살아야 할 공간이기도 했다.
‘무서워하지 말자!’
두 주먹을 옴팡지게 꽉 쥐고 후웁후웁 숨을 한껏 들이켰다.
그리고 마침내 손가락을 올려 꾸욱 버튼을 눌러버렸다.
♪~♪~♪
비싼 고급 집이라서 그런가 현관문 벨소리가 무척 청아했다!
얼마나 바깥에서 기다렸을까?
잠시 후 안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매끄럽게 문이 열리고 안에서 사람이 나오자 채 눈을 마주하기도 전에 냅다 고개를 숙이고 우렁차게 외쳤다.
“안녕하십니까아!!! 안!! 신!! 애!! 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준비했던 것보다 훨씬 큰 목소리였던 지라 직접 내뱉은 사람도 깜짝 놀랐다.
후다닥 몸을 일으켜서 앞을 바라보니 엄청 예쁜 여자 분이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와.”
너무 예뻐서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어서 와요.”
목소리도 무지 좋았다.
“안녕하세요. 언니!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어머, 호호! 듣던 대로 밝은 친구네. 그래, 편하게 할게.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들어와.”
“네, 네엡! 그리고 이거….”
주섬주섬 쇼핑백을 여성분에게 건넸다.
“와인이네?”
“네엡. 빈손으로 오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후후, 집에 오는 건데 빈손으로 오는 게 당연하지. 다음부터는 이런 거 없이 편히 오는 거다?”
“네!!”
처음으로 만난 분이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셔서 한결 숨이 트였다.
‘이 분도 그럼 해솔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겠지? 으아아~ 미쳐따. 어떡하지?’
해솔 오빠의 여자로 알려진 여자들만 해도 만만치 않은 수준인데, 알려지지 않은 여성도 이 정도 수준이라니….
절로 자존감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딘가 진주아님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오빠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이렇구나. 나랑 너무 다른데….’
두 사람이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것을 보며 해솔이의 이상형이 저런 느낌이구나 하고 오해를 한 신애가 집의 웅장한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처, 천장이 엄청 높네.’
집인데도 천장이 이렇게 높은 게 너무 신기했다.
거기다가 집을 꾸미고 있는 가구나 장식품들이 누가 봐도 값어치가 많이 나갈 것 같은 물건들인지라 절로 어깨가 좁아졌다.
“이쪽으로 앉아요.”
“네에, 감사합니다.”
“마실 거 필요할 것 같은데 뭐 줄까? 웬만한 건 다 있으니까 편하게 말해.”
“어…그럼 저 오렌지 주스 될까요?”
“당연히 되지. 잠깐 기다리고 있어. 편하게 구경하고 있어도 되고.”
“넵!”
이름 모를 언니님이 주방으로 보이는 곳으로 움직였고, 혼자 남은 신애는 소파에 앉아서 눈알을 굴렸다.
“…재벌 집 같다.”
집을 눈으로만 구경해도 위압감이 밀려온다.
드라마에서나 살짝 엿봤던 ‘부내’가 이 집에서는 진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그림은 얼마일까?’
도리도리-
‘정신 차리자!’
지금 이 집에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러려고 이곳에 초대 된 게 아니지 않은가?
오늘은 해솔이의 여자로 가족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온 거였다.
집을 구경하다보니 정신이 들었을 때, 언니분이 오렌지 주스와 다과를 가져다주셨다.
“맛있게 먹어요.”
“감사합니다.”
너무 긴장해서 목이 말랐기에 오렌지 주스부터 마셨다.
“헉!”
“왜? 입에 안 맞아?”
“아, 아뇨! 너무 맛있어서요.”
“고마워.”
“아니, 이게 입에서 막 씹히는데요? 달달하고 상큼하고…. 이렇게 맛있는 오렌지 주스는 처음 먹는 것 같아요.”
“호호호! 이것도 좀 먹어봐.”
자신의 말에 과하게 기분이 좋아지신 걸 보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혹시 이거 언니께서…?”
“맞아. 내가 만든 거야.”
“우와아~ 솜씨가 굉장히 좋으시네요. 쿠키도 되게 맛있어요.”
“많이 먹어. 갈 때 챙겨줄게.”
“보통 한 번쯤은 사양할 텐데, 정말 맛있어서 염치없이 부탁드릴게요.”
“전혀 염치없지 않아. 오히려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이 좋은 걸? 우리 집에는 관리한다고 해놔도 먹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
“이 맛있는 걸 마다한다구요?!”
“그러게나 말이야.”
“제, 제가 다 먹을게요! 저 잘 먹을 수 있어요!”
사실 아이돌인 그녀가 과자를 많이 먹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배가 터질 때까지 먹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말만이라도 기분 좋네. 그래도 건강 생각해서 적당히 조절해서 먹어. 알겠지?”
“네에….”
어쩜 얼굴도 예쁘신데 마음씨까지 고우시다.
이런 분이 곁에 있어준다면 해솔이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는 게 생각만큼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근데 다른 분들은…?”
“아직 안 들어왔어. 이제 곧 다들 올 시간이니까 들어오기 시작할 거야.”
“아아~”
“세상에 또 얼굴이 창백해졌네. 긴장 많이 되니?”
“네에.”
무서워서 엉엉 우는 안쓰러운 아기를 달래주는 엄마처럼, 언니님이 신애의 옆자리에 앉더니 손을 잡고 토닥여주었다.
“긴장 안 해도 된다고 해도 마음대로 될 리는 없겠지만 다들 나쁜 사람은 아니야. 이름이 신애라고 했던가? 신애가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면 금방 친해져서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걸?”
“정말 그럴까요? 제가 많이 부족해서….”
“부족하다니? 이렇게 예쁜데 뭐가 부족해.”
원래 사람이 서러울 때 옆에서 달램을 받으면 더 서러워지는 법이었다.
최대한 눈물을 억누르며 신애가 말했다.
“저는 이렇게 와보니까 부족한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서요.”
“아이구~ 그랬어? 사실 집이 많이 크긴 하지? 저기 도자기는 억이 넘는데.”
“히익!”
“나도 처음에 이 집에 와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 근데 우리는 적응이라는 걸 하잖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쌓이고 친해지고 그렇게 가족이 되는 거야. 부족하다고? 가족인데 부족한 게 뭐가 중요해. 부족한 점이 있으면 서로 맞춰나가면서 보완해주는 거지.”
“제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불편해 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걸로 불편해 하는 사람 없어. 그건 정말 큰 오해야. 천천히 같이 시간 보내다 보면 신애도 느낄 수 있을 거야.”
어깨를 다독여주니 신애의 마음도 많이 가라앉았다.
이분이 가장 먼저 자신을 반겨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감사해요. 덕분에 용기가 났어요.”
“그래그래. 너무 힘들면 나한테 살짝 알려줘. 도와줄게.”
“네엡. 근데 성함이…어떻게 되시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어머! 내가 소개도 안 했구나. 남정화야. 정화 이모라고 불러도 돼. 언니라고 불리는 건 너무 양심이 없는 것 같아서.”
“저 그렇게 안 어려요!!”
“아니, 신애가 어리다기보단 내가 나이가 많아서.”
나이가 많다고?
신애는 말똥말똥하게 눈을 깜빡였다.
“어…그래도 언니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은데요?”
“그래? 욕먹는 거 아닌가 싶은데….”
“아무리 봐도 언니가 맞는 것 같아요!!”
이모라니?
자신이 너무 어려보이는 건 싫었다.
꿋꿋하게 언니라고 부를 거다.
외모가 동안이라 해도 많이 쳐서 서른 초반일 게 분명했다.
그 정도 차이는 언니라고 불러도 된다고 봤다.
신애는 본인의 생각에 큰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결국 ‘언니’라는 호칭을 지켜냈다.
“어? 왔네.”
“!!!!”
다시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심신의 안정을 취하고 있었던 신애에게 덜컥! 하고 빠르게 현실이 다가왔다.
띡띡띡띡띡띡-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와 함께 덜컹! 하고 문이 열린 것이다.
“흡!!”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신애를 본 정화 언니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잘 소개시켜줄게.”
“네, 네.”
너무 긴장해서 그런가?
시야가 흔들렸다.
방금 전에 오렌지 주스를 마셨는데, 또 다시 바짝바짝 목이 말라왔다.
“어머, 일찍 왔네.”
“!!!”
그리고 신애는 도착한 사람을 확인한 순간 긴장이 확 풀렸다.
“해솔 오빠아….”
그의 가족이 온 건 줄 알았는데, 해솔 오빠가 현관에 우뚝 서 있었다!
아무리 정화 언니가 다정하게 대해줘도 해솔 오빠만큼은 아니었다.
“일찍 왔네. 나도 최대한 일찍 온다고 한 거였는데. 혼자서 어떻게 들어왔어? 긴장해서 문 앞에서 벌서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방금 들어왔어. 놀리지 말고 와서 달래줘.”
“하하, 넵.”
해솔 오빠에게 한소리를 해준 정화 언니 덕분에 신애는 금방 그의 품으로 쏙 들어갈 수 있었다.
“히잉~ 일찍 와줘서 고마워요.”
“너랑 같이 들어가려고 했어. 근데 좀 늦은 것 같네.”
“괜찮아요! 언니가 잘 반겨줬어요. 나 오렌지 주스도 먹었어요.”
쪽!
“그러게. 과자도 먹었나보네. 맛잇다.”
“앗! 오, 오빠아~!”
옆에서 언니가 두 눈 뜨고 있는데 키스를 하면 어쩌란 말인가!
경악하는 신애와 달리 해솔 오빠는 냠냠하면서 그녀의 입술 주변에 묻어 있던 과자 부스러기를 삼켰다.
“후후, 어서 씻고 와. 식사 차려놨어.”
“다른 가족들은요?”
“애들 데리고 산책.”
“이야~ 북적북적하겠네요.”
“새 가족이 오는 날이니까. 미리 애들 체력 빼놔야 대화를 나눌 수 있지.”
해솔 오빠한테 아이들이 있다는 건 이미 들은 적이 있었다.
사진으로도 봤었는데, 오늘 드디어 실물을 볼 수 있게 되니 기대감이 차올랐다.
‘나도 아기 좋아하는데.’
하나같이 해솔 오빠를 닮아서 예쁘지 않은 곳이 없더라.
자신도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그의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 얼굴은 어떨까 상상도 많이 했다.
쪽!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이 정도쯤이야.”
신애가 아이들 얘기에 잠시 넋을 놓은 사이.
해솔 오빠가 태연하게 정화 언니와 키스를 나누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신애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모르고 만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쉽게 적응 되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이 없는 입장이잖아. 차분하게, 냉정하게 대응하자! 난 괜찮아!’
비록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다른 여자들과 나눠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이 남자를 차지할 수 있다면 그 정도 희생은 눈 감아 줄 수 있었다.
아니, 눈 꼭 감고 인내해야만 했다.